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코로나19가 춤 무대를 휩쓸어간다. 이 재난의 계절을 거스르며 2020 모다페가 열렸다(5. 14~29. 아르코 대극장 및 소극장). 보름 동안 모두 10개의 프로그램이 올려지고, 프로그램마다 서너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마지막 프로그램은 대구시립무용단의 단독 공연으로 진행되었다. 전체 프로그램에 참가한 작품은 모두 32편으로서 이 가운데 신작 초연은 13편이다.
국제현대무용제, 즉 모다페 39년 역사에서 국내 작품들만으로 제전이 구성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지 싶다. 그렇다면 우선 ‘국제’라는 타이틀이 적합한지 물어봄직하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너무나 명확할 정도로 코로나19는 국내 작품들만으로 국제 행사가 진행되도록 강제하였다. 주최 측의 당초 계획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된 이번 모다페는 앞으로 국내작만으로도 모다페가 지속가능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게 한다. ‘국제’ 행사의 정체성을 뒤흔든 코로나19 재난이 예년 같으면 불가능했을 시도, 즉 해외작에 의존하는 정도가 높은 국제 행사에서 오히려 국내작이 다수를 점하도록 하는 시도를 마치 당연한 듯이 단행하도록 유도하였다. 말하자면 코로나19는 국내 춤제전들이 기존 관행에서 이탈하도록 강제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에 비추어 춤제전들은 변신을 기하지 않으면 어쩔 도리 없이 도태할 것이다.
비상한 사태에 직면하여 올해 모다페는 해외작들을 모두 포기한 상태에서 국내작들을 긴급하게 선정해서 추진하는 수순을 밟아야 했을 것이다. 춤제전의 규모가 규모인 만큼 다수의 작품이 출품되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준비 시간의 제약이 악조건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출품작 32편 가운데 신작 초연작이 13편인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재연작들은 대부분 20분 남짓의 길이로 손질 조정되었고, 신작들도 대부분 시간 길이가 그러하였다.
거의 모든 작품이 소품 정도 길이였지만 이번 모다페에서는 다수의 작품을 접하는 기회가 되었다. 재연작들에서는 해당 공연이 조금씩 손질되어 완성도를 높인 경우가 적지 않았으며, 특히 다수의 안무작들을 짧은 시기에 같은 극장에서 다양하게 접하게 되었다. 재연작을 경시하고 재연작에 대해 지원마저 부실한 풍토에 대해 코로나19는 재연 작업과 재연 기획의 가치를 뜻하지 않게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일테면 올해 모다페를 한국 현대무용의 젊은 뮤지엄 혹은 작은 뮤지엄이라 칭한다 해서 무리는 아닐 듯하다. 관심작과 화제작을 이번처럼 다수 모아 콜렉션으로 다채롭게 재연하는 기획을 모다페 등 춤제전들은 고려할 필요가 크다.
이번 모다페의 또 다른 중대 이슈는 랜선 공연이었다. 대형 춤제전에서 전체 공연을 랜선으로 송출한 경우는 올해 모다페가 처음일 것이며, 앞으로 랜선 송출이 행사 규모와 상관 없이 춤 공연에서 나름 역할을 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모다페는 거리두기 현장 공연을 진행하면서 랜선 송출을 병행하였다. 그런 때문인지 이번 랜선 공연에 관해서는 현장 공연의 대략을 포착하도록 하는 이점이 큰 반면에 화면으로 보이는 영상 이미지가 어둡다는 반응으로부터 현장 작품의 실체를 감별하기 어렵다는 소감까지 들린다. 요컨대 랜선 공연이 실제 춤 작품을 충실히 전달하는 완성도를 갖는가 하는 의문이 주류를 이루었다. 국내에서 춤 영상 비디오 작업에서는 아직 과도기적 양상이 보인다. 이와 같은 단계의 춤 영상 비디오 작업을 기반으로 하는 랜선 공연에서, 앞서의 반응들처럼, 한계가 예견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더라도 크게 보아 올해 모다페는 전체 공연을 과감하게 무료 랜선 공연과 병행함으로써 랜선 공연에 대한 관심을 쇄신시키는 효과가 컸다 본다.
2020 모다페에서 거의 모든 작품이 소품 정도 길이인 데에다 그 가운데 초연작이 절반 미만이며, 팬데믹으로 관람이 꺼려지고 거리두기로 관객 수를 제한하며 랜선 공연으로 작품의 전모를 시원스레 관람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그런 가운데서 올해 모다페는 성급하게 간판작을 내세우기보다 조용하게 진행되었으며 안무자들마다 그간 작업 성과 가운데 개성이 뚜렷한 점을 바탕으로 작품을 구성하고 되새김하는 경향을 보였다.
안애순 프로젝트 〈타임스 스퀘어〉 ⓒ김채현 |
안애순 프로젝트의 〈타임스 스퀘어〉에서 흐름과 반복이 교차하는 시간의 흐름을 보게 된다. 천장의 바텐들이 느긋이 오르막 내리막 하는 사이에 점차 인원수가 늘어가는 출연자들 또한 저마다 움직임으로써 살아 있는 몸의 현재성을 시현한다. 피아노와 타악 위주의 배경 음악 또한 은은하게 흐르며 액센트를 가하는 동안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혼재하는 무대 위 이미지들을 뒷받침하였다. 몸에 내장된 기억이 과거를 불러들이고 현재가 되면서 곧 있을 미래를 펼쳐나가는 사이에 몸은 은연중에 시간을 수행하는 몸으로 다가온다. 중후반부에 바닥의 하얀 덮개들을 출연진들이 둘둘 말아 제거하고 무대 전면에는 자연과 우주의 영상들이 간략하게 곁들여진다. 그들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서로서로 교감하고 대자연과 호흡한다. 여기서 시간의 미묘한 모습을 맘 편히 환기하는 안무자의 의도가 돋보였다.
정영두 〈닿지 않는〉 ⓒ김채현 |
정영두는 솔로 〈닿지 않는〉에서 아주 서정적인 세계를 선보였다. 개량 가야금 두 대가 라이브로 탄주되며 울리는 빠르며 경쾌한 소리를 따라 정영두는 그만의 정서를 유연한 몸짓으로 표현한다. 이동을 거의 배제한 상태에서 조밀하며 나긋하게 전개되는 몸짓은 감정의 기복을 이미지로 전하였다. 이경은의 〈OFF Destiny〉는 제목을 풀이하면 운명을 벗어남 정도로 해석됨직하다. 원피스를 걸친 여성 이경은 자신의 독무로 펼쳐지는 이 소품의 소재는 작품 소개에 따르자면 여성의 운명이다. 조명으로 비치는 바닥의 사각 박스 내에서 여성은 무엇을 갈구하는 듯한 몸짓과 쓰러지기를 되풀이한다. 배경음악 없이 무음으로 진행되는 움직임과 몸짓은 둔탁하면서도 에너지가 충만해서 몸짓과 내면의 적극성을 읽어내도록 한다. 작품 말미에 여성의 손에서 떨어진 방울이 바닥을 굴러 정지하고 여성은 잠시 그것을 응시한다. 그 직후 여성은 짧은 몸짓을 이은 후 퇴장하는데, 동시에 바로크 양식의 하프시코드 소리가 울리며 대미를 장식하고 사각 박스 조명은 반으로 줄어든다. 사라진 그 사람은 아마도 얼마쯤 운명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두 소품은 정영두와 이경은 작품의 익숙한 눈에 특히 솔로작으로서 좀 이색적인 맛을 전하였다.
이경은 〈OFF Destiny〉 ⓒ김채현 |
처용은 영원한가. 박근태는 〈처용〉에서 처용을 컨템퍼러리 스타일로 해부해 보인다. 역신을 물리치는 처용의 마음이 오늘의 시각에서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처용은 불신에 처한 인간으로 재해석되고, 이는 처용과 역신을 시사하는 듯한 두 현대인의 대거리 및 익명의 집단무로 표현되었다. 정가 풍으로 처리된 처용가와 빠른 장단의 미니멀 곡조에 따라 불안한 몸짓이 증폭되는 부분이 등장한다. 불안, 분노를 안으로 삭이는 듯한 인간들은 상당히 무기력해 보인다. 구성에서 맛깔이 더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은 반면에 이처럼 처용을 통상적인 처용에서 벗어나도록 한 박근태의 시각은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박근태 〈처용〉 ⓒ김채현 |
이세승의 〈한〉(恨)은 아주 낮은 타악과 더불어 진행된다. 여기서 우리 춤무대에서 지겹도록 그려온 상투적인 한은 재현되지 않는다. 한에 대해 그렇고 그렇게 춤으로 형성된 이미지들을 벗어나며 그에 수반되었던 음악들조차 찾아볼 길 없다. 블라우스 상의에 각자 짧은 치마, 바지를 걸친 두 여성은 서로 호흡을 맞추어 유사하되 일치하지 않은 몸짓들을 이어나갔다. 조용조용한 움직임들이 다양하게 이어지면서 감정의 여러 층위들이 이미지화된다. 한에 대한 상투적인 관념이 해체되어 새로운 정서와 이미지로 탈바꿈하는 모습이 정갈하게 제시되었다. 한, 그리고 더나아가 한국무용을 컨템퍼러리의 시선으로 해체하고 버무려내는 작업으로서 주목하고 싶다.
이세승 〈한〉(恨) ⓒ김채현 |
2020 모다페는 대형 춤제전들이 간판작을 내세우는 통상적인 관행을 벗어났다. 간판작이 없어도 양해될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런 시도를 과감하게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간판작이 언제나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으므로 차제에 그 통상적 관행을 진지하게 고려해보는 계기가 사실상 강제적으로 주어졌다. 그리고 올해 모다페가 물꼬를 튼 랜선 공연이 향후 국내 공연들에서 현상태에 머물지 모르겠으나 만에 하나 현상태에 머문다면 굳이 택할 이유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것은 비평의 대상이 되기엔 부족하고 춤 작품을 대신하기엔 이미지가 떨어진다.
어느덧 지금 이 시기를 코로나19 시대라 부른다. 어디서 그 말이 나왔는지 연원을 알기도 어려운 말이 한 시대를 물들이는 중이다. 오늘 이 시대를 다시 규정할 만큼 그 위력은 엄청나다. 모든 것이 정지되는 속에서 새 것이 잉태되고 있다. 2020 모다페는 생각지도 않은 재난의 한 복판에서 지난 과거를 정지시키고 대안을 찾아보는 작업으로 전과는 다른 것을 제시하였다. 과거에 구애받지 않는 신선함으로 포스트코로나 시대 현명한 모다페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