리뷰
클럽 가이 앤 로니(Club Guy & Roni)는 안무가 가이 바이츠만과 로니 하버가 2002년 창단한 단체로 이스라엘 바체바 무용단에서 활동하였고 현재는 네덜란드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년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선보인 〈비포 애프터〉에서 노년기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연출한 댄스필름으로 실력을 검증받았고, 이번 작품 〈Freedom〉(9.17.,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도 탄탄한 구성과 퍼포먼스로 자유를 유린당한 개인의 내적 고통을 묵직한 울림으로 보여준다. 작품은 9.11테러 용의자로 몰려 기소도 없이 14년간 불법 감금상태에서 충격적인 고문을 받은 실제 모하메두 울드 슬라히(이하 슬라히)의 이야기(〈관타나모 일기〉)를 토대로 만든 영화 〈모리타니안〉(The Mauritanian)(2020)에서 모티브를 받았다고 소개한다. 영화의 맥을 따르면서도 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관타나모 감옥에서 행해진 실상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유와 인권을 절대적으로 옹호하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자국 안보의 명분으로 개인에게 행한 비합리적이고 무자비했던 민낯을 폭로하며 피해자(슬라히)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궁극적으로 실제 사건이 던지는 파장을 집중력 있게 다루며 진정한 ‘자유와 정의’가 무엇인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생각이다.
클럽 가이 & 로니 〈Freedom〉 ⓒ2022 SIDance/옥상훈 |
첫 장면부터 확성기에 미군 검찰관이 테러리스트를 잡겠다는 입장 표명(“이 공격을 실시했거나 우리에게 피해를 주려는 사람들! 명심해라 우리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잊지 않을 것이고 끝까지 쫓아가서 값을 치르게 할 것이다”)과 용의자로 검거된 슬라히가 영문도 모른 채 모리타나 고향집에서 잡혀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2016년 석방, 2013년 어머니는 돌아가심)을 회상하는 상반되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대본작가로 참여한 슬라히 자신의 실화를 토대로 한 사건은 실제 쿠바에 있는 테러리스트들을 가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겪었던 일들을 무대에 소환한다. 네모난 검은색 박스가 무대 천장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조명이 들어왔다 꺼지기를 반복하며 마치 전기 고문실 같은 분위기이다. 사각 박스 아래 손이 묶이고, 얼굴이 가려진 상태로 댄서들은 어떠한 저항도 없이 음습한 무대에 서 있는 장면부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검정 박스는 비좁은 독방이자 고문을 받는 장소이며 죄수들의 처참한 심경을 대체(代替)하는 장치로서 작동된다. 미국법도 쿠바법도 어떤 국제법도 적용받지 않는 관타나모(9.11테러 후 2002년 해군기지내 개설 799명의 용의자를 가둠)에서 자행되었던 심문과 고문의 현장을 불러온 무대인 것이다.
클럽 가이 & 로니 〈Freedom〉 ⓒ2022 SIDance/옥상훈 |
“사자가 글을 쓰는 법을 익히기 전까지는 모든 이야기들은 항상 사냥꾼만을 찬양할 것이다” 라는 내레이션이 여러 언어로 여러 번 나온다. 이 말인즉슨 슬라히 본인은 당했던 일들을 알릴 방법이 없는 사자였고, 사자(테러리스트)를 잡았다고 주장하는 미국 정부에게 찬사만을 보낸 상황을 비유하며 관타나모 사건의 진실을 보지 못한 자들에게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로 생각된다. 고문관이 얼굴과 온몸이 가려진 댄서에게 물을 먹이고 전등으로 얼굴을 비추고 가위로 댄서의 옷을 자르는 행위를 한다. 물고문과 수면 고문 그리고 성고문을 암시하는 행위에 반응하는 댄서의 심경이 나지막하게 흘러나오는 이슬람 노래로도 그 옆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다른 댄서를 통해서도 느껴진다. 가위질 소리는 피해자(슬라히)가 느꼈던 치욕과 공포를 느끼게 할 정도로 섬뜩하고, 신체 가학의 강도가 더해지며 고문과 자백을 강요하는 사실적인 퍼포먼스로 무대는 무거워진다. 피로할 정도로 공연 시간 내내 멈추지 않는 북소리는 댄서들을 압박하는 장치일 수 있고, 또는 슬라히가 당했던 고문을 관객들에게도 간접적으로 전달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자신의 무고를 주장하는 군무와 댄서들의 연기에서 서늘한 긴장감이 현장을 순식간에 장악해 버린다.
클럽 가이 & 로니 〈Freedom〉 ⓒ2022 SIDance/옥상훈 |
이어지는 상황은 박스 위에 올라선 퍼포머가 마치 단두대에 혹은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앞 장면을 토대로 군 행동의 부당함을 촉구하는 이야기를 한다. 9,11테러로 전 세계가 공포와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군대의 대응으로는 이후에도 테러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며 우리 또한 악이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지를 돌아보자는 말이다. 고문관과 내레이터는 좁은 박스를 둘러싼 공간에 밀착되어 사투를 벌이는 움직임에서 서로의 입장 차가 결코 수용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박스 안에서 목을 매는 자살 행위가 벌어지며 희망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퍼포먼스로 고통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무대 곳곳에 설치된 박스에 수감된 날을 기록하는 행위는 그간 견뎌온 죄수들의 시간과 세월을 압축하고 있고, 무대 중앙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단호하게 자신들의 억울함을 춤으로 피력하며 다면적으로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벌어진 일이 폭로된다. 지속되게 어필하는 갖가지 음향 장치는 관객의 귀를 자극하며 극적 시간으로 이끌고, 다양하게 활용되는 검정 박스는 수용소에서 받은 처우를 항변하며 공간을 변호하는 장치로 의미있게 다가온다. 시각과 청각 그리고 촉각을 깨우는 장치를 총동원하여 펼쳐지는 퍼포먼스는 작품이 다루고자 하는 영화 같은 현실이 동시대에 벌어지는 일이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집중력 있게 핵심을 짚어낸다.
클럽 가이 & 로니 〈Freedom〉 ⓒ2022 SIDance/옥상훈 |
내레이터는 실제 슬라히가 감옥에서 풀려난 후 고문관과 통화한 내용을 그대로 들려주며 이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유도한다. 통화의 핵심은 자기의 고문이 심했다고 인정했어도 아직 슬라히가 범죄자라고 믿고 있다고 주장하는 고문관의 입장과 진정한 사과를 한다면 그들의 악행을 용서 하려던 슬라히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는 대화이다. 성고문을 하고 엄마를 협박하여 받아낸 자백에도 불구하고 무죄선고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수년간을 풀어주지 않았던 고문관과 미국 정부에게 듣고 싶어 했던 사과 한마디도 듣지 못한 현실이 참담하게 전해진다.
클럽 가이 & 로니 〈Freedom〉 ⓒ2022 SIDance/옥상훈 |
통화를 이어 받은 댄서들은 자신들 몸보다 몇 배가 큰 외투로 몸을 감싼다. 이는 과장되고 왜곡된 현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며 사실과 진실 간의 간극과 허상을 의미한다. 마치 옷에서 영혼만이 빠져 나온듯한 댄서는 앞선 이슬람 음악에 맞춰 허공에 외치는 춤을 춘다. 비장한 춤은 살풀이에 가까워 보이지만 어떤 해소 지점의 풀이가 보이질 않는다. 초반부터 모든 상황을 응시했던 댄서가 제대로 설 수 없을 정도의 고통스러운 몸짓을 한다. 이 댄서는 아마도 슬라히의 어머니일 수도 있고 슬라히 같이 짓밟힌 익명의 누군가를 대표하는 인물일 수도 있다. 온몸이 경직되어 입을 틀어막고 신음조차도 내뱉을 수 없는 춤으로 실제 당해보지 않고는 그 피해자들의 고통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나 싶을 정도의 감정을 전하며 공연은 초반부터의 긴장감을 마지막까지 유지한 채 마무리된다.
클럽 가이 & 로니 〈Freedom〉 ⓒ2022 SIDance/옥상훈 |
이 작품은 영화적 시간과 흐름이 아닌 공연형태로 피해자 심상의 고통을 춤과 퍼포먼스로 추적하고 있으며 슬라히의 강탈당한 자유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영화〈모리타니안〉을 보지 않았다면 어쩌면 캐릭터가 명확하게 설정된 극적 전개가 아니라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 폭이 영화보다는 덜할 수도 있다. 일례로 공연 중간 즈음 전쟁이 연상되는 비행기 소리가 나오며 고문관과 슬라히의 다른 입장과 주장임이 암시되지만 그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영화에서는 슬라히가 자국을 침공한 러시아와 싸우기 위해 알카에다조직에 참여했었고 기내에 탔던 테러범과 아는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테러용의자로 만들어 버린 증거로 미국 입장에서는 적으로 성급하게 판단해 버린 일이다.) 영화 〈모리타니안〉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공연에서는 몸이 아팠다. 이 점이 영화와 춤이 진실을 다르게 전달했던 방식이다. 현장에서 전달되는 감정이 온몸으로 흡수되는 느낌이었고 하여 처음부터 끝 장면까지 작품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한 개인의 참담한 고통을 무대 현장에서 증폭된 강도로 느낄 수 있게 내레이션, 음악과 리듬, 무대 구성, 움직임, 퍼포먼스가 적재적소에서 마치 촘촘하게 짜인 그물망처럼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상호작용으로 시너지를 일궈냈다. 특히 첫 장면부터 무대 뒤에서 모든 상황을 페인팅하며 완성한 괴물 같은 형상에서 외치는 절규는 이 공연의 핵심을 그려냄으로 다시 한 번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통을 상기시킨다. 아직도 자행되고 있는 지구촌 인권문제의 실상을 슬라히의 실화를 토대로 작업한 클럽 가이 앤 로니의 용기 있는 발언은 예술의 사회 비판적인 역할과 책임감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클럽 가이 & 로니 〈Freedom〉 ⓒ2022 SIDance/옥상훈 |
2002년 9,11테러 이후 20주기를 맞아 관타나모 미국 고문의 실상이 재조명되고 있으며, 바이든을 비롯한 4명의 미국 대통령들이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약속(트럼프 제외)하였으나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뉴스도 찾아보게 되었다. 더불어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음직한 제2의 ‘관타나모’는 어디인가 생각해 본다. 따라서 자국의 정의 구현이란 신념으로 인한 배척된 희생자의 진실을 파헤친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고 그 파장이 오늘도 실천적인 행동을 촉발하는 데 유효하다. 실제 인권시민단체에서는 아직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 마지막 둘의 대화에서 고문관은 끝까지 자신들(미군) 행동의 적법성을 주장하고 있었고 슬라히는 고문관에게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한 채 통화를 끝낸다. 이 둘의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았으나 슬라히는 신의 이름으로 모두를 용서한다고 한다. 영화 〈모리타니안〉과 〈Freedom〉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자유는 ‘용서’를 통해 얻을 수 있음을 그리고 다수의 자유를 위한 대가가 무고한 개인의 희생이어도 되는지를 되묻고 있는 것이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