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고블린파티 〈초상달〉
놀이의 다져진 포맷으로 상징성을 더해야
김채현_춤비평가

고블린파티의 〈은장도〉에는 여성만 4명이 출연하였다. 남녀 혼성으로 이뤄지던 것이 상례였던 고블린파티의 작품 경향에 비하면 이색적이었다. 6년 전 일이다. 이 단체가 이번에 발표한 〈초상달〉(2월 25일, 성수아트홀)에 또 다시 여성만 6명이 출연하였다. 여성만 출연한 것에 고블린파티가 대단한 의미를 두지 않은 듯해도, 출연진의 성별 구성으로 미루어 두 작품의 소재가 모두 여성친화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예감을 갖기 마련이다.

초상집의 분주한 장례 노동도 사이 사이에 쉴틈을 필요로 한다. 초상집에서 일하는 어느 여성들은 쉴틈을 놀이로 채우며, 장례 노동까지 놀이로 바꾸며 일을 계속한다. 보름달 아래서 놀이를 하는 것처럼 그 여성들에게서 일과 휴식은 모두 놀이가 된다. 그들에게 상주들의 곡소리도 노동요가 되며, 일과 놀이의 경계는 흐려지기 십상이다. 초상집에서 일하는 시간에도 그들은 마음 속의 보름달과 함께 있고 이 보름달은 그들에게서 초상달이 된다. 〈초상달〉은 장례 노동을 해체하고, 이를 단서로 장례 의례를 해체해보는 발상을 견지한다.






고블린파티 〈초상달〉 ⓒ김채현




막이 오르기 전부터 트로트곡 〈진또배기〉가 계속 들리고 막이 오르면 여성들 6명이 반쯤 수그려 선 자세로 몸을 맞대어 뭉쳐진 모습을 드러낸다. 장례 노동에 지친 상태를 암시하듯 그들은 그렇게 파김치 모양으로 뒤엉켜 있다. 야밤 중의 장례 공간 근처에서 들리는 트로트곡은 경박스러움으로 다가오겠지만, 지친 이 여성들에게는 도리어 분위기를 바꿔보도록 자극하는 구실을 하였다.

뒤엉킨 여성들이 자세를 가다듬어 선 자세로 몸을 밀착하여 한 사람을 목말 또는 무동을 태운 상태로 이동하면서 (장례식장의 접대 식탁에서 흔한) 젓가락 뭉치를 여러 차례 바닥에 내던지는 행동을 보인다. 장례 노동의 중지로 읽히는 이 장면 이후 그들이 행하는 것은 장례 일정 속의 놀이이다. 놀이하기 위해 그들은 헐렁한 통바지를 치마로 갈아입는 절차를 명랑하게 치르고 또 북(사물북)을 가져온다. 여기서 에이야 흥 류의 낮은 코러스와 묵직한 피아노 탄주의 소리가 느린 조로 구성진 배경을 이룬다. 장례 기간이라 놀이 분위기로 이전되는 데는 얼마간의 진중함도 필요하겠다. 치마로 갈아입기까지 여성들은 사뿐사뿐 뛰다니며 공간을 주유하는 발랄한 모습으로 서로 내심을 나누다가 북 위에 앉는다.






고블린파티 〈초상달〉 ⓒ김채현




어느덧 보름달이 휘영청 떠올려져 있으며 간간이 하모니카 소리가 들리고 그들의 놀이는 북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북 위에서 각자의 몸을 일렁이고 북을 안거나 쳐들거나 머리 위로 이고서 무리를 지어 행렬을 이루어가는 다양한 모습이 번갈을 동안 장례 분위기는 뒷전으로 물러선다. 이 즐거운 유희에 가세하는 빠른 타악의 전자음과 왁자지껄한 소리로 놀이판은 차츰 열기를 더하고 가프게 내쉬는 숨소리들이 들리는 것 같다. 날라리 소리가 자진모리 조로 일부 삽입된다. 여성들의 움직임은 대체로 무리지어 이동하면서 양팔을 여러 각도로 벌이거나 모으는 동작을 라이트모티브로 해서 상체를 휘돌리는 것이 주를 이룬다. 그 사이에 보름달의 색깔은 흰색과 옅은 노란색 사이를 간간이 왕래하였으며 시간이 아주 흘렀던 듯 달무리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고블린파티 〈초상달〉 ⓒ김채현




여성들이 달을 향해 주먹질을 하며 내려와라 소리치면서 그들은 놀이에서 깨어나는 낌새를 보인다. 천장에서 하강한 보름달 형상에서 분리된 초승달은 공중으로 올라가고 남은 커다란 보름달 원반은 놀이를 마무르는 도구로 쓰인다. 그 원반을 함께 들어 그들은 무대를 선회하는 의식을 치르며, 아이고 곡소리를 모티브로 하여 “꿈속에서 만나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검정옷은 이젠 식상해 이젠 벗어 아이고 아이고 내 속내를 보여줘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북 위에서 소리쳐 아이고...” 가사가 낮게 불려지고 무대는 다시 초상집 분위기로 들어간다.

〈초상달〉의 놀이에서 ‘달구질 노래’가 활용된 것은 다소 뜻밖이다. 주로 장례에서 하관할 때 부르는 이 노래는 화장법이 보편화되면서 사라지는 추세일 수밖에 없다. 고블린파티는 불교 〈회심곡〉의 저승사자 부분의 염불 약간과 달구질 노래 후렴구 ‘에(이)헤이리 달고’를 섞어 〈초상달〉의 만가(輓歌)로 재구성해내었다. 장례가 단출할수록 고인에 대한 회상도 그렇게 되어가는 세태를 고블린파티는 이 만가로써 다시 생각해보도록 권한다. 망자에 대한 예의는 궁극적으로 산자를 위한 예의이기도 한 것이다.




고블린파티 〈은장도〉 ⓒ김채현




6년 전 고블린파티의 〈은장도〉는 정교한 구성으로 해묵은 소재(여성의 은장도)라는 선입견을 벗어났다. 남성 못잖은 노동을 재현하는 부분도 그렇지만 모나면서도 정갈한 동작들로써 여성의 억눌림을 비교적 치밀하게 묘사하여 긴 여운을 남겼다. 이처럼 〈초상달〉에서도 여러 모의 착상들이 시전된다. 젊은 세대 안무가들의 속 깊은 발상들 가운데 하나를 만난 자리일 것이다. 다만, 여성들만이 출연하여 여성(들의 놀이)의 시각으로 장례의 노동에서 부각시킨 점이 무엇인지는 명료하지 않다.








고블린파티 〈초상달〉 ⓒ김채현




그런 중에 우선 공연에 등장하는 북놀이에서는 손볼 점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북을 손으로 치거나 손으로 들어 흔드는 동작이 주를 이루어 동적인 운동량에도 불구하고 단조로움이 노출되었다. 말하자면 북놀이의 리듬감이나 형태감이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놀이의 전반적 포맷이 단출하여 그 상징성이 깊도록 하는 구성이 필요했고 동시에 움직임들이 흐트러지는 느낌을 유발한 것은 재고할 점이다.

장례와 놀이를 연관시키는 풍속이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영화 〈매미소리〉로 알려진 다시래기는 그런 풍속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반도의 서남해 섬지역에서 그런 풍속들이 있었고 진도 지방에서 전승된 것을 다시래기라 한다. 발인 전날 상주와 유족의 슬픔을 덜기 위해 놀이꾼들이 재담, 춤, 놀이를 섞어 여러 절차로 진행한다. 지금의 상가에서 다시래기를 행하는 경우는 드물고 가무극의 공연 형태로 남아 있다. 〈초상달〉은 말하자면 고블린파티 버전의 다시래기가 아닌가 싶고, 장례와 놀이를 연결하는 착상에는 신선한 감이 있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2. 4.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