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YJK댄스프로젝트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안무가가 중심이 된 춤 ‘프로덕션’의 승리
장광열_춤비평가

촘촘했다.
 분명한 컨셉트, 세밀한 구도, 안무가가 중심이 되어 조율한 프로덕션은 빼어났다. YJK Dance Project가 김윤정의 안무로 공연한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2월 19-21일,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 평자 21일 관람)는 인간의 신체를 매개로 하는 무용예술, 극장예술로서 무용이 보여줄 수 있는 경쟁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컨셉트 연출 안무가 김윤정의 시놉시스와 프레임은 정밀하게 맞물렸다. 캐스팅 된 댄서들은 작품 안에서 마음껏 놀았고, 음악 영상 무대 조명 등 스태프들의 협업은 그 합(合)이 안무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작업을 성공적으로 지원했다.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는 60분 길이의 장편 춤 작업으로는 아주 오랜 만에 나온, 프로덕션에 의한 조합이 빼어나게 이루어진 수작(秀作)이었다.






YJK댄스프로젝트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2020 창작산실/옥상훈




 안무가는 작품을 크게 세 개의 프레임으로 나누었고 이를 관통하는 소스로 ‘사과’를 가져왔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태동시킨 과학기술, 애플 스마트폰의 로고. 작품의 제목에 등장하는 ‘사과’는 이렇듯 과거와 현재,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관통하고, 안무가는 사과를 통해 태곳적 아담과 이브에서부터 스마트 폰 중독에 빠진 현대인에 이르기까지 행복과 욕망에 대해 묻는다.
 작품을 풀어나가는 안무가의 어휘는 다채로웠다. 그러나 과하거나 허하지 않았다. 〈베케트의 방〉 〈닻을 내리다〉 등 안무가 김윤정이 그동안 대극장에서 50분 이상 길이의 작품을 선보일 때 활용했던 다양한 내러티브와 캐릭터 댄서를 활용한 차별화된 움직임, 드라마틱한 요소를 곁들인 이미지 구현은 이번 작품에서도 그 힘을 발휘했다.
 안무가는 댄서들의 몸을 철저하게 탐구하고 그 특질들을 해부했다. 바디 전체, 긴 팔과 손가락의 움직임을 활용한 조형미 구축, 카메라를 통해 클로즈업시킨 손바닥 손등 손가락의 놀림, 신체의 정면과 후면 팔과 다리 등을 최대한 비틀고 구부리고 뒤틀리도록 해 만들어내는 댄서들의 기이한 형상은 인상적이었다.






YJK댄스프로젝트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2020 창작산실/옥상훈




 에덴동산 아담과 이브 김강민과 김유정의 태초의 이미지, 선명한 바디라인이 드러나는 이 장면은 인간의 몸이 갖는 원초성을 상징화하는가 싶더니 이내 금단의 열매 선악과로 인해 욕망의 실체로 변한다. 붉은색 조명의 질감과 두 명 댄서의 접촉된 지체, 뿌리가 드러난 천천히 낙하하는 나무 기둥, 무대 상 하수 바닥에 놓인 긴 천의 파동을 이용한 아담과 이브의 추방 장면 등 시각적 이미지는 초반부터 강렬했다.
 인도의 전통춤에서 보이는 손동작을 활용한 다섯 명 댄서들의 열 개 손가락과 긴 팔을 활용한 춤은 제의적 이미지를 넘어 신과 자연에 대한 찬미로 다가오고, 춤추면서 텍스트를 내뱉는 장면은 어느새 현대와 소통한다.
 이어지는 남녀 두 명 댄서들에 의한 아크로바틱한 동작과 세 명 여성 댄서들의 손가락과 머리카락을 활용한 움직임, 뱀으로 등장하는 AI, 상하체를 절묘하게 배합한 댄서들의 기괴한 몸은 마치 세포분열을 연상시키듯 과학과 만난다.
 안무가는 아담과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현대인의 사과를 중간 중간 절묘하게 버무렸고, 이 세 개의 큰 시간들이 교차하는 접점은 댄서들의 다양한 움직임이 더해지면서 춤 공연을 보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YJK댄스프로젝트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2020 창작산실/옥상훈




 종반부 “넌 어디서 왔니 넌 어디서 살아 넌 남자야 여자야” 등 AI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스마트 폰 안에 AI가 답해주는 그대로를 캡처해 들려주는 시도는, AI는 결코 우리가 듣고 싶은 답을 들려주지 못한다는 역설적 표현을 위한 의도된 설정으로 보였다.
 지미 세르의 음악은 그가 여타의 춤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다소 어둡고 무거운 색조에서 벗어나 작품의 흐름과 주제를 감성적으로 터치하는 순발력을 보였고, 이 같은 변화는 작품의 주제표출과 댄서들의 움직임을 더욱 살아 숨쉬게 했다.
 하얀 스케치북 페이퍼를 채워 가는 연필의 터치 음향까지, 다채로운 풍광과 댄서들 일상 속 빛바랜 사진들 수십 장이 빠르게 넘어가도록 처리하는 등 신현아의 영상은 작품의 메시지를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전했다.
 전선을 활용한 뿌리가 보이는 나무 형상의 무대미술(안상원)을 포함, 조명(김재억)과 영상, 의상(정호진)에 댄서들의 몸이 버무려진 시각적 임팩트는 만만치 않았다. 제작진에 시노그라퍼(scenographer)가 따로 없었으니 이는 순전히 연출을 맡은 안무가의 공으로 돌려도 무방할 것이다.
 제작진들이 사용한 쏘스들은 따로 떼어 놓고 보면 개개의 것들을 펼쳐놓은 듯 보일 수 있고 자칫 산만하게 난립되어 보일 수 있으나 안무가는 이를 적재적소에 적당한 사이즈로 절묘하게 구획했다.








YJK댄스프로젝트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2020 창작산실/옥상훈




 안무가의 메시지는 강요되지 않고 작품 전편을 통해 서서히 관객들에게 다가왔다. 마지막 장면, 일상적인 복장으로 스마트폰을 든 댄서들이 걷고 뛰며 일상에서 만나는 가장 즐거운 일들을 감성적인 음악과 함께 말할 때 관객들은 일상 속의 자신과 자연스럽게 접속한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날지도 모르는 이 장면은 안무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관객들의 가슴에 진한 여운으로 남긴다.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문명의 속도만큼 우리는 과연 더 행복한가? 온 세상과 너무나 쉽게 소통하고 있는 이 시대에 과연 진짜로 자신과는 소통이 되고 있는가?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진정한 의미의 각자의 행복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작품은 안무가가 던진 이 메시지에 대한 답을 관객들 스스로가 찾았다는 점에서 모호함을 안고 극장을 떠나는 대다수의 춤 작품과는 달랐다.
 아쉬움도 있었다. 과학기술과 사과와의 연계 장면은 향후 더욱 새롭고 다양한 소스로 확장되길 기대한다.








YJK댄스프로젝트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2020 창작산실/옥상훈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는 오래 동안 걸친 안무가가 적지 않은 탐구 작업의 산물처럼 다가왔다. 태초의 인간 - 과학의 발달로 인해 신으로부터 멀어진 인간 - 스마트 폰과 인터넷 세상으로 이어지는 알고리즘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을, 인문학적으로 펼쳐냈고, 여기에 논리적인 안무와 촘촘하게 엮은 연출을 더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일등공신은 분명한 컨셉트와 이를 스태프들과의 조합으로 이끌어낸 안무가의 자신감과 뚝심, 각기 다른 몸의 질과 개성을 지닌 댄서들의 차별성을 활용한 안무가의 감각과 그 다른 합을 앙상블로 구현해낸 댄서(강민경 김강민 김유정 김주희 배민우 신현아 핍핀현준)들의 열연에 기인한다.
 댄서들의 춤과 연기는 작품 안에서 살아 숨 쉬었다. 작품 밖에서 그저 연습된 주어진 동작만을 펼쳐내는 대다수 프로젝트 무용단의 우를 범하지 않았다.








YJK댄스프로젝트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2020 창작산실/옥상훈




 그동안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 선정 작품은 주제의식은 좋으나 이를 표출하는 과정에서 안무가가 힘을 잃거나 중심을 잡지 못해 연출가의 작품이 되어버린 경우, 덜어내지 못하고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과욕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는 창작산실 출품작들의 평균점을 상승시켜 주는 것을 넘어 예산과 지원인력, 댄서들과 연습 일정의 확보 등에서 안정적인 국공립무용단의 컨템퍼러리댄스 작품제작에도 참조될 점이 적지 않다. 60분 길이의 컨템퍼러리댄스의 ‘수준’을 비교하는 마로미터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안무가에 의해 댄서와 스태프들이 빛난 무대였고, 60분 길이의 장편 춤 작업에서 안무가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확연하게 보여준 무대였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 ​ ​ ​​​ 

2021. 3.
사진제공_2020 창작산실/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