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21 영남춤축제 창작춤판
소재주의에 맴돈 진부한 발언
송성아_춤비평가

국립부산국악원(원장:김경희)의 영남춤축제는 부산경남경북을 대표하는 행사로, 지역춤의 계승과 발전을 목표로 한다. 올해로 4회를 맞이한 축제는 크게 전통춤판과 창작춤판으로 구성되었으며,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근 한 달간(7월14일-8월7일) 이어졌다. 이 중 창작공연은 7월31일과 8월4일 대극장인 연악당에서 진행되었다.






최재헌‧이지민 〈굿며들다〉 ⓒ국립부산국악원




 공모를 거쳐 선정된 7편의 작품이 소개되었는데, 첫 시작은 최재헌‧이지민 안무의 〈굿며들다〉이다. 징, 장구, 소리를 능란하게 구사하는 악사가 주요인물로 등장하며, 마당, 방안, 궁정 뜰(前庭)에서 춤추던 예인 광대의 모습이 나열된다. 크게 5장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악사가 징을 치며 가면을 쓴 둘과 이리저리 어울린다(1장). 익숙한 가락을 입장단으로 외치면, 다소 모호한 춤이 이어지고, 〈봉산탈춤〉 목중의 “산중에 무력일하여 철가는 줄을 몰랐더니, 꽃 피어 춘절이요 잎 돋아 하절이라”는 사설과 함께 마무리된다(2장). 암전과 함께 악사가 사라지고, 과장되게 부풀려진 치마를 입은 둘이 마주 선다. 기방의 입춤을 연상시키는 움직임이 서정적인 가락에 맞춰 사뿐사뿐 이어진다(3장). 〈춘앵전〉 창사의 앞머리인 “빙정월하보”(娉婷月下步)와 함께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고, 꽃 한 송이를 세워둔다. 이후 봄날 꾀꼬리를 형상화한 이 정재의 반주곡 〈평조회상〉이 중령산, 세령산, 염불도드리의 순으로 흘러나오고, 장단과 무관한 이인무가 한국적 발레를 연상시키며 전개된다(4장). 말미에 재등장한 악사가 비스듬히 서서 장구를 친다. 댄서 둘이 희고 갸름한 가면을 얼굴에 붙였다 떼기를 반복하고, 적막감 속에 떠돌다 끝을 맺는다(5장). 전통음악의 여러 요소를 빌려온 작품은 악사를 중요인물로 출연시켜 시청각적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나 속울음을 안고 이름 없이 살다간 광대의 이미지를 모호하거나 피상적으로 나열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 듯하다.






김지혜 〈舞. 家_푸리〉 ⓒ국립부산국악원




 김지혜의 〈舞. 家_푸리〉는 이땅 곳곳에 편재한 성주풀이를 모티브로 한다. 지역마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지만, 재앙을 물리치고 행운을 비는 성주굿의 한 절차로, 가신(家神)인 성주신의 내력을 노래하는 서사무가이다. 4장으로 구성된 작품은 풍물패가 무사태평을 빌며 한바탕 놀아 제치는 것에서 시작된다. 무대 후면에는 제사상이 거하게 차려져 있다(1장). 댄서 여럿이 등장하여 기방계열의 춤을 맵씨 있게 추고, 간간히 씨 뿌리는 동작을 한다. 씨를 심어 재목을 키우고, 이것을 베어 집을 짓는다는 경상도지역 성주풀이 내용을 차용한 듯하다(2장). 생뚱맞은 부채춤이 일사불란하게 이어지고, 사이사이에 땅을 다지듯 디딤새를 한다(3장). 날렵한 부채는 어느새 모자가 되고, 긴 수건을 이리저리 휘날리며 살풀이춤을 춘다(4장). 성주풀이의 몇몇 요소를 빌려온 작품은 표피적 인용에 머묾으로써, 무사태평기원 – 씨뿌리기 - 땅 다지기 - 살풀이로 이어지는 전개가 부자연스럽고, 발언 요지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겠다.






현선화‧김선민 〈용용(勇用) 죽겠지!〉 ⓒ국립부산국악원




 현선화‧김선민의 〈용용(勇用) 죽겠지!〉는 난관을 극복하는 모습을 이미지화한다. 3장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조명이 만든 사각 프레임 속에 한 사람이 서 있다. 갈망과 좌절의 몸짓을 반복하고, 또 다른 프레임이 이를 변주한다(1장). 상자 속에 제각각 분리되었던 개인들은 자전(自轉)하고 공전(公轉)을 하며 빙글빙글 춤을 춘다(2장). 꽹과리를 치는 악사들이 합세하고, 농악에서 진법을 하듯 이리저리 대형을 만들며 이동한다. 순간 쇠잡이만 남아 격렬하게 두드리고, 빨간 부채를 들고 재등장한 춤꾼들이 현란한 웃음춤을 선사한다. 일반시민의 시선을 손쉽게 붙잡으려는 국공립단체의 철지난 엔딩을 보는 듯하다(3장). 작품은 삶의 난관이 무엇인지, 문제해소의 계기점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대신 슬픔과 기쁨의 정서만이 억지스럽게 난무한다고 할 수 있다.






배정현 〈초록 재, 다홍 재〉 ⓒ국립부산국악원




 배정현의 〈초록 재, 다홍 재〉는 미당 서정주의 대표작 〈질마재신화〉의 첫 번째 시 〈신부〉를 모티브로 한다. 산문시인 이것의 줄거리는, 첫날밤에 신랑이 오줌이 마려워 일어섰는데 옷자락이 문고리에 걸린다. 그런데 신부가 음탕하여 붙잡는 것으로 오해하고는 도망쳐버린다. 사오십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혼례복을 입고 기다리는 신부와 조우한 신랑이 미안함에 손을 내미니, 신부가 재로 폭삭 내려앉았다는 이야기이다.  
 먼저 청사초롱을 연상시키는 대형소품이 등장한다. 그 속에 춤꾼들이 숨어 있어, 활옷을 곱게 차려입은 신부와 이리저리 함께 움직인다(1장). 하수 뒤편에 창호지를 바른 문짝이 신방인듯하고, 오래전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마당놀이의 한 장면처럼, 아낙들이 신부를 데려다준다(2장). 초야의 신방에 불빛이 흘러나오고, 오해로 인해 도망치는 신랑의 모습이 문풍지를 통해 그림자극처럼 재현된다. 한 여인이 뛰쳐나와 수건춤을 추고, 몇몇이 합세하여 슬픔을 고조시킨다(3장). 이윽고 문풍지에 재가 되어 사라지는 신부의 영상이 우화처럼 나온다(4장). 작품에서 기다림에 지친 애달픈 한도, 창의적으로 재해석된 신부도 발견하기 어렵다. 신파조의 여성국극이나 마당놀이 아니면 신무용을 연상시킬 뿐이다.






강경희‧이연정 〈궤(軌): 길을 잇다〉 ⓒ국립부산국악원




 강경희‧이연정의 〈궤(軌): 길을 잇다〉는 삶을 길에 비유하여, 자신 길을 당당히 걸어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자 한다. 비교적 단순한 짜임새를 갖는데, 바닥에 납작 엎드려 생명의 시작을 암시하듯 꿈틀거린다(1장). 네 명의 무용수가 삶의 행로를 상징하는 긴 천을 엑스(X)자 모양으로 펼치며 무미건조한 움직임을 이어간다. 그러다 천을 되접는데, 한 사람만이 남아 동작을 지속한다(2장). 밀쳐둔 천과 천을 이어 갈지(之)자 모양의 긴 길을 만들고, 그 위를 오가며 노닐 듯 춤을 춘다(3장). 작품이 관객에게 전달한 것은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강인함인가 아니면 삶에 대한 천진한 낙관인가? 안타깝게도 작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천의 도형(X자 형, 之자 형)과 무색무취의 건조함이 아닐까 한다.






김미자 〈태(胎), 무극〉 ⓒ국립부산국악원




 김미자의 〈태(胎), 무극〉은 망자를 떠내 보내는 상주의 아픔을 그린다. 크게 3장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짧은 영상이 프롤로그처럼 흘러나온다. 이어 가지런히 누워 있던 어린 망자가 저승사자를 따라나서고, 상주가 가로막는다(1장). 장구, 북, 징, 꽹과리를 앞세운 소리꾼이 통곡하듯 노래하고, 상주를 비롯한 여럿이 긴 천을 부여잡고 몸부림친다. 이후 故이애주 〈승무〉의 당악을 연상시키는 격렬한 움직임과 함께 사별의 아픔을 풀어낸다(2장).
 저승사자가 널브러진 천을 거두어 천천히 사라지고, 넋반(망자의 넋을 담은 작은 상)을 든 상주가 극락왕생을 기원하듯 천천히 빛 속을 걸어간다(3장). 작품의 구성이나 주제는 천도제를 모티브로 한 여러 작품에서 이미 보아온 것이다. 또한 철학적 표제와 삽입된 동영상은 불필요하게 춤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서를 사로잡는 것은, 인생과 사계(四季)의 끝자락을 상징하는 법고에 연이어 나타나는 당악을 닮은 움직임이다. 두 손에 바라를 들지는 않았지만, 살을 척결하는 듯한 강렬한 몸짓이 오랫동안 잔상에 남는다.






복미경 〈음양_빛을 담다〉 ⓒ국립부산국악원




 복미경의 〈음양_빛을 담다〉는 음양에 대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을 이미지화한다. 3장으로 구성되며, 상극에서 시작한다. 일반 언어생활에서 이것은 두 사람 혹은 두 사물이 화합하지 못하고 충돌하는 양상을 가리킨다. 작품은 흰 옷을 입은 1인과 검은 옷을 입은 다수를 대비시킨다. 그리고 흰 옷을 필두로 하여 이리저리 이동하는 대열춤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1장). 다음은 여럿이 서로 공존하면서 살아감을 의미하는 상생의 이미지화이다. 조명이 굽이치는 길을 만들어 분위기를 환기시키면, 흰옷과 검은 옷이 그 위를 걷는다. 다채로운 움직임이 펼쳐지고, 울러 퍼지는 구음에 맞춰 노래한다(2장). 끝으로 상생이 빚어낸 빛을 이미지화한다. 물방울 문양의 조명이 쏟아져 내리고, 전원 흰 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오채질굿장단에 맞춰 빠르고 절도 있는 움직임을 이어가고, 한 여인이 높다란 단상에 올라 너울질 한다(3장).
 작품은 상극, 상생, 환한 빛의 이미지를 색깔과 조명을 이용하여 단순하게 표현한다. 특징적인 것은 불균등박자인 오채질굿장단의 활용이다. 불균등박자는 긴박(1박=♪+♪+♪)과 짧은 박(1박=♪+♪)이 혼합된 장단에서 나타나며, 묘하게 뒤뚱거리는 느낌을 주며 흥취를 돋운다. 호남우도농악을 비롯하여 동해안별신굿과 강원도민요에서도 빈번히 나타나는데, 한배를 지나치게 빨리하면 그 맛을 살리기 어렵다. 더욱이 빠르게 뒤뚱이는 리듬을 몸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작품의 빠른 오채질굿장단에 맞춘 움직임은 이 같은 어려움을 넘어서지 못했으며, 빠르고 균등하게 나열되었다.

 창작은 전통춤 계승과 무관하지 않다. 원형 보존과 더불어 당대적 맥락 속에서 다양하게 재창작되며 확산될 때,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천년이 넘게 면면히 이어진 〈처용무〉는 이를 예증한다고 할 수 있다. 일인무, 이인무, 군무로 끊임없이 재창작되며 민간과 궁중을 오갔으며, 세시풍속과 관련된 세화와 제웅치기, 진주오광대의 오문둥놀음, 동해안지역의 광인굿 등으로 다양화되면서 오늘에 이른다. 2017년 영남춤축제가 시작된 이래, 지속하여 창작춤판을 마련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겠다.
 코로나19의 여파로 한해를 건너뛰고 마련된 축제는 기존 프로그램의 많은 부분을 생략하거나 축소하였다. 대신 창작춤판에 지원과 예산을 늘려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안무 스케치와 동영상심사를 통해 선정된 7개 단체의 결과물은 적잖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탈춤사설과 창사, 풍물과 서사무가, 한의 정서를 탁월하게 형상화한 시, 음양론과 불균등박자 등등을 빌려왔지만, 단순 인용에 그쳐 소재주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또한 전달된 메시지가 진부하거나 피상적어서 관객의 오감을 사로잡지도, 다양한 해석을 촉발시키지도 못했다.
 전통춤 계승의 또 다른 방편인 창작춤판의 질적 향상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그 방안의 하나로, 중간점검에 해당하는 쇼잉(showing)의 마련, 투명한 평가를 통한 우수작의 선정, 우수작 지원을 통한 레퍼토리 구축 등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송성아

춤이론가. 무용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전통춤 형식의 체계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저서로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2016)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있다.

2021. 9.
사진제공_국립부산국악원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