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최진한 〈평안하게 하라〉
불안하세요? 어느 처방전
김채현_춤비평가

불안으로 불안하다면 〈평안하게 하라〉를 보라. 2020 창작산실의 일환으로 올려진 〈평안하게 하라〉는 최진한(댄스프로젝트 탄 탄타 단)이 처방한 불안 진단서이다(12월 11~13일, 대학로 예술극장).
 자기 홀로 펼쳐내는 모노 댄스 드라마에 치중해온 최진한이 드물게 여러 춤꾼들을 기용한 작품으로 〈평안하게 하라〉를 내놓았다. 여기서 그는 특이하게도 수프를 담는 큰 도자기 접시들이 달그락대는 소리를 내게 해서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또한 구체적 정황을 짚어내기가 쉽지 않은 무대 상황에서 이 작품을 소화하려면 상당한 집중력과 인내심부터 필요하며, 어떤 면에서 이 작품이 잔잔한 긴장의 연속인 것도 다소 특이한 점이다. 게다가 〈평안하게 하라〉에서 평안해지지 않는 것은 역설적이다.








  

최진한 〈평안하게 하라〉 ⓒ김채현




 다량의 수프 접시를 겹쳐 들은 어느 남성이 마치 수전증에 걸린 듯이 접시들이 달그락대는 날카로운 소리를 끊임없이 내면서 등장한다. 그는 캐주얼한 수트 차림이다. 그 주변으로 몇 사람은 사지로 엉금엉금 기어다니면서 배회하고, 각자의 등에는 10개 가량의 큰 수프 접시들이 얹혀 있다. 그의 캐주얼한 수트 차림은 지금 신경 쓰이게 하는 이 상황이 일상 속의 것이라는 것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렇다면 주변 사람들은 그와 일상적으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불안감은 우리의 일상에 만연해 있고 우리는 불안의 심연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몇 사람은 등 위의 자칫 깨지기 쉬운 접시들을 그에게 안기는 곡예를 아주 조심스럽게 수행한다. 자신이 받쳐들은 삼사십 개의 접시를 그는 계속 달그락대다 무대 한켠에 와그르르 쏟아놓았고 그 날카로운 소음에 객석마저 신경이 곤두서기는 마찬가지다.
 이처럼 평안하기는커녕 불안한 상태를 15분 정도에 걸쳐 잔뜩 고조시키는 상황을 멈춘 다음 다섯 출연진들은 대개는 집단무로써 약 1시간 동안 이어나갔다. 근래 보기 드물게 오랜 시간 동안 펼쳐진 춤 공연물이 아닐까 싶다. 무대에서 그들 각자는 떨어진 상태에서 각자 상대방들을 의식하면서도 의식하지 않는 척하거나 살피면서도 살피지 않는 척한다. 각자의 미세한 움직임들은 제 자신에게서 연유하는 움직임이 아니며, 실은 상대방들을 서로 의식하는 기미가 역력하다. 각자 개별성과 독자성을 가진 존재인 듯싶어도 기실 그들의 움직임과 자세는 매우 유사하여 마치 전염되고 감염된 듯한 행동들로 보인다. 다시 말해 〈평안하게 하라〉에서는 이와 같이 개별 존재들이 상대방들을 의식하는, 더 심하게는 염탐하는 행태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최진한 〈평안하게 하라〉 ⓒ김채현




 공연에서 부분적으로는 낮은 음향의 소프라노 성악곡이 들리고, 작품의 대부분에서는 매우 짤막한 소절의 잔잔한 미니멀 음향이 배경을 이루었다. 작품에서 기승전결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무대에 펼쳐지는 것은 상대방들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장면들이다. 상대방을 의식하는 그런 장면들이 유사할지라도 동일한 부분은 없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한 모습을 연출하는 움직임들은 매우 조밀하였으며 여기에 더하여 수다스럽지 않은 구성 또한 잦은 변화를 동반하는 가운데서도 내적인 질서를 간직하였다. 이런 점이 〈평안하게 하라〉가 상당한 공력을 들인 수작(秀作)임을 말해주는 것은 물론이다.








최진한 〈평안하게 하라〉 ⓒ김채현




 〈평안하게 하라〉가 묘사하는 불안은 죽음이나 질병처럼 나 개인에게서 기인하는 그런 불안이 아니다. 작품은 주변의 타인에게서 기인하는 나의 불안에 앵글을 맞춘다. 상대방들을 살피며 의식한다는 것을 감춘 채 움직여도 각자의 움직임에서는 차이가 난다. 부러운 상대방만큼 되고 싶으나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불안해하는 나. 상대방들과의 어쩔 수 없는 불일치성에서 불안이 또아리를 틀고 그래서 서로 간에 살피기는 반복된다. 평안한 나의 부재 상태!
 안무자 자신도 지적하는 바이지만, 일례로 소셜 미디어를 통해 타인을 쉽게 들여다보고 거기다 자신을 투영할수록 불안의 정도가 높아질 가능성은 농후하며, 이런 현상을 실제 짐작하기란 어렵지도 않다. 소셜 미디어 시대에 빠르게 심화 확장되는 감이 있으나, 그것은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로서 유구한 세월 동안 범해온 허상이자 딜레마이기도 하다. 자아 정체감은 사회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최진한 〈평안하게 하라〉 ⓒ김채현




 이 공연의 무대에는 병풍처럼 접히는 벽체 구조물이 장치로 사용되었다. 창이 뚫린 그것은 애당초에는 어느 집 구실을 하며, 공연 진행 중에는 여러 형태로 접히거나 펼쳐져서 무대 공간을 다양하게 구획 연출하고 변화를 주는 장치 구실을 한다. 작품 끝 무렵에 벽체는 다시 펼쳐지고 연초록색 조명으로 물들여져 그 너머에 어느 가정이 있는 집으로 되돌려진다. 이후 출연진들도 벽체 너머로 돌아가며, 창문으로 보이는 얼굴 없는 익명의 상반신 모습들은 각자 자기 집에서 느리게 서성인다. 이 장면을 통해 안무자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처방전을 제시하려고 한 것 같다. 타인을 의식할수록 불안감이 가중된다면 타인과 거리를 두거나 그에 얼마간 눈감는 것, 아니면 타인을 의식하는 나 자신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평안의 지혜라는 것.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21. 2.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