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11일 동안 진행된 한국무용제전(4.21~5.1,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코튼홀)의 올해 주제는 ‘평화와 공존의 춤 - 굿’이다. 여기서 굿은 영어 good과 전통 제의 굿을 동시에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 굿은 “좋은, 즐거운, 기쁨의 의미”(모시는 글, 이미영)이고, 소망을 비는 비념이다. “한국춤을 세계로”(축사, 김매자)라는 기치 아래 경연 형식으로 치러진 이번 한국무용제전에는 총 26팀(소극장 공연 12팀, 대극장 경연 8팀, 개, 폐막일 4팀)이 참여했다.
이 중 많은 팀이 전체 주제에 걸맞은 전통 굿을 무대화하는데 몰두하는데, 이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행해진다. 한편으로는 안무자가 전통연행의 정서와 분위기 안에서 굿을 무대화한다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연행의 이야기나 소재 등을 전유해 자기만의 감성으로 이를 재구축하는 전략을 택한다.
한효림 Han댄스프로젝트 〈내림〉, 최태선 궁댄스컴퍼니〈곡신〉 ⓒ한필름 |
복미경무용단 〈오채〉, 조성민무용단 〈탈:굿〉 ⓒ한필름 |
한효림 Han댄스프로젝트의 〈내림〉(4, 30.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최태선 궁댄스컴퍼니의 〈곡신〉(4, 28.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복미경무용단의 〈오채〉(4, 28.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조성민무용단의 〈탈:굿〉(4, 25.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코리안댄스컴퍼니 결의 〈푸다꺼리〉가 전자에 속하고, Altimeets무용단의 〈사자〉, 그리고 소극장 무대에 오른 백현아의 〈색, 물들다〉(4, 24.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코튼홀)와 김하나의 〈길베1/2〉가 후자에 속한다. 그리고 몇몇 안무자는 전통춤과 신무용을 계승하는 데서도 후자의 방법을 취하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LNYdance의 이남영, 창무회의 김성의, Altimeets무용단의 한정미, 그리고 지난해 한국무용제전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아 개막 공연에 초청된 임학선댄스위의 정보경과 소극장에서 열린 경연에 참가한 백현아, 김하나 등이다. 백현아는 한국춤과 무술 동작을 접목해 짠 독특한 움직임을 구사하고, 대형 부채를 이용해 매우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김하나는 춤적 요소와 극적 요소를 알맞게 섞어 구성한 몰입감 있는 무대를 선보이는데,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전통 서사를 현대적인 몸짓으로 풀어내는 점이 돋보인다.
백현아 〈색, 물들다〉 ⓒ한필름 |
코리안댄스컴퍼니 결의 〈푸다꺼리〉(4. 25.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를 안무한 이동준은 띠배와 검은 부채 등 전통 굿의 소재와 이야기를 이리저리 이용하는 재치와 관객들이 편하게 즐길만한 장면을 잘 만드는 재능을 겸비한 안무자이다. 이동준은 무대 앞이나 뒤, 혹은 중앙에, 그리고 상수와 하수에 수평이나 수직으로 기하학적 패턴의 형상을 구현하는 것을 즐긴다. 사각형의 무대 공간은 직선이나 곡선, V자나 역 V자, 원이나 지그재그, 혹은 대각선과 같은 선으로 구획되고, 수평과 수직으로 길게 늘어선 춤꾼들의 대열로 일정한 모양이나 형식을 갖추는 무대는 강한 2차원적인 조형성을 띤다. 이는 오래전부터 극장춤이 발전해왔던 서양의 발레에서 즐거이 사용되던 안무법이다. 조화로운 형상을 띄는 공연은 객석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의 관객에게 가장 쾌적하게 보이고, 공연 구도의 단순성으로 인해 대중에게 쉽게 어필한다. 그렇기에 대극장 무대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국립무용단이나 전국의 시, 도립무용단에서 즐겨 자주 쓰는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이동준은 화려한 조명과 오케스트라피트 등 무대 메커니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스펙터클한 장면들을 연출하고, 이를 보는 관객들은 아주 흥미롭게 반응한다. 대중성이 강한 공연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점은 분명 이동준의 장점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나치게 관객을 의식한 나머지, 과장된 동작과 과도한 표현이 잦은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런데 이렇게 질서와 조화를 중시하는 공연은 중심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던 특정 시기의 권력 혹은 정치적, 미학적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며, 그러기에 이런 스타일의 공연에서는 언제나 개별 춤꾼들의 개성이 심하게 억압된다는 점을 환기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코리안댄스컴퍼니 결 〈푸다꺼리〉 ⓒ한필름 |
LNYdance는 이미 한국춤의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는 춤 단체다. LNYdance의 〈나를 나로서 보다〉(4, 23.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를 안무한 이남영은 확고하게 다져진 스승 김영희의 무트댄스 메소드를 바탕으로 메시지가 강렬한 공연을 선보인다. 막이 열리면서 확 드러나는 것은 무대 바닥에 놓인 대형 프레임이다. 프레임은 공연 내내 무대 허공에 띄워진 채, 앞이나 뒤로, 혹은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다시 바로 세워졌다 하면서, 부유하는 군상들의 내면세계를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기제로 활용된다. 안무자는 큰 사각형 조명과 프레임을 포개기도 하고, 여러 개의 작은 사각형 조명을 프레임과 병치하는 등 조명과 프레임을 영리하게 활용해 메시지를 두드러지게 한다. 프레임은 세상을 보는 눈이지만 무엇보다 이는 성찰하는 눈, 곧 인간 내면을 깊이 살피는 눈이다. 프레임에 잡힌 세계는 팬데믹 시대를 힘겹게 사는 익명의 나의 내면세계이고, 이는 깔끔한 구성과 표현력이 강한 춤으로 유려하고도 생생하게 그려진다. 잘 훈련된 춤꾼들이 구사하는, 독특한 호흡이 실린 몸짓은 응축된 에너지가 내재한 듯 묵직하고, 그런 만큼 강한 정서적 울림을 준다.
LNYdance 〈나를 나로서 보다〉 ⓒ한필름 |
〈나를 나로서 보다〉가 입체성을 한껏 살리면서 정념을 불러일으키는 공연이라면, Altimeets의 한정미가 안무한 〈사자〉(4, 30.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는 강한 입체성을 띠면서도 지성적이다. 안무자는 사자, 노파, 유목민 등 주요 배역을 현대적인 캐릭터로 재탄생시키고, 비닐을 사용해 무대 전체를 세련되게 꾸며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이는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처럼, 혹은 광활한 사막처럼 보인다. 공연은 미래에서 온 유목민이 무대 앞에서 등장해 파도 혹은 사막을 가로질러 뒤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면서 시작되는데,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장면이다. 현재의 영매는 사자가 되고, 거리의 노파도 되고, 미래에서 온 유목민도 되는데, 이는 시간의 집합을 구성하는 상징적 이미지로 보인다. 공연이 시제가 다른 세 시간의 교집합 안에서, 곧 현재가 미래와 과거로 분기하는 지점에서 진행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래서인지, 공연에서는 시간에 대한 관념과 몸짓의 의미 사이에 균열이 생기고, 둘 사이에는 묘한 길항 관계가 형성되는데, 이는 사유활동과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생각거리와 의미를 몸짓으로 온전히 구현하는 데서는 뚜렷한 한계를 드러내는 공연이다. 그렇지만 안무자는 춤을 드라마틱하게 구성해 힘찬 군무로 클라이맥스를 연출하고, 이러한 장면은 황홀경 상태에 든 무당을 연상시킨다. 이를테면, 기세가 다소 약한 감은 있지만, 안무자는 전통 굿의 집단 엑스터시 상황을 동시대적 감성으로 재구축해 보여준다.
Altimeets 〈사자〉 ⓒ한필름 |
그런데 이남영의 춤이, “춤이 꼭 무언가를 표현하고 감정을 소통하는 도구여야 하는가?”라는, 그리고 한정미의 춤이 “춤이 꼭 무엇인가를 재현하고, 춤에 서사와 의미를 담아야 하는가?”라는, 춤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을 야기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답은 정보경의 춤이 하는 듯하다. 정보경은 춤을 그 자체로 전경화하며 움직임과 몸짓이 지닌 힘과 잠재성에 주목하는 안무가이다. 임학선댄스위의 〈one, 源〉(4. 21.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을 안무한 정보경은 굳이 춤에 어떤 의도나 의미 등을 담으려 하지 않고 움직임에 집중한다. 공연은 섬세하게 다듬어진 군무와 4인무, 듀엣 등이 알맞게 잘 나뉜 채 구성되고, 속도의 완급을 조절하며 리듬감을 한층 살린 춤은 생동감이 있다. 또, 군무는 모였다가 흩어지고, 웅크렸다가 펴지는 등 원심력과 구심력, 응축과 이완, 질서와 무질서 등을 구현하며 춤의 역동성을 한껏 뽐낸다. 이를테면 안무자는 공연에서 움직임과 몸짓이 춤의 존재론적 본질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안무자의 생각은, 이번 공연에서 군무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특히 잘 읽힌다. 가령 무대의 하수 앞쪽에서 등장해 대각선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무대 중앙을 가로질러 상수 뒤쪽으로 향하는 예닐곱 명의 춤꾼이 무리를 이룬 채 깡충깡충 뛰면서 한쪽 발을 들어 올리고, 허리를 굽혀, 들어 올린 발의 복숭아뼈 근처를 손으로 잡는 듯한 동작을 반복할 때, 하나인 듯 여럿인 군무는 한국적인 정서를 물씬 풍기면서도 세련되고 현대적이다. 이러한 군무는 그 후로 무대 여기저기서 몇 번 반복 되는데, 이는 공연 전체를 굉장히 경쾌하고 밝게 만들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만든다.
정보경의 춤은 어떤 의미를 몸짓을 매체로 삼아 다시 re - 나타나게 presentation하는 것이 아니라, 생생한 몸짓에서 표출되는 의미, 곧 “좋은, 즐거운, 기쁨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의미는 안무가가 미리 의도한 게 아니라 연행 현장에서 생성되는 의미라는 점에서, 〈one, 源〉은 움직임의 현존과 춤의 생명력을 여실히 드러내는 공연이다. 그런데 정보경의 춤에도, 전체 춤 중에서 솔로(주인공) 춤의 비중이 큰 점이나, 키가 지나치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균형 잡힌 몸매를 지닌 춤꾼들에게 일사불란하고 부단히 움직일 것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근대적 춤 이념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국춤을, 움직임과 공간, 그리고 춤추는 몸을 새롭게 사유하는 동시대적 춤과 접속시켜, 안무의 외연을 넓힐 뿐만 아니라 안무 메소드의 다각화를 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임학선댄스위 〈one, 源〉 ⓒ한필름 |
한정미와 김하나는 전통 굿의 소재와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잘 활용한 무대를 선보였다. 이들이 올해 한국무용제전의 주제를 살리는 데 한몫했다는 말이리라. 김하나는 흰 살풀이 수건을 여러 개의 풍선에 매달아 무대 허공에 둥둥 띄워, 구천을 떠돌고 있는 망자의 넋을 구현하는 등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특히 죽은 자와 산 자가 상봉하는 굿의 하이라이트를 현대적인 몸짓으로 구현하는 짜임새 있는 듀엣은, 김하나의 젊은 감각이 빛을 발하는 대목으로 보인다. 한정미는 영매의 분신들, 곧 사자와 노파, 그리고 유목민을 한 무대에 등장시키는 범상치 않은 상상력을 발휘하며 전통 굿을 현재화한다. 이는 팬데믹 시대를 견뎌내고 있는 동시대에 새 기운을 불어넣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한정미는 오늘의 몸짓으로 집단 엑스터시 상태를 연출하는데, 이는 동시대의 삶에 끼인 살과 액 그리고 온갖 부정을 한 방에 날리는 현대판 부정굿의 절정일 것이다. 한정미와 김하나의 공연은 전통연행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모범적 사례로 여겨진다.
김하나 〈길베1/2〉 ⓒ한필름 |
정보경과 이남영, 한정미와 김하나, 그리고 위에서 언급은 못 했지만, 〈숲속 작은 집 창가에〉(4, 23.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를 안무한 창무회의 김성의 등의 공연을 접하면서, 평자는 한국무용제전의 장에서 한국춤의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기실, 언급한 안무가들은 전통춤이나 신무용의 움직임을 습득하는 긴 수련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춤에 대한 사유와 춤추는 몸에 의도치 않은 도식이 새겨지는 과정이리라. 이를테면 전통춤과 신무용의 정형화된 발디딤과 팔 동작 등은 춤꾼들의 자유로운 몸 움직임을 제약하고, 한국 창작춤이 춤의 동시대성을 확보하는 데 방해가 되는 완고한 틀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기존의 전통춤 기법은 걸림돌이 아니라 외려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앞세대의 춤은 그들의 창착춤에 흔적으로만 남아 있고, 일정한 형식이나 틀로 자리 잡은 몸도식은 해체되고, 젊은 감각을 지닌 춤꾼들에 의해 재구축되는 것으로 보였다. 앞선 세대의 춤의 흔적이 독특성으로 되살아나고 있다는 말이다.
창무회 〈숲속 작은 집 창가에〉 ⓒ한필름 |
새로운 감성을 장착한 한국춤꾼들은 현대춤과 구별되는 특성을 가진 다른 춤 지대를 만들고 있고, 한국 춤의 새로운 구역을 구축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한국무용제전의 주체들은 과업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기존의 춤 지대를 일구는 젊은 춤꾼들과 함께. 그렇다면 이즈음 한국무용제전은 탈중심과 탈근대를 지향하는 새로운 기치를 내걸면 어떨까. “한국 춤의 로컬리티를 구축하라!”. 그러면 ‘한국춤을 세계로!’라는 구호는 물러설 듯하다. 세계 춤의 중심을 와해시키는 한국 춤의 강력한 로컬리티를 구축하는 것으로 충분하기에 말이다. 이는 세계 춤을 중심이 없는 춤 세계, 모든 지역의 춤이 중심이면서 주변인 춤 세계, 곧 n-1의 춤 세계를 만드는 춤 실천이기에.
최찬열
한국춤을 추었고, 춤인류학과 미학을 전공했다.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춤과 공연예술, 미학과 관련된 과목을 강의했고, 지금은 몸의 예술과 인문학에 기반한 통섭적 문화연구에 몰두하며, 춤문화연구소에서 춤미학과 춤역사를 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