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금배섭 솔로 연작 〈오〉
배척받은 사람들을 위한 리얼한 작업
김채현_춤비평가

금배섭의 〈오(5)〉는 그가 이전에 발표했었던 다섯 편의 독무작을 모듬으로 재구성한 공연 행사 이름이다(10월 8, 10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오〉를 구성한 다섯 편(괄호 속 발표연도)은 〈미친놈 널뛰기〉(2014), 〈섬〉(2017), 〈니가 사람이냐?〉(2017), 〈포옹〉(2018), 〈?〉(2020)이다. 2011년 아르코예술극장의 안무가 육성 사업의 쇼케이스를 통과하여 그 다음해 같은 극장이 기획한 한팩 라이징 스타 행사에서 올려진 〈보이는 것에 대하여〉(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금배섭의 작업을 첫 대면한 이래 필자는 그의 공연을 대개 접한 편이고, 〈오〉의 공연작들도 모두 이전에 관람한 바 있다. 〈오〉의 다섯 편은 각각 애당초의 초연작들에 대체로 충실한 편이다.

우리 춤계 관행에 비추어 〈오〉 이벤트는 몇몇 면에서 이채를 띤다. 우선 안무자가 발표했었던 독무작들만으로 행사가 구성된 점이 들어진다. 다섯 편 가운데 〈니가 사람이냐?〉에만 연극배우(김석주)가 출연하고 나머지는 모두 금배섭이 출연한 독무작이다. 그리고 안무자의 소품작이나 작품의 부분들을 갈라식으로 늘어놓지 않고 여러 ‘작품들’을 모아 하루 이벤트로 구성한 사례는 필자가 알기로는 없었다. 게다가 공연하는 측은 물론 관람하는 측의 체력을 전제로 하는 이러한 장시간의 관람 놀이를 자행(?)한 것은 국내에선 사실상 초유의 일이 아닐까 한다. 다섯 편의 공연 시간은 모두 4시간 30분, 인터미션 1시간을 포함해 공연 당일 오후 4시부터 밤 10시 직전까지 이벤트는 진행되었다.

다섯 편의 작품은 한국 사회의 말하자면 소외된 사람들을 비춘 독무작들이다. 안무자는 이 사람들을 설명하기를 부당함에 대항해 자신의 권리와 인간의 존엄성을 찾으려고 스스로 신이 되기를 바라는 어느 1인 시위자(〈미친놈 널뛰기〉), 자기만의 섬에 고립된 처지의 탈북민(〈섬〉), 사회적 억측과 군중심리에 의해 범죄자로 희생되고 동화되어버리는 개인(〈니가 사람이냐?〉), 세월호 참사에서처럼 소중한 이를 잃고 과거를 바꾸려 몸부림치는 사람(〈포옹〉), 자기가 떠난 조국이 어떻게 되었는지 지금 여기서는 무얼 해야 하는지 온통 물음표를 안은 채 제 홀로 살아야 하는 이주여성(〈?〉)이라 소개하였다.




  

  

금배섭 〈니가 사람이냐?〉 (출연 김석주) ⓒ김채현




〈니가 사람이냐?〉에서 낚싯줄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둥근 빨래걸이가 천장에 달려 있다. 무거운 들통을 끌어당기며 등장한 김석주는 들통에서 정육점 갈고리들을 꺼내 낚싯줄 아래 위에 주렁주렁 매달아 좁고 둥근 공간을 만드는 퍼포먼스를 한참 진행한 후 그 속의 들통에 앉아서 라텍스 고무장갑을 씹거나 뱉으며 손에 낀 장갑을 낚싯줄과 큰 바늘로 꿰매다가 낚싯줄을 이빨 사이에 힘들여 끼운다. 라텍스 장갑을 잘라 발에 끼우면 엄지손가락 부분이 발뒤꿈치에서 돌출하여 마치 하이힐을 신은 사람이 되어 맵시를 부리듯이 빨래걸이 공간 주변을 서성이다 다시 공간 속으로 들어가 마이크를 들고 얼굴을 뭉개며 스페인어 가요를 부른다. 그 공간을 나와 둘레에서 빨래걸이 갈고리를 돌리면 갈고리들이 공중을 점차 빠르게 선회하며 조성되는 넓은 공간을 따라 뜀박질을 하다가 갈고리들이 계속 선회하는 그 공간을 위급하게 드나든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이 기행(奇行)들이 범죄자로 낙인찍힌 사람의 심사와 세상의 억압 기제를 은유하는 것은 물론이다.








금배섭 〈포옹〉 ⓒ김채현




금배섭의 작업에서는 몸을 혹사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포옹〉의 무대에서는 대형 스크린 같은 에어캡 비닐막이 무너져 바닥에 초대형 돗자리처럼 깔린다. 그 위를 걸으며 에어캡의 뽁뽁이를 터뜨리다가 여의치 않자 페인트칠 롤러를 굴려 보아도 여의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홀연히 퇴장한 그는 잠시 후 테니스코트의 바닥다지기 롤러를 리어카 끌 듯이 등장하여 관객들의 조용한 탄식을 유발하였다. 혼자 끌기에는 도저히 무리인 이 롤러를 기를 쓰고 끌면서 뽁뽁이를 으깨어가는 행동은 무대 공간을 몇 차례 돌던 중도에 중단된다. 사랑하는 이를 희생시킨 데 대한 자책과 온갖 회한을 어찌 해보려 애태우며 갖은 수를 써본들 제 뜻을 이루기는 힘들다.










금배섭 〈?〉 ⓒ김채현




이주여성의 처지를 그리는 〈?〉는 테이블 하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 위에 놓인 두꺼운 화판에는 유화 물감이 얼룩덜룩 어지럽게 칠해져 있고 조금 후 화판 위에는 여러 물감이 부어진 배식판이 놓이며 이주여성 캐릭터로 간주되는 출연자(금배섭)는 그 위에서 혼돈스런 심사를 드러내듯이 산란한 몸짓을 보이다가 높이 50㎝ 남짓의 투명 아크릴 상자를 테이블 위에 갖다둔다. 몸 전신을 뻗을 수 없는 그 상자 안으로 자기 몸을 쑤셔 넣은 상태에서 그는 투명 아크릴판을 덮고 그 속에 갇힌 채 배식판의 물감들을 아크릴판에 칠하면서 날개를 활짝 펼친 새를 큼지막하게 그려낸다. 이윽고 그 덮개를 열어 몸을 일으켜 세운 그가 새를 그린 덮개에 몸을 갖다 대면 그는 머리가 광배에 둘러싸인 예수 같은 이미지로 전신한다. 그 사이 그의 등판에도 유화 물감이 덧칠해져 있다.










금배섭 〈섬〉 ⓒ김채현




몸을 극도의 상태에 위치시키는 외에도 금배섭은 객석에서 보기에는 아찔할 정도의 분위기를 종종 연출하였다. 〈섬〉에서 긴 각목들을 갖고서 우물 정(井)자 모양의 피라미드 구조물을 1m 가량의 높이로 켜켜이 쌓아 그 위에 올라서서 탈북민의 위태위태하면서도 고립무원인 듯한 상황을 표현하였다. 〈미친놈 널뛰기〉에서는 널뛰기 원리를 활용한 또 다른 류의 아슬아슬함을 만나게 된다. 통나무 위에 놓인 기다란 널판 위에는 부적 그림이 그려져 있고 널판 위로 도르래가 달려 있다. 그가 꽤 무거운 쌀 포대를 양다리로 끌어와서 여러 곳에 쌀을 한 움큼씩 놓는 정화 의례를 행한 다음 쌀 포대를 도르래에 묶고 도르래를 당기면 쌀 포대가 3m 정도 올라가는데, 잠시 호흡과 자세를 고른 그가 도르래를 풀자 일순간 쌀 포대가 낙하하는 동시에 그 반동력으로 튀어오른 그의 손은 공중의 하얀 자루를 잡으며 곧 그는 자루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사회로부터 배척받은 1인 시위자의 그후 운명은 관객 각자의 상상에 맡겨진다.










  

금배섭 〈미친놈 널뛰기〉 ⓒ김채현




〈오〉의 다섯 편 작품에서는 이외에도 인상적인 순간들이 더 거론될 수 있으며, 다양한 연출 아이디어에서는 작품에 임하는 그의 자유로운 발상을 되새겨 보게 된다. 〈오〉에서 특히 주목되어야 할 점으로서 〈오〉에서 전반적으로는 움직임보다는 몸의 행위가 절대적이라는 사실이 거론되어야 하겠다. 이런 면에서 다섯 작품을 대사 없는 신체극과 결부지을 법하겠으나 그다지 적절한 개념은 아닌 듯하다.

일반적 노동보다 훨씬 강도가 높은 몸의 행위로 각각의 서사를 펼쳐나갈 동안 금배섭의 몸은 분투하기에 전념하는 편이다. 그는 자기 몸과 분투할 뿐 아니라 몸이 그렇게 행위하도록 하는 세상과도 분투를 결행한다고 짚어 과장된 소치가 아닐 것이다. 온갖 대책을 비웃듯이 우리 사회의 냉혹과 고립, 절망, 혐오, 무시가 도를 더해갈수록 그 해소의 고삐를 놓지 않고 인간을 찾아가는 공연 활동과 도전 의식은 오히려 더욱 중요해진다. 〈오〉에서도 고삐를 놓지 않으려는 결기가 확연하며 객석을 향해 리얼한 메시지를 온몸으로 전파하고 현실을 다시 보도록 재촉한다는 점에서 금배섭의 공연들은 잔혹극과 상당히 가까운 경향성을 갖는 것으로 판단된다.

사회 고발 매체의 여러 기사를 무대 현장에서 한꺼번에 확대해 펼친 것처럼 〈오〉는 리얼하고 내심 준열하다. 우리 사회에서 배척된 이들에게 시선을 집중해서 안무자는 주로 독무작에 치중해왔다. 상당 기간에 걸쳐 진행된 작업에서는 일관성이 뚜렷하다. 우리 사회가 그 사람들을 배제할수록 사람 찾기에 몰두하는 금배섭의 현미경 또는 망원경 작업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는 짐작이 든다. 〈오〉는 그간 그가 추구해온 작업과 작가 세계를 중간 정리하는 의의를 띠는 것은 물론, 이번 이벤트가 춤계 일각에서 상당히 독자적인 세계를 모색해온 바를 나누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1. 1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