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1.
올해 모다페(MODAFE, 국제현대무용제, 5. 13.~6. 18.)는 규모가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드는 추세보다는 모다페의 기획 자체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써 규모의 확대를 기한 것으로 보인다. 몇 해 전부터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온 추세는 올해 고점을 찍은 듯하다. 늘어난 프로그램의 예로서 메인 행사 전에 사전 축제(프리페스티벌)를 설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컨템퍼러리댄스 개념 아래 한국무용 계열의 작품들도 축제에 초청하여 폭을 넓히는 양상을 보였다. 한편, 수십년 동안 ‘국제’를 내걸어온 축제 타이틀과는 거리가 있을 만큼 해외 초청작은 이번에 모두 5편으로서 전체 공연 편수 가운데서는 2할 정도의 비중을 보여서 지난 초봄까지 확산세가 널뛰기를 한 코로나19의 여파는 뚜렷하였다.
2.
샤론 에얄 × 가이 베하르 〈제3장: 야수 같은 심장의 편력〉(Chapter 3: The Brutal Journey of the Heart) ⓒStefan Dotter for Dior |
개막작으로 이스라엘 바체바무용단의 상임안무가를 역임한 샤론 에얄과 가이 베하르의 공동 안무작 〈제3장: 야수 같은 심장의 편력〉(Chapter 3: The Brutal Journey of the Heart)이 올려졌다. 살갗에 밀착된 스키니 의상을 입은 모습으로 무리를 지은 10명 남짓의 생명체들에서 무엇보다 원초적인 질감이 물씬하였다. 살구색 바탕 의상에는 붉은 심장과 복잡한 식물 세밀화 무늬가 그려져 있다. 사람과 야생(野生)의 경계를 오가는 이 군체(群體) 조직은 심해에서 하늘대는 해초 무리를 연상시킨다. 무대 중앙에 위치한 그들은 남녀 구분 없이 같은 차림새이다. 성별을 초월하여 시선을 오로지 자신들에게로 향한 채 양팔을 너울대는 몸짓들에 집중한다.
몸체에서 퍼져나오는 유동적인 생명력과 미묘한 양상의 감성이 객석의 시선을 응집시키는 흡인력은 상당하다. 인위적 조작을 벗어나서 되풀이되는 움직임들을 객석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수용하게 된다. 안무자는 공연 소개말로서 순간, 고요, 건조함, 공허, 두려움, 전일(全一), 달, 물, 모서리, 악마, 충동, 은신처... 사랑 같은 단어만 나열하였다. 안무자의 의도를 존중하는 선에서는 수긍할 만한 단어들이다. 공연 말미에 무리의 구성 형태가 조금 바뀌기도 하지만 그 이전의 기조가 유지된다. 〈야수 같은 심장의 편력〉 초반에 설정된 포맷이 대동소이하게 계속 반복되었던 때문에 공연 후반으로 갈수록 객석에서 느낄 집중성, 그리고 작품의 묘미는 희석되었다. 그리하여 작품의 의미 또한 더 이상의 깊이를 확보하지 못한 채 나열된 단어들의 주변을 맴도는 한계를 보였다.
12H Dance × Tzavara × Ziepert의 〈경계·지 코리아〉(Grenz.land Korea) ⓒ김채현 |
12H Dance × Tzavara × Ziepert의 〈경계·지 코리아〉(Grenz.land Korea)는 다문화 시대를 도마에 올렸다. 〈Grenz.land〉 제목의 공연작은 이미 독일 7개 도시를 돌며 선보인 바 있고 올해 모다페에서는 코리아 버전으로 재창작되었다. 8개의 전자 미디어 전시 패널과 배경에 수시로 비춰지는 이미지들은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자, 외국인, 난민으로 구성된다. 마치 상식처럼 되어버린 배척과 혐오의 풍조를 지적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인터뷰 내용을 소재로 해서 〈경계·지 코리아〉는 함께 대안을 찾아가는 모습을 제시하였다. 작품은 인터뷰 내용 위주로 평탄하게 전개되었다.
최문석과 샤밀라 코드로, 알렉산테리 시미라에, 세 사람의 출연진 또한 다국적으로 구성되었다. 그들 또한 독일에서는 다문화 시대의 당사자들일 것이며, 경계에 선 사람들일 것 같다. 낯설은 환경에서 서성대며 쓰라림을 감내하는 사람에게 손을 뻗고 양팔을 벌리며 온몸으로 감싸 안으려 하고 또 자빠질 듯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등 포기하지 않는 몸부림 끝에 그들은 마침내 푸르고 평화로운 이미지의 세상을 향하여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을 끈질기게 표현해내었다. 〈경계·지 코리아〉에는 춤이 사회적 소통 매체로서 해내는 역할에 대해 잔잔하되 분명한 인식이 담겨 있다. 동병상련의 관객일수록 공감의 정도가 클 것이고, 다문화 시대에 춤이 모색해야 하는 소통의 방법에 대해 참고문헌이 될 공연이었다.
정철인 〈당신의 징후〉 ⓒ김채현 |
국내 공연작 가운데 정철인의 〈당신의 징후〉는 몸으로써만 공연을 끌고 가는 저력을 보였다. 두 남성이 단적으로 말해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이 공연 시작부터 꽤 길게 이어진다. 두 사람은 상대방의 일거수일투족을 참견하고 옥죄거나 찰거머리처럼 성가시게 구는 행동들을 서둘지 않고 다채롭게 펼쳐가며, 동작의 진폭에서나 순발력에서나 어찌 보면 사소하며 평이한 그 동작들은 그 자체로 발랄하다. 유쾌발랄한 분위기를 무대 위에서 지속할 수 있은 데는 동작 구성에 수반된 정밀한 짜임새의 역할이 컸다. 두 사람이 네 사람, 여섯 사람으로 불어나면서 동작들은 몸을 서로 겹치거나 포개는 등으로 조금 더 다양해지고 자주 고함소리가 덧붙여진다.
장난스럽게 서로 대거리하고 웃음도 간간이 유발하는 이 사람들에게서 부각되는 것은 놀이하는 몸이다. 장난이라는 것은 어떤 일탈로서의 자유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공연 막판에 경쾌한 가요와 더불어 흐드러진 상태에서 몸을 공중에 띄우는 식으로 더 자유분방하게 노는 그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다 갑자기 음악도 정지하고 어두워지며 한 사람이 남고 모두 퇴장한 후 남은 사람이 비틀대며 휘청대는 것은 안무자의 생각대로 어떤 우울증으로 수용될 만하다. 〈당신의 징후〉에서 느껴질 주제 의식이 어떠하든 간에 몸에 초점을 두고 안무를 풀어나가는 작업이 돋보이는 공연작이다.
권효원 〈노동무〉 ⓒ김채현 |
박근태 〈순간, 죽음과 삶〉 ⓒ김채현 |
권효원의 〈노동무〉는 노동을 인간의 자기 실현이라 하고 예술을 최고 수준의 창의적 노동이라 보는 이념과 맞닿아 있다. 창의적인 춤에서 인간이 연대할 가치를 찾으려는 안무자의 의도는 무대에서 뚜렷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명료했던 발밟기 노동 외에 그물 당기기, 도리깨질하기 노동은 제대로 식별되지 않았으며 인간들 간의 연대로서 의도했을 군무도 구성이 단조로워 연대의 모습들이라 하기에는 사실상 불투명하였다. 박근태의 〈순간, 죽음과 삶〉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죽음과 삶〉에서 착상한 것으로 소개된다. 양쪽으로 분할된 클림트의 화면에서 죽음과 삶은 공존한다. 〈순간, 죽음과 삶〉도 유사한 착상으로 진행된다. 죽음과 삶을 은유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인물들이 각각 교체되는 장면들 속에서 죽음과 삶의 동시성이 감지된다. 그 둘이 동시적이라 할지라도 성격은 다른 것이므로 둘의 대조적인 차별성이 무대에서 부각될 필요가 있었다.
정석순 〈기도〉 ⓒ모다페/hanfilm |
박관정 〈신도시〉 ⓒ김채현 |
정석순은 〈기도〉 무대를 열며 코로나19 사태를 겪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는 발언으로 인사를 한 후 나란히 도열한 일행들과 함께 객석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줄거리를 설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순발력 강한 움직임으로써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그 무엇을 털어내는 모습을 가미한 〈기도〉는 간절함을 담아 마치 올해 모다페를 여는 서시(序詩) 같은 의례로 다가왔다. 같은 날 올려진 박관정의 〈신도시〉에서 신도시는 메타버스를 가리킨다. 오늘을 진단하는 이 공연에서 비트는 빠르고 사람들은 뒤틀린 모습으로 무언가 현실 궤도를 벗어난 모습들이다.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넘나드는 것이 일상이 된 상황이고 자기만의 메타버스가 가능한 이 시대에 각자의 메타버스를 생각하게 되는 공연작이다.
이동하 〈여신과 우산이 해부대(解剖臺) 위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아름답다〉 ⓒ김채현 |
이동하가 올린 〈여신과 우산이 해부대(解剖臺) 위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아름답다〉는 초현실주의 시인 로트레아몽의 말을 제목으로 차용했다. 평소의 관계를 떠나 이상한 관계에 놓이는 사물(들)이 충격을 주기 마련이라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다. 안무자는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의 경계가 무너졌다고 말해지는 지금의 세계를 위해 발상의 역전이 요청된다는 뜻에서 제목을 그렇게 정한 듯하다.
제목의 분위기처럼 공연에서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아침 기상 나팔소리에 잠이 깬 청년들이 복면을 뒤집어 쓴 채 여성의 눈, 코, 입술을 붙인 박스들을 쌓아올린다. 무대는 처음부터 공연 내내 핑크색조로 물들어 있다.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의 〈축배의 노래〉 멜로디를 배경으로 청년들은 자기들대로 환각 속을 헤매는 모습들을 보인다. 이어 공중에서 하강한 금색 비너스 석고상을 각자 하나씩 들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텐더〉 노래가 들려오는 가운데 쓰다듬다가 석고상을 각자 차례로 깨뜨리는 장면들을 연출한다. 이 청년들이 어수선하게 배회할 동안 마치 갤러리의 설치미술을 관람하러 온 듯한 관람객들이 무대 위의 그 쑥대밭을 헤집고 다니며 스마트폰으로 찍거나 그 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인다. 엉뚱한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고 말해지는 오늘날의 상황에 직면하여 어디서건 해결책으로서 먼저 상상력을 넓혀보도록 유도하는 작업이 권장되어야 할 것은 당연하다. 그럴수록 환기하고 싶은 점은 관객이 납득할 만한 엉뚱함 또는 역전극으로 설득할 필요성도 커진다는 사실이다.
MODAFE Collection #2 멜랑콜리 댄스 컴퍼니 ⓒ모다페/hanfilm |
3.
이번 모다페 행사는 프리페스티벌을 포함 한달 여 진행되었다. 극장 사정이 원활하지 못하여 이렇게 기간이 늘어난 점도 있을 테지만, 전체 프로그램의 확대가 주요인으로 보인다. 주최 측도 짐작하다시피, 지역으로 폭을 넓히는 등 규모가 확대되는 데 비례하여 행사의 내실이 어떻게 기해질 수 있는지, 자문해야 할 점인 것은 물론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전 시기에 다른 행사나 개인 공연으로 올려진 작품들을 선별해서 재공연토록 하는 것은 더욱 필요한 일이고 이번에 10편 정도 그렇게 공연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한국무용 계열 컨템퍼러리 작품에 대해 그렇게 문호를 넓힌 것은 상당히 중요한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컨템퍼러리 발레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움직임들이 모다페의 진화라 할 업그레이드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이번 행사에서 ‘이스라엘 포커스’가 강조되었던 데 비하여, 정작 네 작품이 올려진 것은 특히 재고되어야 할 점이다. 소극장에서 이스라엘 포커스로 올려진 세 작품은 그다지 실한 편이 아니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이해할 만한 사정도 없지 않으나, 모다페뿐 아니라 ‘국제’ 행사를 지향하는 국내 춤제전들에서 지난 몇 해 유보되다시피 했던 해외작의 충실한 초빙은 이제 새롭게 채비해서 단조로운 라인업부터 탈피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최근 몇 해 모다페에서 전체 공연작들은 일정한 프로그램들로 묶여 전시되었는데, 이번에는 센터 스테이지 오브 코리아, 센터 스테이지 오브 서울, 모다페 스페셜 콜렉션, 모다페 콜렉션 등 8개 가량의 프로그램들이 설정되었다. 프로그램 명칭으로 공연작들을 범주화하는 것은 나름 필요한 일이다. 다만 명칭들 간의 차이가 명료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히려 과다한 분류 범주나 유사 명칭으로 관람 질서에 혼선을 주는 것만은 피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