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록은 음악인가? 음악 이상이다. 그것은 뒤집기, 초월 그리고 쇼크 아닌가. 어느 일순간에 록은 일반 의약품을 능가하는 치유제도 된다. 최근 미나유는 신작 〈Body Rock〉을 올리며 로커(rocker)와 유사한 마인드를 내비쳤다(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2월 19~20일). 록 음악이 춤과 섞이는 것은 흔하다. 그런 중에서도 공연 제목에서 보듯이 록 지향성을 직설적으로 표방하는 춤은 국내외에서도 드물다. 바디록이 생소하고 돌발적으로 여겨질지 몰라도, 그간 미나유의 창작 경향을 들여다보면 록 지향성이 〈바디록〉에서 별안간 발현된 것은 아니다.
미나 유 〈Body Rock〉 ⓒ2020 김채현 |
〈바디록〉에서 우리가 우선 목도해야 하는 것은 세상살이들이다. 우리 곁, 우리 속에서 지금 바로 함께 겪는 세상살이 말이다. 감미로워 보이는 순간에조차 폭력이 감춰져 있고 미투 운동이 생겨나야 하고 강자의 폭압이 자행되고 턱턱 숨이 막히고 갖은 회한(悔恨)으로 허우적대고 한 치 여유도 허락 받지 못하고 횡설수설 같은 것을 잘 몰라도 알아챌 겨를마저 없고 원하는 대로 맹종해야 하고 여차하면 배신 때리고 만만하면 벌레로 왕따 하기 일쑤인… 그 속에서 삶을 부지해야 하는 그렇고 그런 순간들을 미나유는 우리 눈앞에 들이밀었다.
좀비가 양산되고 인간이 스러져 가는 세상에서 그런 모습으로 살기를 원하는 이는 없다. 그러나 양극화가 대변하다시피 대다수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 세상을 〈바디록〉은 우리가 직시하도록 하면서 또 묻는다. 과연 이렇게 겪고 있어야 하는가.
미나 유 〈Body Rock〉 ⓒ2020 김채현 |
세상살이를 다면적으로 고발하는 그러한 서사들은 이 작품에서 군집을 이루는 몸들의 접촉, 아주 적대적인 몸짓과 움직임, 내면의 표출이 짙은 솔로, 랩(rap), 음유시 등으로 표현된다. 이들 서사를 강화하는 장치로서 개(목)줄, 철제 창살 바리케이드가 부분적으로 활용된다. 이에 더해 〈노노레타〉(질리오라 칭케티가 1964년에 대유행시킨 칸초네), 〈뺨에 흐르는 눈물〉(Bobby Solo), 〈The Isicathulo Gumboot Dance〉 〈Kilimanjaro〉(Miriam Makeba), 〈Le bout de la table〉(Govrache) 그리고 〈Passion〉(Peter Gabriel)과 같은 곡들이 〈바디록〉의 서사들을 뒷받침한다. 미나유의 그간 작품들에 비해 〈바디록〉만큼 음악들과 랩, 음유시가 이렇듯 여럿 쓰인 예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말은 〈바디록〉에 담긴 서사가 이전보다 훨씬 많은 면에 걸쳐 사회 문제를 소화해내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미나 유 〈Body Rock〉 ⓒ2020 김채현 |
〈바디록〉이 그려내는 세계는 감미롭되 실상은 폭력적이고 한편으로는 섬뜩하고 한편으로는 처절하고 한편으로는 냉혹하고 한편으로는 한스럽고 한편으로는 우울하다. 오늘 현실 속의 인간 군상을 익명으로 등장시켜 지금 세상의 갖가지 행태를 들추어낼 동안 〈바디록〉은 어느덧 사회에 던지는 경고장으로 수용되기에 이른다. 몸으로 해내는 록다운 경고장이라 하겠다.
작품 말미에 배경음악 〈Passion〉(수난)이 잔잔히 울려퍼지는 속에서 기다란 인간행렬이 느린 걸음으로 인상 깊게 등장한다. 그 사람들은 히잡 같은 각양각색의 쓰개를 머리에 둘렀다. 여기서 히잡은 소외된 이들이 모종의 동류 집단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은유로 비쳤다. 그들은 때로는 휘청대는 모습을 보이다 자빠지고 개중에 누구는 쓰러져 굳어지며 다시들 일어나 비틀대기를 거듭한 나머지 어둠 속 어디론가 묵묵히 사라진다.
미나 유 〈Body Rock〉 ⓒ2020 김채현 |
〈바디록〉이 미나유의 이전 작품에 비해 진전되고 또 여기서 서사가 다양해진 사실과 아울러 노령의 창작자(미나유)가 노령엔 아랑곳없이 창작에 몰두하는 사실은 미나유가 자신에 대해 긍정적 전망을 견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는 퍽 대조적으로 창작자는 세상의 앞날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삼간다. 〈바디록〉에서 세상의 수난은 이어지고 끝내 전망마저 길을 잃고 오리무중에 갇히는 양상이다. 그 연속선상에서 미나유는 작품을 통해 이렇게 묻는다. 나는 삶을 데리고 어디로 가는가? 이 시대 나는 누구인가?
나로선, 미나유가 그렇게 물을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1993년 해외에 체류하며 국내에서 발표한 소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고된 노동과 낮은 임금이 삶의 조건인 부조리한 상황을 제기한 이래 미나유는 일관된 춤 창작 경향을 견지해왔다. 지금까지 그 물음을 끈질기게 이어온 이런 전력만이 아니다. 70대 후반에도 그 물음을 흔들림 없이 대하는 데 더하여, 설령 그런 류의 물음이 아니라도 70대 후반에 춤 무대화 작업에 몰두하는 예가 희소한 주변 풍토는 미나유의 물음에 진정성을 더한다. 춤계 청년 세대뿐 아니라 원로층에 속할 사람들에게도 〈바디록〉은 〈구토〉에 이은 메시지로서 값할 것이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