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지난 4월 9일부터 11일까지 제27회 신인춤제전(예술감독: 채희완)이 민주공원 소극장에서 펼쳐졌다. 한 세대 가까이 지속된 행사는 영남 지역(부산, 경남, 경북) 무용학과 졸업생들의 춤 계 데뷔전이다. 동시에 이를 통해 입문한 젊은 춤꾼들의 지속적인 작품 발표의 장이기도 하다. 코로나19와 지역 무용학과의 계속된 폐과로 위축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스무 편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춤계 입문작 10편
무용계에 첫발을 내딛은 작품은 10편으로, 최해인의 〈기록을 위한 기록〉으로 시작된다. 검정슬랙스와 재킷을 입은 춤꾼이 굿 음악의 하나인 비나리에 맞춰 춤을 춘다. 맺힌 한을 풀고 복을 비는 절절한 구음에 맞춰 전개되는 움직임은 유려하다. 그러나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쉬이 알아채기 어렵다.
최해인 〈기록을 위한 기록〉 ⓒ박병민/민족미학연구소 |
조가을의 〈Perfect Sense〉은 여러 감각 중 하나를 상실하더라도, 남은 감각과 더불어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의도의 강렬함에 비해, 작품 구성이 허술하다. 신경질적인 여성 솔로가 주가 된 전반부, 시각을 상실한 인물이 등장한 중반부, 두 댄서가 함께 춤을 춘 후반부가 각각의 언표를 명확하게 들러내지 못한 채, 제각각 부류한다.
조가을 〈Perfect Sense〉 ⓒ박병민/민족미학연구소 |
표예찬, 배문정, 이재영 공동안무의 〈Road-ing〉은 타인에 의해 강요된 삶을 거부하고,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담는다. 누군가에게 뺨을 맞고 그 반응에 해당하는 일련의 패턴을 반복한다. 주제를 표명하는 핵심적인 동작구(phrase)라고 할 수 있는데, 어설프게 맞고 적당히 무시할 뿐, 주체적 삶을 향한 치열한 감정을 찾아보기 어렵다.
표예찬, 배문정, 이재영 〈Road-ing〉 ⓒ박병민/민족미학연구소 |
강연수와 최민진 공동안무의 〈24Hz〉는 개인과 개인이 연결되어 있음을 표현하고자 한다. 두 댄서의 신체 접촉(contact)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에너지의 교류 없이 기계적으로 맞닿아 있어, 상호연결성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강연수, 최민진 〈24Hz〉 ⓒ박병민/민족미학연구소 |
배진아의 〈플러스마이너스 영(0)의 존재〉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공존하는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담는다. 예술가로서 또는 사회인으로서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시점에서 이것을 표현하고자 한 청춘이 어여쁘다. 크고 작은 원형 조명 아래에서 진행된 이인무는 다부진 움직임을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전달의 내용이 선명하게 들어나지 않아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배진아 〈플러스마이너스 영(0)의 존재〉 ⓒ박병민/민족미학연구소 |
조은정의 〈호이 호오이〉는 해녀들의 노동행위를 모티브로 하여, 인생의 희로애락을 묘사하고자 한다. 10분 남짓의 짧은 작품이 담기엔 지나치게 큰 주제라 할 수 있지만, 예술춤에서 터부시해온 노동에 주목한다는 점이 신선하다. 그리고 일상적 몸짓을 변용한 움직임과 댄서들의 이동 경로가 재기발랄하다.
조은정 〈호이 호오이〉 ⓒ박병민/민족미학연구소 |
하주은의 〈두 번째 숨〉과 최수영의 〈미 인(me in)〉은 개인의 내면을 다룬 작품으로, 내용이 모호하다. 20세기 초에 출현한 모던댄스의 특징 중 하나는 개인의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내용을 자유롭게 표현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컨템퍼러리댄스 역시 개인을 강조한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성찰 없이, 모호한 감정을 자폐적으로 나열하는 것은 공허한 읊조림일 뿐, 관객에게 전달되는 것은 당혹감뿐이라고 하겠다.
하주은 〈두 번째 숨〉 ⓒ박병민/민족미학연구소 |
최수영 〈미 인(me in)〉 ⓒ박병민/민족미학연구소 |
김민채의 〈마주하다〉 역시 개인의 내면에 집중한 것으로, 흑과 백으로 오가는 변덕스러운 마음을 〈백조의 호수〉를 모티브로 하여 이미지화한다. 백조와 흑조를 섞어 놓은 듯한 의상을 입고, 주로 정면을 응시하며 움직임을 이어간다. 이리저리 오가는 마음을 매우 평면적으로 묘사하며, 과장된 얼굴 표정이 도드라져 신파적 색채가 짙다.
김민채 〈마주하다〉 ⓒ박병민/민족미학연구소 |
한소희의 〈탐하다〉는 소유의 욕망을 형상화한 사인무이다. 아크릴 박스를 향한 넷의 사투가 이어지고, 마침내 승자가 상자를 열어 제치면, 쓰레기 더미만이 허망하게 쏟아진다. 흔히 볼 수 있는 뻔한 내용이라 할 수 있지만, 암팡지게 이어지는 움직임과 역동적인 군무가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특히 한소희의 탄력적인 춤이 인상적이다.
한소희 〈탐하다〉 ⓒ박병민/민족미학연구소 |
젊은 작가 작품 10편
20-30대 젊은 작가의 작품 10편이 또한 무대에 올랐다. 이 중 강건의 〈Eraser〉는 자신을 옭아매는 쑥스러움을 벗어던지고, 춤의 희열을 맛보고 싶다는 열망을 담는다. 한 남자가 무대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재킷으로 얼굴을 가린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리듬에 맞춰 조금씩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순간순간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점차 빨라지는 템포(tempo)와 맞춰 서서히 춤에 몰입해 간다.
작품에서 보여준 강건의 움직임은 신선하다. 그러나 부끄러움에서 춤의 희열로 전이되는 과정이 명증하게 들어나지 않는다. 전설로 남은 모리스 베자르의 〈볼레로〉는 춤의 엑스터시(ecstasy)에 이르는 과정을 몇몇 동작구의 반복을 통해 강렬하게 표현한다. 비단 반세기 전에 사용된 방법론이 아니더라도, 춤의 원초적인 주제인 무아지경의 황홀경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과 실험을 이어가기를 기대한다.
강건 〈Eraser〉 ⓒ박병민/민족미학연구소 |
이정민의 〈Framing〉은 상황이나 사건을 일정한 틀에 맞추려는 강박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사람이 등장하여 무대 바닥 전체에 테이프를 붙여 액자처럼 만든다. 그리고 석고상처럼 서 있는 사람들에게도 테이핑을 한다. 이처럼 공들여 만든 틀은 특별한 계기 없이 이내 없어지고, 모호한 움직임과 대형이 이어진다. 그러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댄서의 몸에 재(再)테이핑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현대인의 생활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며,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강박을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그린다는 점에서 다소간 식상한 표현이라 하겠다.
이정민 〈Framing〉 ⓒ박병민/민족미학연구소 |
김지혜의 〈家-푸리〉는 삶의 터전인 집과 춤을 동일시하고, 이 둘을 위한 살풀이를 시도한다. 한국 전통예술 일반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살풀이의 핵심은 한(恨, 煞)의 원인을 직시하고, 맞서 싸우고, 마침내 문제를 해소하는 것에 있다. 작품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성주풀이나 시나위 음악에 맞춰 전통춤의 몇몇 동작을 차용하고 있으며, 다섯 명이 모이고 흩여지는 대형의 변주에 주력한다. 이로써 원래 의도와 달리, 시각적 아름다움만이 부각된다.
김지혜 〈家-푸리〉 ⓒ박병민/민족미학연구소 |
김재정의 〈지키지 못할 약속〉은 전통성악곡의 하나인 ‘권주가’를 코믹하게 번안한 ‘쇠주가’에 맞춰 술 취해 가는 모습을 묘사한다. 권하기, 마시기, 취하기를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젊음이 싱그럽다. 그러나 사건이나 인물의 변화 없이 계속되는 권주는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음악에 묻혀 작위적으로 흘러가고 만다.
김재정 〈지키지 못할 약속〉 ⓒ박병민/민족미학연구소 |
이혜리의 〈화려한 외출〉은 사회초년생이 조직에 굴종되는 모습을 그린다. 전반부는 한 사람의 겉과 속을 묘사한다. 겉을 연기한 댄서(이지혜)는 작고 말라 왜소하고, 안을 연기한 댄서(이혜리)는 다부지다. 모호해질 수 있는 둘의 관계를 서로 돕고 지지하는 신체 컨텍을 통해 흥미롭게 풀어간다. 그러다 만화에서 손을 마주치며 “합체”라고 외치는 것과 유사한 제스쳐를 하여 둘을 하나로 일치시킨다. 이어 내면을 연기한 댄서는 쿨 하게 퇴장하고, 외면을 연기한 댄서는 자신감에 가득 찬 사회초년생이 되어 옷매무새를 정리한다.
후반부는 테이블 양 끝에 사회초년생과 직장상사가 마주 앉은 것으로 시작된다. 신입이 서류뭉치를 계속적으로 내밀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고압적인 거부뿐이다. 작가는 ‘서류 내밀기와 거부하기’란 단순한 패턴의 반복을 통해, 자신감에 차있던 사회초년생이 살아남기 위해 조직에 굴종되는 과정을 담담하지만, 세밀하게 묘사한다.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성된 〈화려한 외출〉은 역동적이고 다부진 움직임, 재기발랄한 신체접촉과 상황 전환, 단순한 패턴을 이용한 심리묘사가 돋보인 작품으로, 이해리의 다음을 기대하게 한다.
이혜리 〈화려한 외출〉 ⓒ박병민/민족미학연구소 |
최재호의 〈나도 너처럼 살게〉와 김민국의 〈따땃해?〉는 상처를 위로하고자 한다. 코로나19는 물론이고, 크고 작은 문제로 우리네 삶이 녹녹치 않은 지금, 아픔을 위로하는 치유의 춤이 그 언제보다 절실하다. 두 작품은 정서를 자극하는 서정적인 음악에 맞춰 움직임을 이어간다. 그 표현에서 상처의 원인, 아픔의 정도, 해결의 방안을 헤아려볼 여지는 많지 않다. 현실과 괴리된 채, 홀로 평화로운 풍경화라고 할 것이다.
최재호 〈나도 너처럼 살게〉 ⓒ박병민/민족미학연구소 |
김민국 〈따땃해?〉 ⓒ박병민/민족미학연구소 |
정다래의 〈길〉은 반복되는 일상이 참된 나를 찾아가는 과정임을 말하고자 한다. 세 댄서의 신체 접촉이 주를 이루는데, 주고받는 움직임이 안정적이고 다채롭다. 그러나 내용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핵심적인 동작구나 동작구문(phrase sentence)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무엇을 말하는지 알기 어렵다.
정다래 〈길〉 ⓒ박병민/민족미학연구소 |
오정화와 주화영의 〈똑똑똑〉은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소망을 담는다. 개인의 고립을 흰 풍선을 이용하여 표현한 전반부는 흥미롭다. 그러나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풍선을 터트리고, 감상적인 팝음악에 맞춰 힘차게 춤추고, 마침내 문 두드리는 이후 전개는 다소간 진부하다고 할 수 있다.
오정화, 주화영 〈똑똑똑〉 ⓒ박병민/민족미학연구소 |
황정은의 〈음〉은 감탄사 “음”에 주목한 작품이다. 대부분의 어휘가 그러하듯 “음”이란 단어도 여러 의미를 갖는다. 이 중 감탄사로서 “음”은 상대방의 말을 수긍할 때에도 사용되고, 불만이 있거나 고민이 있을 때도 사용된다. 작품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뉘앙스를 갖는 “음”을 표현하고자 한다. 작품 의도가 신선하게 다가선다.
이인무로 진행된 작품은 상하 또는 좌우로 유연하게 웨이브 하는 동작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움직임이 정제되어 있고 다채롭다. 그러나 신선한 의도와 매끄러운 움직임에 비해, 발언 요지가 정리되지 않은 채, 다소간 어지럽게 나열된다. 좀 더 솔직하고 명확해진 다음을 기대한다.
황정은 〈음〉 ⓒ박병민/민족미학연구소 |
무대에 오른 스무 편의 작품 중 상당수가 삶에 대한 의지를 담고 있으며, 타인과 소통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자 한다. 이것을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자신과 주변에 대한 속 깊은 이해와 고민이 필요하다 하겠다. 나아가 그것을 구체화할 방법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연구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테크닉의 연마는 움직임 표현력 확보를 위한 한 방편일 뿐, 그 전부는 아니다. 지역에서 동시대의 춤을 모색하는 젊고 푸른 춤꾼들의 건투를 기대한다.
송성아
춤이론가. 무용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전통춤 형식의 체계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2016)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와 경상대학교에서 현대문화이론과 전통춤분석론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