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99.9%는 못 보고 죽는다”
비장하다. 99.9%의 사람이 무용을 보러 극장에 오지 못하니(않으니), 그 수를 늘려보겠다는 의지도 담겨있고, 관객들에게 0.1%가 되보자는 권유도 들어 있는 〈허용무용무용허용 페스티벌 99.9〉의 슬로건이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예술감독 김보람, 대표 장경민)가 올해 중장기창작지원사업 3차년도 사업으로 기획한 〈페스티벌 99.9〉(이동형 야외공연 프로젝트/24.6.8-15. 반포한강공원 세빛섬 야외무대)가 열렸다. 총 8일 동안 매일 저녁 그간 앰비규어스의 11개 작품의 공연이 주를 이루는 축제로 개막과 폐막일에는 DJ 클럽을 개장하는 등 젊은층이 좋아할 만한 다양한 팝업 부스에서의 프로그램들이 다양하다. 단독 무용단이 주최하는 무용 페스티벌도 최초, 자신들의 창작품을 8일 동안 연달아 공연하는 것도 초유 등 여러 신선한 기획으로 눈길을 끈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페스티벌 99.9' 무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
현장에 가보면 무슨 춤 게릴라들의 아지트를 보는 느낌이다. 솔직히 이런 무대는 본적이 없는데, 자신들이 말하는 것처럼 일개 무용단이 결코 짧지 않은 8일 동안의 축제를 하기 때문인지 자신들의 취향과 그 선택에서의 자유함 그리고 거침이 느껴진다. 보이는 부분은 모두 주황색, 파란색, 검정색의 지게차용 파렛트(지게차의 기중기가 들어갈 공간이 있는 단단한 받침대)를 섞어 사용하여 무대를 만들었고, 300여석 정도의 객석도 3개 블록으로 나누고 7단 정도로 단을 쌓아 만들었다. 물론 무대를 포함한 공간의 울타리와 벽도 파렛트로 만들었다. 객석에서 바라보면 전면에 뮤지션 오퍼 공간을 단을 높여 뮤지션들의 얼굴정도만 보이도록 파렛트로 막고, 그 뒤에 스캐폴더를 높여 조명기를 달아 놓았다.
당연히 이 모든 건 이 축제를 위해 한강공원 세빛섬 옆에 이전까지 없던 가설무대공간이 생긴 것인데 멀리서 보면 주변에 팝업 공간까지 포함하여 이 구멍 숭숭난 파렛트가 주는 있는 듯, 없는 듯, 사라질 듯, 생겨난 듯한 실제와 가상 중간쯤의 존재감이 묘하다.
이들은 그렇게 쌓은 무대 위에서 관객과 함께 서슴없이 대화하고, 소통하고, 춤춘다. 꽤나 분위기가 오붓하다. 앰비규어스의 명성에 비하면 작다고 볼 수 있는 객석 수여서인지 관객과 앰비규어스와의 사이는 서로의 호흡이 다 느껴질 만큼 가깝다. 2008년 창단 이래 창작된 〈바디 콘서트〉 〈얼이섞다〉 〈공존〉 〈Mistake〉 〈언어학〉 〈틈〉 〈볼레로〉 〈기가막힌 흥〉 〈인간의 리듬〉 〈fever〉그리고 2차년도인 작년에 만든 〈쇼빠숑〉까지 11작품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순서 외우는 것도 쉽지 않을 듯 싶다.
지행합일: 함께 하는 춤을 추겠다는 놀라운 열정과 체력
이들의 심볼인 선그라스는 이들의 탄생 비화를 담고 있는 것일까? 이들은 이번 축제를 탄생지를 기억하며 그 시절을 회고하느라 여기 한강변 야외로 한 것일까? 앰비규어스의 선그라스는 이런 무대에선 멋이 아니라 필수였다. 야외와 선그라스, 이미 타버린 그을린 피부, 더 짜낼 게 없어 보이는 체질량지수의 몸에서 흐르는 땀은 그저 일체의 가식이 없는 진솔이었고, 거기에 하루도 쉬지 않고 연이어 공연하는 것도 모자라 공연 시간 외에 사람들에게 춤을 가르치고 챌린지를 진행하여 댄스코인을 나눠줘서 코인으로 단체의 굿즈를 사게 하는 부대행사까지 하는 걸 보면 저러다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발동할 정도다. 폐막 전날은 공연 전에 〈AMBIBRAIN〉으로 향후 10년을 이끌어 갈 무용수들의 창작발표회 4작품 까지 하여튼 여러 각도로 쉴 틈 없이 움직이며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한강시민공원 내 시민들에게 하이퀄리티 예술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겠다... 국내 공연계 관람 문화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겠다... 무용으로 사람들과 소통해 보겠다... 무용Scene에 새로운 기대와 부흥을 도모해 보겠다...” 이런 기획 의도를 이들은 말한 대로 곧이곧대로 몸으로 실천한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페스티벌 99.9' 〈바디 콘서트〉 ⓒRUBY |
다들 알다시피 이들 공연은 빠른 비트의 춤이 주를 이룬다. 신나서 추는 춤, 사람을 신나게 만드는 춤이기에 동작이 작고 빠르고 절도가 있다. 그런 춤을 따로 추고 같이 추고를 반복하며 한 시간 내내 추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춤추는 일이 노역이 되지 않기 위해 이들은 춤을 즐긴다. 그래서 관객도 즐거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관객에게, 대중에게 춤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체력을 관리하고, 자기 즐거움을 관리하면서 노력한다. 이들 무대가 즐겁고, 따뜻하고, 감동스러운 이유는 이들의 관객에 대한 몸에 밴 애정, 함께 즐기는 무대를 만들겠다는 가치 지향이 뚜렷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춤과 이 축제의 지향점이 딱 맞아 떨어지는 지점이다.
이렇게 충실하고 도전적이고 정말로 중장기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초유의 일 아닐까 싶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페스티벌 99.9' 〈쇼빠숑〉 ⓒTea |
앰비규어스에게 99.9 다음은 무엇일까?
그럼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축제 제목 99.9는 춤과 가깝지 않은 사람들의 퍼센트였으나 나는 이 가득 찬 숫자 99.9를 가져와 이들의 자세와 태도로 미루어 보아 곧 머지않아 자신들의 목표에 다다르고, 다음을 준비하지 않을까 싶어 앰비규어스의 다음을 미리 묻고 싶어졌다.
창단 16년째를 맞는 앰비규어스는 그 지속성과 꾸준함 만으로도 무용계에서 중진 무용단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안산문예회관의 상주단체, 중장기창작사업 선정 등 무용단이 성장해야 할 코스도 착착 해 나가고 있다. 2021년 ‘범 내려 온다’이후 국제적으로도 활동의 폭이 높아지고, 상업적인 엔터테인과도 가까워 진 것을 굳지 논하지 않더라도 앰비규어스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단원을 확보하고 신작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탄탄한 무용단이다.
게다가 일반적인 무용단들의 약점인 자기 관객을 갖는 문제에서, 이들의 대중 사랑과 대중의 이들 사랑은 짝사랑이 아니라 아주 상호적이고 잘 맞는 사이이다. 야외 무대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거리예술축제에도 장벽 없이 꾸준히 참여한 덕분일 것이다. 그렇게 관객을 만나고 나누고를 반복하여 쌓인 이들의 관객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는 가히 어느 무용단과 비교해도 정상이다. 그 결과 서로를 생각하는 게 이번 야외무대에서도 느꼈던 것처럼 소박하면서도 따뜻하고 아주 편안하다.
다른 말로 하면 이들은 다른 무용단이 가지지 못한 대중적 포지션을 갖고 있으며 그것의 원동력은 방송댄스의 쉽고 재밌게 다가갈 수 있는 춤, 그러나 발레와 현대무용 기본이 없이는 추기에 쉽지 않은 춤, 그런 춤을 멋지게 해내는 매력적인 몸과 기술을 가진 다수의 춤꾼들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이다. 큰 재산이 아닐 수 없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페스티벌 99.9' 야외 워크숍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
그럼에도 이들 작품의 단점을 꼽자면 작품들이 비슷비슷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다양한 출처의 조화롭지 않은 의상을 매칭해 입는 방식, 익명적이고 복제적인 존재로 만드는 선그라스를 한번도 벗지 않는 룰, 거기에 수영모자나 비행 모자 비슷한 모자를 쓰고 웬만해서는 이 외모 컨셉을 깨지 않는 것이 비슷해서 더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혹은 의상처럼 보이는 의상을 입어도 대체로 몸에 붙게 입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웬만해선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더 비슷해 보일 수 있다. 작품 마다의 주제와 내용을 구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색다름을 찾기보다는 어떤 제목과 소재의 작품이라도 이들이 감정을 배분하고 표현하는 박자와 리듬이 비슷해서인지 어떤 상황을 던져놔도 결국엔 익히 본 춤으로 비슷한 감정 상태 안에서 끝이 난다.
난 이 무용단이 이름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인데, 춤의 특성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Ambiguity’ 모호함에서 단어를 꺼내와 자신의 춤에 대한 사랑, 고민을 응축시켜 그 단어를 고른 것은 신의 한수였다고 본다. 그런데 이들 작품에 대해 왜 비슷할까를 고민하다가 갑자기 무용단 이름에 많은 힌트가 담겨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보석을 찾아 집 밖으로 해멨지만, 귀한 건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거라 했던가...
모호하다는 건 뭘까? 모호하게 표현한다는 건 뭘까? 춤은 왜 모호한 매체일까? 모호함은 보통은 부정적인 쪽으로 느낌을 가질 수 있으나 춤예술에서 모호함은 춤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에 창작을 할 때 충분히 고려해봄 직하다고 생각한다. 이 얘길 하면서 조금 두려운게 보통은 여기서 무용계에 일반적으로 형성된 담론으로 흐를까봐서이다.
보통은 얘기가 이 방향으로 흘러가면 이구동성이다시피 “춤은 모호해서 보는 사람이 느끼는 거다, 보는 사람의 몫이다” 하면서 창작자의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의 방법론 없음을 포장하거나, “춤은 스토리를 전달하기에 적합지 않아서 분위기나 시적인 정서를 모호하게 표현하는데 적당하다”면서 연구도, 구조도 없는 이상한 작품을 만들어 만든 사람도 모르고 보는 사람도 모르는 개미지옥에 함께 빠지게 하는 자가당착의 논리로 빠질까 봐서이다.
앰비규어스는 단체 소개 제일 앞에 “‘몸’을 통해 음악과 춤을 표현하며 그것이 가장 정확하고 진실된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든다”고 한다. 이 안에 ‘모호함’과 모순을 이루는 생각과 개념이 몇 개 보인다. 그래서 난 앰비규어스가 자신들의 확장과 발전을 고민하면서, 멀리서 찾지 말고 무용단 이름을 다시 찬찬히 고민하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그 다음 단계를 모색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모호함’은 춤예술에서 뭘까? 앰비규어스무용단은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다시 해석해 낼까? ‘모호함’의 고고학을 완성해 어떻게 새롭게 자신의 역사를 만들 것인가? 이들이 정상에서 추락하지 않고 99.9의 고개를 어떻게 넘어갈지 궁금하다. 이들을 사랑하는 관객 대중도, 앰비규어스 자신도, 이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무용scene의 친구들도 99.9 다음을 기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지현
1999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등단했다. 2011년 춤비평가협회 회원이 되었으며, 비평집 『춤에 대하여 Ⅰ, Ⅱ』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서 왕성한 비평작업과 함께 한예종 무용원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아르코극장 운영위원과 국립현대무용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