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전통춤을 볼 때 감각적으로 아름다운 것보다 수수하고 서투른 것에서 높은 품격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이때 서투르다는 것은 춤의 기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꾸미지 않는, 말하자면 뛰어넘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어떤 기교로서 순수하고 완전한 아름다움을 말한다. 춤은 소박하고, 때로 높고 한가로운 초월적 감흥이 일기도 하는, 더하여 춤을 대하는 일종의 인생(예술) 경계이기도 한. 말하자면 춤의 기교를 넘어선 마음속 조화로운 기로 추는 춤 말이다.
자신이 ‘사사한 큰 선생님의 춤을 조명’하는 윤미라의 전통춤 무대가 있었다. 2년 전(2020년, 대구) 고 최희선 선생의 10주기를 기리는 무대가 그랬듯, 스승의 춤 그늘, 그것이 자신의 춤 형식이고 철학이었음을 알고 스승의 춤을 단단하게 추상해냄으로써 춤 실천의 가치를 지니고자 함에 그의 춤 뜻이 있을 것이다.
지난해 이동안 선생의 진쇠춤을 시작으로, 올해는 최희선 선생을 조명하는 ‘달구벌 입춤과 함께 하는 우리춤’이라는 타이틀로 총 다섯 번의 무대를 올릴 예정이라고. 그 첫 공연 〈春風化舞〉(4월 2일, M극장)에 대구출신의 임관규(비손무용단 대표)와 장유경(계명대교수)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달구벌 입춤〉 ©옥상훈 |
‘덧배기춤’ ‘수건춤’이라고 하는 〈달구벌 입춤〉으로 무대를 열었다. 군무(최지원, 이화연, 이혜인, 한비야, 김미소)로 재구성, 수건과 소고를 들고 추는 부분을 줄여 올렸다. 전통춤은 춤을 익히고 춘, 춤꾼의 기량에 따라 춤의 격과 멋이 확연하게 다르다. 풋풋한 춤 가운데 농익은 최지원의 춤이 돋보인 무대였다.
장유경 〈입-입소리에 춤을 얹다〉 ©옥상훈 |
장유경의 〈입-입소리에 춤을 얹다〉. 예스럽고 소박하며 아득함 속에 활력과 멋이 있는 춤(작품)이었다. 시대를 훌쩍 거슬러 오른 의상이 이채로웠다. 저고리 배래의 넓은 폭, 점잖게 내린 앞섶과 일상복 같은 치마폭에 더하여 푸르스름한 공단의 그 질감이라니. 마치 평생 법도와 절도를 지키고 살아온 여인을 보는 듯한 의상은 물질의 영화가 초월되어 순결하고 성성한 정신으로 펼쳐지는 춤의 근원이었다. 스승(이매방)으로부터 받은 한 필의 피륙 속 푸르스름한 꽃무늬가 춤으로 개화한 것은 오래 간직하고 있었던 피륙(공단) 속 꽃무늬가 춤길일 수 있음을 아는 장유경의 안목이다.
고 김소희 선생의 구음(입)에 얹은 춤은, 낮은 사위로 돌아서며 시작되는 춤사위와 지숫는 옆 사위, 중반부를 넘어서며 수건을 들고 춘다. 꾸미지 않고 추는 툭툭한 춤사위의 시작과 맺음으로 (의상이 은유하는) 삶을 풍경으로 보이게 하는 힘을 지녔다. 정신을 들어 올린, 평이하고 담담한 춤은 더 이상 감정을 왜곡시키는 춤의 기교나 기술적인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 듯, 말하자면 심심할 정도로 단순하게 맺고 푸는 춤사위에서 (스스로) 마음을 경계하는 조심스러움이 묻어나는 춤이었다.
〈선살풀이〉. 흰색 갓, 부채를 펴고 접는 텁텁하고 담백한 동작과 현란함과 흥이 조화로운, 서늘한 아름다움이 있는 춤이었다.
장유경 〈선살풀이〉 ©옥상훈 |
임관규의 〈한량무〉와 〈태평무〉는 익숙하게 보던 많은 남자 춤꾼들의 ‘한량무’와 ‘태평무’와 다르지 않아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 춤이었다. 이전 무대(대구)보다 여유 있고 춤사위는 유연했으나 이상하게 춤(몸)의 서투름이 사라지자, 춤이 활력을 잃어버렸다. 춤(몸), 특히 전통춤에 있어 너무 익숙해지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너무 익숙해지면 예술적 개성이 사라질 수 있고, 전통춤이라는 틀 안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수 있다. 춤에 자유롭게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있는 것이 중요하다. 대구에서 본 평이했던 춤, 마치 춤도 삶도 애써 꾸며 추고, 걱정으로 살 일만은 아니더라는, 담담하고 담백했던 서투른(춤기량과는 다른) 춤에 깊이가 생긴다.
임관규 〈한량무〉 ©옥상훈 |
임관규 〈태평무〉 ©옥상훈 |
윤미라의 〈진쇠춤〉. 무대에 오르자 가냘픈 몸(춤)에 생기와 무한한 춤의 아름다움이, 춤 생명의 활력이 숨어있었다. ‘진쇠춤’은 흥과 역동적인 동작과 유연함이 조화를 이루며 이어지는, 고요한가 하면 어느덧 활발해지고, 멈췄다가 다시 살아나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춤이었다. 괭과리를 들고 부터 경쾌한 장단으로 춤의 속도감을 유지하는, 특별한 매력까지. 괭과리를 두드리며 무대를 휘 돌다가, 빙긋 웃으며 외발로 살짝 뛰어오르는가 하면. 상체를 살짝 뒤집었다가 정지, 다시 몰아치는 춤이 인상적이었다.
윤미라 〈진쇠춤〉 ©옥상훈 |
마지막 윤미라의 솔로 〈달구벌 입춤〉. 연둣빛 저고리에 자주고름, 고동색 끝동,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볼수록 그 구조와 형식이 더 없이 세련되고 아름다운 춤이다. 살짝 뛰듯 내딛는 발 디딤새, 손목을 척 꺾어 내리는가 하면 발을 눌렀다가 올리고 호흡으로 툭툭 내려앉는, 춤의 정취가 그득하다. 상체를 슬쩍 뒤로 젖혔다가 돌아서 왼쪽 저고리 소매 안에서 명주수건을 꺼내 치맛자락을 잡아 올린 뒤 허리에 질끈 묶는 동작은 (내적으로) 단단했다. 바닥에 놓인 소고를 들어 올린 뒤 마치 날개짓 하다 잠시 멈춘 듯한 춤사위는 기교를 다하지 않아 높고 한가롭다. 소고를 바닥에 내려놓고 허리에 묶었던 수건을 풀고, 앉은 사위에서 수건을 안으로 두 번 접은 뒤 양손을 뒤로 돌리고 입으로 살짝 물어 올렸다가 떨어뜨리는, 교방춤의 흔적에도 청승이 없다.
윤미라의 춤은 화려함이 극에 이르렀다가 평이하고 담담한 것으로 되돌아오는 그 경계에 이르른 것으로 보인다.
윤미라 〈달구벌 입춤〉 ©옥상훈 |
〈春風化舞〉 무대에 선 출연진의 연륜, 각자 춤으로 살아온 세월을 잘 녹여낸 동향(대구)들의 춤 품으로 봄의 뜻, 활발한 춤 생명의 정신으로 꾸린, 춤을 춘 것이 아니라 춤을 들려준 무대였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