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옥의 춤
80년대 세대의 열정을 환기받다
김채현_춤비평가

1980년대를 아시는가. 1980년대는 우리 춤사(史)에서 특별한 의의를 갖는 시기이다. 1945년 이후 특히 1960년대부터의 우리 춤사를 크게 10년 단위로 나눠보면 1960년대나 1970년대보다 의의가 훨씬 컸던 시기가 1980년대였다. 알 사람들은 알 테지만, 오늘의 젊은 층일수록 그 시기에 대한 인식은 미약하거나 아예 없어 보인다. 왜 80년대일까. 이 시기의 의의를 환기하고 또 되짚는 활동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필자는 근자의 공연에서 새삼 느꼈다.
 지난 7월 있은 ‘서울국제댄스페스티벌인탱크’에서 김옥의 〈... 엄마〉를 보았다. 자식의 시선으로 엄마에 대한 기억을 담담하게 펼쳐나가는 회상곡 같은 춤이다. 세상에 부재하는 엄마를 보편적 가족의 정서로 상상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누구든 공감이 쉬운 형태로 구성되었다.






  

김옥 〈... 엄마〉 ⓒ김옥




 이에 앞서 김옥은 지난해 같은 행사에서 〈헛소리 2〉를 내놓았다. 〈... 엄마〉에 비해 생각할 거리가 더 많은 공연이다. 공연 시작부에서는 사람 키 높이의 검정색 널판 3개가 세워져 있고 출연진들이 떠받쳐서 세워진 검정색 널판들에 가려져 출연진들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 옆으로 조그만 검정 판자 하나가 바닥에 놓였다. 바닥의 판자를 응시한 후 김옥은 그것을 매만지거나 껴안고 때로는 그 위에 서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듯이 판자와 몸을 함께 회전시키는 움직임들을 보인다. 검정 판자와 함께, 검정 판자를 매개로 김옥 자신의 속내가 불쑥불쑥 들춰지는데, 타악 위주의 날카로운 불협화음의 금속성 생음악은 그 속내가 심상치 않음을 암시하며 마침내 김옥은 판자 위에서 실신한다. 이럴 동안 세워진 널판마다 사람들의 손과 팔만 삐죽삐죽 뻗쳐지고 널판 아래 위로 마치 유령의 손 팔이 노니는 장면들이 연출된다.






김옥 〈헛소리 2〉 ⓒ김옥




 널판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 내려놓으면서 출연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흰색 드레스 차림인 그들 세 여성의 신원과 역할은 특정되지 않는다. 불협화음의 금속성 음향은 여전하며 그들 역시 앞서의 솔로 김옥이 그랬던 것과 유사하게 바닥의 널판을 매개로 비슷한 속내를 드러낸다. 남성 춤꾼이 여기에 합류하면서 움직임은 격렬한 양상으로 이어지고 그들의 속내에 동조하며 호흡을 맞추는 구음이 곁들여진다. 이어지는 솔로에서 김옥은 널판을 어루만지고 〈타는 목마름으로〉를 넋놓아 창(唱)하며 속내를 풀어헤치는 모습을 보였다. 다섯 출연진이 흩어져 느리게 움직이는 부분은 어떤 넋풀이 의례의 마무리 절차와도 같은 정화(淨化)의 의미를 띤다.
 〈헛소리 2〉 이전에 김옥은 1990년에 〈헛소리〉를 공연하였고, 이를 92년에도 공연한 바 있다. 초연 후 29년만의 공연이 〈헛소리 2〉인 셈이었는데, ‘...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 타는 목마름으로...’ 전곡을 스스로 외쳐 부르는 부분은 그대로이며, 당시 1시간 정도 길이였던 것이 〈헛소리 2〉에서는 소품으로 압축되었다. 규모가 달라졌어도 한 세대 전의 작품을 다시 보게 되어 여러 가지를 생각케 되었다.




김옥 〈헛소리 2〉 ⓒ김옥




 김광석이 부른 노래 〈타는 목마름으로〉는 김지하의 동명의 사회참여시를 가사로 한 것이다. 80년대에 민주화운동 계열에서 회자되던 이 노래의 상징성은 컸었고 2002년 12월에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노무현 당시 후보도 광장에서 열창한 바 있는 노래다. 이 노래를 김옥이 1990년에 스스로 부르며 춤 작품화한 것은 당시로선 매우 드문 일이자 주목을 요하는 점이었다. 이 노래와 결부해 보면 춤 공연에서 헛소리가 의미하는 바나 작품이 추구하는 바를 쉽사리 짐작하게 되겠지만, 다만 춤 공연에서 〈타는 목마름으로〉의 의미는 노래 가사의 그것에 국한되지도 않고 직접적이지도 않다. 구체적 스토리텔링이 없는 상태에서 〈헛소리 2〉에서 감지되는 정서는 숨막힐 듯한 상황 속에서 젊은이가 몸부림치는 어떤 열정과 위로가 아닐까 한다.
 〈... 엄마〉와 〈헛소리 2〉는 움직임을 통한 감정 표현이 뚜렷해 보인다. 이는 모던댄스의 특성이자 1980년대 당시 우리 춤계의 주류이기도 하였다. 지금의 다소 메마른 듯한 컨템퍼러리댄스를 추구하는 세대의 눈에는 언뜻 낯설게 느껴질 만한 점들이 당시로선 일반적이었고 그만큼 시대가 달라졌다고 이야기될 지점이기도 하다.




  

김옥 〈헛소리 2〉 ⓒ김옥




 우리 춤사에서는 80년대만 별도로 춤 르네상스 시기라 명명되는데, 이 춤 르네상스 시기에 춤 공연이 양적으로 급증하고 전문 무용인들의 활동이 활성화되면서 전체적으로는 우리 춤계에서 공연 시스템이 정착되어 오늘에 이른다. 1980년대의 춤 르네상스를 일군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김옥도 80년대 후반에 학생 때부터 당시의 선배들 공연에 자주 출연하면서 춤 르네상스에 동참한 이력이 있다. 그 시기의 청년 세대로서 지금의 중년에 이르도록 적지 않은 김옥들이 공연 무대를 지켜온 것은 춤을 향한 대단한 열정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의 춤 현장은 아무튼 춤 르네상스의 종착점일 것이며, 그래서 춤 르네상스 시기의 80년대 세대는 마땅히 기억되어야 한다. 춤의 방법과 환경이 당연히 달라졌다 하더라도, 춤 흐름의 맥락을 다시 상기해볼 때, 80년대 세대가 적지 않은 것을 남긴 것만은 엄연한 사실로 남는다. 그 아래 세대로 내려갈수록, 부박스런 세상의 빠른 변화 탓인지, 이전 세대의 활동에 대해 무심하거나 인식이 전무한 경우가 느는 듯해서 관심을 되살릴 방도를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컨템퍼러리댄스에 치우친 듯한 비평의 경향이 이즈음에 이르러 중노년 세대의 모던댄스까지 포용하는 방향으로 넓혀지는 것도 균형 잡힌 인식으로 가는 한 방도가 아닌가 한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20. 9.
사진제공_김옥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