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트프로젝트보라 〈소무〉
전통 벗어나 동시대로 이동한 소무의 섹슈얼리티
김명현_춤비평가

매우 빠르게 변하는 것이 특징인 한국사회에서 유독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부분은 ‘남혐’ ‘여혐’이라 프레임화되는 성 관념일 것이다. 그런 만큼 많은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될 법도 한데, 또 이것이 너무나 정상적이라 인식되어서인지 무대화되지도 않는다. 이런 풍토 속에서 꾸준히 여성의 신체를 중심에 두고 작업하는 아트프로젝트보라의 김보라 안무가는 두드러진다. 그는 〈혼잣말〉 〈각시〉 〈100% 나의 구멍〉 등의 작업을 꾸준히 발표하며 여성의 신체로부터 시작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많이 무대에 올리고 있다​.




아트프로젝트보라 〈소무〉 ⓒ아트프로젝트보라




김보라 안무가의 대표작이라 할 〈소무〉(2015)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공연예술 창제작 유통 협력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홍성, 익산, 통영을 순회했다(8월 6~21일, 평자 6일 홍주문화회관 관람). 〈소무〉는 탈춤에서 늙은 중과 젊은 취발이와 관계를 맺는 젊은 여성 ‘소무’에서 소재를 가져와 지배 권력 담론 속에서 남성지배에 종속된 대상화된 여성성에 향한 시각을 무대화한 작업이었다. 무대는 사각의 틀 속에 여성성의 상징인 물을 채워 두었고, 천장으로부터 내려온 나무로 만든 소리를 내는 조형물 5개와 그에 대응하는 여성 무용수 5인이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묘사하는 작품이었다. 수직으로 서 있는 조형물들은 가부장적 질서를 표상하면서, 또한 속된 표현으로 악기에 비유되는 여성 신체를 은유했다. 그것이 내는 딱!딱!딱! 하는 소리는 규칙적인 상징 질서의 세계를 그리고 끼이익~ 끼이익~ 하는 소리는 모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여성의 소리, 그로테스크한 존재로서 목소리를 잃어버린 여성을 대리하는 소리로 해석되었다.

그런 단단한 나무 조형물 옆에서 여성들은 철사줄을 겹겹이 허리춤에 말아놓은 의상을 입고 고무줄을 양 허벅지와 허리에 연결하여 밀었다 당겼다하며 마치 인형처럼 어기적 어기적 걸어다녔다. 고무줄은 살을 파고들며 고통을 줄 수 있는 사물이다. 고무줄을 성적 상징성이 강한 허벅지와 골반, 가슴을 연결해서 움직여 다님으로써 그들의 걸음이 소무들의 자유의지보다는 규범에 속박된 움직임으로 보이도록 했다. 노장으로 생각되는 남성이 부채를 들고 등장하여 부채를 접었다 폈다 하며 움직일 때, 여성 무용수들은 그의 부채 아래에서 팔꿈치를 눈높이까지 올리고 양손을 이마에 포개어 큰 절을 하는 동작을 변주하며 움직였다. 마지막 장면에선 관객들에게 등을 돌리고 몸을 깊이 숙여 가늘고 길게 연결되는 종아리와 허벅지, 엉덩이를 부각시킴으로써 여성의 몸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남성들의 시각을 재현했다.






아트프로젝트보라 〈소무〉 ⓒ아트프로젝트보라




7년 만에 새 버전으로 무대에 오른 〈소무〉는 우선 전작에서 시각적으로나 상징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악기를 형상화한 나무 조형물을 등장시키지 않았다. 동시에 노장과 취발이로 여겨지는 남성 배역도 등장시키지 않았다. 남성무용수는 있었으나 그들의 젠더 행동은 두드러지지 않았고 오히려 다수의 여성들에 의해 소수자로 몰리는 장면을 연출시켜 남성 지배 담론에 종속되어 있던 여성으로부터 소무를 탈피시키려는 의지를 보였다. 대립구도도 사라지고, 밀양아리랑을 모티프로 했던 음악도 일정 부분 사라지면서 상징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거의 모든 여지를 없앴다. 이로 인해, 다섯 명의 무용수가 모두 개별적 소무로서 보여지던 전작과 달리 11명으로 늘어난 무용수(최소영, 이혜지, 박선화, 백소리, 김희준, 이규현, 이재린, 서예진, 최민선, 손승리, 김지혜)들은 동시대의 여성들을 대표하는 전체화된 소무로 보였다.

무용수들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골반이 봉긋해보이는 의상을 입고 고무줄을 감고 등장했다.
무용수들은 고무줄을 끊어질 듯 팽창시키기도, 유연한 탄성을 놀이하기도 했고, 서로의 몸에 연결시켜 여성들간의 유대와 연대를 말하기도 했다. 한 팔을 크게 벌려 돌면서 자신만의 공간을 확인하는 행동, 손을 하복부에 모으고 다소곳이 걷거나 열을 맞추는 규범과 관습을 따르는 행동, 남성과 함께 허리를 강하게 튕기는 동작이나, 큰절 자세에서 다리를 크게 벌리고 앞뒤로 움직이는 성관계를 연상시키는 행동 등 여성들의 다양한 몸짓을 추출하고, 변주하며 김보라 안무가 특유의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연출했다.






아트프로젝트보라 〈소무〉 ⓒ아트프로젝트보라




2022 〈소무〉는 물의 이미지와 촉각성을 강조하며 여성의 몸과 성을 욕망 그 자체로 긍정하고 젠더 역할보다 생물학적 성의 특성이 두드러지게 했다. 남성의 존재 또한 여성적 내부에 위치시킨다. 전작에서 푸르스름한 조명과 띄엄띄엄 위치한 무용수들로 인해 물(水)이 공포와 스산함으로 다가왔던 것과 달리, 노랑과 오렌지색이 주를 이룬 조명으로 인해 보다 여성적 속성으로 다가왔다. 밝아진 조명 덕분에 무대를 가득 메운 물(水)은 보다 여성적인 느낌을 주면서 그 물성과 감각이 더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후면의 스크린은 연신 물이 일으킨 파동을 그래픽으로 형상화하였고, 극장 공간 전체에 동그란 파동이 번져가게 했다. 둥그렇게 퍼져나가는 여성적 이미지가 무대에서 찰랑찰랑 소리를 내면서 공간 전체를 감싸 안는 느낌이었다. 물이 가진 유연한 액체성이 공간 전체로 퍼져나가게 한 것 또한 소무의 성격을 연출한 것이다. 말하자면, 물은 소무를 대리하는 물질인 것이다. 물질화된 소무로서 물은 끊임없이 모든 것을 반영(反影)했다.




아트프로젝트보라 〈소무〉 ⓒ아트프로젝트보라




비평이 유명 철학자의 말을 빌리는 것은 되도록 삼갈 일이지만, 〈소무〉가 활용한 물의 성질은 프랑스의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Luce Irigaray)를 빌려와 설명해도 좋을 듯하다.

물이 대상을 반영하는 성질은 거울과 비슷하다. 그러나 (평면) 거울이 유아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기 동일성을 구축하고 차이를 추방하여 자기를 구성하는 장치인 데 반해, 물은 여성의 질 내부를 들여다보는 오목거울로서 상을 왜곡시키고, 여러 시점을 가지며, 접촉을 통해서 보아야 하는 검시경(speculum)을 닮았다. 평면거울은 몸의 내부로 숨겨진 여성의 몸을 제대로 비출 수 없다. 검시경만이 몸의 내부로 들어가 몸에 접촉하여 여성 몸의 특수성을 다각도에서 비출 수 있다. 검시경을 통해서 본 여성의 몸은 접촉에 의해 상이 왜곡되기도 하며, 다양한 시점에서 관찰되므로 하나의 형태로 환원되지 않는다. 여성은 다양한 차이 그 자체인 것이다. 이리가레가 검시경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거울 뒤에 붙은 주석판처럼 남성적 상상계를 반사하지 말고, 여성의 욕망과 감각, 지각을 긍정하여 여성적 상상계를 구성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때 여성의 상상계는 단일하며, 고체적인 것을 특권화하는 시각 대신 예측불가능하고 유동적인 것을 감각하는 ‘촉각’을 부활시킨다.

촉각은 몸에 가장 밀착한 감각이면서 모든 감각을 가능케 하는 모든 감각에 내재한 근원적인 것이지만, 시각을 중심에 두는 이성 중심 사고에 의해서 오랫동안 부정되고 거부되었던 감각이다. 우리는 공간 속에서 이뤄지는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나와 외부를 동시에 구성하며, 나와 타자를 동시에 발생시킨다.
자궁 속에 위치한 태아와 그것을 품고 있는 어머니의 관계처럼, 나와 타자는 서로 볼 수 없지만 접촉에 의해 감각되며 서로에게 삼투하여 경험된다. 접촉에 의해 발생하는 타자와 세계의 존재는 곧 나의 존재를 확증한다. 즉, 촉각은 나 자신을 인식시키는 계기다. 서로의 타자성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상대를 소유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서로를 향유할 수 있을 뿐이다. 지배와 소유에서 벗어나 서로를 향유하는 관계 속에서 주체는 끊임없이 재탄생하며 새로워진다.


이리가레를 소환해서 보면 〈소무〉의 마지막 장면 또한 재해석된다. 관객에게 등을 돌리고 몸을 깊숙이 숙여 종아리와 허벅지, 엉덩이를 두드러지게 한 자세가 전작에서 남성적 시각에 의해 성적으로 대상화된 여성의 몸을 강조했던 것이라면, 새 〈소무〉에서 같은 자세는 이리가레가 ‘두 개의 입술’로 개념화한 여성의 몸으로 해석된다. 여성의 몸은 두 개의 음순을 가진 성기가 포개져 있는 모습처럼 본래적으로 다수의 몸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몸이 내포하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다중적이고 분산적이지만 친밀하고 자기색정적이어서 성적 만족을 위해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게 온전하게 자기일 수 있는 여성의 몸은 그래서 오히려 다른 몸과 성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아트프로젝트보라 〈소무〉 ⓒ아트프로젝트보라




이와 같이 대대적으로 관점의 전환을 가져온 2022 〈소무〉는 상징은 사라지고, 공연시간은 길어지면서 물성과 감각만을 사용한 연출은 필연적이라 해야 할지 비슷비슷한 장면을 만들어 지루하기도 했다. 조금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이다. 그러나 2022 〈소무〉가 보여준 관점의 전환은 여성의 몸을 주제로 꾸준히 작업해온 아트프로젝트보라의 작품에 나타날 변화를 기대케 한다. 보다 감각적인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이미지 서사를 구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들이 만들어갈 여성적 상상계는 무엇일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보여질 수 있을지 여러모로 궁금해진다.

덧붙여, 〈소무〉는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새롭게 시작한 전국 공연예술 창제작 유통 협력 사업 선정 공연이었다. 예술공연지원센터가 주최가 되고, 아트프로젝트보라와 지역 예술기관이 주관기관으로 참여하는 사업이다. 아트프로젝트보라는 홍성, 익산, 통영 세 도시를 순회하며 여섯 차례의 공연과 워크숍을 진행했다. 지역주민에게 한 단계 발전한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고자 시작된 예경의 새로운 사업은 지역 예술기관과 아티스트가 직접적으로 소통하며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역 주민의 반응이 궁금했는 데, 20대로 보이는 관객이 대부분을 차지하여 현대무용을 향한 젊은층의 긍적적인 열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지역의 예술기관이 더 많은 현대무용을 기획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명현 

학부에서는 한국무용을, 석사과정에서는 예술경영을, 박사과정에서는 문화콘텐츠를 전공했다. 무용 작품의 기획에서부터 제작, 생산, 유통, 비평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의 언어의 작동에 관심이 있다. 팟캐스트 플랫폼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심플리 댄스〉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

2022. 9.
사진제공_아트프로젝트보라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