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무용단(이하 국립)의 ‘스텝업’(STEP UP)은 비교적 젊은 안무가의 작품 활동을 발굴 및 지원하여 한 단계 성장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인 줄로 안다. 올해 4회째인 이 프로젝트는 Part 1, 2로 나눠 진행되었는데, Part1은 임지애의 〈흐르는 춤〉(7.3-4)이, Part2는 황수현의 〈검정감각 360〉(7.9.-11.)과 이인수의 〈워즈원맨쇼〉(7.9.-11.) 작품이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선보였다. 우리가 ‘스텝업’을 통해 기대하는 것 가운데는 국립 예술감독의 작품과는 결이 다른 다양하고 실험적인 작품을 경험하며 지속가능한 레파토리로 발전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임지애 〈흐르는 춤〉 ⓒ국립현대무용단/Aiden Hwang |
임지애의 〈흐르는 춤〉(7.4. 관람)은 정련된 공연예술로서의 한국춤이 아닌 일상 속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추어지는 삶의 현장에 주목한다. 특이한 점은 다른 국적과 국가에서 ‘부채춤’을 추는 사람들의 경험적 서사가 극장 무대로 소환되는 부분이었다. 폴란드 포즈난의 한국부채춤 그룹인 ‘해어화’에서 활동하는 다리아 포천택은 유튜브로 부채춤을 배운 경험담을 공유하였고, 한국춤을 전공하고 독일에 거주하는 임지애는 하와이 할라 함(Halla Huhm) 무용소에서 한국 이주민들에게 한국춤을 가르친 미국인 선생(Mary Jo Freshley)의 몸과 접속하여 퍼포밍하였다. 또한 이주 간호사 여성들로 구성된 한국무용 동호회인 베를린 ‘가야 앙상블’의 신-놀테 경수는 춤을 추며 애국심이 고양되었던 사건들을 회상한다. 다리아 퍼포머의 부채춤은 시각적 구성의 화려한 매력에 이끌린 춤이며, 경수 퍼포머에게는 고국을 회상하며 한국인이라는 연대감을 강화시키는 춤이었고, 임지애는 타자(미국인)에게 전수된 한국춤을 자신의 몸으로 재해석한 춤이다. 이렇듯 안무가는 지리적 공간의 이주가 춤의 이주로 연결되어 지속되는 한국춤의 양상을 소개하며, 아카데미즘에서 벗어난 한국춤의 다층적인 모습을 환기시킨다.
임지애 〈흐르는 춤〉 ⓒ국립현대무용단/Aiden Hwang |
임지애는 다른 배경과 경위에서 경험된 한국춤(부채춤)으로 연결된 퍼포머들을 통해 춤이 혼종되어 수용된 과정을 무대에 배치시켜 하나의 레퍼런스로 작동할 토대를 마련하였는데, 횡적 공간으로 확장된 한국춤의 정체성을 추적하여 전통의 존재 방식을 되묻는 안무가의 시각이 상당히 신선하고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러나 풍성한 해석적 토대가 마련되었음에도 프로그램북에서 논한 안무자의 질문이 극장무대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을 남겼다.
임지애의 이 작업은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퍼포먼스로 안무자가 2019년 베를린과 서울의 아트선재센터에서 발표한 〈산, 나무, 구름과 호랑이 ver.0〉와 연계되어 있다. 더불어 공연학자 손옥주, 기획자 홍정아, 프로듀서 신진영이 협업하여 ‘춤의 이주-조선춤’ 홈페이지를 오픈하였고, 일련의 ‘춤의 이주’ 리서치를 통해 이 작업들이 완결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들을 경유하는 연구라 밝힌 바 있다. 리서치 자료와 과정이 잘 전시된 퍼포먼스는 관객과 공유됨으로써 창작자의 질문이 객관성과 동시대성을 갖게 되며 유효해진다. 그러나 유념해야 할 것은 ‘전시공간’이 아니라 ‘극장공간’으로 진입한 순간 무대에서는 ‘서사적 맥락의 전시’를 넘어서야 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임지애의 작업은 전시공간이나 특정한 장소에 훨씬 적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문화에 유입된 춤의 경로에서 경험된 몸, 주변부에 놓인 한국춤의 문화사적 ‘발굴과 소환’이라는 리서치 결과도 의미가 적지 않으나, 시연을 넘어 유기적 해석으로 생성되는 미학적 가능성을 극장무대에서 획득하는 것이 본 작품에서 ‘스텝 업’ 돼야 할 지점이 아닌가 한다.
황수현 〈검정감각 360〉 ⓒ국립현대무용단/Aiden Hwang |
황수현의 〈검정감각 360〉과 이인수의 〈워즈원맨쇼〉(7.11. 관람) 작품은 기대보다 다소 처지는 공연이었다. 창작물이 안정된 지원만으로만 성장할 수 없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스텝업의 취지에서 보면 황수현의 〈검정감각 360〉은 2년째 국립에서 선정되었으므로 이미 ‘스텝업, 업!’된 결과물을 보여야 할 것이다. 작년에 비해 퍼포머들의 집중력이 더욱 높아진 것 같고 업그레이드된 서라운드 음향으로 이 작품의 핵심인 댄서들의 소리가 증폭된 공진으로 공감각적인 경험을 지지하는 역할을 해내었다. 물론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소리가 연합하여 내는 시각 너머의 감각선이 주는 쾌감으로 춤적(물리적) 에너지와는 다른 신선한 경험을 하게 될 것 같다. 특히 퍼포머들의 조소 섞인 웃음과 절규는 복잡한 감정선을 내포하여 관객의 개별적인 감정이나 감각을 건드리는 부분으로서 인상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작품들을 관람한 필자로서는 전작과 큰 차별점을 찾기가 어려워 ‘스텝업’된 것이 아니라 장기공연이 된 인상이 강했다.
이인수 〈워즈원맨쇼〉 ⓒ국립현대무용단/Aiden Hwang |
이인수의 〈워즈원맨쇼〉는 과거에 갇힌 자신의 개인적인 서사라고 밝힌다. 한 명씩 등장하는 댄서들과의 포즈는 이인수와 맺게 되는 관계성을 상징한다. 마치 사진첩에 담긴 과거 사진들의 나열처럼 지난 시간과 기억이 반복되는 구조에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그가 겪은 사유의 혼란과 집단 속 외로운 감정과 경험들이다. 반복과 변주의 구조로 쌓여가는 무대(시간)에서 그는 맴돌며 헤어 나오지 못한다. 특히 자신의 감정선을 놓지 않으면서도 형식적으로 영상매체의 기법들을 움직임으로 잘 소화하는 점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그가 공연 중간에 얘기하는 대사(말)로 인해 이 작품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방해받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물론 그가 개인의 서사를 명쾌하게 전달하고자 한 의도로 짐작되나, 말의 논리성도 발음도 불명확하여 잘 짜인 구성에 ‘스텝다운’을 더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4년째 이어지는 ‘스텝업’ 기획은 다양한 작품들을 발굴하고 있는 중이다. 해마다 전시공간에서 협업한 작품과 수행적 퍼포먼스류의 작품 그리고 움직임을 주축으로 한 작품들로 대부분 구성되어 있다. ‘다양성’이 시대적 트렌드이고 미적 가치로 포용되는 측면을 인정한다고 해도, 국립이 들인 공력에 비해 결과물들이 지속 발전되고 있는지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