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국악원이 개원 70주년을 맞으며 ‘야진연’(夜進宴)을 공연했다. 4월 9일부터 14일까지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올려졌으며, 국립국악원 정악단(예술감독 이상원)과 무용단(예술감독 유정숙)의 출연진만 110명이 되는 무대였다. 근래 국립국악원의 무용단, 정악단, 민속악단이 창작 작품을 중심으로 올렸다면, 오랜만에 고종 황제 재위기간 중 1902년에 행한 야진연을 기본틀로 한 공연이었다.
1902년 5월 31일에 거행된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의 야진연은 고종 보령 51세를 경하(慶賀)함과 동시에, 기로소(耆老所)에 입소를 축하하는 진연 중에 세 번째 잔치였다. 황태자가 올리는 축하연이었고, 외연(外宴)과 내연(內宴) 이후의 야진연이니 축하 분위기는 이미 무르익었다. 당시에 22곡이 연주되었고, 12종의 궁중정재가 추어졌는데, 이번 공연은 정악단과 무용단의 합동공연으로서, 궁중악과 궁중정재를 번갈아 구성 배치되었다. 곡목은 〈정동방곡〉 〈제수창〉 〈여민락〉 〈장생보연지무〉 〈춘앵전〉 〈수제천〉 〈헌선도〉 〈학무연화대무〉 〈선유락〉 〈해령〉이다.
국립국악원 ‘야진연’ ⓒ국립국악원 |
‘야진연’의 무대는 3단으로 이어졌다. 원래의 무대 위에 무대를 또 만들어 윗단에 정악단원들을 좌우에 배치했고, 가운데 공간은 무대 후면까지 이어져 비워놓았다. 연주자들 앞에 넓지 않은 2단의 무대가 있었고, 그 아래 1단의 무대는 객석 쪽으로 확장했다. 대개의 궁중정재는 객석 쪽으로 넓힌 무대에서 추어졌다. 연주자들을 둘러싼 낮은 담장은 뱃머리의 둥근 곡선을 연상시켰고, 무대 배경에는 영상이 펼쳐졌다.
연출을 맡은 조수현은 ‘야진연’의 연출 방향을 고종황제가 무릉도원에서 안식과 평안에 거하기를 기원하는 황세자의 마음으로 설정했다고 했다. 〈정동방곡〉이 연주되자 고종과 순종이 등장하고 잠시후 고종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무릉도원으로 떠나간다. 이어 〈제수창〉(帝壽昌)이 추어졌다. 군왕의 만수무강과 조정의 태평을 기원하는 정재를 우선 배치했는데, 이 정재는 그간 별로 재현되지 않았던 당악정재로, 선모 1인을 포함하여 9인이 추었다. 그리고 〈여민락〉이 이어졌다. 연주와 더불어 무대의 영상은 상단 좌우에 두 개의 달과 아래 술잔 속의 달을 보여주었다.
국립국악원 ‘야진연’_ 〈장생보연지무〉 ⓒ국립국악원 |
다음은 〈장생보연지무〉이다. 역시 장생(長生)을 기원하는 춤으로, 5인의 남성 무용수가 추었고, 오방색으로 입었던 의상을 검은 색으로 하고 끝자락에 오방색을 각각 넣었다. 춤꾼들은 장생보연지무의 주요 작대(作隊) 형식이자,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의 9변(變)을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원래 독무로 추는 〈춘앵전〉을 남녀 이인무로 추었다. 남녀 춤꾼이 춘앵무를 출 경우, 이들은 마치 황제(왕)와 황후(왕비)가 궁중 연례의 절정에서 최고의 흥취를 보여주는 듯하기도 하며, 음과 양이 결합된 꽉찬 구성을 연출하기도 한다. 의상도 변화를 주었다. 황제의 잔치를 표하기 위해서였는지 앵삼은 화사한 노랑이 아닌 좀 더 가라앉은 황금색이다. 앵삼 위에 걸치는 초록하피와 가슴띠, 홍초상도 색상을 달리하여 은색의 파스텔 톤으로 하였다. 화사한 봄날이 아니라 밤하늘 버드나무 아래에서 춘앵전이 추어졌다.
국립국악원 ‘야진연’_ 〈춘앵전〉 ⓒ국립국악원 |
이어서 〈수제천〉이 연주되었다. 〈수제천〉(壽齊天)은 고려시대에 〈정읍사〉를 노래하던 음악이었다. 하지만 현재 관악합주곡으로 연주되거나 궁중무의 반주음악이다. 그 의미는 수명이 하늘과 같게 한다는 것이니, 장수를 기원하는 곡목이다. 〈헌선도〉는 봄꽃이 핀 영상을 뒤로 하고 추어졌다. 1단의 무대에서 등장한 춤꾼(舞員)이 2단에 있던 선모(仙母)에게 선도(仙桃)를 받들자, 선모는 선도를 받아 선도반(仙桃盤)에 올리며 헌(獻)하였다. 그리고 선도반과 선모를 배경으로 1단에서 〈학무〉와 〈연화대무〉가 이어졌다. 이번 공연에서 〈학무〉와 〈연화대무〉는 국립국악원의 다른 공연에서 선보였을 때보다 돋보였다. 두 마리 백학이 검은 호수 위에서 춤추는 듯했고, 연화대 역시 흑색 무대에서 활짝 피어났다. 화려한 무대와 출연진을 배경으로 추었을 때와 다르게 야연(夜宴)이라는 조건이 이 춤들을 좀 더 선명하게 그리고 몽환적으로 만들었다.
국립국악원 ‘야진연’_ 〈학무〉 ⓒ국립국악원 |
그리고 〈선유락〉이 펼쳐졌다. 〈선유락〉은 원래 궁중에 들어가기 전 평안도 지역에서 연희되던 이별을 노래한 ‘배따라기’였다. 무대 중앙 후면에서 4인의 악사가 이끄는 배가 들어오더니 3단, 2단을 지나 1단의 무대에 놓여졌다. 동기(童妓) 2인이 배(원래는 채선(彩船)으로 꾸몄다)에 올라타고, 12명의 춤꾼들이 대열을 지었다. 집사기(執事妓)의 호령에 따라 나발수가 삼취(三吹)하고, 징수가 타징한 후에 행선(行船)이 시작되었다. 4방향으로 3인씩 열을 지어 회무(回舞)하였고, 어부사(漁父詞)의 노래도 있었다. 작은 규모로 행한 고즈넉한 밤뱃놀이였다.
국립국악원 ‘야진연’_ 〈선유락〉 ⓒ국립국악원 |
마지막 곡조로 〈해령〉(解令)이 연주되었다. 현재는 무대연주용으로 변하였지만, 조선시대에는 행악(行樂)으로 쓰여졌었다. ‘야진연’ 공연을 마무리하며 동시에 고종 탄신 51년을 마무리하면서, 무릉도원으로 떠났던 고종을 맞이하고, 또한 예악당 관객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해령’의 춤도 추어졌다.
국립국악원 ‘야진연’ 정악연주단의 모습 ⓒ국립국악원 |
그렇게 국립국악원 개원 70주년 기념공연이 끝났다. 무대를 객석으로 확장했음에도 춤의 무대가 좁았던 점이 아쉬웠지만, 공연은 근래 국립국악원 작품에 비해 음악과 춤을 잘 갖추었고, 영상도 비교적 정돈되어 있었다. 이전에 무차별적으로 쏟아냈던 영상이 아니라 각 작품의 컨셉에 맞게 춤과 음악을 받쳐주었다. 요즘 공연예술은 영상을 결합하는 것이 트렌드이고, 국립국악원의 근래 작품들도 그러한 흐름을 따르고 있다.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2000년 무렵부터 시도된 〈태평서곡〉(太平序曲) 등의 연례악 회례연 공연들은 성과를 얻었고, 국립국악원의 공연역량으로 축적되었다. 그리고 2010년대 중반부터 서사(敍事)와 영상이 결합된 작품들을 시도했는데, 이 공연들에 대한 완성도와 호불호는 갈리었다. 그 와중에 제작 역량이 강화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이번 ‘야진연’은 2000년대 들어 국립국악원이 축적한 연례악 공연의 성과 위에 근래 시도된 연출 흐름과 제작 트렌드가 적절히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다시금 오랜 세월을 견디며 전통으로 이어온 궁중악무의 텍스트를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감상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개원 7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또한 국립국악원이 단순히 국립국악원이 아닌 것이다. 신라의 음성서로부터 대악서, 장악원, 이왕직 아악부의 맥이 흐르기 때문이다. 올해 남아있는 국립국악원 70주년 기념행사들이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김영희춤연구소 소장. 역사학과 무용학을 전공했고, 근대 기생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춤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 『전통춤평론집 춤풍경』을 발간했고, 『한국춤통사』를 책임편집하고 공동저술했다. 전통춤의 다양성과 현장성을 중시하며, 검무의 역사성과 다양성을 알리기 위해 ‘검무전(劍舞展)’을 5년째 시리즈로 기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