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예년과 다르게 7월과 8월에도 서울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춤 공연은 거침없이 계속 되었다. 아르코예술극장, 국립극장 등 인기 공연장들이 대부분 정례적으로 치러지는 축제와 전속예술 단체들의 공연으로 대관이 힘들다 보니, 상대적으로 공연예술의 비수기인 7월과 8월에 춤 공연이 집중되는 것도 하나의 요인으로 보인다.
늘어난 춤 공연은 창작 신작의 수만큼 다양한 소재와 그것을 풀어내는 해법에서의 다채로움을 만날 수 있었지만, 예술적 완성도 면에서는 평균점을 상회하는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소품이 아닌 50분 이상 넘어가는 장편 작품일 경우 허점은 더 많이 발견되기 마련이다. 개인 아티스트, 프로젝트 컴퍼니, 국공립단체의 공연과 축제 등 연속으로 이어지는 춤 공연 중 평자가 본 몇몇 장편 작품은 움직임의 확장을 위해 안무가가 선택한 소스(source)의 안정감과 함께 향후 레퍼토리로 장착할 만한 경쟁력이 엿보였다.
유빈댄스 〈16〉, 정교하게 맞물린 접촉에 의한 움직임 확장
유빈댄스의 〈16〉(7월 15-16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평자 16일 관람)은 “Back to the Body 다시 몸으로 돌아가자”는 전범(典範)을 보는 듯 했다.
출연자들의 숫자 16을 그대로 작품의 제목으로 차용한 〈16〉은 심오한 주제나 메시지, 거창하고 복잡한 무대미술과 오브제, 현란한 영상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움직임과 음악이 전부인 듯 심플하지만 그러나 그 잔향이 만만치 않았다.
유빈댄스 〈16〉 ⓒ김주빈 |
50분 길이의 작품을 댄서들의 움직임만으로 끌어간 안무가(이나현)의 당찬(?) 시도는 평균점을 훨씬 상회했다. 성공 요인은 독창적인 움직임 개발과 이의 정교한 조합, 음악과의 접점 찾기에서 보여준 안무가의 남다른 감각 때문이다.
전문 무용단 체제로 운영되는 컴퍼니에서 출연자 16명은 결코 적지 않다. 그동안 솔로나 5명 내외의 출연진들이 대부분이었던 안무가의 작품을 주로 보았던 평자에게 크게 늘어난 댄서들은 기대보다 우려가 앞섰다.
안무가 이나현은 16명 댄서들의 몸을 다양한 형태로 변주시켰다. 컨택에 의해 변형되고 확장되는 몸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움직임의 확장이 적절한 타임에 구조적으로 조형되고, 차별화된 질감으로 드러나고, 치밀한 조합력으로 빛을 발하는 대목에서는 이나현이 만만치 않은 감각을 지닌 안무가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군무, 남녀 무용수의 느린 2인무, 4인무, 군무 속의 돌발적인 솔로 춤 등 다양한 움직임은 조형미, 속도, 질감 등에서 각기 다른 몸으로 관객들과 소통했다. 접촉에 의한 변화무쌍한 몸의 확장은 관객들에게 보는 재미와 흥미를 함께 배가시켰고, 안무가는 무용이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하는 예술임을 16명의 댄서들을 통해 확연하게 입증시켰다.
몸의 상호작용에 의한 관계 변화와 귀에 익은 클래식 음악, 현대적인 리듬과 접목된 한국 음악, 편곡과 작곡을 곁들인 음악(음악감독 지 박)과의 매칭 등 작품에 대한 분명한 컨셉 설정과 안무가의 음악 해석력은 뛰어났다.
기존 단원 외에 오디션을 통한 출연자 선정, 공연 3개월 전 〈안무노트 2021〉이란 렉처 퍼포먼스를 통해 work progress 형태로 작품의 일부를 공개한 시도 등 제작과정에서의 세심한 준비와 서울문화재단의 다년간 지원제도도 완성도 높은 작품을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다.
유빈댄스 〈16〉 ⓒ김주빈 |
모든컴퍼니 〈피스트〉, 펜싱을 모티브로 한 움직임 확장
모든컴퍼니의 〈피스트〉는 춘천공연예술제의 무용 피날레 무대(8월 18일, 춘천인형극장 대극장)에서 만났다.
안무가 김모든은 작품의 소재로 스포츠를 택했다. 펜싱은 두 경기자가 검(劍)을 가지고 ‘찌르기’ ‘베기’ 등의 동작으로 득점하여 승패를 겨루는 스포츠다. 작품의 제목으로 선택한 ‘피스트 piste’는 펜싱 경기에 사용되는 지면으로 너비는 1.80m~2m이며, 길이는 14m이다.
안무가의 펜싱을 활용한 움직임의 확장은 마침 도쿄 올림픽과 맞물려 관객들에게 더욱 생생하게 현장감을 불어넣었다. 안무가는 끝이 뾰족하고 긴 칼을 들고 하는 펜싱 경기 선수들이 경기 중 자주 만들어내는 곡선과 직선, 나선형으로 교차되는 동작들을 근간으로 무용수들의 몸을 다채롭게 변주해 나갔다.
5명의 출연자들은 두 명의 선수와 한 명의 심판, 단체전 경기에 출전하는 4명의 선수들이 되어 순차적으로 등장했다. 경기 중 선수들이 점수를 획득할 때 전광판에 들어오는 불빛은 속도감을 더한 운동성과 피스트 공간 위에서의 승패의 짜릿함에 시각적인 효과를 더하면서 보는 재미를 더했다.
심판의 등장, 검을 휘두를 때 나는 소리와 선수들의 기합 소리, 점수를 득한 후 선수들의 행동 등 마치 실제 경기를 보는 듯한 상황을 그대로 생생하게 재현한 것은 스포츠를 소재로 한 작품이 갖는 차별성을 살리려는 안무가의 의도된 설정으로 보였다.
안무가는 가로로 길게 놓인 사각형의 펜싱 경기장을 마치 무대세트처럼 댄서들의 움직임을 연계시키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선수들이 경기를 하는 피스트와 심판들이 착석한 공간 사이의 틈과 그 보다 높은 곳에 설치된 4개의 화이트 전광판 사이의 간극까지도 작품을 풀어내는 서사적 공간으로 활용했다.
모든컴퍼니 〈피스트〉 ⓒ춘천공연예술제/이도희 |
활과 유도를 소재로 안무한 박순호와 농구를 소재로 안무한 이재영 등 대한민국 안무가들의 작업 외에도 축구와 탁구 등 스포츠를 소재로 한 해외 안무가들의 작품은 이전에도 적지 않게 있었다. 안무가들은 경기를 하는 선수들의 동작을 기저로 하거나 검이나 활, 라켓, 볼 등 경기 중 사용하는 도구를 응용해 댄서들의 움직임을 확장하기도 하지만, 치열한 경쟁을 수반한 냉혹한 승부 세계와 각 종목이 갖고 있는 경기방식에서 안무자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주제를 찾아내기도 한다.
찌르고 피하고, 공격하고 방어를 반복하는 펜싱 경기의 팽팽한 긴장감을 속도감 보다 오히려 느린 톤으로 연출한 안무가의 의도는 움직임의 확장 뿐 아이나 관객들에게 다양한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는 여지를 남겼다.
안무가 이나현과 김모든의 작품이 레퍼토리로서의 경쟁력을 더욱 높이기 위해서는 움직임의 확장을 넘어서는 보완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단순한 재현이 아닌 한층 업그레이드 된 다음 공연을 기대한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