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올해 40주년인 서울무용제. 대상수상작 세 편을 한 무대에 올린 ‘걸작선’과 청년과 중견, 원로들의 ‘춤판시리즈’, 그리고 개막축하공연 무대 〈무념무상 Ⅰ,Ⅱ〉 기획이 눈에 띄었다. 특히 시간을 거슬러 소환한 〈무념무상 Ⅰ〉(11월1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 김화숙(1회), 이정희(2회), 최은희(4회), 안신희(5회) 이 세대의 춤에 대한 놀라운 믿음, 놀라웠다.
영상을 통해 밝힌 작가들의 춤(삶). 그 많은 춤들이 얻어낸 아름다움과 춤(삶)의 성공, 그 바탕은 모두 일찍부터 분명한 춤철학을 가지고 안무가로, 예술인으로서 져야 할 사회적 책임을(김화숙, 이정희) 다했다는 데 있다. 김화숙의 〈광주민중항쟁 무용3부작〉과 이정희의 〈살푸리 하나~아홉〉 연작은 자유를 억압하는 힘을 부인하는 일이, 현실적 중압감이, 춤을 통해 도달하려 했던 꿈과 그 춤적 실천의 원기가 되었을 것이다.
서울무용제 〈무념무상 Ⅰ〉 최은희, 이정희, 김화숙 ⓒ옥상훈/한국무용협회 |
“리어카에 아버지를… 집 마당에 핀 장미로 아버지를 덮은 뒤 동생이 그 리어카를 끌고…”라며 광주항쟁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땅에 묻던 날을 담담하게 회고하는 김화숙선생은 자신의 예술(춤)적 책임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의 벽이 얼마나 두터운가를 이미 알고 있었다. 하여 〈광주민중항쟁 3부작〉이라는 그의 선택은 희망이 없었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희망 없음이 그의 선택을 막지 못했으며, 그것이 바로 그의 선택의 내용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정희 선생 또한 춤이 개인적 작업이라는 이유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고, 개인적 작업이라는 이유로 광주항쟁이라는 미친 시절을 자기 성찰의 힘으로 〈살풀이 연작〉으로 풀어내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봄날, 거침없이 만발하는 검고 긴 머리칼의 서정으로.
최은희는, 춤이 한 개인의 감정에 따른 것만이 아니기에 보편적 집단의 춤 얼굴로 분식하려 했다고 말한다. 우리 춤의 근원을 찾고자 한 그 의도는 한국춤이 가지는 춤의 투명성을 찾기 위한 것이리라.
해답이 아니라 다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이 세대의 춤의 역사, 무겁다.
어쩌면 이들의 춤을 분석하는 일은 이미 나의 몫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춤을 본다.
최은희의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옥상훈/한국무용협회 |
첫 무대, 최은희의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머리를 푼 채 무릎을 구부리고 상체를 깊이 떨어트렸다가 양손으로 머리칼을 위로 쳐올리는 동작을 반복한다. 드론으로 촬영한 아득해 보이는 영상, 풀었던 머리를 묶은 뒤 다시 추는 춤. 춤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춤은 얼마나 어렵게 춤이 되는지. 작품은 인간의 시선과 다른 세상의 이미지, 한정된 공간, 그리고 춤. 드론이 보내준 영상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단면이나 인간의 내면, 삶의 조건 형태 등에 대한 통찰, 성찰을 묻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읽힌다. 머리를 푸는 일탈력과 머리를 묶는 수렴력 사이에, 머리를 올려치는 비상의 원심력과 머리를 떨어지는 중력의 구심력 사이에 언뜻 보이는 ‘트임’. 하지만 그 트임이 투명하게 드러나기 위해 원작의(〈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어떤 설명을 거쳐야만 하는 작품은 불투명한 것이 되기 쉽다. 디지털 문명의 시대에 인간이 설 자리가 줄어드는 상황. 미래 춤에 대해 창의적으로 풀어내는, 혹은 대응할 수 있는 춤이란 어떤 것일까.
김화숙 〈인생 Life〉 ⓒ옥상훈/한국무용협회 |
김화숙은 자신의 안무방법에 명철한 춤작가다. 계산된 작업이 얻게 될 부가 가치를 부인하고 춤적 효과가 철저하게 드러나거나 온전하게 보전되어야 할 가치들이 섣부르고 우연하게 드러나는 것 또한 염려한다.
〈인생 Life〉. 무명 색, 민소매의 긴 드레스를 입은 김화숙이 긴 의자위에 앉아 숫자를 세 듯 손가락을 하나 둘 접는다. 다른 한 손으로 숫자를 세던 팔을 잡는다. 탁!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친다. 한 번. 슬픔이 춤적 확신으로 바뀌는 지점이다. 여기에 그의 춤(삶) 철학이 있다. 함부로 슬픔을 늘어놓거나 불러내지 않는다. 두 손으로 입을, 얼굴을 가린다. 스스로 다스려야할 슬픔이 남아 있는 한, 눈물이 터지는 눈과 입을 막아야 하는 슬픔이 남아 있는 한, 슬픔이 다 극복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춤(삶)이 가장 거친 서슬과도 맞부딪칠 수 있는 무기인 것을 증명해보일 일만 남았다. 막처럼 한 쪽에 내려걸린 흰색 천위에 폭력에 온 몸을 던지는 순결한 춤〈편애의 땅〉이 입혀진다. 피어올라 범람하는 안개의 홍수. 그 아우성은 세상의 아우성이고, 보이지 않는 깊은 무대는 깊은 세상의 늪이다. 사랑하는 정신과 어두운 세상 사이에 구별이 없다. 그 사이에 선 김화숙. 분명히 경계가 있을 것이나 보이지 않는다. 길을 찾듯 걷고 물러나기를 거듭하며 노래를 부른다.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내 어머니 가신 나라…” 피아노(김은수) 선율이 따라 붙는다. 돌아서는가 싶더니 천을 잡고 무대 앞으로 내달린다. 슬픔을 강렬하게 흔들어 놓는 피아노 연주, 빛 아래 선연히 드러나는 춤.
김화숙 〈인생 Life〉 ⓒ옥상훈/한국무용협회 |
자신의 안녕 속에 깃든 슬픔을 자신의 것으로 떠맡는 일일 뿐일 것이다. 그것이 사랑인데. 고결한 사랑.
말 이상의 힘을 가진 춤이었다. 지난 시간을 배경으로 지금을 춤춘 무대, 특별했다. 아버지를 잃고, 더는 모른 체할 수 없어 작업한 ‘광주민중항쟁 3부작’은 해원하기 위한 춤이었을 터. 짐을 덜어냈을까.
작가에게 가장 초극하기 어려운 대상으로서의 춤에 대한 초극의 노력이 자기 초극의 그것과 나란히 하는 것은 당연하다. 춤에 있어서도, 거기에 기대는 의식에 있어서도 초극은 매순간의 일이다. 우리는 그 과정을 안다. 영상 속 〈편애의 땅〉은 현재도 유효한 ‘고전’이었다.
이정희의 〈살푸리와 나〉 ⓒ옥상훈/한국무용협회 |
이정희의 〈살푸리와 나〉. 이정희가 앉아 있는 의자. 혼자 앉는 의자다. 앉아 있던 의자에서 아래로 미끄러진다. 다시 일어나 앉아보지만 이내 아래로 미끄러진다. 다시 앉고, 미끄러지고 ...앉고, 또 미끄러지기를 거듭한다. 호흡이 거칠어진다. 앉을 수 없는 의자다. 자신의 자리가 아닌 것이다. 이젠 그 의자가 다리를 잡는다. 의자다리와 발목에 연결된 끈을 확인한다. 대답의 자리가 필요하다. 앉기 위한 발버둥이라는 가치 곁에 벗어나려는 자리의 깊이와 질에 대한 인식이라는 또 하나의 가치, 두 딸. 움직일 때 드러나는 이정희의 검정드레스 옆 자락의 자주 빛, 바다가 보이는 작은 창 사진이 액자처럼 걸린 무대. 두 딸(댄서)의 춤. 근사한 이정희의 작품 사진들.
칠십이 넘어서도 계속되는 모순된 저항은 모든 모순의 순간을 지켜나가는 저항이 되는데, 의자가 놓이는 위치를 바꾼 뒤 자신의 곁에 두 딸을 전리품처럼 세우는 감각의 세련된 교란.
가족사진을 무대에 재현한 듯한, 선명한 춤이었다.
춤은, 아니 이정희의 춤은 춤으로 도달할 수 있는 표현의 정직함에서 시작한다. 같이 춤춘 두 댄서(이루다, 이루마)의 춤은 춤으로 가 닿게 될, 그러나 아직 가지 못한 좁은 공간이었다.
〈무념무상 Ⅰ〉. 나이듦은 젊음을 잃은 것이 아니라 품고 있는 것이라 하던가. 그들의 춤추는 춤(몸)안에는 젊은 시절의 그들이 들어 있었다. 젊음은 사라졌지만 무대에서 춤을 추는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춤의 자리를 다시 차지하고 들어오기에 충분한, 춤으로 자신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는 춤이었다. 그리고 춤은, 이들이 애써 구별하려 했던 의미가 다른 모든 의미를 안고 들어오는 자리였다. 아름다운 춤이었다.
* 아쉽게도 작가 안신희의 〈황후의 눈물〉을 볼 수 없었다. 그의 건강회복과 함께 곧 무대에서 춤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 대구, 부산 공연을 많이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