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춤으로 현실을 본다. 이 말은 현실이 지니고 있는 춤적 힘을 발견한다는 말과 다른 말이 아니다. 용기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해와 감수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춤(판)만 얘기해보자. 춤 작가는 유혹과 두려움, 기회주의와 비겁함과의 치열한 싸움을 기록하는 기록자인지도. 하여 깨어있는 정신으로 정확하게 보고, 말하고 정직하게 춤을 춰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무사함과 기득권과 침묵의 카르텔에 숨지 않는 진정한 지성의 목소리를 내는 이어야 한다.
〈청라언덕에 백합이 핀 까닭은?〉(아양아트센터 아양홀, 10월 22일), 박현옥(대구컨템포러리 예술감독)에게는 불모의 춤현실에서 앙양된 감정 하나를 잘 추슬러 올린 작품이었다. ‘2019년 대구문화재단 집중기획지원을 시작으로 지난해 국제화교류지원에 이어 올해 창작활성화지원’으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박현옥 〈청라언덕에 백합이 핀 까닭은?〉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 |
시간이 지나 다시 무대에 올리는 춤은 어제(초연)와 달라야 한다. 새로운 춤개념 실험을 통해 새로운 형식의 춤 집합, 동일성을 창조해내야 한다. 춤의 임무다. 안무자는 대구의 한 공간(청라언덕)을 춤으로 준동하는 힘을 의미를 제거한 노랫말의 독백에서 가져온다.
문으로 보이는 설치물 앞에 앉거나 서 있는 무용수들이 문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들어가면서 시작되는 춤은 군무진의 움직임을 가만히 바라보고 서 있는 남자의 몸짓에 따라 군무진이 모여 팔로 그려내는 춤은 꽃처럼 피어나기도 흩어지기도 하면서 춤으로 흐른다. 문과 남자의 상념, 꽃의 은유로 춤을 풀어낸, 아름다운 장이었다.
장이 바뀌고 무채색의 무대에 붉은 피가 흐르는 모세혈관처럼 선명한 빨강색 아크릴판과 판을 비추는 조명, 흰색 벤치가 들어온다. 서로의 반대편에 앉은 남녀(김홍영,현상아), 여자가 앉은 벤치를 밀고 끄는 남자. 빨강 재킷을 입은 여자(현상아)가 단어를 뱉는다. ‘언덕’ ‘동무’ ‘백합’ ‘계단’ ‘사라진다’ ‘청라언덕’ ‘흰 나리꽃’ ‘생명성’ ‘동무생각’, 단어의 힘에 밀려 우울한 서정의 춤을 추는 남녀. ‘동무생각’(박태준 작곡, 이은상 작사)의 단어는 마치 울음 같은 소리로 압축된다.
박현옥 〈청라언덕에 백합이 핀 까닭은?〉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 |
다시 강렬한 빨강. 여기서 빨강이 주는 강렬한 아름다움은 그저 색이 주는 단순한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다. 안무가 박현옥의 인문학적 감성과(오르한 파묵의 〈내이름은 빨강〉에서 영감을 받은 같은 제목의 작품을 무대화한 데서 알 수 있듯) 지금까지 안무자 자신의 모든 춤의 시간을, 마치 피가 흐르는 듯한 선명한 빨강의 아크릴 판과 대비되는 무채색 의상과 춤으로 감각적인 시선을 만들어내고 춤에 대한 비밀스런 주술을 빨강으로, 강렬한 춤의 아름다움을 기꺼이 그려내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는 춤에의 열망이 춤과 함께 조직된다기보다 불쑥 내던져지듯 튀어나오는 흰색의 큰 방석에서, 춤과 춤 사이의 심한 생략에서 그 돌출성이 더 두드러진다.
박현옥 〈청라언덕에 백합이 핀 까닭은?〉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 |
같은 무대 공간에 등장하는 무채색 의상의 두 여자(최효빈, 서정빈)와 은색의자. 남녀 커플의 춤과 다르게 더 높은 정신세계로 개화하려는 듯한 두 여자의 춤. 여자커플의 관계의 춤이 음울한 무채색이라면 남녀의 춤은 선명한(빨강색과 시어) 색조다. 이는 ‘청라언덕’에 ‘백합’이 핀 까닭의 주요한 키워드로 두 커플의 관계 설정을 보여준다. 한없이 가라앉는 무채색의 춤적 상태와 빨강의 강렬함으로 춤에 깊이를 부여하는 춤의 의미 변형이다.
다시, 내적이고 본질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직접적이고 내적인 관계의 믿음은 빨강 재킷을 입은 여자가 뱉는, 의미를 삭제한 단어의 나열과 여자가 앉은 벤치를 미는 남자와 두 여자의 상승하는 춤에서 읽는다. 한 여자가 앉은 은색 의자를 다른 여자가 뒤로 젖힌 채 멈추는 순간, 두 여자의 사이를 남자가 벤치로 밀며 가로지른다. 이전 작품과 달리 여자 둘의 춤과 두 남녀의 춤 사이에는 붉게 터지는 욕구와 그 마음을 그 이해하려는 근원적인 인간관계의 욕구가 겹쳐지는 유추적 관계 설정으로 춤의 의미가 깊어졌다.
박현옥 〈청라언덕에 백합이 핀 까닭은?〉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 |
단순한 구도와 형식의 빨강색 의상의 군무로 앞장의 춤 의미가 흐려졌으나 언덕 앞에서 추는 다섯 명(최동현, 도지원, 엄세영, 권정은, 전하연)의 춤은 유려했다. 머물러있지 않고 그 사이에 발전하였다.
마지막, 언덕장치가 내려오고, 첫 장의 구도로 모여선 무용수들의 머리위로 밀고 올라오는, 마치 꽃이 피는 듯한 움직임. 손을 맞잡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움직임이 더해져 다시 분화되었다가 춤이 사라진다.
2019년도 〈청라언덕...〉이 화사하고 나른한 서정을 그려 보여준 데 비해 두 커플의 내향적 자아들이 다른 세상의 낯설음과 교환하는 데 좀 더 역점을 둔 안무로 확정되지 않은 춤의 증식과 자기변형의 역량을 잘 보여준 무대였다.
박현옥 〈청라언덕에 백합이 핀 까닭은?〉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 |
반면 2장부터 규칙적으로 춤을 파고 드는 탁한(마치 코를 고는 듯한) 소리가 시적 서정이 흔들었다. 남자 무용수의 사념(思念), 혹은 ‘사우(思友)’가 작곡된 역사의 특수한 조건과 시대를 보여주는 작곡자(김재덕)의 의도(한 것이라면)라면, 그 의도에서 개념의 차이를 본다. 하지만 개념의 차이가 반드시 세대별로 경계를 짓는 것도 아니고, 작곡자와 안무자가 시적 서정에 같은 견해를 가진 것도 아니기에 작업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작곡의 의도가 역사(이야기)가 깃든 공간을 그려내는, 말하자면 청라언덕의 꿈꾸는 순정한 마음과 자유와 이상의 노래였든, 불의와 부자유에 대해 고개 돌리는 암묵적으로 다른 의미의 저항이었든. 예술의 실천함에 있어, 그 경계를 넘어선, 거슬리는 소리(음악)였다.
박현옥 〈청라언덕에 백합이 핀 까닭은?〉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 |
정년을 몇 해 앞두고 안무자(박현옥)는 얼마 전 9월에 학교를 떠났다. 하여 이번 작품이 마냥 기쁜 마음으로 올리는 공연이 아닌 것 같기에, 다음 공연을 기약한다는 희망을 말해야 하나... 잠깐 인사를 놓친다.
더 이상 제자들이 학교에서 춤을 전망하지 못하게 된 데 대한 자괴감에서인지, ‘춤’ ‘공연예술’이 아닌 ‘체육’으로 다시 자신의 능력을 평가받아야 하는 일이 부질없다는 생각에서인지 알 수 없지만 명예퇴직을 결심하기까지의 작금의 모든 일을 자기 책임으로 감당하겠다는 그 도덕적 의지는 결코 가볍지 않아 보인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이 대구 춤의 현상 속에 감춰진 진실인 듯도, 대구 춤 현실 속에 감춰진 또 하나의 현실로 보였다.
지금껏 제자들과 춤 작업을 했던 학교라는 공간이 없어졌다. 안무자 자신(지도자로서)의 꿈뿐만이 아니라 학생들의 꿈까지 돌보고 가꾼 그 공간이 없어진 것이다. 안무자가 말하던, 제자들이 설 무대와 눈물을 닦아줄 여유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지. 아무쪼록 역량 있는 전문예술인을 양성하고자 한 안무자의 뜻이 아름다웠던 것처럼, 학교 밖에서 비로소 또 다른 아름다운 삶이 되길 바란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