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배진호의 공연작 〈죽여버리기〉(Kill)는 죽음을 도마에 올려놓고 메스는 억압에다 들이대었다(6. 12-13., 엘지아트센터U+극장, 서울 둔촌동). 죽음이나 억압이나 춤은 물론 예술 행위 도처에서 갈수록 아우성친다. 죽임과 억압을 당장 멈춰! 거센 외침이 오늘도 그치지 않는다. 〈죽여버리기〉는 몸뚱이 오장육부 창자에서 터뜨려지는 투의 파열성(破裂性) 짙은 몸짓과 말소리로 그 외침을 더하였다.
〈죽여버리기〉는 런웨이 식으로 변형된 극장 무대에서 진행된다. 객석을 양쪽으로 나누어 그렇게 나눠진 객석이 서로 마주 보도록 하고, 마주 보는 객석 중간에 출연자들의 연기 공간 무대가 설정되었다. 무대 공간을 이렇게 변경한 데에서는 관객의 몰입을 강화하려는 전략(이머시브 공연)이 다분해 보인다. 짐작컨대, 이 이머시브 공연이 강조하는 것은 몸짓과 말소리와 몸의 무대 위 파열상이 먼발치서 강건너 불처럼 볼 일이 아니라 관객이 코앞에서 직면하는 현장 ‘사건’이라는 것이다.
배진호 〈죽여버리기〉 ⓒSAL/최랄라(choi rala) |
먼저 공연의 도입부 모습을 스케치하면 이렇다. 극장에 들어서면 검정색 스판덱스 웻슈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쓴 두 남녀가 바닥에서 꿈틀대며 느리게 뒹굴고 있다. 한쪽 끄트머리 의자에는 검정 슈트의 남자가 페트병을 만지작대고 다른 쪽 끄트머리 의자 곁에 검정 드레스의 여자가 서서 입장객을 무표정하게 맞이한다. 공연이 시작되자 티셔츠를 걸친 남자가 검정 슈트의 남자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서로 포옹한다. 바닥에서 꿈틀대던 남녀는 마주 보고 포옹해 앉은 자세로 느리게 애무한다. 그 사이 피아노의 강한 연타음이 울리고 건장한 남자가 상의를 탈의한 채 입장하여 무대를 응시한다. 다른 의자에 앉은 남자가 일어나 머리를 흔들다 웅얼대며 화를 내듯이 고함치다 검정 원피스의 여자에게 접근하여 부들부들 떨며 여자 어깨를 세게 머리를 낚아채자 여자는 실신하고 구른다. 동시에 어느 남자가 껌을 씹으며 느리게 전진하고, 검정 원피스의 그 여자는 구르기를 지속한다. 고함치다 실신했던 남자의 얼굴에 한 남자가 침을 뱉고 구역질 하듯이 웩 소리를 지른다. 검정 웻슈트의 인간들이 일어나서 양쪽에서 가느다란 노끈을 당기며 전진하자 페트병을 들었던 남자는 반대쪽으로 쓸려간다. 티셔츠를 걸친 그 남자는 가까이 접근한 여자를 끌어올려 벽으로 데려가 머리채를 철판벽에 떡치듯 혹독하게 위태로울 정도로 부딪치게 하며 자기도 벽에 박치기한다.
배진호 〈죽여버리기〉 ⓒSAL/최랄라(choi rala) |
이어 무대 한쪽 공중에는 두 남녀가 각자 공중에 매달려 서로 히죽히죽대는 투로 말을 주고 받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기도 하며 격투기 선수 품새의 남자가 주변 일엔 아랑곳않고 권투 스파링 연습 자세 양팔을 휘두르며 전진한다. 그리고 막춤을 추는 사람, 검정 속옷 차림의 네 여자, 하얀 사제복 같은 것을 걸친 남자가 추가로 등장한다. 특정한 캐릭터가 설정되지도 이름이 붙여지지도 않은 공연의 성격상, 그리고 공연이 원인과 결과의 구도로 전개된 것도 아닌 때문에 출연진 한 사람마다의 움직임을 소개하는 데는 난점이 따른다. 전체 출연진 11명이 개별로 또는 집단으로 전개한 활동 양상을 짚어보면, 뺨때리기, 웩 토하는 시늉, 발광하는 동작, 서로 등을 맞대고 발광하기, 울음 터뜨리기, 멍하니 서 있기, 실성한 듯이 누워 있기, 여자를 가학적으로 대하는 남자, 격하게 구르기, 벽에 기대어 허우적대기, 배회, 실성한 표정으로 이동하기, 배회, 각자 몸의 특정 부위 쓰다듬기, 부들부들 떨기, 간간이 등장한 막춤 등이다.
배진호 〈죽여버리기〉 ⓒSAL/최랄라(choi rala) |
짐작되겠듯이 〈죽여버리기〉는 격하다, 죽여버리기 못지않게. 그렇게 격한 이유는 무엇일까. 〈죽여버리기〉가 염두에 두는 죽음은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소개되었다. 먼저 타인의 죽음. 순간적으로 극단적 상상으로 진행되는 죽음이다. 존재의 죽음. 자기 존재가 부정당함으로써 직면하는 죽음이다. 감정의 죽음. 본능적인 감정, 소멸시키고 싶은 과거의 감정이 겪는 죽음이다. 마지막으로 육체의 죽음. 억지스런 통제로 인한 신체 활동의 죽음이다. 소개되는 죽음들은 모두 자연사가 아니라 인간들의 상호 관계에서 연유하는 죽음들로 파악된다. 이 죽음들의 성격으로 미루어 〈죽여버리기〉에서 일부 죽음은 파괴적일 테지만, 어떤 죽음은 재생 또는 부활로 나아가는 출구에 해당한다. 다시 말하여 죽음 자체보다는 〈죽여버리기〉가 건드리는 것은 죽음을 촉발하는 상황이며, 이 상황은 단적으로 나와 너라는 각 주체에 대해 시도 때도 없이 가해지는 억압으로 압축될 듯하다. 억압적 상황의 절실함 속에서 〈죽여버리기〉가 격해지는 것은 공감을 살 일이다.
배진호 〈죽여버리기〉 ⓒSAL/최랄라(choi rala) |
이들 네 가지 죽음을 순차적으로 쫓아 공연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작품 도입부에서 타인의 죽음(순간적으로 극단적 상상으로 진행되는 죽음)을 연상할 수 있는 상황이 엿보이는 데 비하여, 그 이후에는 4가지 죽음(에 대한 판단과 느낌)이 뒤섞이는 양상을 보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점에서 공연은 다소 혼돈스럽게 다가왔으며, 관객이 공연 전개를 추동하면서 출연자들과 함께 공감하고 되새겨갈 여지는 적었던 편이다. 또 한편으로는, 4가지 죽음들 가운데 두어 가지는 서로 연계성이 강하므로 뒤섞일 만한 여지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든 저렇든 〈죽여버리기〉에서처럼 드세며 세찬 형상화가 제시되어도 관객이 그 앞에서 갈피를 잡기가 애매해서 관객의 시선에서 다듬어지지 않는다면 자연히 가성비도 낮아질 것이다. 드세며 세찬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어쩌면 더 강화되어도 무방할 것이고, 요컨대 〈죽여버리기〉는 요소요소에 축을 이루는 임팩트를 설정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배진호 〈죽여버리기〉 ⓒSAL/최랄라(choi rala) |
〈죽여버리기〉에서 받는 인상은 강하다. 갈피를 잡기가 비록 애매했을지라도 강한 인상으로 관객은 일대 사건을 목격한 것처럼 곱씹을 것들을 가졌을 것 같다. 더욱이 춤의 매무새에 매달리다 몸과 살 속의 진상과 찐춤을 다반사로 놓쳐버리는 세태를 생각해보면, 〈죽여버리기〉는 유다르다. 감성과 감각, 지각 활동에서, 그리하여 춤의 활동에서 주체가 자기 자신인 것을 〈죽여버리기〉는 나름 창작 기록의 행간들로도 증거해 보였다. 투철한 프로의 마음새가 부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몸뚱이로부터의 파열에 비추어 〈죽여버리기〉는 신체극춤으로 분류할 만하고(예르지 그로톱스키 류의 신체극은 아니라 생각됨), 또한 앙토넹 아르토 스타일의 잔혹극과의 근접성 면에서 생각해볼 여지를 남겼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