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부산국악원 제3회 영남춤축제
지역 춤판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한 영남춤 100인전
송성아_춤이론, 부산대 강사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국립부산국악원(원장 김경희)의 제3회 영남춤축제가 한 달여 진행되었다(9월25일∼10월26일). 부산‧경남‧경북을 아우르는 영남의 대표적인 축전으로, 국립‧시립단체의 개막공연, 영남춤 100인전, 한민족예술인초청공연, 독립춤꾼 창작춤전, 정재‧북춤‧조선춤 강습회, 명무열전 폐막공연이 다채롭게 펼쳐졌다.






국립부산국악원 제3회 영남춤축제 개막공연 ⓒ국립부산국악원




 축제의 메인은 3‧1운동 백주년을 기념하여 100명의 춤꾼이 대거 참여한 영남춤 100인전이다. 13개의 춤판이 마련되었고, 매 공연마다 일고여덟의 춤꾼들이 홀 춤을 추었다. 국가무형문화재와 시‧도무형문화재는 물론이고, 전통춤에 기초하여 재구성되거나 창작된 각종 작품들이 소개되어, 한국춤의 현재를 조망할 수 있는 좋은 장이 되었다. 이 중 세간의 시선을 집중시킨 것은 한영숙류 〈승무〉를 춘 주연희, 권명화 안무의 〈소고춤〉을 춘 정미숙, 김진홍 안무의 〈지전춤〉을 춘 지영숙이었다.


주연희가 춘 한영숙류 승무

오늘날 많은 전통춤이 재구성되어 무대에 오른다. 영남춤 100인전 역시 다르지 않았는데, 여타의 장르에서 원작을 개작하거나 변형할 때에는 무엇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명시하는 것이 통례이다. 그런데 춤에서 그와 같은 사례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태생적으로 구성이라고 할 수 있는 체계적인 짜임새가 없고, 관습적으로 전해지는 동작을 임의적으로 재구성하기 때문에 설명이 불필요하다는 것인가? 한성준(1875-1941), 한영숙(1920-1989), 이애주로 이어지는 한영숙류 〈승무〉는 마루라는 단락을 중심으로, 전체 춤의 짜임새와 재구성 방법론을 명확히 밝힌다는 점에서 앞서의 의구심을 재고하게 한다.
 〈승무〉를 비롯한 다수의 전통춤은 제자리에서 움직이거나, 앞으로 전진하거나, 원을 그리며 이동한 다음에 반드시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다. 마루는 이러한 경로(path)를 중심으로 쉬이 구분할 수 있는 단락이며, 일정한 의미를 갖는 춤사위로 구성된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의 이전 보유자 한영숙과 현 보유자 이애주는 공연조건에 따라 춤을 재구성할 때, 구성의 기본단위가 되는 것은 낱낱의 동작이 아니라, 마루임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40분가량의 긴 〈승무〉는 장단에 따라, 염불과장, 타령과장, 굿거리과장, 짧은 굿거리과장, 법고과장, 당악과장, 굿거리과장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각 과장은 마루로 구성되는데, 염불과장은 6개, 타령과장은 4개, 굿거리과장은 4개, 짧은 굿거리과장은 1개, 법고과장은 1개, 당악과장은 6개, 엔딩에 해당하는 굿거리과장은 1개의 마루로 이뤄진다. 이와 같은 긴 〈승무〉의 몇몇 마루를 뽑아서 15분이나 20분가량의 짧은 〈승무〉를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주연희 〈승무〉 ⓒ국립부산국악원




 10월13일 주연희의 〈승무〉는 이 춤의 체계적인 짜임새와 재구성방법론을 여실히 보여준다. 15분 길이로 축소된 춤은 염불과장으로 시작되며, 원래 여섯 마루 중에서 3개만을 뽑아온다(마루1, 2, 6). 제자리에서 두 손을 모아 인사한 다음 일어서고(마루1), 삼진삼퇴(三進三退) 하여 원래자리로 되돌아온다(마루2). 이어 솟아오르듯 전진 하고, 온 몸 던져 어른 다음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다(마루6). 그의 인사는 정중하고, 느린 염불장단을 타며 내딛는 걸음은 명료하다. 엎드려 어르는 몸짓은 인간사 번민과 함께 대지와의 교감을 보여주는데, 매우 정제된 표현이다.
 타령과장은 일하는 사람의 흥겨운 어르기(마루1), 상하치기(마루2), 다양한 걸음새로 걸어가기(마루4)로 이어지며, 좌우를 치고 원래자리로 되돌아오는 마루3을 생략한다. 앉았다 일어서는 모습은 흥겹고, 어깻짓은 자연스럽다. 상하를 치는 한삼은 가위질을 하듯 힘차고 간결하며, 다채롭게 이어지는 걸음은 구불구불 산길을 걷어가는 듯하다.
 굿거리과장은 꽃봉오리가 피듯 모았던 두 손을 살포시 벌려 어르기(마루1), 상하치기(마루2), 나비처럼 날고 꾀꼬리처럼 앉아 어르기(마루4)로 구성되며, 각종 걸음으로 걷다가 원래자리로 되돌아오는 마루3을 생략한다. 꽃, 나비, 꾀꼬리가 되어 노니는 모습이 화사하고 유려하다.
 법고과장은 제자리에서 북을 치는 대목으로, 자진모리에서 엇모리장단으로 이어진다(마루1). 모든 잡다한 생각을 멈추고 두 손을 모아 부처님을 찾게 하는 불교 〈법고〉와 달리, 옹골찬 몸짓으로 두드리는 리듬은 신명을 부추겨 타오르게 한다. 이후 당악과장은 격렬하게 북을 친 다음 앞뒤로 전진 후퇴하여 원래자리로 되돌아오는 마루의 반복이다(마루1-4). 이것을 통해 춤은 절정에 이르고,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낸다.
 주연희는 마지막 굿거리과장에서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전체 춤을 마무리 짓는다(마루1). 마루를 중심으로 병풍처럼 이어지는 그의 춤은 재구성원리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어, 짜임새가 탄탄하고, 동작 표현 역시 격식에 맞게 정제되어있다. 그런데 한영숙류 〈승무〉는 한국인의 일상적 몸짓과 노동행위, 대지‧꽃‧나비‧꾀꼬리로 대표되는 자연에 대한 태도, 삶의 맺힘과 풂에 대한 자세를 저변에 깔고 있다. 주연희 춤이 이것을 온전히 담아낸다고 하기는 어렵다. 정제된 표현 사이로 삶의 체취와 태도가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들어날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정미숙이 춘 권명화의 〈소고춤〉

영남춤 100인전에서 다수를 차지한 것은 전통에 기반을 두고 새롭게 안무한 작품들이다. 특히 기방의 각종 놀이 춤에 기초한 것이 많다. 소고, 장고, 접시 따위를 놀리는 이들 중에서도 가장 빈번하게 공연된 것은 권명화 안무의 〈소고춤〉이다.
 대구시무형문화재 제9호 〈살풀이〉 보유자인 권명화의 〈소고춤〉은 1930년대 후반 달성권번과 대동권번의 춤‧소리 선생이었던 박지홍(1889-1961)의 춤에 기초한다. 또한 향토춤의 특색을 가미하여 크고 활달한 동작을 촘촘히 배열한다. 놀이심성을 고조시키는 이 춤의 핵심은 대삼소삼(大衫小衫)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춤과 음악에서 널리 통용되는 대삼소삼은 강약대비를 일컫는 말이다. 주로 한 장단 내부의 강약대비로 설명되지만, 장단과 장단 사이, 단락과 단락 사이의 대비를 모두 포괄한다. 축제의 끝자락인 10월24일 정미숙이 춘 〈소고춤〉은 이것의 다채로운 변주를 보여준다.




정미숙 〈소고춤〉 ⓒ국립부산국악원




 작품은 자진굿거리, 굿거리, 자진모리, 굿거리로 구성된다. 서두인 자진굿거리는 길놀이에 해당하는데, 소고로 얼굴을 가리며 등장한다. 걸음새가 어처구니없는 사건사고로 아들 삼형제를 모두 잃고, 영감을 찾아나서는 들놀음(野流)의 할미를 닮았다. 이어 소고를 놀리며 무대를 감싸 돌고, 중앙에 선다.
 굿거리장단과 함께 춤은 본격화된다. 탄력적으로 이어지는 걸음은 경쾌한 중량감을 만들고, 소고를 들고 너울거리는 몸짓은 맵시를 잃지 않는다. 첫 박에 오금을 죽여 악센트를 만들기도 하고, 펴서 강조점을 만들기도 한다. 무대를 가로지르며 강하게 몰아쳤다가 자자들고, 작게 어정대다가 이내 휘몰아치며 판을 흔든다.
 빠른 자진모리장단과 함께 분위기는 더욱 고조된다. 그러나 음악에 매몰되지 않는다. 제자리에서 힘차게 소고를 친 다음 별 동작 없이 장단을 흘러 보내기도 하고, 소고를 몸 안에서 작게 놀리기도 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매 박마다 움직임이 빼곡히 나열되는데, 당찬 두드림과 경쾌한 걸음으로 관객의 신명을 최고조에 이르게 한다.
 다시 굿거리장단으로 돌아와 어깨춤을 추고, 인사하여 끝을 맺는다. 정미숙은 오랜 동안 지역 춤판을 지키며, 이매방류 〈승무〉와 〈살풀이〉, 콱 백이고 얼러 주는 각종 덧배기춤을 두루 섭렵했다. 때문에 한 장단 내에서, 장단과 장단 사이에서, 단락과 단락 사이에서, 음악과 춤 사이에서 다양한 강약대비를 만드는 것은 그의 오랜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것이다. 기방계통의 놀이춤이 아니라, 춤과 삶을 견디며 살아온 그의 속내가 온전히 드러나는 다음 춤을 기대한다.


지영숙이 춘 김진홍의 〈지전춤〉

2017년 영남춤축제가 시작된 이래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 김진홍의 〈지전춤〉이다. 부산시무형문화재 제14호 〈동래 한량무〉 보유자로, 명무 이매방, 문장원, 김수악, 김예정의 춤을 사사했다. 〈지전춤〉은 동해안별신굿 세습무계(世襲巫系)의 일원인 김계향에게 배운 무무(巫舞)와 진도씻김굿 음악에 기초하여 창작한 작품이다.
 표제에서 알 수 있듯 지전(紙錢)은 작품의 주요 소품이다. 원래 망자의 맺힌 한을 풀어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굿에서 널리 사용된 무구(巫具)로, 긴 종이가닥을 여러 겹으로 모아서 한데 묶은 형태이다. 진양조의 구음 다스름으로 시작하여, 굿거리장단, 자진모리장단, 굿거리장단으로 이어지는 〈지전춤〉은 올해에도 여러 차례 공연되었다. 이 중 긴 여운을 남긴 것은 10월15일 지영숙의 춤이다.




지영숙 〈지전춤〉 ⓒ국립부산국악원




 작품은 악사석에 앉은 소리꾼의 애절한 구음으로 시작된다.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보유자 박병천의 〈시나위살풀이〉 중 한 대목으로, 망자를 천도하는 춤임을 직감하게 한다. 엎드려 있던 지영숙은 심금을 울리는 음악과 달리, 매우 절제된 표현으로 상체를 세우고, 망자를 부르듯 양 팔을 벌린다. 그리고 천천히 지전을 잡아 일어선다. 지전은 망자의 넋을 상징하고, 춤꾼은 넋을 불러 모시는 무녀를 닮아 있다.
 굿거리장단이 시작되면, 지전을 길게 늘어뜨려 상반신을 가린 채 걷기도 하고, 부르르 떨기도 하며, 웅크려 앉기도 한다. 굿에서 무당이 죽은 자의 말을 대신하듯, 망자의 가슴 아픈 말을 몸으로 하는 듯하다. 그리고 무당이 각종 춤과 음악으로 망자를 위로하듯, 지전을 이리저리 놀려 죽은 자를 어루만진다.
 자진모리장단으로 넘어오면서, 지전을 양손에 나눠 쥐고 다채로운 움직임을 이어간다. 무대를 돌면서 순차적으로 지전을 뿌리기도 하고, 빠르게 엎어 제쳐 지전을 빙글빙글 돌리기도 한다. 또는 앉은 채로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튕기듯 발을 좌우로 차기도 한다. 무속의 춤을 닮아 있는 이러한 동작들을 통해 망자의 맺힌 한을 적극적으로 풀어냄을 보여준다.
 지영숙은 마지막 굿거리장단에서 망자를 저승으로 보내듯 팔을 높이 들어 천천히 합장하여 춤을 맺는다. 사족(蛇足)을 달지 않는 간결한 몸짓은 망자를 부르는 청신(請神)이 되기도 하고, 망자의 한스러운 말이 되기도 하고, 망자를 놀려 위로하는 오신(娛神)이 되기도 하며, 망자를 극락으로 보내는 송신(送神)이 되기도 한다. 또한 얼굴이 아닌 몸으로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을 나타내며, 그 표현이 과하지 않아 여운을 남긴다. 어떻게 10분가량의 짧은 작품에서 이처럼 다양한 모습과 정서 표출이 가능한가? 그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이자, 삶의 풍상을 견딘 인내의 결과물이라고 할 것이다.

 영남춤 100인전은 13번에 걸친 춤판을 통해 상호간의 춤을 비교하고 경쟁함으로써 지역 춤판의 새로운 활기를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새로운 얼굴들을 발굴했는데, 이매방류 〈승무〉의 김주연, 〈통영진춤〉의 하선주, 〈영남교방춤〉의 김정원, 한영숙류 〈승무〉의 김미자, 박병천류 〈진도북춤〉의 윤정미와 남선주, 양태옥류 〈진도북놀이〉의 박상용, 권명화 〈소고춤〉의 한지은, 〈구음검무〉의 이혜진 등이다. 또 다른 미득으로 창작이 전통으로 둔갑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참여종목의 내력을 명확히 알 수 있도록 계파나 창작연도를 정리해서 팸플릿에 실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영남춤 100인전을 통해 드러나는 문제점으로, 기방춤에 편중된 전승과 창작, 탈춤을 비롯한 각종 마당춤의 저조한 참가율, 향토춤의 지역적 특수성 상실을 들 수 있다. 특히, 향토춤은 특정 지역의 자연, 역사적 배경, 생활양식, 지역민의 기질 등에 의해 형성된 춤으로, 한국춤의 근원인 동시에 오늘 춤의 토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영남춤 100인전의 많은 작품들이 영남향토춤에 기초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역적 특수성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웠고, 국가무형문화재나 시도지정문화재로 보호되고 육성되는 춤들조차 지역성에 대한 명확한 실례가 되지 못했다. 비판적 자기반성과 점검이 필요한 대목이다.
 영남춤 100인전이 가능했던 까닭은 춤꾼들의 열정과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 때문이다. 그리고 국립부산국악원의 노력을 빼놓을 수가 없다. 부족한 예산임에도 전 춤판을 생음악 반주로 진행했고, 연일 계속된 공연일정에도 불구하고, 별 다른 마찰이나 사고 없이 매끄럽게 진행했다. 모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송성아

춤이론가. 무용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전통춤 형식의 체계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2016)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와 경상대학교에서 현대문화이론과 전통춤분석론을 강의하고 있다.​ ​ 

2019. 12.
사진제공_국립부산국악원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