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고블린파티 & 최효진 〈놀이터〉
‘놀이’를 활용한 다른 해석과 사회적 메시지
장광열_춤비평가

아이들에게 놀이터는 지금 현재를 즐기는 더 없이 즐거운 공간이고, 어른들에게 놀이터는 지난 시절을 추억하는 공간이다. 그런가하면 지금 현재 어린 자녀들을 둔 부모들에게 동네 놀이터는 일상생활 속 아이들과 함께 소통하는 공간이자 때론 자신만의 사색의 터가 되기도 한다.
 이렇듯 기억 속에 존재하는 놀이터에서의 각기 다른 추억들과 일상생활 속 놀이터는 예술가들에게는 어떤 영감을 불러일으킬까?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하는 무용 예술가들에게 이 공간은 어떻게 해석되고 또 어떤 형태로 무대 위에 표출될까?
 2020년 하반기 서강대메리홀대극장 같은 공간에서 공연된 놀이터를 소재로 한 두 편의 춤 작품은 담아 낸 내용과 구성, 작품을 풀어내는 방법 등에서 확연하게 달라 평자에게는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최효진 안무 〈놀이터〉

중견 무용가 최효진이 안무한 〈놀이터〉(12월 19일, 서강대메리홀대극장)는 현재와 과거가 공존한다. 대부분의 놀이터에 설치되어 있는 시소와 철봉, 타이어를 이용해 만든 놀이기구를 원형 그대로, 때론 해체시켜 오브제로 활용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로, 그리고 치열한 경쟁사회 속 군상들의 모습과 연계시켜 춤으로 풀어냈다.
 작품은 암전 상태에서 강렬한 빛이 난사되는 손전등을 들고 입장한 최효진이 놀이터 시소 앞에서 홀로 추는 춤으로 시작한다. 미니멀 전자음악을 배경으로 댄서들이 하나 둘 타이어를 굴리면서 등장할 때까지 12분 넘게 추어지는 그의 느린 춤은 시종 무겁지만 고혹적이다. 관객들은 처음에는 춤추는 이의 놀이터에서의 이야기들을 상상하다 어느 새 자신에게 간직된 추억을 되새김질한다.








최효진 〈놀이터〉




 이어진 남녀 열 명의 무용수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표출된다. 타이어와 짧은 봉을 활용한 여섯 명 여성 댄서들의 춤은 솔로 2인무 3인무 4인무 등으로 다채롭게 변이되고, 네 명의 남성 무용수들이 등장하면서부터는 남녀 2인무가 추어지기도 한다. 이어진 열 명 무용수들의 시소를 이용한 춤 구성은 안무가가 작품을 통해 표출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어떤 것인지 확연하게 드러낸다.
 시소 위에 올려 진 댄서들의 몸은 처음에는 평형이 되었다가 곧 왼쪽으로 기울어지고, 다시 오른쪽으로 기울어진다. 왼편과 오른편 공간을 나누어 점한 댄서들의 몸은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이 점한 공간이 위로 올라가도록 치열한 기 싸움을 펼치는 듯 보인다.
 시소를 활용한 춤 구성은 이 작품의 백미이다. 시소 위로 올라타기, 시소 위에서의 미끄러지기, 시소 밑으로 들어가기 등 열 명 댄서들의 춤은 시각적으로 또 무 음악 속에서의 기묘한 긴장감이 주는 강렬함이 만만치 않다.
 시소 위 높낮이의 뒤바뀜은 출세를 위해, 더 높은 자리를 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이 시대 현대인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평형을 이룬 시소, 왼편으로 기울어진 시소, 오른편으로 기울어진 시소…. 그 형태가 바뀔 때마다 그 위에 올라선 댄서들의 표정은 그러나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되풀이되는 경쟁에 이미 익숙해진 현대인들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이 장면은 빼어나다. 시소 주변에서 움직임을 최대한 절제한 안무가는 댄서들이 시소를 벗어나 그라운드로 돌아오면 다양한 춤으로 볼거리를 선사한다.








최효진 〈놀이터〉




 시소가 사라진 공간에서 열 명 댄서들의 춤은 더 자유로워지고 과감해진다. 타악이 가미된 빠른 템포의 음악에 실린 댄서들의 움직임은 이전과는 군무의 패턴이 달라진다.
 작품은 최효진이 다시 등장하면서부터 그 분위기가 바뀐다. 최효진의 솔로 춤에 집중된 라이트가 전체를 밝히면 놀이터 한 편에 피크닉 박스가 놓여있고 장난감 놀이에 몰두하는 두 어린이의 모습이 드러낸다. “햇살이 참 좋다…”는 여성 가수 노래가 흐르면 최효진의 춤도 그의 표정도, 조명도, 밝고 화사해진다. 현실 속의 주인공이 갖는 행복한 일상으로의 회귀이다. 이전까지 다소 무거운 톤으로 일관했던 작품은 3분여를 남겨둔 종반부에야 변화를 꾀한다. 안무가의 계산된 이 설정은 생각보다 그 임팩트가 강했다.








최효진 〈놀이터〉




 안무가는 전반부와 종반부에는 자신의 모습을, 그 가운데에 현대사회 속 대중들의 모습을 놀이터를 차용해 투영시켰다. 높아보였던 미끄럼틀, 하늘에 닿을 것 같았던 그네, 멀리 뛰고 싶었던 철봉, 자꾸 무너져 버린 모래 등 최효진이 해석한 놀이터는 늘 희망했던 것들이 이루어지지 못한, 자신의 일상과 경쟁이 연속되는 치열한 사회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평자에게 안무가 최효진의, 자유로운 공간 놀이터의 해체작업은, 마치 금방 해결될 것 같은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이어지면서 장기화되는 암울한 갇힌 상황을 빗댄 것처럼 보였다.


고블린파티 〈놀이터〉

고블린파티의 〈놀이터〉(11월 19일, 공동창작: 이주성 임성은 안현민 이연주 박소진 임진호 지경민)는 놀이터라는 공간에서 벌어졌던 추억의 놀이들을 알루미늄 서류가방, 놀이기구 등을 해체시킨 오브제와 매칭, 다양한 움직임으로 유쾌하게 풀어내면서 코로나19로 인한 암울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주제의식이 돋보였다.
 작품은 언니, 오빠들, 형, 동생들이 놀이터에 모여 편을 갈라 놀던 시절을 끌어낸다. 여름에는 물총 싸움, 가끔은 흙싸움, 겨울에는 눈싸움, 애매한 시즌에는 가방을 휘둘러대며 계절마다 종횡 무진 뛰놀며 전투를 벌이던 어린 시절의 편싸움이 몸을 매개로 하는 춤 공연 무대로 소환되었다.








고블린파티 〈놀이터〉




 전반부 세 명의 남성 무용수와 네 명의 여성 무용수가 서류 가방을 활용해 선보인 움직임은 변이는 고블린파티 컴퍼니 무용수들의 순발력과 그들의 합(合)이 얼마만큼 강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만큼 이어지는 동작이 매끄럽고 접촉상황에서의 몸이 만들어내는 조형미가 신선하다.
 가방 손잡이를 활용한 구성에서 손목의 꺾임과 풀림, 가방을 위로 올리고 밑으로 떨어뜨리고 팔로 휘두를 때, 가방을 두 다리 사이에 끼우고 움직일 때 위아래, 좌우로 변이되는 댄서들의 몸의 구도는 그 자체가 변화무쌍한 군무가 된다.
 이내 가방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들의 몸은 그 옛날 놀이터에서 누군가를 따라 마음껏 달렸던 옛 추억처럼 다양한 움직임으로 쉼 없이 변주되고, 커다란 봉을 활용한 장면에서는 놀이적인 요소들이 더욱 살아난다.
 중반을 넘어서면서 시작부터 무대 오른편 공간을 점하고 있던 철제 놀이기구가 해체되면서, 분리된 구조물들로 인해 놀이터는 순식간에 뒤바뀐다. 서로 부딪칠 때 나는 소리와 댄서들의 맨발이 그라운드와 접촉해 내는 소리 등 새로워진 사운드 매칭은 댄서들의 움직임을 보는 춤에서 듣는 춤으로 치환시킨다.








고블린파티 〈놀이터〉




 고블린파티의 작품에서 늘 발견되는 기발한 아이디어의 조합은 이 작품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전자음악에서 분위기를 전환시킨 가사가 있는 음악, 가방을 열자 나오는 가방 속 물건 들, 가방에 낙서하기, 심지어 가방의 금속성 잠금장치를 활용한 사운드 만들기까지 하나의 오브제를 다채롭게 활용하는 발상은 〈옛날 옛적에〉에서 사물악기와 곰방대 등을 활용해 다채로운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병행시키던 순발력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채로운 음악의 활용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일조했다. 리듬이 반복되는 전자음악, 짧은 단어들을 강조하거나 텍스트의 의미를 작품의 전개와 연계 시킨 랩 형태, 때론 서술 형태로 사용한 음악, 비행기의 엔진소리와 같은 굉음, 메트로놈을 작동시킨 듯 일정한 템포 등 다양한 음악을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여기에 더해 작품의 전환, 완급을 조절하기 위한 그 접점을 기막히게 캐치하는 능력은 이 작품이 집단창작 작업에서 올 수 있는, 디테일을 놓치는 위험성을 커버시키고도 남는다. 이는 방향제안(임진호 지경민), 어레인지(이경구), 음악(자크맨) 등 제작진들의 역할 분담이 분명하게 제대로 이루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놀이터가 함의하고 있는 놀이적 요소들을 다른 형태로, 보다 창의적인 또 다른 그 무엇으로 담아내는 시도가 더해진다면 이 작품은 고블린파티의 경쟁력있는 레퍼토리로 정착될 가능성이 높다.








고블린파티 〈놀이터〉




 놀이터라는 공간을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인 현실과 연계했다는 점에서,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에서 놀이터에 설치된 놀이기구들을 오브제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두 단체의 작업은 공통점을 갖지만, 작품에 담아내는 콘텐츠는 전혀 달랐다. 몸을 매개로 하는 춤예술 작업이 갖는 다양성을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이.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 ​ ​ ​​

2021. 2.
사진제공_고블린파티, 최효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