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류장현은 〈산양의 노래〉(대학로예술극장소극장, 7월 4일)에서 변화와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패기를 보여줬다. 이번 작품은 작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하에서 아르코 대극장에서 1회로 마친 〈산양의 노래〉와 동일한 제목과 주제로 믿음에 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형식적 측면에서 과단성 있는 변화를 모색하였다. 전작에 비해 퍼포머들은 줄어들고 장치(오브제)도 배제시켰지만, 소극장 무대 공간에 함의를 부여하며 개인적 진술에 주력한 블랙코미디가 오히려 유효한 메시지를 전하는 실험이 되었다.
류장현 〈산양의 노래〉 |
류장현은 인간의 불완전함으로 무수한 믿음의 대상을 갈아치우며 비극적인 현실을 자초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앵글을 맞춘다. 숭고함으로 포장된 믿음의 실체를 추적하여, 과거의 뿌리부터 오늘의 시점까지 광폭의 시간을 넘나든 1시간 40여분의 공연은 비극의 전초를 알리며 무고한 산양의 죽음이 오늘의 ‘나’ 자신일수도 있음을 각인시킨다. 사실 필자는 소극장 무대 바닥이 평화로운 양들의 풀밭일 뿐 우리의 희생제 제단이 되기도 하는 중의성을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엔 알아차리지 못했다. 원형으로 둘러싼 의자에 앉아 있는 관객들 사이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한 판 푸닥거리를 행하는 류장현은 관객이 산양이 될 수 있다는 ‘신호와 자각’을 몸짓으로 메시지화하고 있었다. 전체 작품이 끝나고서야 그의 초반 퍼포먼스가 이 작업의 화두임을 알 수 있었고 수미상관 구조로 구성된 연출이 사뭇 놀라움을 주었다.
류장현 〈산양의 노래〉 |
작품의 내용은 몇 가지 단서로 분류되어 진행된다. 먼저 공동체의 관습으로 용인된 제의의 행위도, 두 번째 성서 속 대속죄의 명분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꿈을 향한 개인의 노력도 인간 삶에 구원과 평안을 주지 못했다는 안무가의 진단이 연달아 전개된다. 처음에는 생명이 생동하는 푸르른 풀밭에서 들리는 새소리의 평화로움이 소극장 무대 전체를 감싸지만, 자연 생명이 그 무엇이든 신의 축복을 받아 마땅한 대지에서 피비린내 나는 비극적인 사건이 펼쳐지는 과거의 사건들이 비춰지며 죽고 죽이는 잔혹한 축제의 장으로 바뀐다.
류장현 〈산양의 노래〉 |
하나씩 일별해보면 먼저 머리에 불을 얹고 원형으로 도는 퍼포머들은 희생제를 치르기 전 원시부족들의 관습 같은 행위 의식으로 신을 향한 초자연적 믿음을 확신한다. 풀밭(무대바닥) 아래에서 멸종된 종으로 짐작되는 포유류 인형이 등장하여 이유 없이 죽임당했던 자신의 입장을 항변한다. 이 항변에 대한 답으로 제시된 그것이 인간을 창조하신 신의 섭리임을 설득시키려는 절대적인 믿음이 서로 충돌한다. 양가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인형은 죽임을 당하고 그의 잔해를 나눠 가진 인간들은 무대 바닥으로 사라진다. 희생양을 상징한 댄서들의 춤은 온전히 설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분절된 흐느적거림으로 생명이 소진되는 과정을 보인다. 펄펄 끓는 연옥의 느낌이 드는 무대 아래로 사라지는 댄서들과 이후 등장하는 성모마리아가 중첩된다.
류장현 〈산양의 노래〉 |
이러한 배치를 통해 안무자는 대속죄를 지신 예수와 산양들의 죽음이 인간을 위한 신의 섭리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는 생각이다. 다소 방대한 인류사적 행적에서 행해진 희생의 당위성과 부당함의 양면성을 축으로 펼쳐진 무대에서 안무자는 명분상의 죽임에 처한 약자들의 입장을 변호해 보려는 의도가 농후하였다.
특히 누군가의 죽음 후에도 해결되지 않는 인간의 불안과 고통은 사이키 조명 아래 강렬한 절규의 춤으로, 거친 전자사운드는 산양들의 울부짖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것은 지난한 역사 속에서 잊힌 이름 모를 희생자들의 외침이며 삶과 죽음의 경계지점에서 떠도는 영혼들의 설움이 바로 곁에서 전달되는 느낌이다.
류장현 〈산양의 노래〉 |
이와 같이 희생을 정당화했던 믿음의 실체를 해부해 보려는 안무가의 주제적 질문은 작품 중반부 오늘의 시점으로 전환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이어진다. 퍼포머들(이다겸, 엄규정, 공지수, 안승균, 김민송, 김효경, 김설믜, 신혜수)은 자본주의 사회 맹목적인 믿음의 대상(마약)들과의 관계와 감정의 상처 속에 살아가는 에피소드를 나열하며 시니컬한 유머로 능숙하게 연기한다. 전반부와는 달리 안무자는 춤이 중심이 아니라 춤을 추고 공연하는 사람의 내면에 집중하는 것이다.
류장현 〈산양의 노래〉 |
이어지는 퍼포머들의 일상을 재현하는 연기수업과 무용 레슨 시간 그리고 펜데믹 상황에서 공연재개를 기다리며 나누는 대화의 핵심은 자신들의 노력이 과연 인정과 행복으로 연동되는지 확신을 갖지 못하는 고백이다. 예술의 숭고한 가치를 믿고 흘리는 땀방울의 결실과 믿음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여러분 돈 버세요”라고 하며 어느 출연자는 무대 바닥으로 내려간다. 죽음의 길을 선택한 출연자의 마지막 행위는 믿음의 몰락을 상징하며 작품은 비극적으로 마무리된다. 신에 대한 맹목적 신뢰에서 자행되었던 제물들의 죽음이 오늘의 팬데믹 상황에서 종착지를 찾지 못한 이웃의 죽음과 유력하게 연결된다는 생각이다.
류장현 〈산양의 노래〉 |
전반부의 춤은 사라지고 블랙코미디로 급격하게 반전된 후반부 표현방식이 다소 길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출연진들이 당면한 현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을 과감하게 선택한 듯하다. 더불어 전작의 비극성에서 배회했던 장면들의 나열을 가름하여 오늘의 비극적인 현실 문제로 각인시키기 위한 선택으로도 보인다. 드라마적 요소가 집약된 작품은 결과적으로 퍼포머가 자유롭게 춤추고 싶은 욕망을 펼칠 수 없는 현실이 오늘의 희생 제단임을 확실하게 상기시켰다. 관객들도 작품의 의도와 내용을 어렵지 않게 이해하며 자신도 이름 모를 희생제물인 그 산양이 될 수 있다는 각성의 순간들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우리는 백신이라는 한 줄기 은총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산양이 되어있다. 전반적으로 우리 개개인에게 세상의 제물이 될지 혹은 합리적인 믿음을 근거로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자가 될지 되돌아보게 한다.
이로써 무대 풀밭은 오늘의 제단이 될 가능성으로서 공간적 함의를 성취하게 되었다. 다만 초반부 희생제의 양면성을 비판했던 시각이 후반부 현실에서는 희생자이자 피해자의 입장만으로 점철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산양의 노래〉는 믿음의 근저를 전방위적 시각으로 해부하며 인간답게 살기 위한 안무자 류장현의 집요한 문제의식이 우리 삶의 문제로 연결되어 질문을 던진다.
대극장 공연이 소극장 공연으로 바뀌어 상연되는 것은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작년 작업의 시점보다 더욱 오늘의 시간이 반영된 본 작품을 보며 안무가의 집념과 열정을 보게 되었다. 류장현의 180도 바뀐 두 작품 〈산양의 노래〉를 통해 변화와 실험을 무모 하리 만큼 즐기는 컨템퍼러리 예술가임이 부각되었다. 개인의 진술이 창조의 원동력인 시대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달려드는 돈키호테 같은 예술가를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류장현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 보는 것이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