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주빈 〈새다림〉
오늘의 새다림을 찾아내는 융합 마인드
김채현_춤비평가

전통과 현대를 각각 낡은 것, 새로운 것으로 일반화하는 시각은 어떤 오류에 갇히기 쉽다. 역사의 순서상 먼저 발생한 것이 전통이고, 그다음에 발생한 것이 현대이다. 이에 기대어 전통과 현대라는 두 가지 사실을 낡은 것, 새로운 것이라는 가치의 위계질서 내에 가두는 경우가 흔하다. 이처럼 발생 순서를 잣대로 전통과 현대를 재단해버리면 전통을 현대와 대등한 것으로 보기를 놓치고 전통의 가치를 경시하는 경향이 자리잡기 마련이다.  전통사회에서나 유효했을 뿐 현대사회에서는 쓸모없는 어떤 전통들은 가치 면에서 물론 배제되어야 한다. 이런 전제에서, 전통과 현대를 이를테면 발전주의 시각으로 각각 한 묶음으로 재단해내는 고정관념은 경계되어야 하는 것이다. 김주빈의 〈새다림〉은 오늘의 청년 춤 세대 저변에서 그 같은 고정관념이 희석되는 추세를 드러낸다(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8월 20~21일).








김주빈 〈새다림〉 ⓒ김채현




 제주도 새다림굿에서 착상한 이 공연은 그 굿의 주제 의식을 차용하였으되, 그 구체적인 제의 절차와는 무관하다. 새다림은 굿판에서 부정을 없애고 정화하여 판을 여는 대목에 해당한다(살풀이의 제주 방언이 새다림이다). 부정한 기운(邪·사)을 몸에서 씻어내기 위해 물을 뿌리는 과정이 새다림에는 있고 오늘날에도 새다림굿은 제주에서 행해진다. 새다림굿과 함께 이 공연에서는 북청사자놀음의 사자탈이 주요한 모티브 구실을 한다. 안무자 김주빈은 이 작품을 끌어가는 주역이며, 4명의 춤꾼이 가세하여 함께 작품을 펼친다.
 작품 〈새다림〉은 한국 굿의 일반적 구조인 청신(請神 · 신을 불러 모셔 들이는 일) / 오신(娛神 · 신과 함께 노니는 일) / 송신(送神 · 신을 배웅하는 일) 과정을 두루 활용한다. 이들 과정을 안무자는 우리의 인간관계에 빗대어 사람끼리 연락하여 만나기 / 만나서 함께 이야기하며 시간 보내기 / 다음에 만날 기약을 하며 잘 보내주기 같은 미덕의 과정으로 풀이한다. 즉, 안무자는 그러한 미덕이 뒤틀리는 세태를 염두에 두어 〈새다림〉을 의도하였기 때문에, 그가 생각하는 굿의 범위는 매우 포괄적이고도 유연하다.






김주빈 〈새다림〉 ⓒ김채현




 검정색 캐주얼 차림의 김주빈이 수행하는 캐릭터는 일반 인간과 굿을 주재하는 사람(샤만)에 걸쳐 있어 복합적이다. 공연은 그가 누워서 바닥을 등지고 힘겹게 후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순간에 유성기 시대의 음향으로 어느 남성 가수의 컨츄리 뮤직이 속삭이듯이 들려오는데, 힘겨운 이동의 움직임과 감미롭게 속삭이는 영어 노랫가락은 퍽 대조적이다. 어떤 막다른 곳인 듯한 벽에 다다른 그는 계속 바닥에 누워 등지고 이동을 시도하건만 여의치 않은지 방향을 바꿔서 기다랗게 놓인 하얀 천 위를 역시 등지고 사투를 벌이듯 이동하기를 지속한다. 꽤 한참 진행되는 이 부분의 동작들은 스트릿 댄서로 춤을 시작한 그의 춤 이력을 시사하는 것 같고, 인간 생의 천신만고를 암시하는 대목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윽고 김주빈은 하얀 깃털에 덮여 가지런히 놓인 사자탈 앞에 가까스로 멈추어 엎드린다. 그가 엎드려 있을 동안 공연 처음부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던 사람들은 주로 모나면서도 격한 동작들로써 전신을 움직여가는데, 그들 사이를 흐르는 불안정하되 그 원인은 모호한 전류가 감지된다. 한참 엎드렸던 김주빈이 새소리, 징소리와 더불어 사자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상체를 세워 앉으며, 그가 사람들 사이로 기어들어가자 사람들이 흩어지는 것과 함께 거문고, 가야금 산조 음향들이 터뜨려진다.




김주빈 〈새다림〉 ⓒ김채현




 여기까지는 굿으로 말하자면 청신 과정에 해당한다. 그 다음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펼쳐지는 것은 오신 과정이다. 바닥에 놓인 사자탈을 한참 어른 다음 김주빈은 그것을 뒤집어쓰며 놀다가 퇴장하고 또 등장하기를 반복하였다. 사자의 행태를 재현하고 사자와 어울리면서 점차 자신이 사자가 된다. 조그맣게 옹알대는 소리를 내다가 귀신을 잡아먹는 등의 시늉을 하는 사자를 통해 김주빈은 귀신을 쫓아내는 나례(儺禮) 의식을 펼쳐보인다. 그가 사자에 빙의하여 한몸이 되는 동안 탈과 흰색 망사로 형상화된 사자를 어르고 놀리는 품새가 인상적이다. 산조 음향, 바라를 마찰하며 내는 소리들을 타고 사자탈을 어를 때부터 사자와 한몸이 되어 놀도록까지 김주빈의 홀춤으로 진행된 이 부분에서는 한국무용의 휘저어 노니는 팔사위와 스트릿 댄스 계통의 작렬하는 듯한 점핑 동작이 번갈아 펼쳐졌다. 이어 김주빈이 사자탈 전체를 고리에 매달아 공중에 띄우고 흰옷으로 분장한 그는 사자탈 아래서 사람들과 어우러져 활달한 놀자판을 경쾌하게 벌인다. 이 대목에서 고조되는 신명은 객석으로 번져가고 관객은 출연진에 호응을 보였다.






김주빈 〈새다림〉 ⓒ김채현




 고조되던 놀이판은 웬일인지 갑자기 열기가 가라앉으며 사람들은 어둠 속으로 흩어져 바닥에 앉아 김주빈을 응시한다. 김주빈은 정지한 상태에서 자신을 향해 몸을 추스르다 사자를 쳐다보며 뭔가 털어내며 비는 몸짓을 보인다. 조금 하강한 사자탈에 그는 머리를 파묻어 다시 사자와 하나가 되는데, 이 순간 몽환적인 느낌의 사이키델릭 음향이 느리게 들리면서 사자탈은 허공에 남고 김주빈과 사람들은 분위기가 칙칙한 디지털 이미지의 배경 속으로 사라진다.






김주빈 〈새다림〉 ⓒ김채현




 〈새다림〉은 송신 부분에서 구성 밀도가 떨어지고 오신 부분에서도 김주빈과 사람들 사이의 어울림이 단선적인 것을 비롯해서 전반적으로 보완할 점들이 눈에 띈다. 이보다 〈새다림〉에서 더 주목할 것은 그가 굿과 사자놀음을 대하는 방법이다. 그는 새다림굿과 사자놀음을 그냥 가져오지 않았고 작품이 의도하는 오늘의 벽사진경(辟邪進慶)에 필요한 선에서 취사선택하였다. 더욱이 새다림굿과 사자놀음은 오늘 현대의 산물이 아닌 옛것이라 여겨지지만, 그것들이 옛것이어서 〈새다림〉에 반영된 것은 아니었다.




김주빈 〈새다림〉 ⓒ김채현




 한국무용 계열에서 전통과 현대를 절충하는 시도가 무수하게 있어 왔지만 대개 어색했던 것은 전통과 현대가 한 작품 내에서도 물과 기름처럼 어정쩡하니 공존했기 때문이다. 물리적 공존보다 화학적 융합이 있어야 하겠고, 앞서 말했듯 전통과 현대에 차등을 두지 않는 시각에서 그러한 융합은 시작할 것이다. 비단 〈새다림〉뿐 아니라 한국무용 계열 일각에서 융합적 시도는 점차 시도되고 있다.
 〈새다림〉 공연은 안무자의 말대로 관객마다 새다림의 정화 현장을 체험할 것을 겨냥하며 펼쳐졌다. 관객의 카타르시스가 성취되었는지 여부와는 별도로, 굿과 사자놀음을 취사선택하되 오늘의 현장 속에서 다르게 만들어내려는 안무자의 열린 의식이 융합적 시각을 유도하였다. 춤으로써 오늘의 세상에 대응하여 관객과 함께 호흡하려는 의지가 요망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새다림〉의 오신 부분에서 한국무용과 스트릿 댄스를 넘나드는 홀춤이 독특하게 돋보인 것도 단적으로 융합적 시각에 힘입은 바 크다 하겠다. 그것은 산조춤도 스트릿 댄스도 아닌, 그냥 춤이었고 김주빈의 춤이었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1. 10.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