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국제댄스페스티벌인탱크(SIDFIT·이하 인탱크)는 올해로 4회째이며 7월 6일부터 6일간 문화비축기지(서울 상암동)에서 열렸다. 석유비축기지라는 1970년대의 거대한 안보시설을 2002월드컵을 계기로 기능을 정지시키고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켜 2017년 문화비축기지로 개장한 이래 여기서도 춤 공연이 간헐적으로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인탱크는 여기서 해마다 여름에 며칠씩 진행되어 나름 입지를 다듬어왔다. 문화비축기지의 대여섯 탱크 형태의 공간이 모두 석유비축 탱크를 가변형의 열린 무대 공간 구조로 개조한 데에다 주류 춤 공간에 속하지도 않으며 관객 접근성도 수월한 편이 아니라서 여기서 해마다 정기 행사를 가지려면 상당한 결단이 따라야 한다. 인탱크는 그러한 결단을 바탕으로 새 유형의 춤 공간을 조성하는 데 사실상 앞장서온 편이다.
지난해와 유사하게 올해 인탱크에서는 여러 작품을 잇달아 공연하는 마라톤 공연 프로그램에 근 50편의 작품, 온라인 초청 공연에 23편의 작품이 참가 또는 초청 공연되었다. 여기에 음악 및 디지털과 춤의 협업 작업, 스크린 댄스와 댄스 필름의 전문가 워크숍, 한국무용 해설 프로그램, 시민 참여 춤교실 등이 덧붙여졌다. 인탱크 행사가 적잖은 규모의 행사로 추진되는 데 있어 문화비축기지의 전체 무대 공간이 넉넉하면서도 다양한 그러한 이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아직은 춤계에 낯설다 할 이 공간에서 이제까지 행사로서 자리잡는 데 힘써왔을 인탱크는 향후 규모와 공연 수준을 적절히 조정하여 산만한 구성을 벗어나며 메인 또는 간판 프로그램으로 초점을 갖추는 데 주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인탱크가 그만한 규모로 진행될 수 있은 내적 요인의 하나로 댄스필름을 행사에 적극 끌어들인 점이 들어진다. 올해 인탱크는 댄스필름을 주제로 하여 화상 국제 워크숍도 2차례 열었다. 지난해에 밀어닥친 코로나 사태는 인탱크의 댄스필름 프로그램에 예기치 않은 시의성을 부여하였다. 지난해 7월 인탱크에서 진행된 온라인 댄스필름 퍼포먼스에서 다수의 작품이 올려졌고, 이 퍼포먼스는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사전 준비 작업이 없었더라면 어려웠을 것이다. 이 말은 인탱크의 댄스필름 행사가 코로나 사태와는 무관하게 그전부터 인탱크의 고유한 프로그램으로 추진되고 있었다는 뜻이며, 그런 작업이 코로나 이후 시대인 지금 사뭇 빠르게 효과를 발하고 있다는 것이 평자의 판단이다.
2021 인탱크의 댄스필름 행사, 즉 온라인 공연 프로그램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영상으로 옮겨진 무대 공연 그리고 무대 공연과는 무관하게 제작된 별도의 스크린댄스, 두 가지 범주를 하나로 묶은 것이다. 영상으로 옮겨진 무대 공연을 엄밀한 의미에서의 댄스필름 범주에 넣기는 상당히 애매한 편이며, 스크린댄스가 사실상 댄스필름을 의미하는 것이 통례이다.
문화비축기지는 그 공간 형태와 규모에 비추어 댄스필름 류의 행사가 활발하게 진행될 만한 조건을 좀 특이하게 갖추고 있는 편이다. 공간의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댄스필름을 컴퓨터 모니터나 모바일에서 수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이에 비하여 대형 혹은 거대 공간에서 제공되는 댄스필름이 감성의 매우 다른 차원을 자극할 것은 지당한 말이고, 이에 따라 예술적 의미마저 달라질 소지가 매우 큰 것으로 여겨진다. 일례로, 주로 광고용으로 쓰이는 전광판을 왜소한 것으로 따돌려버리는 프로젝션 매핑과 미디어 파사드가 시사하는 것은 춤이 대형 혹은 거대 공간에서의 댄스필름으로서 어마어마한 임팩트를 행사할 것이라는 점이다. 미디어아트만이 그런 임팩트를 행사할 수 있다는 인식은 벗어날수록 바람직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프로젝션 매핑이나 미디어 파사드 기법과 춤이 융합할 경우 그 폭발력이 어느 정도일지 단박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면에서 문화비축기지는 인탱크에 대해 최적의 공간으로 다가올 수 있다.
올해 인탱크에는 11편의 온라인 초청 공연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대부분 댄스필름에 속하는 초청작들에서 댄스필름의 빠른 변화상과 새 메소드가 부분적으로나마 감지된다. 1970, 80년대의 씨네댄스뿐만 아니라 이미 1940년대에 마야 데렌이 그 원조로서 춤을 소재로 하여 실험영화를 개척할 때부터 예견된 일로서 댄스필름은 인간의 내면을 포착하는 데 탁월하다는 매우 원천적인 사실을 지난해 출품작 〈동굴 속 마음〉에 이어 올해 출품작 〈합체〉(Coalesce)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합체〉는 솔로 댄서가 슬픔과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을 자신의 분신과 함께 탐문하는 순간을 그린다. 부각되는 인체 부위 및 자신의 쌍둥이 이미지와 함께 그 무엇을 잔잔히 탐문하는 이 솔로 댄서의 몸짓에 (슬픔 같은 정서를 깊이 경유한) 혹자는 공감할 것이다.
〈합체〉(Coalesce) ⓒ인탱크 |
올해 출품작 가운데 〈저 너머의 거대한〉(The Great Beyond)은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에 대한 헌사로서 태양계 너머 생명체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블랙홀 안의 어떤 실체를 그린 작품으로 소개되어 개인적으로 더 관심이 쏠린 데 비하여 공연을 영상으로 옮긴 실제 이미지가 밋밋한 탓에 아쉬움을 남겼다. 댄스필름 〈어느 누구도 섬이 아니다〉(No Man Is Island)는 코로나 시대 고통을 달래는 소품으로 다가온다. 1624년 영국 시인 존 던이 나 개인은 인류에 속하며 그 어떤 타자의 죽음도 나의 훼손이라고 읊은 싯귀가 이 작품의 모티브이다. 푸에르토리코인 같은 유색인종 인상의 네 청년이 뉴욕의 길거리(아마도 브루클린 거리일 것이다)에서 피아노-바이올린 이중주의 서정적인 음향을 배경으로 사각형의 대열로 서로 섞이고 행렬을 이루며 대열을 변형해가는 소박한 작품이다. 일견 단순한 것으로 치부될 이 작품을 그렇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출연자들에게서 감지되는 상호주관적인(intersubjective) 이해의 감정 상태(달리 말해 동병상련·同病相憐)라 생각된다.
〈어느 누구도 섬이 아니다〉(No Man Is Island) ⓒ인탱크 |
로사나 갬슨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올해 인탱크 댄스필름 가운데 나로선 가장 인상적이었다. 카테린 드 메디치와 루이 14세로 상징되는 프랑스 궁정의 화려한 내부를 배경으로 앳된 청소년이 좀 웅장한 바로크 음악에 맞춰 몸을 일렁이며 뽐내는 자세를 계속하지만 그 배경은 곧 낡은 대도시의 퇴락한 공장으로 바뀐다. 그 청소년은 1631년 13살의 나이로 〈한밤의 발레〉에 출연한 루이 14세를 빼닮았으며 음악은 루이 14세보다 몇 살 많으나 그와 춤 동기생이던 장 밥티스트 륄리의 곡이다. 이 두 가지를 〈메멘토 모리〉는 20년 전에 개봉한 영화 〈왕의 춤〉에서 인용해온 인상을 주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인탱크 |
이 장면이 있기 전에 맨 먼저 루이 14세의 직립한 공식 초상화가 나오며 또 루이 16세의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가 했다는 ‘잊혀지는 것 말고는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문장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그림이 곁들여진다. 바로크 풍의 회화로서 천상의 이미지 위에서 청소년이 움직인다. 뿐만 아니라 영화 〈킬링필드〉에서 해골을 비롯한 인간의 유골을 엄청나게 쌓아둔 장면을 배경으로 그 청소년이 몸을 일렁인다. 음악은 시종일관 륄리의 그 곡이 주제 선율로 흐르고 있다. 맨 처음에 하렘의 여성을 연상시키는 어떤 여성이 얼굴이 주렁주렁 달린 주렴으로 가려진 상태로 갇힌 듯한 처지에서 쿠션에 앉아 몸부림을 친다. 작품 중간중간에 광대 같은 남성들이 직립한 자세로 한 지점에서 경박스러우며 코믹한 몸짓을 솔로로 펼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인탱크 |
메멘토 모리,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이 경구(警句)는 상식을 넘어 철칙이다. 작품 이미지와 몸짓들은 영광과 공허를 교대로 환기하는 듯하다. 메멘토 모리를 고취시키려고 로사나 갬슨이 동원한 서사는 설명된 대로 사실상 방대하다. 불과 2분 동안의 작품은 앞서 소개된 장면들로 구성되었다. 로사나 갬슨의 〈메멘토 모리〉를 소화해내려면 각 이미지들의 맥락에 대해 적지 않은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그렇더라도 이 장면들과 등장인물들은 물론 메멘토 모리를 토대로 상호연계될 테지만 그렇게 연계되어야 하는 근거가 작품 내에서 제대로 제시되었는지는 사실상 의문스럽다. 반면에 〈메멘토 모리〉는 몽타주 기법을 활용하여 출연자를 다른 세계로 이동시켜 움직이게 하면서 서사를 빛깔나게 전개해내는 테크닉을 보여주었다. 단적으로, 지금의 댄스필름 흐름에서 조금 비켜선 〈메멘토 모리〉 앞에서 댄스필름에 대한 기존의 인식은 흔들리기 마련이면서 한편으로는 즐거운 지적 유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