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국 춤계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이하 앰비규어스)의 최근 공연 〈무교육적 댄스〉(7월 6~8일, 세종S씨어터)에는 이미 있는 작품 2개가 무대에 올랐다. 이 단체의 예술감독 김보람의 창작 메소드가 오롯이 담긴 두 작품, 곧 〈볼레로〉(2008년)와 〈언어학〉(2016년)을 다시 다듬어 관객 앞에 내놓은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대신에 기존의 작품을 달리 보이게 하는 전략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번 공연이 재공연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미 있는 두 개의 작품이 새로운 맥락 안에 끼워 넣어져 전혀 다른 의미를 띄었기 때문이다. 저마다 따로따로 공연되었던 〈볼레로〉와 〈언어학〉이 〈무교육적 댄스〉에서 만나 렉처(lecture)와 접속해 재배치됨으로써 다른 작품이 된 것이다.
하나의 작품이 다른 맥락에 놓일 때, 그 작품들은 같은 작품일지언정 다 다르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그의 작품 〈샘〉을 통해 보여주었듯, 같은 변기라도 화장실에 걸려 있을 때와 전시장에 걸려 있을 때, 그것들이 가지는 의미는 다르다. 같은 작품이더라도 그것이 놓인 맥락과 상황, 혹은 장과 지평이 다르면 각기 다른 의미를 함축한다는 말이다. 앰비규어스의 이번 공연 〈무교육적 댄스〉는 기존의 두 작품이 원래 가진 작품 자체의 내용과 관계없이 그것들을 보여주거나 내보이는 방식, 즉 나타나는 방식을 달리 한 공연이었다. 이를테면 이번 공연 〈무교육적 댄스〉는 이미 공연된 두 작품, 〈볼레로〉와 〈언어학〉을 김보람이 작품에 관해 설명하는 두 번의 꽤 긴 강의와 접속시켜 렉처퍼포먼스 형태로 재편집한 혹은 포스트프로덕션(postproduction)한 공연이었다.
〈무교육적 댄스〉는 특이한 춤 동작으로 강한 팬덤(fandom)을 형성하고 있는 앰비규어스가 자신의 창작 작업 안으로 관객을 초대해 그들에게 안무 과정과 작업방식을 낱낱이 공개하는 공연이다. 흔히 말하듯, 앰비규어스의 춤은 신나고 재미있다. 또 무대를 휘저으며 거침없이 활개 치는 춤사위가 독특하면서도 자유롭다. 그러기에 춤을 잘 모르는 대중들도 쉬이 즐길 수 있는 춤이다. 또한 노란 비니형 모자를 쓴 채 물안경을 끼거나, 변형된 한복을 즐겨 입고, 외계인 모양으로 유별난 차림을 하는 등 보통과 달리 우스꽝스럽고 이상야릇한 복장으로 대중의 시선을 잡아끈다. 대중의 감성에 강하게 어필하는 단체라는 말이다. 그래서 얼핏 보면 앰비규어스의 춤은 굉장히 대중적이고 감각적으로 보인다. 또 쉽고 단순하게도 보인다. 하지만 보기와는 달리 앰비규어스의 춤은 추기에는 엄청 어려운 고난도의 춤이다. 그래서일까 이번 공연에서 이 단체는 겉보기와는 다른 자신들의 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관객들에게 세세하게 설명하고 체험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춤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자 했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볼레로〉 ⓒ세종문화회관 |
첫 번째 춤 공연 〈볼레로〉가 펼쳐지기 전, 김보람은 무대 뒤 하늘-막에 투사된 영상을 통해 이 공연의 안무 과정을 설명한다. 이른바 영상 강의에서는 주로 음악이 어떤 식으로 춤으로 구현되는지를 밝혀 말한다. 김보람은 보리스 라벨의 음악 〈볼레로〉를 점과 선으로 시각화한 안무 노트를 보여주며, 이것이 음악을 이미지화한 지도라고 말한다. 이는 “소리를 몸으로 이미지화하기 전에 먼저 손으로” 그린 지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랍 문자 같기도 하고, 또 암호문 같기도 한 조그만 글자로 가득 찬 이 이미지 지도를 참조해 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재미있게 펼쳐 보인다. “이 지도는 제가 보기 쉽게 음악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음악을 알고 분석한 건 아니고요. 춤을 추려고 하다 보니까 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구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보람은 전체적인 구성을 고려한 채, 음악이 춤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동작과 움직임, 구도와 대형뿐만 아니라 조명의 변화까지 곁들여 설명한다. 영상 속에서는 기이한 작은 기호들이 꼼지락거리며 마치 춤처럼 펼쳐진다. 이러한 기호들의 운동이 춤꾼의 몸을 통해 무대 위에 구현되는 것이리라. 음악의 박자와 선율을 글자 이미지로 해체해 보여주고, 이를 통해 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흥미로운 비대면 강의였다.
이어지는 춤 공연 〈볼레로〉에서는 “우주인이 봤을 때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김보람의 바람대로 춤꾼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마치 음표가 살아난 듯 요동친다. 분석되고 해체된 음악이 춤으로 생생하게 구현되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라벨의 음악 〈볼레로〉는 반복의 미학이 궁극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한계까지 추구한 작품이다. 작은 북소리로 시작해 여러 악기가 점차 더해지며, 반복되는 리듬과 선율이 점증적으로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 음악이다. 라벨은 기승전결로 전개되는 기존의 창작 관행을 넘어서 반복이라는 새로운 미학적 구조로 짜진 음악을 내놓아 보여준 것으로 유명하다. 〈볼레로〉는 주제 선율을 반복하는 단순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트럼펫과 호른, 트롬본 등의 금관악기와 베이스드럼과 심벌즈 등 타악기, 그리고 건반악기를 포함한 대규모 악기 편성을 통해 끊임없이 긴장감을 조성하는 음악이다. 15분여 동안 지속되는 음악은 단 하나의 주제를 끊이지 않게 반복하며 절정으로 치닫다가 급기야 종결부에서 급격하게 끝나면서 강한 카타르시스를 유발한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볼레로〉 ⓒ세종문화회관 |
춤 공연도 이에 못 미치지 않았다. 하수에서 상수 쪽으로 긴 길 조명이 들어와 있고, 그 길을 따라 춤꾼 1명이 등장한다. 춤꾼의 동작은 간단하다. 한 발을 내딛고 웨이브 동작으로 상체를 움직이고, 한 발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숙이고, 든 발을 내디디면서 허리와 머리를 앞으로 숙인 채 한쪽 팔을 위로 들고, 또 다른 팔을 들었다가, 두 팔을 동시에 앞으로 쭉 뻗으며 두 발로 동시에 폴짝 뛰는 동작 등이다. 무 음악 상태에서, 간략한 동작으로 구성된 솔로 춤으로 미미하게 시작한 춤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조금씩 음악과 함께 점점 확장되고 증가하며 몹시 세차고 치열해진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홀로 사각 조명 안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 춤꾼이 어언간 둘이 되고, 또 셋이 되면서 군무로 기세를 더 높여가고, 무대의 국지적인 지점들에서 시작한 춤은 여세를 몰아 서서히 퍼져나가더니 마침내 무대 전체를 장악한다. 또 조명도 빛의 강도와 색채, 그리고 운동감을 더해가더니 끝에 이르러 폭발하듯 작열한다. 몸통을 거칠게 떨고, 포복 동작을 하듯 기고, 곤충처럼 움직이다가, 걸음을 바삐 걷는 듯, 주먹 쥔 손으로 뭔가를 내리치는 듯, 또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키다가 글자를 쓰는 듯한 아주 단순한 동작을 반복적으로 구사하는 춤이지만 조명과 음악의 도움을 받은 춤꾼들의 운동하는 몸에서 품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온 극장을 뒤덮는다. 객석과 무대를 가르는 보이는 않는 벽, 곧 제4의 벽을 허물고 지금-여기 연행 현장에 공존하는 모든 몸을 하나의 집합체, 곧 감응의 공동체로 만든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볼레로〉 ⓒ세종문화회관 |
“춤이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앰비규어스의 캐치프레이즈이다. 프로그램 북을 인용해보자면, 춤을 “머리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벗어나 새로운 감각으로 풍요롭게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뜻이다. 기실 춤 경험은 이성적 인식으로 환원되기 어려운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감응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그와 같은 춤 경험을 그 자체로 즐기라고 말하는 것이다. 몸짓의 모호함이 전하는 감응의 힘은 이해나 인식 이전의 물질적인 힘이다. 앰비규어스는 다른 일반 단체들과는 달리, 이런 몸의 감응이 정신이나 의식을 통해서 포착하는 인식보다 혹은 개념보다 춤에서 일차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시대 춤에서, 개념에 밀려나 혹은 인식에 밀려나, 암암리에 춤에서 이차적인 것으로 취급받아온 몸의 감응이 마땅히 차지해야 할 지위와 몫을 되돌려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를테면 〈무교육적 댄스〉는 그 제목과 달리 무척 교육적인 춤 공연이었다. 그렇지만 앰비규어스가 염두에 두는 교육은 ‘감각의 배움’인 듯하다. 곧 교육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교육, 몸으로 새로운 감각을 배움으로써 각자의 몸에 감응의 별자리를 새기는 춤 교육인 것이다. 앰비규어스는 이번 공연을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몸짓 감각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언어학〉 ⓒ세종문화회관 |
두 번째 강의는 대면 강의이다. 김보람과 장경민이 강사와 ‘언어학 박사’로 분해 직접 무대에 나선다. 이들은 〈언어학〉을 만든 경위와 제작 과정을 관객들이 알기 쉽게 보여준다. 김보람은 말한다. “춤도 하나의 언어가 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담아 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언어학〉은 춤이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을지를 탐구한 작품이라는 말이다. 그는 계속해서 말한다. “어느 순간 우리가 추는 춤과 우리의 몸이 어떤 말과 글을 뛰어넘어서 하나의 언어가 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었고, 그걸 이 작품에 담았습니다.” 앰비규어스의 춤 철학이 남고 처짐이 없이 고스란히 담긴 말이다. 그리고 이들은 춤이 언어가 되는 과정을 시연해 보여준다. 곧 말이나 글과는 다른 감각적인 몸의 말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춤으로 구현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언어학자들은 네 가지 동작을 자신의 언어로 삼아 춤으로 구현합니다.” 춤이 언어가 되는 과정은 간단명료하다. 김보람의 지시를 따라 먼저 장경민이 임의의 동작 4개를 시범으로 보여준다. 몸을 움츠렸다 오른팔을 앞으로 뻗고, 왼팔을 허리에 대고 몸통을 옆으로 움직이는 등 본인이 무작위적으로 만든 4가지 동작을 여러 종류의 음악에 실어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들은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동작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들이 몸말이 되는 과정, 춤이 되어 가는 과정은 치열하다. 장경민은 하찮은 듯한 4가지 동작을 세련되게 엮어서 춤으로 보이게끔 만든다. 그리고 이 춤을 여러 종류의 음악, 곧 클래식과 포크, 그리고 빠른 템포의 록과 느린 음악 등, 갖가지 음악에 맞춰서 능수능란하게 수행해 보인다. 또한 공연장에 입장할 때 관객이 미리 적어낸 추천곡 중에서 랜덤으로 한 곡을 골라, 그 음악에 맞춰 이 춤을 즉흥적으로 춰 보이기도 한다. 보통 한 곡을 수백 번 이상 듣고, 한 동작을 천 번, 이천 번 연습해서 무대에 오른다는 김보람의 부연 설명이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언어학〉 ⓒ세종문화회관 |
시연에서 선보인 단순한 동작들은 이어지는 무대 〈언어학〉에서 춤 공연으로 완성되며 몸의 언어가 된다. 장경민, 김현호, 임소정 세 명의 춤꾼은 팝과 재즈 그리고 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에 맞춰, 또는 아무 음악 없이 각자 다르게 4개의 동작으로 구성된 일련의 동작구를 일사불란하게 수행한다. 반복된 수련의 결과인지, 춤꾼들의 움직임은 옹골차고 단단하다. 어떤 동작으로 구성되든 상관없어 보이는 동작구는 시시각각 변하는 음악과 조명 등에 잘 조응하고, 무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되다가 이윽고 시간 차와 속도 차, 그리고 리듬 차와 질 차를 머금은 강도(强度) 높은 춤이 된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언어학〉 ⓒ세종문화회관 |
구조주의 언어학이 논증하듯, 하나의 낱말은 ‘사물의 이름’이 아니다. 곧 하나의 사물과 그 이름은 특별한 필연성으로 결합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낱말은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어떤 말이 지닌 의미는 그 언어 시스템 속에서, 어떤 말과 인접한 다른 말들과의 차이에 의해 규정된다. 곧 의미는 그 자체로는 무의미한 말들이 맺고 있는 차이들의 놀이를 통해 생겨난다는 것이다. 〈언어학〉에서 앰비규어스는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도 없고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동작 혹은 몸말 몇 개를 조합하고 가공해 춤으로 만들어 보여주면서 그들 춤의 언어화 가능성을 모색할 뿐만 아니라, 안무는 아무 의미 없는 동작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왁자지껄 잡담을 나누듯이 춤추며 등장한 세 명의 춤꾼이 무대 앞에 나란히 서서 대화하듯, 또는 논쟁을 벌이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혹은 주거니 받거니 구사하는 몇 가지 무의미한 몸말로/동작으로 정교하게 구조화된 한 편의 춤이 차이들의 체계를 이룬 채, 마치 언어 시스템처럼 작동하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사우나 세미나〉 현장(7월 9일, 세종S씨어터) ⓒ세종문화회관 |
〈볼레로〉와 〈언어학〉 그리고 두 번의 렉처(비대면 강의와 대면 강의)로 구성된 〈무교육적 댄스〉는 앰비규어스가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알게 한 공연이었다. 얼핏 봐, 쉽고 단순하게 보이고, 또 대중들의 감성에 맞춘 듯한 감각적인 그들의 춤이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다를 뿐만 아니라 짐작이나 생각보다 많이 갈고닦은 노력의 산물이었다. 이번 공연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또 그들은 춤에서 일차적인 것은 의미나 개념, 혹은 메시지나 스토리텔링 같은 것들이 아니라 몸짓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이번 공연에서 공개된 안무 메소드에서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곧 그들의 안무법은 여느 단체의 안무법과는 완전히 다르다.
일반적인 안무 방식은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미나 개념 혹은 메시지 등을 먼저 결정한 후, 이것을 동작에 담고자 한다. 말하자면 보통 안무 과정에서는 의미나 개념이 일차적이고 동작은 이차적이다. 그러나 앰비규어스는 이와 정반대의 과정을 밟는 것으로 보인다. 곧 그들은 무엇보다 먼저 의미와 개념 등 동작 외부에서 주어지는 모든 것을 배제한 채 순수한 동작 그 자체에서 안무를 시작한다. 의미 없는 동작을 변화시키고 변주하면서 움직임을 다채롭게 만들고, 쉼 없이 반복되는 동작 연습을 통해 속도와 리듬, 질 등에 차이를 부여하며 풍부한 질감을 갖춘 감응력이 뛰어난 춤으로 완성해 보여주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아무것도 아닌 동작이 연마되어 예전에 볼 수 없던 창의적인 춤이 된다. 순수한 움직임 그 자체에 집요하게 매달림으로써, 무의미하고, 심지어는 하찮게 보이기도 하는 동작을 새로운 몸짓 감각이 장착된 앰비규어스 스타일의 춤이 되게 한다는 말이다. 기존의 안무 관행과는 다른 그들만의 독창적인 안무법이다. 결국 앰비규어스의 이번 공연 〈무교육적 댄스〉는 그들의 단체 이름 ‘ambiguous’가 가진 뜻과는 달리 전혀 애매모호하지 않게, 자기들의 안무법 또는 춤 철학을 명료하게 보여준 의미 깊은 공연이었다.
최찬열
인류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춤과 공연예술, 미학과 관련된 과목을 강의했다. 지금은 몸의 예술과 인문학에 기반한 통섭적 문화연구에 몰두하며, 춤문화연구소에서 미학과 춤 역사를 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