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열린 경계, 춤 그리고 무대미술〉
춤의 언어를 들고 꿈을 꾼 작가들의 협업
권옥희_춤비평가

춤에 대한, 춤을 위한 배려와 적어도 춤을 방해하지도, 무용수를 위험하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는 마음. 이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내재해 있을 것이라는 당연한 믿음. 지금, 그 신뢰가 흐릿해져 있고, 그 신뢰가 흐릿해진 다음에서야 보이기 시작하는 어떤 곳에 서 있다. 춤을 위한 무대미술, 그 설치물의 물성을 극대화한 공간에 춤을 전시(?)한다는 매우 독창적인 춤현장, 그곳에. 기획자(강정환), 무대미술 작가(구동수), 그리고 춤 작가 다섯(장유경 김현태 김정미 서상재 이현정)이 함께 협업한 춤 미술 ‘실험적 프로젝트Ⅱ’ 〈열린 경계, 춤 그리고 무대미술〉(대구예술발전소, 5월 28일~7월 28일). 그곳은 미학적 실천의 장이었다.

춤은 공간에서 공간으로, 내밀한 곳에서 참여하는 방으로 공간이동을 하며 옮겨진다. 개인적이고 내밀한 공간에서 의미가 생성되는가 하면 또 다른 춤의 공간으로 이동하며 그 무언가가 되어간다. 이때 설치미술은 단순히 춤을 보조하는 사물로서의 장치가 아니라, 심각한 것이 되어 버렸고 본격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주변부에 있었던 것이 중심부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공간에서 또 다른 공간으로. 비워두거나 채우거나 무한히 열린다. 무시하기 어려운, 그러나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것이 되어 의미를 새롭게 재편한다.



김현태 〈바보〉 ⓒ옥상훈



첫 번째 춤이 시작되는 블랙박스 공간에 들어서니 크기와 형태가 다른 납작한 파편이 마치 유영하다 그물망에 걸린 것 같은, 파편을 단 철 구조물이 겹겹이 매달려 있다. 사각형 블랙박스 공간, 어두운 조명. 실제 공연에(〈바보〉(2014)) 설치했던 것보다 5배 크기로 확장시킨 크기의 구조물을 55개를 배치한 공간. 실제 춤 무대와는 또 다른 미술적 형태가 주는 독자적인 아름다움이 서늘한 미감을 뿜어내고 있다. 스미듯 구조물 아래 뒤돌아 서 있는 김현태(〈바보〉 안무·출연). 강철과 같고 냉엄한 무엇에 대한 감각을 포착하듯, 조심스레 움직이다 사라진다. 사라진 쪽을 따라 눈을 돌리니 6명의 무용수가 설치물 사이에 서서 그림자처럼 느리게 움직인다. 치마 뒤를 부풀리고 천으로 얼굴과 머리를 상투처럼 감쌌다. 강철의 숲, 그곳에다 소곤소곤 말을 거니 천천히 걸어 나오는, 마치 (춤)부조 같은,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김현태 〈꽃물〉 ⓒ손성민



다음 공간으로 이동하니 아크릴판이 천장에 줄지어 매달려 있고, 그 아래 아크릴이 늘어선 크기의 색동천이 펼쳐져 있다. 춤 〈꽃물〉(2023) 무대미술의 확장이다. 관객들이 들어서며 일으키는 미세한 공기의 흐름에 아크릴 판에 반사된 조명 빛이 일렁인다. 작은 빛의 수런거림을 본다. 그 아래 누워있는 김현태. 바닥에 등을 댄 채 추는 움직임이 천의 구김으로 번지는 것이 마치 색동물이 김현태의 춤에 물이 들고 있는 것인지, 춤이 색동천에 춤물을 들이고 있는 것인지. 상징적이든 실제적이든 간에 춤과 색동천은 한 덩어리가 되어 ‘꽃물’이 들어간다. 춤을 빛으로 되쏘는 수많은 거울조각 같은 아크릴판. 색동천을 모아 안아 들고 돌아서자, 어느 사이 아크릴판 아래 배경처럼 일렬로 늘어서 있는 앞 공간에서 춤춘 (춤)부조들.



장유경무용단의 〈푸너리 1.5〉 ⓒ손성민



다음 블랙박스 공간으로 이동. 세로로 매달린 길이가 다른 472개 알루미늄관의 숲이 나타난다. 장유경무용단의 〈푸너리 1.5〉. 검정색 의상을 입은 김용철이 관객을 맞이하듯, 뒷짐을 지고 공간 끝, 깊숙한 곳에 서있다. 기댈 아무런 현실적 유대도 없이 홀로서서 떠돔과 자기 방기의 가능성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고독한 긴장으로 만들어내는 춤의 깊이, 그 위태한 지점위에 서 있다. 아주 작게 오른쪽 왼쪽 몸을 흔들며 점차 확장시키는 춤. 날카로운 알루미늄 관을 피해가지 않고, 몸으로 손으로 죽 밀며 나아간다. 춤은 마치 절대적 긴장의 자리에서 두렵다고 소리 내지 않고 오히려 번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정신을 보여주는 듯하다. 알루미늄 관들이 서로 부딪히며 소리를 낸다. 춤의 의미가 확장된다.

상의를 벗어들고 바닥에서 천천히 일어나 앞으로 뒤로, 살풀이 수건처럼 들고 춤을 추다 머리에 뒤집어쓴다. 장구장단이 들어오면서 굿 음악으로 바뀐다. 바닥에 누웠다가 일어나 허리를 아래로 접자 머리에 뒤집어 쓴 상의가 앞으로 툭, 떨어진다. 마치 긴 머리칼을 풀어헤친 것 같다. 제자리에서 돈다. 머리에 썼던 상의를 허리춤에 묶고는 알루미늄관을 잡아 민다. 크게 흔들리는 각이 진 관. 위험하다. 마치 삶처럼 위태하다. 그 사이를 지나 벽(블랙박스 공간이다) 앞에 머리를 대고 서더니 이내 몸을 뒤집더니 잔걸음으로 뛰듯 공간을 누빈다. 장구의 빠른 장단에 걷던 관객들이 덩달아 뛰고, 빠르게 걷는다. 알루미늄각관을 누군가는 밀고, 누군가는 흔들리는 관을 잡아 멈춘다. 알루미늄 각관의 숲에서 한바탕 춤이 벌어진다. 몸으로, 손으로 스윽 밀고 지나간 자리에 관들이 흔들려 부딪치며 내는 소리, 그 움직임과 소리에 만(萬)가지 의미가 일어난다. 알루미늄 각관(둥근 봉이 아닌)은 그것은 그것대로의 성질이 있고, 춤은 춤대로의 성질이 있다. 이 두 성질의 결합을 통해 의미 공간의 축소와 확대를, 더불어 춤(삶)의 초월을 압축적으로 제시한 춤·공간이었다. 현장성을 잘 살린 여유와 격조가 돋보인.



서상재 〈신화적 상상력 Ⅱ-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손성민



블랙박스 공간에서 로비로 이동하니, 1000여 개의 투명플라스틱 컵이 바닥에 늘어서 있다. 서상재(아트팩토리)의 〈신화적 상상력 Ⅱ-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무대미술이다. 물이 담긴 컵을 들고 로비 가장자리 벤치위에 앉아 관람하듯 앉아있던 남자(서상재)가 음악이 흐르자, 조심스레 컵이 배열된 곳으로 들어선다. 들고 있던 컵에 남은 물을 마시고 줄지어 서 있는 곳에다 놓는다. 희망을, 혹은 꿈을 놓듯 조심스럽게. 까치발로 컵 사이를 조심조심 건너다닌다. 걷다가 엉거주춤 뒤돌아 누군가 컵을 넘어뜨리나 감시하듯 살피다가 다시 컵 사이를 뛰어다닌다. 노랑과 연두색의 잠옷 같은 의상을 입은 두 남자가 들어서더니, 발로 툭툭 컵을 차며 휘젓고 다닌다. 조심스레 다루었던 컵이 그들의 발에 채여 나뒹군다.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서상재와 남자 둘은 이내 의기투합, 컵으로 탑을 쌓는다. 그러곤 발로 툭, 무너뜨린다. 또 쌓고 무너뜨리기를 반복. 이윽고 관객들이 합세, 같이 컵으로 탑을 쌓으면, 누군가 발로 툭 차서 무너뜨린다. 사태에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쌓는다. 또 다시 발로 툭. 우리가 애써 쌓고 있는 것이 이처럼 가벼운 플라스틱 컵일지도 모른다. 의미가 일어나는 지점이다. 마지막 누군가가 컵을 조심스레 잡아보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컵을 집어 던져보게 하고, 발로 컵을 툭 차 보인다.

관객들이 작품 감상에 적극 참여하도록 작품과 상황을 만들어낸 기획이었다. 예술작품과 일상, 관객과 적극적 참여자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프로젝트와 설치의 개방적 유동성을 활용한기획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도록 춤으로, 움직임으로 유도한다.

춤은 구획과 분절을 통합해낸다. 말을 거두고 그저 춤추는 것. 거기에는 폐쇄·물질·축소·죽음· 구속과 개방·정신·확대·삶·자유가 동시에 있고 동시에 존재한다. 그런데 그걸 폭력적으로 휘어잡는 것은 가차 없이 없다고 선언하는 것. 춤이 거듭 일어나다가 어느 순간 폭발해버리는 것. 춤의 언어가 언제나 순간적인 것처럼 저 알루미늄 각관과 아크릴 판과 플라스틱과 흙도 언제쯤이면 흩어져 버릴 것이다. 발을 들어 한 걸음을 떼고, 손을 들어 공기를 가르는 순간 그 움직임의 시작은 이미 과거를 향해 출발하는 것과 같이, 춤도 이처럼 붙잡을 수 없다.



열린 경계로의 초대(시민의춤 지도:이현정, 디자인:구동수) ⓒ옥상훈



앞서 춤을 보조하는 장치가 아니라, 이미 심각한 것이 되어버린 무대미술은 이번 기획에서 단연 돋보였다. 다층적인 암시와 풍부한 상징,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설치물의 이미지로 춤의 공간을 구축함으로써 춤을 정확히 포착하려 한 작가(구동수)의 의도가 미학적으로 잘 드러난 무대미술이었다. 철과 알루미늄, 플라스틱 소재의 차갑고 견고한 물성으로 제작한 작업은 일견 서정의 부족을, 사물과 춤에 대한 비관적 전망으로 메우려 하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으나 단연코 그렇지 않다. 그(구동수)는 설치물과 춤 사이에, 춤과 춤 사이의 그 미약한 관계를 염려하는 듯하다. 차가운 것이 아니라 감정이 가장 낮게 가라앉는 순간을 관찰과 생각의 표준으로 삼고 있다. 쨍한 물성의 견고함은 춤의 서정을 가장 단단하게 드러나게 하는 방식인지도. 이 젊은 작가는 자기 노력에 얼마나 깊은 의식을 견지하고 있는가를 확장된 작품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세밀하게 계산하고 선택한 뒤 정교한 배치를 통한 설치물은 계산된 틈과 틈 사이, 논리를 몽환의 형식으로 바꿔놓는다. 작가(구동수)에게 있어서 춤은, 춤이 내포하고 있는 그 의도를 은유하고 때론 정확하게 이미지화한다는 것, 그것은 서로의 빛을 반사하는 거울의 이야기이기도. 예컨대 철망에 붙인 조각들의 다양한 형태는 한 인간의 내적 상태를, 그것이 춤을 추는 동안 무수히 이동, 변화를 보여주다 마지막에 하나의 원의 형태로 모아져 완성을 보여주는 작업(〈바보〉2014)은 깊은 감정과 중요한 개념을 표현하며 작품을 뒷받침하는 표현주의적 기준에 부합하는가 하면 개인적이며 보편적이고 폭넓은 이유를 전달하고 있다.

리플릿을 보니 2007년 〈숨,쉼〉부터 최근 〈만가〉까지 춤 무대작업이 40여 편이 넘는다. 공간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춤적인 물음, 춤의 배경이 되면서 춤의 저 편, 보이지 않는 곳을 은유하는 알레고리의 작업들을 보여준 작품이 많다. 정밀하게 계산하고 재단한 뒤 배치한 철제와 아크릴, 알루미늄의 구조 속에서 구체적인 춤의 언어와 냉철한 직관력으로 춤의 인상들을 담아낸, 춤 설치미술의 새로운 예술적 깊이와 경지를 보여준 전시였다. 기획자(강정환)와 미술작가(구동수) 춤작가(다섯)의 오래된 협업이 빚어낸, 서사적 역량이 돋보이는 기획이었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공부했다.​​​​​​​​

2024. 7.
사진제공_손성민, 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