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은희 ‘나의 스승, 나의 춤’
춤인생 60년이 보여준 귀감
김영희_전통춤이론가

전통무용가 김은희(김은희전통무용단 단장)가 ‘운초 김은희 춤인생 60년 나의 스승, 나의 춤’이라는 타이틀로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공연했다(11월 20일). 춤인생 60년을 맞으며 펼친 공연에서 핵심 레파토리로 자신의 춤의 정수(精髓)를 내보였고, 무용가 김은희의 어제와 내일도 보여주었다.

김은희는 밀양여중 시절 무용가 박금슬(1922~1983)을 만났고, 경북예고를 졸업했다. 박금슬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1983년 스승이 돌아가신 후 서울에서 여러 무용가들을 사사했다. 그리고 1987년부터 이매방(1926~2015)을 사사해 승무와 살풀이춤의 이수자가 되었다. 대략 20대까지 그 시기 무용가들이 그랬듯 신무용 계열의 춤 중심으로 활동했고, 30대에는 한국 창작춤 작업을 했다. 9회 대한민국무용제에 참가했고, 88국제무용제전에 ‘이땅 저하늘’을 출품했으며, 1991년에 네 번째 춤판으로 ‘하늘 가까이 두 손 들어’를, 1993년에 15회 서울무용제에 ‘이도 저도 아닐레라’를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했다. 이후 40대에 접어들며 전통춤에 집중했다. 스승 이매방의 공연에서 빠지지 않고 여러 춤들을 추었으며, 밀양검무의 정기공연도 정기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2004년에 박금슬의 춤동작 체계와 이매방의 춤 원리를 근간으로 ‘우리춤움직임원리연구회’를 발족하여 연구와 교육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김은희 ‘나의 스승, 나의 춤’ 박금슬류 춤동작 상·중·하체동작 ⓒ김은희전통무용단




공연은 무대 중앙에 홀로 나온 김은희가 “박금슬 선생님!”을 나직하게 부르며 시작됐다. 생전에 춤동작을 촬영하기 위해 녹음했던 박금슬의 육성이 나오자 김은희의 제자 15인이 등장해 〈박금슬류 춤동작 상·중·하체 동작〉을 함께 추었다. 하체의 발과 다리 동작부터 시작하여 상체의 팔사위를 6분간 진행했다. 전면으로 열을 지어 시작했으나, 원형 동선과 태극진으로 펼치면서 춤동작들이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했다. 박금슬의 제자가 전국에 흩어져 있고, 추모공연도 있었으나, 박금슬의 동작체계를 다음 세대에 전승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매방류 〈승무〉 ⓒ김은희전통무용단




다음 프로그램으로 바로 넘어가는 줄 알았지만, 김진미(청주시립무용단 예술감독)가 승무의 고깔을 들고 하수에서 등장했다. 그리고 남성 제자 2인이 무언가 받쳐들고 나오더니, 중앙의 바닥을 닦았다. 걸레로 주위를 닦아 정갈하게 한후, 김은희에 인접해서 좌우로 벌려서자, 김진희가 고깔을 씌워주었다. 그리고 〈승무〉가 시작되었다. 이매방 류의 승무 완판이었다. 무대 중앙에 조명을 집중해서 공간을 설정했다. 승무가 대극장 무대에 오르면 동선이 길어지고 보폭이 넓어지는데, 김은희는 무대를 넓히지 않고 승무를 풀어냈다. 다른 춤꾼의 승무에 비해 장삼 소매가 크게 뻗치는 동작이 많지 않았고, 춤은 끊어지는 듯하다 계속 이어졌다. 나중에 팸플릿을 보니 ‘사방을 돌며 원으로 회전하여 음양의 원리를 표현한다’는 설명이 있다. 이는 명무(名舞)이셨던 이매방이 춤의 원리를 가르칠 때 강조했던 대목이었다. 김은희는 이를 구현하고자 공간을 설정하고 춤을 풀어냈던 것이다. 북놀음에서 힘이 부칠 듯했지만, 북소리가 또랑또랑하며 강약조절도 능란했다. 북치는 뒷모습 너름새도 북놀음을 설명했다.






〈살풀이춤〉 추기 전 김은희의 두번째 독백 ⓒ김은희전통무용단




그런데 김은희는 승무를 끝내고 퇴장하지 않았다. 무대 앞쪽에 가림천을 세우고 살풀이춤 의상을 갈아입었다. 제자들이 과정을 진행했고, 어린 여자아이가 살풀이 수건을 전달했다. 이윽고 〈이매방류 살풀이춤〉이 시작되었고, 살풀이 수건이 승무의 장삼 소매보다 더욱 자유롭게 날렸다. 춤은 진중하면서 편안했다. 일부러 각을 잡지 않았으며 춤이 풀어지는 대로 선율에 몸을 실었다.




〈밀양검무〉 ⓒ김은희전통무용단




다음은 〈밀양검무〉였다. 무대 배경에 신윤복의 〈쌍검대무〉가 띄워지고, 삼현육각 악사들이 그림처럼 진설했다. 이어서 한량들과 기생들, 동자가 차례로 자리를 잡더니 노한나(밀양검무보존회 부회장)와 하서정(밀양검무보존회 회원)의 밀양검무가 시작되었다. 밀양검무는 밀양 출신인 김은희가 학창시절에 또 이매방에게 배웠던 검무의 학습 경험과 더불어, 박제가(1750~1805)가 18세기 말 검무를 감상하고 남긴 ‘검무기(劍舞記)’를 참고하여 복원재구성한​ 검무이다. ‘검무기’에 조선후기 검무의 검예(劍藝)와 검기(劍氣)가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으므로, 실제로 무예검을 익혀 춤동작을 구성했다. 또 신윤복의 그림처럼 장검을 무구로 사용하고, 2인 여성춤꾼의 의상도 그대로 구현했다. 〈밀양검무〉는 대결의 춤으로서 검무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현재 전승되고 있는 다른 검무들과는 차별성이 분명하다. 이 춤은 김은희의 학구적인 열정으로 이룬 성취이다. 김은희의 과거의 춤이기도 하며, 미래의 춤이기도 하다.




〈김은희 즉흥무〉 ⓒ김은희전통무용단




이어서 김은희가 세 번째 독백을 했다. “은희야. 그동안 수고 많았다. 이제 너의 춤을 추거라.” 본인 자신에게 한 덕담이며, 용기를 일으켜 세우는 멘트였다. 자신의 춤으로 〈김은희 즉흥무〉와 〈운초 북놀음〉을 초연했다. 〈김은희 즉흥무〉는 흰 치마저고리 위에 비취색 철릭을 입고 손춤으로 추었으며, 굿거리–엇모리-자진모리로 구성했다. 박금슬과 이매방의 춤사위 중에 박금슬의 특징적인 동작들이 눈에 눈에 띠었다. 엇모리에서는 발동작 중심으로 추었고, 자진모리에서는 장고를 잡았던 음악감독 유인상과 눈길을 주고 받았다. 즉흥이었다. 철릭을 입어 성별을 구분하지 않았고 여성적인 흐름보다 호방하고 막힘없이 추고자 한 듯하다. 다음에는 밀양의 춤가락이 들어간 즉흥무를 보고 싶다.




〈운초 북놀음〉 ⓒ김은희전통무용단




마지막으로 〈운초 북놀음〉이었다. 김은희 구성으로 좌우와 중앙에 3북으로 배치하고 김은희와 제자 8명 김희원, 박미향, 안나영, 유재성, 이미나, 최지혜, 한지윤, 최진영이 추었다. 장단을 별달거리-터벌림-엇모리-자진모리-휘모리로 구성했다. 장단을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면 불가능한 작업이다. 〈운초 북놀음〉은 삼고무, 오고무, 구고무 등과 같이 북을 좌우 정면에 놓고, 그 안에서 여러 북가락을 치며 춤사위를 보여주는 ‘오고무’ 스타일 작품에서 전환하는 새로운 국면을 보여주었다. 기존의 ‘오고무’의 장단 구성과 전혀 다르며, 엇모리에서는 관현악 반주를 추가시켰다. 또 대개의 장단을 설장구 장단에서 가져와 응용하였기 때문이다. 의상도 기존의 오고무 스타일, 말아붙인 꼬리치마와 조끼를 받쳐입은 바지저고리과 달랐다. 승무의 북놀음도 다양해지고 있는데, 앞으로의 전개가 흥미진진하다.

김은희의 ‘나의 스승, 나의 춤’은 최성신의 연출로 기존의 전통춤 개인 공연과는 다른 구성과 감각을 보여주었다. 사회나 막간 영상 없이 춤들을 연결시켰고, 함축적인 독백으로 김은희 자신의 춤 인생을 말하게 했다. 춤 프로그램도 군더더기 없이 김은희 춤의 골수를 선정했다. 스승으로부터 배웠던 춤들과 제자들과 가꾸어갈 자신의 춤이라 할수 있으니 공연의 타이틀과 명실상부했다. 춤의 깊은 내공과 인생의 연륜을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보여주었으며, 춤에 대한 올곧고 쉼없는 태도는 귀감(龜鑑)이 될 것이다.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김영희춤연구소 소장. 역사학과 무용학을 전공했고, 근대 기생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춤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 『전통춤평론집 춤풍경』을 발간했고, 『한국춤통사』를 책임편집하고 공동저술했다. 전통춤의 다양성과 현장성을 중시하며, 검무의 역사성과 다양성을 알리기 위해 ‘검무전(劍舞展)’을 5년째 시리즈로 기획하고 있다.​​​ ​

2021. 12.
사진제공_김은희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