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한국민족춤협회(이사장 서정숙. 이하 민족춤협회)는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춤 단체 중 하나이다. ‘상생, 평화, 공존의 길을 묻다’라는 기치 아래 창작마루(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동대문종합시장 신관 9층에 마련한 극장)에서 진행된 ‘2021 한국민족춤제전’(8월 23일~28일, 총연출 남기성)의 개막 공연 ‘오늘춤 잇수다’에서는 이 단체의 이러한 성격이 잘 드러난다. 씻김굿의 형식을 빌린 공연에서는 열악한 산업현장에서 유명(幽明)을 달리한 노동자들의 넋을 달래고, 남은 사람들을 위로하며, 나아가 노동 현장의 환경을 바꾸는 데 힘을 보태고자 한다. 이를테면 한국민족춤제전(이하 민족춤제전)은 지금-여기, 이 땅의 민감한 현실적 이슈를 시의적절하게 반영하는 춤판인 셈이다.
또한 민족춤제전은 전통춤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데도 한몫을 하는 춤판이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남성 전통 춤꾼들의 무대인 ‘아재들의 춤수다’는 대중들의 깊은 호응을 얻으며 전통춤을 대중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공연으로 보인다. ‘오늘춤 잇수다’와 ‘아재들의 춤수다’는 민족춤제전을 대표하는 춤판으로 보이고, 민족춤협회는 이를 통해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예술적 방향을 어느 정도 내보인다. 곧 민족춤협회는 전통춤이나 전통연행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데 힘쓸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이 땅의 현실적 부조리에 비판적 몸짓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것이다.
2021 한국민족춤제전 ‘오늘춤 잇수다’ 김민희 〈곱새춤〉 ⓒ한국민족춤협회 |
2021 한국민족춤제전 ‘아재들의 춤수다’ 강령탈춤 ⓒ한국민족춤협회 |
이러한 일련의 예술적 실천은 매우 의미 있는 활동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곧, 아무리 민족, 평화, 통일, 상생, 노동 등을 얘기할지언정,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판에 박은 듯하면, 이를 두고 진보적이라고 흔쾌히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민족춤협회가 한국의 춤 사회에서 가지는 존재감을 선언적 구호 속에서 찾을 수는 없다. 이를테면 민족춤제전은 전통춤, 전통연행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춤판이되, 이와 더불어 예술적 혁신이 일어나는 실험의 장이 될 때, 그리고 동시대적 감성이 넘실대는 춤판이 될 때, 진보적이라는 말에 걸맞은 존재감을 뽐낼 수 있을 것이다. 부연하자면, 민감한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다룬다고 다 진보는 아니다. 이와 함께, 춤과 춤추는 몸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안무 개념을 확장하는 창작 방법을 모색하는 등, 기존의 춤 관행을 바꾸거나 고쳐 아주 새롭게 하는 춤 실천이 맞물려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3년 전부터 시작된 ‘젊은춤축전’(연출 변상아)이 민족춤제전에서 가지는 의미는 중요하며, 여기에 거는 기대도 특별하다고 볼 수 있다. 젊은춤축전은 민족춤제전에 동시대적 감성을 불어넣고, 이 판을 예술적으로 쇄신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춤축전은 변상아가 연출을 맡아 2회째 진행하고 있는 또 다른 기획공연 ‘ㅊㅊ-하다’((주)더원아트코리아 주최)와 춤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청년이 청-하고, 청춘이 춤-추는’ 판인 올해 ‘ㅊㅊ-하다’(2월 25일~28일, 공감M아트센터)에는 궁중무와 민속춤, 현대춤과 하위문화의 춤 등 총 9 작품이 참여해 이질적인 몸짓의 장을 펼쳤는데, 이 공연의 중심에는 전통춤이 있었다. 곧, ‘ㅊㅊ-하다’와 ‘젊은춤축전’은 동시대 한국춤의 창작 방향을 모색하되, 이를 전통춤과 따로 떨어지지 않은 채, 아니, 전통춤 유산을 가장 중요한 토대로 삼아, 이를 이루려고 애쓰고 있는 춤판으로 보인다. 아무튼, 전통춤판과 창작춤판으로 나뉘어 경연 형식으로 진행된 올해 ‘젊은춤축전’은 예술에서의 진보, 춤에서의 진보가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아주 고무적이었다.
황혜영 〈태평무〉, 박수은 〈무을소고춤〉 ⓒ한국민족춤협회 |
배서연 〈청풍명월〉, 윤진아 〈무산향〉 ⓒ한국민족춤협회 |
죽자사자-이호민, 박창대 〈북청사자놀음〉 ⓒ한국민족춤협회 |
전통춤판은 다양했다. 정재만류 산조춤, 구미마을농악의 소고춤, 궁중무인 무산향, 북청사자놀음, 강선영류 태평무, 교방굿거리춤 등이 참여했는데, 몇몇 춤꾼은 출중한 기량을 뽐냈다. ‘태평무’를 춘 황혜영은 팔 사위가 유려하고, 잔걸음이 능란하며, 동작이 시원하면서도 우아하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태평무 장단을 타고 노는 묘미가 약한 감이 있다. 박수은은 남성적인 ‘무을소고춤’을 여성적인 몸짓으로 잘 풀어낸다. 하지만 신명과 흥이 실리지 않아 아쉬운 감이 있다. ‘청풍명월’을 춘 배서연은 아름다운 여성의 자태를 깔끔한 몸짓으로 표현하지만 아기자기한 멋 부림과 감칠맛이 약하다. 윤진아는 ‘무산향’의 장중함을 시원하고 활달한 움직임에 잘 담았지만, 장단을 타고 노는 발디딤이 다소 투박하다. 죽자사자의 ‘사자놀음’은 전통연행이 가진 흥과 신명을 한껏 살려낸 몸놀림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재미난 무대를 연출한다. 마당에서 연행되는 춤임에도 극장 무대에 적합하게 재창작한 점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움직임의 역동성을 더 살리면서 디테일을 더 세심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조민주 〈무산향〉 ⓒ한국민족춤협회 |
김서현 〈교방굿거리춤〉 ⓒ한국민족춤협회 |
전통춤판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궁중춤 중의 하나인 무산향을 올해는 두 명의 춤꾼이 추었다. 첫 번째로 ‘무산향’을 춘 조민주의 춤은 세련되고 깔끔하다. 안정적인 움직임을 구사하며 궁중춤이 가진 장중함과 담대함을 차분하게 표현한다. 두 번의 연풍대는 이 춤의 절정으로 보이는데, 특히, 마치 꽃망울이 터지듯 두 팔의 환삼을 위로 뿌리며 돌아가는 두 번째 연풍대는 이 춤의 백미로 보인다. 조민주는 이런 연풍대를 정확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수행하며 이 춤이 가진 맛을 한껏 살려낸다. 스스로 즐기면서 편안하게 추는 춤으로 관객의 시선을 잡아매는 매력이 있는 춤꾼이다. ‘교방굿거리춤’을 추는 4세대 춤꾼에 속하는 김서현은 그의 앞선 세대들과는 다른 독특한 몸짓을 구사한다. 이를테면 젊은 감성이 발산하는 교방굿거리춤이다. 흥과 신명을 머금고 있는 잔잔한 몸놀림과 감칠맛 나게 어르고 맺는 리드미컬한 동작은 보는 이의 감흥을 자아내고, 발랄하면서도 차진 움직임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감각적 질은 강한 흡인력을 지녔다. 특히, 튀는 몸놀림을 자제하는 절제된 동작과 단아한 움직임이 일품인 춤꾼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젊은춤축전은 전통춤을 그대로 답습하는 장이 아니다. 전통춤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되, 이를 새로운 감성, 젊은 감각으로 탈구축하는 장이다. 조민주와 김서현은 동시대적 감성을 바탕으로 전통춤을 현대화하는 데 있어서 선두에 선 젊은 춤꾼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이들의 춤은 젊은춤축전의 전통춤판이 나아갈 방향을 모범적으로 보여준다. 젊은춤축전은 전통춤을 대중화하고 활성화하는 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포스트전통춤 시대를 여는 춤적 실천, 곧 보이기 위한 춤을 넘어서는 춤, 감응력을 극대화하는 춤으로 관객들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되, 그들의 일상적 지각 체계를 뒤흔들고, 그럼으로써 감성의 변화를 야기하는 춤판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유진, 이혜인 〈신지전〉 ⓒ한국민족춤협회 |
창작춤판에는 총 6팀이 참여했다. 이유진과 이혜인이 공동으로 안무한 ‘신지전’은 지전이라는 말이 가진 중의성, 곧 돈이기도 하고 넋전이기도한 지전의 이중적 의미를 형상화하면서 삶과 현실을 풍자한다. 안무자는 무대 중앙을 좌우로 가로질러 길게 놓인 돈길 혹은 꽃길과 같은 오브제를 이용하여 메시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표현이 상투적이고 2인무가 주를 이룬 안무도 매끄럽지 못하고 투박하다.
이주애, 김혜연 〈그림자식〉 ⓒ한국민족춤협회 |
이주애와 김혜연이 공동 안무한 ‘그림자식’은 대단히 도발적인 작품이다. 전통춤과 탈춤 그리고 신무용 등 기존의 한국춤을 거칠게 패러디하면서 희화화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안무자는 이 작품에서 기존의 한국춤 동작을 잘고 가늘게 해체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조립한 춤을 선보이는데, 이를 통해 기존의 춤은 풍자와 해학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디테일을 강화하는 데 엄청난 공이 들어가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곧, 해체된 동작을 더 섬세하고 정교하게 재배치해 기존의 춤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몸짓-감각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이진형 〈찬란한 오후〉 ⓒ한국민족춤협회 |
‘찬란한 오후’를 안무한 이진형은 삶의 어느 순간에 불현듯 떠오르는 상념을 신체의 특정 부위, 특히 주먹 진 손, 웅크린 상체, 미세한 근육의 떨림 등에 응축해 표현한다. 진흙탕 같은 세상에서 자빠져 뒹굴다 막 빠져나온 사람들처럼 몸에 진흙 혹은 오물을 잔뜩 묻힌 춤꾼들은 공허하게 팔을 휘두르고 무심하게 다리를 들고, 돌발적으로 쓰러지는 등 상징과 의미로 가득 찬 행위를 반복한다. 신체의 특정 부위의 미세한 떨림을 이용한 제스처와 동작이 아주 독특하며, 2인무와 5인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춤은 연극적 요소를 가미해 메시지를 극대화하고자 한다. 하지만 상징적인 움직임과 행위가 주된 공연이지만 상징의 대상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다는 게 흠이다.
이현지 〈Bad hair day〉 ⓒ한국민족춤협회 |
이현지가 안무한 ‘Bad hair day는 발칙한 작품이다. 요즘 세대의 젊은 여성들이 가진 감성을 몸짓으로 솔직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그렇다. 가령 가슴과 엉덩이, 그리고 바디 라인을 강조하는 몸짓으로 여성성을 과시하는 동작들이 거리낌 없이 펼쳐진다. 또한 젊은 여성들의 일상적 감정, 특히 짜증 등을 표출하는 데도 거침이 없는데, 이는 기존의 춤도 아니고 하위문화의 춤도 아닌 독특한 질감을 지닌 춤으로 그려진다. 특히 다양한 색깔의 오브제와 의상이 조화를 이룬 무대는 마치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방처럼 보이는데, 이는 각각의 춤꾼들이 마치 내밀한 마음의 방 안에 갇힌 듯 보이게 한다. 관계성이 사라진, 소통 부재의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새로운 동작이 몸에 채 붙지 않아 표현력이 다소 떨어지는 몇몇 춤꾼이 보인 점은 아쉽다.
박영성 〈Deep-sea〉 ⓒ한국민족춤협회 |
박영성이 안무한 ’Deep-sea‘는 아주 실험적인 작품이다. 무대 조명을 일절 사용하지 않은 채 손전등 세 개만을 사용하며 시종일관 춤을 끌어갔다는 점에서 그렇게 보인다. 안무자는 팬데믹 시대의 현실을 깊은 바닷속에 잠겨 수압에 짓눌리는 상황으로 치환해 보여준다. 그러기에 몸짓은 다급하고 절실하지만, 어렴풋하게만 드러난다. 손전등의 가물가물한 불빛은 비상 출구를 찾듯이 더듬더듬 무엇인가를 찾고, 무대 여기저기를 비추던 빛이 때때로 춤추는 몸의 특정 부분을 부각하는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희미한 빛과 몸짓의 실루엣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코로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고통을 잘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런데 손전등의 빛은 때때로 우리 내면의 심연을 비추는 빛, 혹은 희망을 밝히는 빛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기에 이 작품은 깊은 절망 속에서 움트는 새 생명을 노래하는 몸짓일 수 있다. 그렇다면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드러나는 몸짓이었을지언정 더 치열하게 움직였다면 어땠을까. 곧 물에 빠진 사람이 살고자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듯, 좀 더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더 섬세하게 움직였다면 훨씬 더 감동이 컸을 것이다. 비록 어둠 속일지라도 움직임과 디테일은 생생하게 살아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 해 창작춤판에 참가한 작품들이 기존의 창작 메소드 안에서 안정적인 작업을 하는 경향이 강했다면, 올해 참여한 몇몇 작품들은 대단히 창의적이고 실험적이었다. 특히 ‘그림자식’의 이주애와 김혜연, ‘찬란한 오후’의 이진형, ‘Bad hair day’의 이현지와 ‘Deep-sea’의 박영성 등은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개성 있는 안무자였다. 기존의 춤 메소드에 안주하지 않고 자기만의 창작 방법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을 작품의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젊은춤축전이 지향하는 바와 잘 부합했고, 젊은춤축전의 밝은 앞날을 기대하게 했다. 아무쪼록, 젊은춤축전이 새로운 관객, 새로운 민중을 창조하는 가장 전위적인 춤판이 되길 요망한다. 그렇지만 이는 젊은춤축전이 새로운 몸짓-감각을 창안하는 실험의 장이 될 때만, 그럼으로써 민족춤제전을 강하게 추동할 때만 가능할 것이다.
최찬열
한국춤을 추었다. 인류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춤과 공연예술, 미학과 관련된 과목을 강의했다. 지금은 몸의 예술과 인문학에 기반한 통섭적 문화연구에 몰두하며, 춤문화연구소에서 춤미학과 춤역사를 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