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후의 예술공방 〈찬란한 벌판〉
어떤 진실과 어떤 진실이 만난 벌판에 대하여
이지현_춤비평가

2020년 8월 28일, 코로나의 확산으로 인해 준 3단계, 즉 2.5단계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됨에 따라, 많은 공연이 그렇듯이 9월 4-5일(7pm. 댄서스라운지)로 계획되어 있던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당신과 나의 ‘찬란한 벌판’〉 (주관: 감성스터디살롱 오후의 예술공방) 역시 공연 며칠 전까지 공연의 형식을 고민하며 보내다가 비공개 소규모 쇼케이스 형식으로 진행하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친절하게도 관람 의사를 물었고, 이미 매진되었던 대부분의 예매관객들께는 환불을 한 후 관람을 동의한 5-10명의 관객만을 놓고 공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고요’는 틈이다

스튜디오 스타일의 공연장에 들어서니 거리두기를 한 좌석이 띠엄띠엄 놓여있다. 이젠 좀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이런 스튜디오 소극장에서의 거리두기는 처음이어서인지 더 긴장스러운 마음이 되어감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이런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서경선이 〈단단한 고요〉를 위해 조용하고 차분하게 무대 중앙으로 들어온다. 중앙에 놓은 탁자 위에 놓인 가스버너와 그 위의 압력밥솥 그리고 개인용 식기 등 부엌을 압축시켜 놓은 듯한 아니 어쩌면 소꿉놀이처럼 보이는 깔끔한 주방도구들을 서경선은 익숙한 듯 다룬다. 그러다 조용히 주저앉아 얼굴은 탁자에 가려진 채 손을 높이 들어 수신호 하듯 동작을 취하다가 허공에 대고 ‘가사노동’이라 읽을 수 있도록 거꾸로 글씨를 써나간다.
 그러다 다시 밥 짓는 일을 하도록 이끄는 것은 구수한 밥냄새다. 다시 후라이팬을 올리고 기름을 두르고 무의 껍질을 까고 썰어서 볶는다. 하지만 그 이후의 요리는 일상적 동작을 균열시키며 언뜻언뜻 허공에 대고 마임 같은 동작이 공허하게 반복되는 것과 함께 이루어진다. 백색소음과도 같은 음악은 고조되지만 어느새 또 일상은 그녀를 깨워 밥상 차리는 일을 하도록 만든다.




서경선 〈단단한 고요〉




 차려진 1인 반상을 들고 무대 앞으로 나온 그녀는 상을 내려놓고 대뜸 질문을 시작한다. 물론 관객과의 실제적인 대화를 위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녀는 자신의 일상적 밥하기와 밥 차리기를 놓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었던 거 같다. 요리를 해본 적이 있는지, 누굴 위해 식사 준비를 하는지 등…. 그러다 앉아서 먹기 시작한 식사의 시간을 균열내고 들어오는 것은 이번엔 뻐꾸기 소리다. 뻐꾸기 소리가 들리자 그녀의 밥 먹는 행위는 사라지고 그냥 바닥에 누워버린다. 오르골 소리와 비슷한 몽환적인 음악이 뻐꾸기 소리를 덮으면서 그녀는 일어나 뻐꾸기 소리를 퍼 담듯이 나무 숟가락으로 공기를 담아 다른 한 손의 그릇에 담으면서 날 듯이 뒤로 걸어 들어간다.
 이 작품은 이렇게 그녀의 일상을 보여주듯 일상의 가사노동, 밥 짓는 일이 재연되지만 그 시간은 성찰의 시간으로 균열이 일어남과 동시에 현실과 몽환을 넘나든다. 그 경계는 급기야 질문을 일으키고 그 질문은 관계를 낳는다. 마지막은 매우 몽환적으로 뻐꾸기 소리와 더불어 밥을 먹는 행동은 일상성을 떠나 전혀 다른 세계의 것이 되어 떠난다.






서경선 〈단단한 고요〉




 누구에게나 혼자 머무는 일상의 시간들은 고요한 순간을 갖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 틈을 놓치거나 고요를 덮는 거대한 소음과 바쁨에 넋을 뺏긴다. 그러나 서경선은 이 고요를 확대시켜 여성서사를 만드는 심정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녀가 포착한 고요의 결은 조용하고 곱고 천천히 존재하며 일상을 파고들 되 일상을 흔들지 않는다. 어떤 의도와 어떤 과장과 어떤 군더더기도 없는 서경선의 〈단단한 고요〉는 그 어떤 것 없이도 자신과 일상을 무대로 담백하게 가져오는 일이 가능함을, 그 일상이 얼마나 많은 공기구멍을 갖고 있음을 포착한다. 공기가 드나들 수 있는 그 틈은 이 세상 여성의 모든 서사들이 충분히 드나들 수 있지 않을까를 상상하게 한다. 고요하고도 신기한 마술이 이 작품 안에 있다.


벌판에서 깨어있는 여자들은 누구인가

최근 8월에 무용계 미투 사건에 대법원으로부터 ‘위계에 의한 성희롱’을 인정한 판결이 내려졌다. 그리고 피해자와 함께 그 고난스런 행보를 끝까지 함께 해준 이들은 ‘오롯 위드유’였다. 그들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울어주던 ‘방청연대’는 미투의 연대가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초유의 행동을 보여주었고 그 행동은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수행성의 힘을 보여주었다. 〈전사의 땅〉(안무: 천샘, 출연: 김하람, 권이은정, 천샘, 무대: 채미정, 영상: 유진(찍는 페미), 진행: 권지영, 김지정)은 이렇게 전사가 된, 될 수밖에 없던 여성들에 의한, 여성들의 춤이다.




천샘 〈전사의 땅〉




 우리 사회는 지금 여성들을 어떤 시선을 갖고 바라보고 있으며, 어떤 태도로 여성을 대하고 있는가를 이 작품의 전반부를 통해 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괴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꿋꿋한 캔디로 키워지는 여성으로의 길들여짐은 이 사회에서 여성과 짝을 이루는 것들의 예들 사이를 풍성하게 옮겨 다닌다.
 머리 빗겨짐, 몸에 채워지는 가슴가리개, 그럼에도 살아있는 천진함에 끼어드는 아저씨의 ‘나쁜 손’들은 적나라하나 우화적이고 풍자적으로 여성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더욱 끔찍한 것은 그 사이 틈틈이 화면에 광고처럼 짧은 시간 지나가는 실제 여성혐오 댓글들이다. 이 작품이 두 축으로 끌고 가는 상황극의 놀이성과 댓글의 현실성의 충돌은 우리의 현실을 거리두기로 볼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현실의 생생함을 잊지 않도록 하여 보는 이의 의식을 점점 더 날카롭게 만든다. 급기야 상황극은 너무도 만연한 ‘불법촬영’을 재연하다. 작은 의자에 앉힌 인형은 누군가의 카메라에 의해 화면에도 존재한다. 지하철에서의 남자(김하람)의 음흉한 시선과 그의 렌즈는 투사된 화면에서 그대로 확인된다. 그에게 여성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성적 대상일 뿐...




천샘 〈전사의 땅〉




 〈전사의 땅〉의 두 번 째 부분은 화면의 지시어와 무용수들의 행위가 주고받는 부분이다. 이 게임의 규칙은 “질문에 해당하면 1보 앞으로 전진 해주세요. 아니면 정지”이다. 불쾌한 접촉이 있었는지, 강제적 접촉이 있었는지, 밤길에 누군가가 따라온 적이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어김없이, 대부분 그런 적이 있음을 행위로 답을 보여준다. 질문의 강도와 행위의 강도는 점차 비례하여 수위가 높아진다. 동료가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지 그렇다면 위를 향해 점프하고, 자신이 당사자일 경우 미친 듯이 뛰어야 한다.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질문에 대한 행위는 위기감을 향해 치닫고, 그만큼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그 질문에 긍정의 답을 위해 뛰어야 하는 우리를 우리가 본다. 무대 위에서는 한 명(권이은정)이 뛰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모두가 뛰고 있으며 그런 우리를 우리가 보고 있다.




천샘 〈전사의 땅〉




 뒤로 돌아 앉아 윗옷을 벗고 목에 걸치는 붉은 치마로 갈아입은 권이은정이 일어서자 아프리카 여성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앞 장면까지의 여성의 몸을 죄어오던 상황을 전복시키기라도 하듯이 그녀의 춤은, 그녀의 가슴은, 그녀의 팔다리는 살아서 펄떡거린다. 그러나 그 춤을 방해하는 것은 댓글의 단어들이 인쇄된 종이를 들고 나와 바닥에 붙이기 시작하는 어떤 사람에 의해서다. 구하라, 설리를 죽게 한 실제 댓글에서 온 글들–암튼 딴따라 들은 죽을 때까지 관종들이네 죽으려면 조용히 죽던지–은 결국 생명의 춤들을 사라지게 하고 바닥에 널브러진 채 그 악마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천샘 〈전사의 땅〉




 그렇다고 그걸로 끝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때 들리는 제주도 민요인 ‘이어도 사나’의 노랫소리는 구원이다. 안무자인 천샘은 어망 속에 들어가 구르면서 온몸으로 바닥의 댓글 위를 누빈다. 그리고 그것들을 어망 안에 수거한다.
 그렇게 정리된 상황과 무대 위를 덮은 어둠을 깨고 북소리(이륜화 연주)가 울린다. 북에 이어 꿇어앉아 부르는 권이은정의 노래의 시작은 전사들의 춤의 시작이다. 붉은 치마를 이리저리 변형해 몸에 걸친 천샘과 김하림은 장엄하게 춤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 춤은 그냥 춤이 아니다. 온몸의 힘을 다하여 얼굴과 몸을 쓰다듬으며 결의를 다지는 듯한 팔의 동작은 점점 얼굴에 전사의 분장을 남긴다. 그들은 스스로를 전사의 몸으로 만들어 간다. 한 사람이 구음을 하면 두 사람이 동작을 가다듬으며 고조시켜가는 이어받음의 전개는 리듬이 빨라지며 점차 상승되어 간다.




천샘 〈전사의 땅〉




 이 40분 정도의 작품은 매순간 멀쩡하게 깨어있을 수 없을 만큼 많이 고통스러웠다. 피하고 싶어 하는 신경줄을 어떤 순간은 달래고, 어떤 순간은 다스리며 겨우 작품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왜 이리 여성으로 태어나 자라온 많은 시간을 기억나게 했는지, 왜 이리 마지막 전사의 춤에 공감하게 했는지 춤을 보는 그 시간엔 도저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물론 이 작품의 전개와 내용이 디지털 성착취처럼 최근 우리 모두가 고통스럽게 겪었으며, 그럼에도 납득할 수 없었으며, 그렇다고 멈추게 할 수 도 없었던 문제들을 다룬 것에 대한 복잡한 감정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허나 며칠이 지난 후 이 작품의 강한 호소력은, 마지막 전사들의 춤이 뜨거웠던 이유는 이들이 바로 ‘오롯 위드유’ 활동을 통해 이 현실을 그대로 겪어낸 당사자들이고 그 활동과 연대가 식기도 전에 그 진지함을 이 작품에 그대로 담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우 단순한 진리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진리-현실에서 마주하고 용납할 수 없었던 사건에 대해 일어나 행동하고 같이 아파하고 함께 울어주던 그 마음 그대로 춤을 출 때 그 춤 역시 가장 강하고 힘 있는 춤이 된다는 사실 말이다.
 인간의 성적 차이는 차별이 될 수 없으며, 한 성은 어느 누구의 성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없다는 진리, 그 진리를 춤의 정신으로 담아낼 때 그 역시 존엄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진리가 댄서스라운지 안에서 큰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당신과 나의 ‘찬란한 벌판’〉 (주최: 마포구 예술활동 거점지역 활성화사업 추진위원회/ 주관: 감성스터디 살롱 오후의 예술공방/ 후원: 아프리칸댄스컴퍼니 따그, 툿 네트워크, 댄서스라운지, 서울시, 마포구, (재)마포문화재단)

이지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춤비평가로 등단했다. 2011년 한국춤비평가협회의 정회원이 되었으며, 최근 비평집 『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 왕성한 비평 작업과 함께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강사, 서울무용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 ​ ​ 

2020.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