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법인 부산문화회관은 무용단을 비롯한 7개 시립예술단체를 운영한다. 2018년 1월 재단(대표 이용관)은 기존 공모제가 아닌, 새 예술감독 선출방식을 도입하였다. 무용단의 경우, 추천위원회가 후보 2인을 추천하고, 이들의 경합공연을 통해 선정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다소간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예술감독(이정윤)이 확정되었고, 12월 4일과 5일 정기공연을 겸한 취임공연을 가졌다. 코로나19의 재 확산으로 인해 방역이 강화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의 기대와 관심을 반영하듯 문화회관대극장은 연일 북적였다.
신작 〈소생, Regen〉은 천도굿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망자의 넋을 위로하여 저승으로 인도하는 이것은 우리 땅 전역에 나타나며, 지역에 따라 씻김굿(전라), 오구굿(경상‧강원), 지노귀굿(서울‧경기‧황해), 수왕굿(평안), 망묵굿(함경)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죽은 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교 사십구재 또한 천도제의 한 양태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은 특정 지역에 천착하기보다, 천도제의 보편적 구조와 몇몇 의식 및 무구(巫具)를 빌려온다. 그리고 망자와 무당을 중심으로 여러 배역(백립이, 앞서 간 백립이, 소생대기자, 큰무당, 소생사, 지전사)을 등장시킨다. 그런데 하나의 발단의 씨앗이 전개되어 갈등이 최고조로 증폭되고, 대단원에서 문제가 해소되는 무용극의 일반적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대신 천도굿을 모티브로 하는 3개의 독립적인 장(場)을 나란히 배열시킨다.
‘비나리’란 표제를 달고 있는 1장은 크게 4개의 장면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 장면은 한 사람의 죽음이다. 영화〈기생충〉과 가요〈야생화〉의 작곡자로 유명한 정재일의 음악이 울러 퍼진다.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은 국악라이브연주로 교체되고, 소생사(healer) 하나가 무대를 가로지르며 질주한다. 바삐 달리던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한 사람 앞에서 멈춰서고, 생사를 살펴 죽음을 확인한다. 연이어 소생사 무리가 수건춤을 추기 시작한다. 죽음 앞의 수건춤은 〈살풀이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양팔을 화려하게 펼쳤다가 맵시 있게 휘감는 동작에서, 진혼(鎭魂)의 정서를 감지하기 어렵다. 대신 몸의 자태와 끊임없이 펄럭이는 작은 수건만이 시각을 사로잡는다.
두 번째 장면은 무당과 망자의 만남으로, 천도굿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무대 후면에 설치된 긴 단상 위에 큰무당이 등장하고, 죽은 이가 그녀 앞에 선다. 무녀가 흰 갓을 씌우는데, 갓을 쓴 망자가 작품의 주인공 백립이다. 단상 아래, 검은 옷의 소생사와 흰 옷의 소생대기자들이 합동군무를 시작한다. 소생사는 큰무당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고, 소생대기자는 백립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의상으로 구분될 뿐, 각각의 캐릭터가 명시적으로 들어나지 않는다. 앞서의 수건춤 동작과 별반 차이가 없는 움직임을 다 함께 이어갈 뿐이다.
세 번째는 무당의 비나리이다. 한바탕 춤이 잦아들면, 큰무당이 단상 아래로 내려와, 복(福)을 비는 비나리를 한다. 이어 무구(巫具)인 지전을 이용한 지전사의 군무, 지전사와 소생사의 합동군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말미로 갈수록 환희용약(歡喜踊躍)하고, 유리구슬로 이어 놓은 듯한 샤막이 조명을 받으며 천천히 내려온다.
네 번째는 무당의 악귀 쫓기이다. 짧은 암전 이후, 큰무당과 백립이 재등장한다. 무녀는 악귀를 쫓을 때 쓰는 대신칼(竹神-)로 백립이를 내려친다. 백립은 흰 갓을 벗어 던지고, 무대 중앙으로 달려가 괴로움을 토로하듯 솔로 춤을 춘다. 음악이 멈추자 격한 춤도 멎는다. 큰무당이 거부하는 백립에게 흰 갓을 다시 씌우면서 장면은 마무리된다. 중요한 소도구로 빈번히 등장하는 흰 갓의 의미는 무엇인가? 알기 어렵다. 다만, 씻김굿에서 망자를 상징하는 신체를 만들 때, 갓을 의미하는 솥뚜껑을 사용한다. 이것을 원용한 것이 아닌가란 짐작만 해볼 뿐이다.
2장의 표제는 ‘12소생사 그리고 소생 키트-인터미션’이다. 12명의 소생사가 오케스트라피트 앞에 줄줄이 선 다음, 객석으로 내려와 방역마스크를 관객에게 나눠 준다. 그리고 텅 빈 무대에 ‘앞서간 백립이’란 인물이 등장하여, 〈살풀이춤〉 〈한량무〉 〈입춤〉 계열의 동작을 섞어 놓은 듯한 움직임을 이어간다. 이러한 상황이 한 동안 지속되다가, 소생사가 무대로 되돌아오면서 종료한다. 만약 2장이 휴식시간을 이용한 퍼포먼스라면, 이 과정(a series of process)에 참여한 관객과 댄서는 무엇을 경험했는가를 물어 볼 수 있다. 뻔한 기획으로 인한 진부함, 치밀하지 못해 어색함, 캐릭터와 그 표현의 모호함으로 인한 당혹감이 아니라고 부정하기 어렵다.
작품 제목과 동일한 표제를 가진 3장은 5개 장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처음은 넋(魂)의 이미지화이다. 많은 수의 소생대기자들이 백립을 중심으로 큰 원(圓)을 이루며 앉아 있다. 이들 모두는 소생을 기다리는 망자의 넋이며, 인간세상을 떠도는 슬픈 영혼이다. 몇몇이 백립을 향해 다가가고, 나머지는 특별한 액션 없이 퇴장한다. 작은 원을 만든 그들은 태극권에 나올 법한 움직임을 천천히 이어간다. 무술을 닮아있고, 유려한 손동작이 부각되는 여기서 감지된 이미지는 무색무취(無色無臭)이다.
두 번째는 ‘씻김’ 의식의 변용이라 할 수 있다. 전라도 씻김굿의 중요 절차인 이것은, 빗자루에 물을 묻혀 망자를 상징하는 신체를 깨끗이 씻겨주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큰무당은 바닥에 누워있는 백립의 몸을 나뭇가지로 쓸어주고, 손과 발을 가지런히 모아준다. 그런데 큰무당이 들고 있는 나뭇가지가 요란하게 흔들리기 시작하고, 고요히 누워 있던 백립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운다.
세 번째는 씻김굿 무당의 이미지화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 故박병천의 대표적인 구음(口音)이 라이브로 재현되고, 많은 수의 소생사가 여기에 맞춰 춤을 춘다. 굿춤에서 볼 수 있는 신기(神氣)는 없고, 꼿꼿한 자세로 맵시를 강조하는 동작이 계속적으로 나타날 뿐이다.
네 번째는 오구굿의 ‘강신너름’이나 지노귀굿의 ‘망자대잡기’의 변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둘은 가족이나 동네사람 또는 무당이 망자의 못 다한 말이나 맺힌 한을 대신 토로하는 것이다. 장면이 시작되면, 긴 대나무를 든 사람들이 곳곳에 서 있다. 백립은 저항하듯 그 사이를 헤집고 다니고, 대나무는 그 뒤를 쫓는다. 스펙터클한 혼돈이 지속되다가, 대죽(大竹)이 그녀의 양어깨에 수북이 쌓인다. 힘겹게 뿌리친 백립은 한 덩이의 무리 위에 올라탄다. 마치 격랑(激浪)에 표류하는 듯하고, 원과 한을 토하듯 오랫동안 몸부림친다.
다섯 번째는 천도굿 말미에 반드시 존재하는 ‘길닦음’의 변용이다. 지역마다 명칭과 방식에 있어 차이가 있지만, 저승길을 상징하는 긴 무명필을 이용하여 망자의 넋을 저승으로 인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검은 지전을 든 지전사 무리가 한 바탕 춤을 추며 판을 휩쓴다. 이어 전원이 출연하여 발레 군무진처럼 대형을 지워 긴 저승길을 만든다. 그 길 위에 앞서간 백립, 큰무당, 백립이 선다. 큰무당은 백립에게 흰 갓을 씌우고 퇴장한다. 갓을 쓴 백립은 앞서간 백립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걸음마다 꽃이 피고, 건강하고, 편안하길’ 축원하는 비나리가 흘러나온다. 여태껏 모호했던 앞서간 백립은 저승이나 극락세계를 의미하는 듯하고, 주인공 백립이 저승에 가는 것으로 작품은 마무리된다.
작품 〈소생〉은 다소간 복잡한 내용을 여러 배역을 중심으로 풀어간다. 그런데 이들은 춘향이나 이몽룡처럼 전형화되고 일반화된 인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작품 이해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 천도굿의 의례나 무구 또한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때문에 명확한 내용 전달을 위해서는 배역, 의례, 소도구에 대한 적확한 표현이 동반될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소생〉에서 그러한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캐릭터와 소도구의 모호성으로 인해 내용이 쉬이 포착되지 않는다. 대신 한국적 발레를 지향한 초기 국립무용단의 기법 구사방식을 닮은 군무가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시각을 지배한다. 이 점에서 〈소생〉은 천도굿을 모티브로 한 화려한 버라이어티쇼라고 할 수 있다.
쇼가 된 작품은 코로나19와 같은 동시대 현안들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주는가? 작가는 주인공 백립의 죽음과 맺힌 한을 중요하게 이미지화한다. 그러나 죽음의 원인과 한의 실체에 대해 침묵한다. 이로 인해 오늘 우리 삶의 문제로 해석해 볼 여지가 많지 않고, 당대성(當代性) 확보에도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전통 수용에 있어 소재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는가를 물어볼 수 있다. 작품은 천도굿의 중요 의식(씻김‧강신너름‧망자대잡기‧길닦음), 무구(지전‧신칼‧신대), 무악(비나리, 씻김굿 구음)을 곳곳에 배치한다. 그런데 확대‧축소‧생략을 통한 창조적 변용이라기보다, 단순 인용에 그침으로써 그 의미가 선연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 점에서 소재주의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차용한 것이 한국창작무용으로 분류되는 여러 작품에서 이미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진부한 재료 선택이라 하겠다.
앞으로 3, 4년 뒤 ‘부산오페라하우스’와 ‘부산국제아트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공연공간이 새롭게 조성되는 시점에서,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선출방식의 변화는 질적 향상을 통한 경쟁력 확보를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도에 비해 그 결과물이 미흡하다. 책임 있는 점검과 반성, 그리고 새 도약을 위한 모색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