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리얼했다.
무대장치도, 소품도, 무엇보다 댄서들의 춤과 연기가 공연 내내 작품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와 끈끈하게 관통하고 있었다.
조성희AHA댄스씨어터의 〈난지도- 꽃섬 2021〉 (12월 17-18일 축제극장 몸짓, 평자 17일 관람)은 쓰레기 폐기장인 난지도를 그대로 작품의 제목으로 차용한 데서 유추되듯 사회성 강한 메시지를 담았다. 작품의 내용도 ‘쓰레기 섬 난지도에 피어나는 꽃’, 경쟁과 대립의 연속인 현대사회의 면면을 강자와 사회로부터 소외된 약자 등 다양한 군상들을 통해 표출하고자 했다.
춤 작품으로 제작될 경우 어떻게 전개될지 비교적 예측이 가능한 소재이고, 안무가 조성희 역시 우회적인 것보다 리얼리티를 더욱 살려내는 정공법을 택했다. 그리고 이 같은 안무가의 분명한 콘셉트는 평균점을 훨씬 상회하는, 기대한 것 이상의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탄생했다.
조성희AHA댄스씨어터 〈난지도-꽃섬 2021〉 |
안무가는 사회적인 소재를 무용예술이 갖고 있는 극장예술의 강점을 버무려 선명한 메시지와 함께 풀어냈다. 성공의 일등공신은 변화무쌍한 춤과 연기를 곁들인 14명 댄서들의 높은 몰입력에 있다. 여기에 난지도의 쓰레기 더미를 연상시키는 소품을 통한 리얼리티 구현, 댄서들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확장시켜 역동성을 살려내도록 한, 철제 빔을 사용한 무대장치, 적절한 접점에서 완급을 조절시킨 안무가의 연출력도 힘을 보탰다.
안무가와 제작진들은 소극장이긴 하지만 비교적 깊이가 있는 극장의 구조를 최대한 활용했다. 무대 구석구석까지 헌 옷가지들을 널어놓거니 쌓아올려 쓰레기 더미를 연상시키도록 했고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작은 철제 빔을 2층과 3층 블록으로 쌓아 댄서들이 자유롭게 공간을 빠른 속도로 이동하게 했다.
댄서들은 무대 바닥과 경사진 이동로, 좌측의 2층과 정면의 3층 공간을 끊임없이 이동하며 마치 난지도의 쓰레기 더미 속을 헤집는 듯한 모습을 연출해냈고, 관객들은 마치 난지도의 쓰레기더미 속에 있는 것 같은, 공간감을 실감하도록 했다.
댄서들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전체적으로 에너지 넘치는 빠르고 큰 패시지의 춤과 폭력적이고 거친 움직임이 군무를 중심으로 주조를 이루었다. 쓰레기 더미 속 옷가지를 활용해 보여주는 댄서들의 군무는 강한 시각적 비주얼과 함께 약육강식이 팽배한, 불안한 사회에 대한 대중들의 울부짖음으로 다가왔다.
그 사이를 한 여성을 둘러싼 또 다른 장면이 파고들었다. 린치와 왕따… 그녀를 중심으로 한 감성적인 연기가 더해진 서사적 구조의 병렬은 비교적 슬로우 템포로 이전의 프레임과 극한 대비를 이루었다. 50분 길이의 짧지 않은 작품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은 중요한 키 포인트로 예술적 완성도에 적지 않은 힘을 더했다.
댄서들의 춤은 남성 무용수와 여성 무용수들 모두 그 자체로 고양된 에너지가 객석을 압도했다. 여기에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표현해내는 무용수들의 연기력 또한 관객과의 소통에서 유리한 소극장 공연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조성희AHA댄스씨어터 〈난지도-꽃섬 2021〉 |
안무가는 심플한 구도에 몇 개의 인상적인 프레임을 설정했다. 그 속에 댄서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버무린 강한 에너지의 몸짓, 한 여성을 중심으로 한 짧은 서사적 구조와 꽃을 이용한 상징적 장면을 적절하게 혼용, 절제되고 대비되는 연출을 통해 선명한 메시지를 전했다. 피아노를 주조로 초반에는 강한 타건의 음악을, 종반에는 감미로운 운율을, 그 사이에 타악을 배치한 음악 조합 역시 작품의 완급 조율에 힘을 보탰다.
치열한 경쟁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비상과 추락을 거듭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 폐기된 쓰레기 섬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아 움튼 인간들의 생명력, 그리고 꽃섬으로 되살아나는 환타지, 이번 작품 〈난지도- 꽃섬 2021〉은 조성희아하댄스씨어터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즐거움과 생기발랄한 작품의 이미지와는 분명히 상반되어 있다.
조성희AHA댄스씨어터 〈난지도-꽃섬 2021〉 |
이 작품은 2013년에 초연된 〈난지도-래비토의 꽃섬〉의 업그레이드 작업이었다. 8년 전 초연 공연을 보진 못했지만, 적어도 댄서들의 춤 기량과 연기력은 분명 이전보다 크게 성장했음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댄서들의 합이 만들어내는 앙상블이 겉돌지 않고 작품 속에 녹아 있고, 춤과 연기가 적절하게 매칭된 시너지 효과가 무대 전체를 지배하고, 관객들과 적극 소통하고 있는 것에서 확연하게 확인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 재공연을 통해 레퍼토리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한 드문 경우를 지역을 베이스로 한 전문 무용단의 작업을 통해 발견한 기쁨은 그 잔향이 오래 동안 가시지 않았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