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무용단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유희로 제시한 반유희의 레드카드
김채현_춤비평가

이것은 유희가 아니라고 한다. 유희가 아니라면 이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국립현대무용단이 선보인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안무: 남정호 예술감독)는 유희로 가장한 그 무엇이 ‘이것’이라고 말한다(예술의전당 토월극장, 10. 16~18.).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는 14명의 남녀 출연진이 하나나 둘씩 탈락되는 현상을 소재로 한다. 이 무대에서 일단 끌려나가고서는 원위치로 다시 복귀해서 춤추는 출연자는 없었고, 탈락하면 춤추는 역할이 완전히 박탈된다. 각각의 탈락은 별다른 순서도 없이 불쑥불쑥 발생한다. 맨앞 도심의 어두운 빌딩 대로가 이미지로 제시되는 데서 공연은 시작되는데, 그런 도시 현장 곳곳에서 벌어지는 탈락 현상들이 무대화된다. 탈락이 곧장 도태로 이어지는 세태가 날이 갈수록 극점으로 치닫는 지금의 세상 분위기를 배경으로 놓고 보면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는 잔잔한 직격탄으로 다가올 것이다. 언제 나락에 처할지가 예측불허인 사회, 그 저변을 관통하는 불안감이 이 작품에서 라이트모티프처럼 기지개를 켜곤 한다.




국립현대무용단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고흥균/국립현대무용단




 탄탄한 지체의 그들은 시시때때로 집단무를 펼친다. 싱싱하게 푸른 무대 위에서 유연한 몸놀림이 더해진 경쾌한 동작들이 시선을 자극하며, 춤에 몰두하는 그 모습들이 이 작품에서는 유희에 해당한다. ‘이것은 유희이다.’ 14명의 유희가 맨마지막 남은 한 사람의 유희로 되기까지 춤의 구도와 대형은 다양한 양상으로 변주된다. 출연자들의 탈락이 연속되는 흐름을 쫓아 무대 구성도 점차 유동적이게 된다. 그들 가운데 누군가는 탈락해야만 하는 수상쩍은 게임들이 관객 눈앞에서 펼쳐지고 거듭되는 탈락에서 무대 위의 변화가 파급되므로, 객석에서는 이어질 춤들을 상상함 직하다.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는 무대에서 일어날 변화상을 관객이 예측하며 그려보도록 유도하는 좀 특이한 면이 있다. 이 또한 이 작품의 개성일 듯하다. 다시 말해, 객석을 향해 일방적으로 제시해 보이기보다는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는 객석이 묵시적으로 가담할 계기를 던지며 여기서 준비된 관객은 작품 제작진과 함께 나름 지적인 유희를 경험하게 될 것이었다. 아울러 공연에는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예수 수난상〉 〈반가사유상〉, 수피춤 등의 이미지들이 차용되어 그 계보들을 관객이 자유로이 음미해보는 순간들이 덧붙여진다.




국립현대무용단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고흥균/국립현대무용단




 여기서 탈락과 탈락 사이의 연계성은 짚어지지 않고 공연에서 10건 정도의 탈락이 옴니버스 양식으로 진행된다. 탈락과 탈락 사이의 춤들은 각각 독립되어 있어 짤막한 막간극이라 해도 무방하다. 애당초 흰옷 차림이던 출연자들은 한둘씩 끌려나가듯이 사라진 후 검은 제복의 무리에 가담해서 탈락자들을 끌어내는 역할자로 다시 등장한다. 검은 제복의 무리에게는 춤추는 역할이 아예 주어지지 않으며 그들은 탈락되는 사람들을 어떤 보이지 않는 지시에 따라 무표정한 몸짓으로 기계적으로 끌어내어 처리하는 모습으로 일관한다.
 탈락된 출연자는 탈락과 동시에 각자 이름과 개인적 취향을 적은 글자와 함께 그 얼굴 사진이 공연 무대 전면에 공지된다. 흰색과 검정으로 나눠진 사회(극히 잔인한 경쟁 사회!)에서 이제부터 검정에 속할 사람들의 개인 신상들이다. 억울한 사고의 희생자를 미디어에서 소개하는 방식의 이러한 이미지가 줄곧 이어지면서 탈락이 우리 곁의 일상임을 수시로 환기한다.
 냉혈한이나 로봇에 가까운 그 검정 제복들이 자기 감정이나 의지를 노출하는 것은 흰옷의 사람들에게 야유를 퍼붓는 행동을 보일 때뿐이다. 탈락이 거듭되어 흰옷의 출연진이 다수에서 소수로 줄어드는 것과 반비례해서 무대에는 검은 탈락자들이 유령처럼 등장하는 빈도가 높아가고 이것은 유희가 아니라고 밝히듯이 유희는 유희를 벗어나 버린다. ‘이것’은 유희가 아니었다.




국립현대무용단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고흥균/국립현대무용단




 안무자 남정호는 1980년대 중반 〈풍선심장〉으로부터 〈자화상〉, 2000년의 〈빨래〉 등 다수의 작품에서 유희를 형상화하여 관심을 모았었다. 그 작품들은 대체로 여성주의 시각에서 호모 루덴스의 모습들에다 풍자나 반어법, 여성의 젠더 심리를 더하는 방식으로 펼쳐져 남정호의 춤 세계를 뒷받침해왔다. 이번의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는 유희를 통해 세상사를 과감하게 진단하는 선으로 훨씬 더 나아갔다. 중견을 넘어 원로의 반열을 저만치 앞둔 연치(年齒)에, 여전히 머물지 않는 남정호스러움이라 해야 할까.
 유희로 가장한 반(反)유희,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에서 민낯을 드러내는 오늘의 자화상이다. 집단무를 함께 하는 와중에 어느 탈락자를 지목하여 뒤집어씌우고 묻지 마 집단 폭력을 행사하는 데 치중할 뿐 탈락자가 생겨나도 관심 밖이고 그들에게는 각자 자신의 생존만이 절대적인 것이다. 상대방을 타자로 내쳐서 냉소적으로 지켜보는 관음증의 자세들(특히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패러디한)이 공연에서 비중 높게 묘사된다. 잔인한 세태는 일상 처세의 원리로서 반유희를 불러들이며, 가해자 또한 언젠가는 피해자가 되고 마는 그런 끝에 그 누구도 생존하기 어려운 세상이 그려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처럼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는 상당히 리얼하다. 유희로 위장한 현실에서 위선은 검은 유령들을 계속 양산한다.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가 우리 사회에 들이미는 레드카드는 그 속내가 상당히 처연해서 공공무용단들에서 더욱 배려해야 할 주제 의식으로 보인다. 심각해지는 양극화 현상과 계층 간 갈등을 공공무용단이 예술로써 타개하는 데 일조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립현대무용단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고흥균/국립현대무용단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는 유희와 반유희를 왕래한다. 유희와 반유희가 교차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양쪽 사이의 균형을 취해야 하는 복합적인 공연이다. 공연에서 탈락자들이 탈락해야 할 구체적 사유나 사연은 감지되지 않는다. 어쩌면 탈락되면 잊혀지고 익명적이게 되어 결국 사라져야 하는 세상사의 은유일까. 무대 위 탈락자들은 아무튼 익명적이었고 세부적인 면들에서 공연은 추상적인 경향을 띠었다. 이런 때문인지 우리 주변 일상의 폭력성이 감지되는 데 비해 탈락(자)들에 공감해야 할 동기는 다소 모호한 감이 있다. 무대 상황을 뒷받침하는 배경 음향에서는 과도한 타악성을 줄여서 정서적 변주를 이끌 선율이 더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국립현대무용단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고흥균/국립현대무용단




 이번 공연은 랜선 중계로 관객을 만났다. 평자는 주최 측 배려로 랜선 중계와 현장 공연을 모두 관람하였는데, 촬영 단계에서 문제가 있음을 느꼈다. 중계된 동영상에서, 탈락하는 출연자의 얼굴 이미지와 글자 텍스트가 배경 영상으로 희미하게 나타나서 식별하기가 난감하였고 그 이미지들과 도심의 빌딩 대로는 동영상으로 소개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무대에 푸른 들판으로 비춰진 대형의 배경 이미지도 중계 동영상에서는 이미지와 색감이 전혀 살려지지 못하였다. 단적으로 공연의 실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일부 사례이다. 랜선 중계 자체의 문제보다는 촬영 작업에서 공연의 생동감을 등한시한 소치일 가능성이 크며, 영상 작업에서 주최 측에 참고가 되어야 할 점들이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20. 11.
사진제공_국립현대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