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시무용단이 〈일무〉를 신작으로 올렸다(5월 19~2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문묘제례나 종묘제례 현장에서가 아니면 접할 경우가 드물어 일반인들에게는 일무(佾舞) 자체가 낯선 춤이다. 또한 춤의 구성원들이 8×8, 6×6, 4×4 식의 대형으로 늘어서서 제자리에서 팔 뻗치기나 휘두르기를 주동작으로 하고 약간의 굴신을 가미해서 시종하기 때문에 관람에서 어느 정도 인내심마저 요한다. 이런 사정들에서 일무는 어떠한 축하 기원(祈願)의 의미를 띤 대형 이벤트에서 간혹 모습을 드러낼 뿐 춤 공연에서는 거의 제외되는 편이다. 여기에 더하여 움직임을 절대시하는 오늘 문명의 인습 속에서 움직임의 역동성과는 아주 먼 일무는 더욱 소외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사정에 놓였었던 일무를 이번에 서울시무용단이 소재로 채택한 것은 각별한 의의가 있다. 적절한 발상일지 모르겠으나 고려시대를 제외하면 한반도에서 일무가 추어진 지역은 사실상 유일하게 서울(그리고 한양)일 것이며, 그래서 일무는 서울과의 연고가 절대적인 춤이기도 하고, 서울시무용단과 일무의 만남은 우연이 아닐 것이라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서울시무용단이 속한 세종문화회관은 올봄에 신임 사장의 체제 아래 소속 예술단들을 중심으로 세종문화회관이 제작극장으로 전환할 것과 아울러 극장의 대대적 리모델링 등 여러 청사진을 밝힌 바 있다. 세종문화회관은 그 변화의 시작으로서 이번 신작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 세종문화회관 측은 연출가 정구호를 〈일무〉의 연출가로 초빙하고 미장센 전분야의 디자인을 일임하였다 한다. 정구호는 전통춤을 현대적 감각으로 다듬어내어 한국무용 계열의 춤 연출 면에서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은 바 있어서 이번 작업이 서울시무용단에 어떤 자극을 가할지 관심을 끌었다.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는 3막으로 진행된다. 1막(일무 연구)은 종묘제례악의 보태평(문무·文舞)과 정대업(무무·武舞)의 춤을 부분적으로 재현하는 부분과 현대적으로 응용하는 부분으로 구성된다. 2막(궁중무 연구)은 궁중정재 춘앵전과 가인전목단을 재해석한다. 3막은 일무를 오늘의 시각으로 재해석한다. 특히 3막의 안무 구성에는 서울시무용단의 정혜진 예술감독과 현대무용가 김성훈 및 김재덕이 참여하여 공동 구성한 것으로 소개되었다.
서울시무용단 〈일무〉 ⓒ서울시무용단 |
〈일무〉의 1막이 열리면 칠흑의 어둠 속에서 (종묘제례악 초입에 등장하는 집사의) ‘드오’라 외치는 남성 1인의 목소리와 몇 번을 힘차게 내려치는 전통 타악 소리가 들리면서 무대는 밝아진다. 편종과 금슬의 소리가 어우러져 전폐희문이 울려퍼지는 속에서 진청색과 검정색 계열의 사모관대를 차려입은 출연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문무(보태평)를 출 그들은 무대 가운데에서 두 줄로 길게 10명씩 종대로 섰다. 두 줄 대형의 좌우와 위로 가느다란 ⊓ 모양의 커다란 LED 발광체가 두 점이 설치되어 프로시니엄 아치처럼 보이는 동시에 궁궐 같은 대형 공간이 무척 시원스럽게 조성된다. 〈일무〉의 첫 인상은 정중하고 아주 장중한 품격으로 객석을 압도하며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족하다.
보태평의 무구(舞具)인 약(籥·피리)과 적(翟·꿩깃털 장식)을 든 출연자들은 상반신을 앞으로 숙여서 두 손을 가슴 가운데에 모은 합흉(合胸)에서 시작하여 점차 하수, 거견 등의 동작으로써 문무를 펼쳐 보인다. 이후 두 줄의 종대가 무대 좌우로 이동하면서 전체 대형은 ⊓ 모양으로 바뀐다. 그 직후 음악에서 전통악기 어(敔)를 다스리는 소리가 나면서 보태평을 현대적으로 응용하는 단계로 접어드는데, 여기서 음향은 국악기 축(祝)과 박(拍)의 소리가 주도한다. 양팔의 박력 있는 동작을 중심으로 전신을 쓰되 도약은 철저히 배제하는 상태에서 빠르게 이동하면서 출연자들은 다양한 대형을 이어나간다. 4열 종대를 축으로 해서 3열 종대, 2열 종대 그리고 └┐또는 ┌┘, □, 마지막으로 2열 횡대 모양의 대형들이 속도감 있게 교체되며 출연진들은 간혹 무대 중앙과 양옆으로 모여들기도 한다.
서울시무용단 〈일무〉 ⓒ서울시무용단 |
2열 횡대의 보태평 출연진이 양옆으로 신속히 퇴장하는 사이에 자주빛 복식의 무무 정대업 출연진이 입장한다. 각자 한 자루의 검(劍)을 대퇴골 부위에 나란히 위치한 양손으로 잡고서 행진하듯 들어오는 그들은 늠름하며 각 9명씩 두 줄의 횡대로 대오를 맞춰 선다. 이 순간 ⊓ 모양의 발광체는 하나는 앞으로, 또 하나는 뒤로 기우는 변화를 보였다. 먼저 출연진들은 상체를 숙여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검을 45도 각도로 세워 안은 자세에서 오른손을 내려 검을 사선으로 아래로 향하다 팔을 위로 곧게 뻗은 후 검의 방향을 절도있게 바꾸고 다리를 살푼 들어올린다. 두 발광체는 어느덧 위로 올라가 사각형을 이루어 공중에 달려 있으며, 이어 양팔을 좌우 아래로 펼치거나 앞으로 향하다 위로 뻗는 등 여러 동작을 같은 기조로 반복한다. 그런 후에 대열은 다섯 명이 2열 종대로 가운데에 서고 그 좌우로 4명씩 횡대로 도열하는 형상, 다시 3열을 취했다가 가운데에 무리를 지어 서고 양옆으로 여러 명이 종대로 서는 형상, 그들이 두 집단으로 나뉘어 양옆에서 대열을 이루는 형상 등을 전개하다가 정지해서 상체를 숙일 동안 호적 소리가 크게 나고 악기 어를 치는 소리와 동시에 ‘지오’라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지오는 종묘제례악에서 악의 마침을 알리는 신호이다. 보태평에서처럼 이제 정대업을 응용하는 단계가 이어진다.
음악은 규칙적으로 두들기는 징 소리로 바뀌고 전체 대형은 6열 종대로부터 1열 횡대였다가 산개하면서 오와 열을 맞추어 다양한 진형으로 연속된다. 이 부분에서 검술을 연상시키는 자세로 베기, 휘두르기, 찌르기와 같은 동작들이 등장하고 1열 횡대를 이룬 사람들이 무릎을 꿇은 채 한쪽 다리로 바닥을 쓰다듬는 자세도 보인다. 또 출연진이 절반씩 방향을 달리한 상태에서 1열을 이루어 마치 긴 막대가 시계바늘처럼 동그라미를 그리며 선회하는 모양, 1열 종대로 선 출연진이 앞사람부터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여 뒷사람들이 차례로 그 동작을 이어가는 모양, 또 그런 식으로 검을 사선으로 내려베는 모양도 전개한다. 정대업을 응용하는 이 부분에서는 몇 차례 회오리 바람이 이는 듯한 박진감도 있었다. 여러 검술 장면을 재연하는 듯한 그런 순간들이 연속된 끝에 출연진이 퇴장하며 남은 두 사람은 무대 하수 양옆에서 한 사람씩 서서 앞서의 대표적인 동작 몇 가지로 검을 휘두르며 이어가고 편종 소리가 들리면서 무대는 암전된다.
〈일무〉는 일무를 재현하지 않고 재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므로 원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테고 복식에서 특히 그런 자유스러움이 두드러진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발상을 마음껏 발휘하여 전통춤을 접하는 시각을 일신하려 한 것 같으며, 그의 의도는 상당 부분 성취된 것으로 보인다. 출연진은 문무에서는 단령 모양의 진청색 관복, 무무에서는 진자주색의 주름진 융복을 착용하였는데, 모두 소매품이 매우 넓게 처리되어 그 색감과 함께 중후한 느낌이 도드라진다. 그리고 문무에서는 익선관과 유건을 합친 것처럼 높은 모양의 각진 관모가 동원되며, 무무에서는 대감전립 모양에다 기다란 깃털을 위로 우뚝하게 달았다. 진현관이라든가 복두 같은 원형을 과감하게 탈피한 이 부분에서도 문무의 관모는 더욱 현대적으로 다가왔다.
서울시무용단 〈일무〉 ⓒ서울시무용단 |
춘앵전과 가인전목단을 소재로 한 2막에서도 복식의 재해석은 계속된다. 먼저 춘앵전 부분에서는 한삼을 한껏 키운 녹원삼에다 공정책과 정자관을 합쳐 만든 듯한 관모에다 검정색의 긴 비녀를 꽂아 박은 차림이다. 그리고 가인전문단 부분에서는 황초단삼을 탈피하여 옅은 색과 적갈색으로 복식을 바꾸면서 머리 장식으로는 높은 족두리 같은 것을 크게 둥근 모양으로 얹었다. 원래의 화관을 모두 배제하고 검정으로 처리한 이들 머리 장식에서 디자이너의 미니멀한 감수성이 엿보인다. 전반적으로 한복의 미감을 살려내는 데 있어 디자이너는 소신이 뚜렷하며, 그럼으로써 한국춤에 현대적 활기를 더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실증해보였다.
서울시무용단 〈일무〉 ⓒ서울시무용단 |
2막은 직사각형의 자주색 판자 위에서 두 무용수가 선 자세로 한삼에 가려진 양손을 모으고 몸을 아주 느리게 일렁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화문석 위 독무 춘앵전의 원래 틀을 탈피하여 독무는 두 사람의 춤이 되었고 화문석퍼럼 죽 늘려진 판자에서는 출연자가 어느덧 24명으로 늘어난다. 출연자들이 일무처럼 늘어서서 춘앵전의 얼개를 각자의 판자 위에서 진행한 후 24점의 판자는 일으켜 세워져 위로 올라가고 쌍희(囍)가 하얗게 새겨진 그 24점의 판자 아래에서 출연진은 선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집단 대형을 경쾌하게 펼친다. 가인전목단 부분은 특이하게 남녀 혼성으로 진행되었다. 여성들은 높은 족두리 모양, 남성들은 높은 관모 모양으로 머리 장식을 하고 옅은 분홍색조의 조명이 무대를 물들이는 가운데, 모두들 손에 손에 하얀 조화를 들고 남녀남녀남녀 식으로 섞인 대형을 이루어 둥근 집단무를 추어가며 서로 간의 조화에 몰입한다. 그럴 동안 무대 위에는 둥근 장식물이 하나씩 모두 3개가 천장에서 천천히 내려오며 달을 상징하는 듯한 이 장식물들은 나중에 서서히 위로 올라가 하나로 겹쳐지는 형상을 이룬다. 야밤의 춤축전이 정중하고 풍성하다.
서울시무용단 〈일무〉 ⓒ서울시무용단 |
일무를 오늘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3막은 ‘신일무’라 이름이 붙여졌다. 양팔을 벌려서 집단 행렬을 이루어 계속 등장하는 사람들은 높은 검정색의 변형 관모를 썼다. 하얀 상의와 자주빛 치마에 흰색 도포 같은 것을 걸친 사람들이 후반에 도포 같은 것을 벗으면 양팔과 등 부분은 네이비색으로 드러난다. 중간에 천장으로부터 ▥ 모양의 장치가 여러 가지 내려오는데,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불투명하다.
일무는 글뜻 그대로 줄을 선 춤이며, 신일무에서도 일무의 줄 즉 선형을 단서로 해서 6×24, 1×16, 4×6, 1×12, 16×2, 7×7 같은 도형이 자유로이 연출된다. 여기에 양손을 모아 팔을 모나게 굽혀 몸 옆쪽으로 찌르기, 팔을 들고 다리를 뻗쳐 빠르게 회전하기, 양팔을 모아 앉았다 섰다를 빠르게 반복하기, 잦은 타악에 맞춰 두어명씩 뜀박질하기처럼 상당한 다양한 움직임들이 재빠르게 덧붙여진다. 무대에서 출연자들은 클라이맥스를 향하는 음향에 편승하여 대열을 교체하면서 점차 들뜬 분위기 속으로 몰입한다. 그렇게 온몸으로 줄지어 등퇴장을 거듭하고 장쾌하게 난무한 끝에 그들은 줄지어 정지하다 양팔을 회전하며 마무리한다.
이상과 같이 올려진 〈일무〉는 무엇보다도 매우 단출하거나 검정색으로 처리된 무대를 배경으로 하여 춤 그리고 의상 같은 춤 관련 형상이 돋보이도록 하는 효과를 보였다. 〈일무〉에서 일무의 장중함, 궁중정재의 정중화려함 같은 것이 살려져 넓게는 한국미를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정재는 물론 일무까지 그 재현 무대들은 대개는 산만하고 기호들이 산적해 있어 관객의 시선을 흩뜨려 놓기 십상이다. 〈일무〉는 일무와 정재에서 잔가지들을 솎아내어 우선 시선, 즉 감각과 관념에서의 통일성을 기반으로 해서 연출은 구태를 벗어날 수 있었고, 일반 관객의 호응을 상당히 확보했을 것으로 보인다. 춤 대중화의 명제가 진부하지 않으려면 구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무용단 〈일무〉 ⓒ서울시무용단 |
〈일무〉는 오늘날의 춤 무대화에 요청되는 시각을 다듬고 세련된 감각을 살린 데 비하여 공연 작품으로서의 수위는 미진한 편이었다. 일무의 도형, 대열 같은 기본적인 형태에 착안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권장될 일이라 하겠으나, 이번 공연은 그에 맴돈 것으로 생각된다. 〈일무〉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매스게임의 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말하자면, 일무나 정재에서 간취될 수 있는 춤의 도형이나 복색 차원의 인상을 넘어서는 형상화를 〈일무〉는 필요로 하였다. 〈일무〉가 전래의 일무를 재현하는 데 목표를 두지도 않았고 서울시무용단이 그럴 의무를 갖는 것도 아니다. 서울시무용단이 창작 단체임을 다시 상기해보면, 〈일무〉에서는 일무를 소화해내는 관점이 관건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일무와 정재를 인상적으로 대할 수는 있겠지만 창작으로서 공연 작품은 창의적 해석을 기반으로 해야 할 것이다. 3막 ‘신일무’에서 그 같은 해석이 나왔다고 진단하기에는 구성에서 유기적인 통일성부터 낮았으며, 설령 이런 진단이 부정된다 하더라도 1막과 2막에서도 무대화된 창의적 해석을 감지하기는 어려웠다.
현대적 감성의 시선으로 옛 유산을 새롭게 발굴하는 것의 소중함은 절대 부인되지 않는다. 그리고 현대적 감성의 시선도 그 나름의 재해석을 행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적 감성의 시선이 발굴 작업을 모두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며, 알다시피, 현대적 감성의 시선에 못지않게 창의적 해석도 절대 소중한 것이다. 창의적 해석이 미흡한 현대적 감성은 자칫 단편적인 이미지에 편향되는 폐단을 초래하기 쉬우며, 유감스럽게도 〈일무〉는 그 한 사례라 생각된다. 이와 같은 이미지춤의 폐단을 평자는 이전에 대표적으로는 국립무용단의 〈묵향〉 등의 작업에서 더러 목도한 바 있다.
다시 말하지만, 창의적 해석이 미흡해도 현대적 감성으로 형상화해낼 수 있고 보는 이들에게 인상을 남길 수 있으므로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상에서도 그런 인상은 무수히 많으며, 그것의 가치는 나름 인정되지만 창작 단체에 대해 권장될 일은 아니다. 다시 말해, 서울시무용단은 〈일무〉에서 훨씬 더 나갔어야 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봄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는 무대와 소재만 다를 뿐 사실상 〈묵향〉 등의 구성 경향과 한계를 반복함으로써 서울시무용단이 국립무용단의 아류라는 인식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은 아닌지 경종을 크게 울렸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