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 글의 제목을 생각하며 미안하게도 루시드 폴에게 빚을 질 수밖에 없었다. 〈얍! 얍! 얍!〉(5.18.-26. 자유소극장)의 엔딩 장면의 반주곡이기도 한 루시드 폴의 ‘물이 되는 꿈’에 나오는 가사를 제목으로 가져오고 싶어서였다. 어린이 무용이라고 보러 가서, 남 일처럼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엔딩 장면에 다다라서는 급기야 눈물까지 나는 납득이 안 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노래가 나오는 부분에서 특히….
이 공연을 두 번 봤는데, 처음 그랬을 때 어머 내가 진짜 늙었나? 아니 내가 아이가 되버린건가? 하며 도무지 상황을 정리할 수 없어 머리가 띵했다. 두 번째 봤을 때 뒷줄에 앉은 아이 엄마도 눈물을 훔치는 걸 언뜻 본 후에야,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며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누가 봐도 〈얍! 얍! 얍!〉(안무: 밝넝쿨 · 인정주)이라는 어린이 무용은 아이들이 깔깔거리고 킥킥거릴 만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해맑고 따뜻한 작품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왜, 어떻게 가슴을 잔잔하게 흔들면서 헤집고 들어가 마음 한 켠에 덮어두었던 무언가를 건드린 걸까? 아이의 보호자로 역할을 정하고 갔던 엄빠 관객들이 마지막에는 더 공연에 빠져들고 뭔가 모를 힐링의 느낌을 받게 되는 걸까?
나는 갱년기를 지나면서부터는 가능한 한 내 감정을 솔직하게 느끼고, 스스로의 감정 얘기에 귀 기울이고,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대답하려 한다. 그래서 그 감정이 속으로 숨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 가장 적절한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행동의 건강한 연료가 되도록 하려고 훈련 중이다. 내가 어디서 화가 나고, 어디서 기쁜지를 지켜보면서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그 감정이 어떤 주기를 갖는지 감정 자체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니 남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니 여러모로 좋은 공부라고 생각이 되어 열심히 감정 바라보기를 하는 중이다.
아이, 순수, 생명력 그리고 놀이
〈얍! 얍! 얍!〉은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며 작업해 온 부부무용가 인정주와 밝넝쿨의 작품이다. 이들이 2005년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를 만들고 2008년 결혼하여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며 2016년이 되어서야 육아에서 경험한 과장된 몸짓과 장난감들이 등장하는 공상의 세계를 춤으로 그려냈고, 그 작품이 어린이 무용의 첫 작업이라 할 수 있는 〈공상물리적 춤〉이다. 그러니 이 작품은 자신들의 생활과 춤을 연결시키기 시작한 결과였다. 그 후 〈동물극장 춤〉 〈우주-아이-삶-춤〉 〈돼지춤〉에서 2023년의 〈이렇게 저렇게 그렇게 춤〉까지 이들의 어린이 춤은 계속 진행 중이다.
대상은 영유아, 청소년까지 확장하여 실험 중이며, ‘동심으로 바라보는 세계관’이란 화두를 세우고 동심에 집중하고 있다. 순수한 동심의 세계란 자신의 근원을 향하는 것과 다름 아니고 바로 그 과정이 시간을 거슬러 가서 어린 자신의 마음을 만나는 일과 다른 일이 아니란 걸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마음속 어린아이, inner child를 만나는 일이 심리치료에서 큰 화두이지 않은가. 그러니 이들이 만든 공연은 현재 어린이도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보호자도 자신의 동심을 깨울 수 있는 시간일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터그 손소영에 의하면, 이 작품은 특히 ‘생명력을 주제로 한 다양한 몸과 리듬의 실험’이다. 그리고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작아서 보잘것없이 보였던 사소한 것들이 ‘거대한 성공’이었음을 돌아보게 하고 응원으로 얍!얍!얍!이란 기합소리를 보내며 어린, 사소한, 미약한 것들에 따뜻한 찬사를 보낸다.
국립현대무용단 〈얍! 얍! 얍!〉 ⓒ황승택/국립현대무용단 |
부모들은 아이들과 계단을 오를 때 자연스럽게 숫자를 읊는다. 하나아 두울... 딱히 숫자를 가르치려는 의도 뿐 아니라 자연스런 리듬 놀이도 되기 때문이다. 〈얍! 얍! 얍!〉에는 이런 일상의 놀이들이 생생하게 들어와 있다. 무대 가운데 천정에 닿을 정도로 크고 굵은 나무 한그루가 세워져 무대의 중심을 잡는다. 그리고 나무는 생명의 큰 은유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자연스런 환경이 되어버린 숫자 놀이로 ‘수의 춤’이 시작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재밌는 움직임으로 보여주는 ‘자연의 춤’, 다양한 동요에 맞춰 진행한 시계 놀이 ‘시간의 춤’ 까지는 놀이성을 중심으로 기차처럼 쭉 달려간다. 이 작품을 보는 동안 또 하나의 즐거움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공연에서의 대사를 따라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행운스럽게도 바로 뒷줄의 아이가 매우 즐거워하며 공연을 봤는데, 그 까르륵 하는 소리가 어느 음악보다. 어느 오디오보다 공연과 어울어져 나까지 즐거움을 전염시켰다.
국립현대무용단 〈얍! 얍! 얍!〉 ⓒ황승택/국립현대무용단 |
봐봐! 우리는 하나야!
‘봐봐!!춤’은 무용수들이 서로 춤으로 겨루는 재밌는 장이다. “보인다는 건 ‘있다’는 거예요, 존재한다는 말이기도 해요. 우리는 스스로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을 먹어요...서로 많이 봐주면 좋겠어요. 깊고 다정한 눈으로” 경쟁이지만 더 창의적이기 위한 따뜻한 경쟁이 미소 짓게 만든다. 앞으로 장들이 군무로 에너지를 한껏 올렸다면 ‘봐봐!!춤’에서는 둘씩 짝을 이뤄 ‘머리 어깨 팔 무릎’을 어떻게 더 기발하게 표현하는지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무용수들의 춤 내공을 맘껏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해 다른 공연에서 느낄 수 없는 춤의 재미를 보여준 장면이기도 하다. 남의 시선을 의식한 쑥스럽고 장난기 어린 동작과 그걸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들.
국립현대무용단 〈얍! 얍! 얍!〉 ⓒ황승택/국립현대무용단 |
‘나, 너 춤’은 〈얍! 얍! 얍!〉의 대미를 장식하는 주제 장면이다. 티셔츠의 앞에는 나, 뒤판에는 너라고 큼지막하게 써 있다. 앞을 보이면 나이고, 뒤로 돌면 너이다. 나와 너가 동전의 양면처럼 뗄 수 없는 사이라는 은유가 기발하게 맞아 떨어진다. 또 누구는 돌아있고, 누구는 앞을 봐 나와 너가 어우러진 채 함께 하고 있는 ‘우리’의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나와 너는 꼭 사람이 아닐 수도 있지요. 내가 아주 오래 전에 무엇이었던 것처럼 너도 지금 그 무엇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나와 너는 결국 하나였던 거예요” 이런 심오한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숫자가 써 있었던, 계절을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던 티셔츠에 똑같이 나와 너 라는 한 단어를 새기는 것만으로 관객은 어느 순간 이런 근원적인 이야기 앞에 서게 된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쉬워 보이기 위해 공이 많이 들어간 쉽지 않은 춤
이 작품에서 10명의 무용수들 얘기를 안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오디션을 통과하여 이 자리에 있게 된 10명의 춤꾼들은 그 만큼 한명 한명 개성이 또렷하고 인상적으로 자신을 잘 드러내어 작품이 진행될수록 관객 몰입할 수 있는 근원이 되었다.
국립현대무용단 〈얍! 얍! 얍!〉 ⓒ황승택/국립현대무용단 |
이영례와 박수진이 사랑스런 표정과 야무진 춤실력으로 아이들과 친화력을 한껏 높였고, 신상미와 고다희가 마치 아이 같아 보이는 마법을 부리며 어색하기 십상인 무용공연의 어른 출연자들의 벽을 뛰어넘었다. 문형수가 엉뚱한 동네 형 캐릭터로 만화처럼 친근하게 다가오고, 임정하 역시 동네 구석에서 놀고 있을 만한 어떤 ‘아이 어른’으로 마음의 포용력을 건드린다. 허준환은 다문화 가정의 형 같아 보이기도 하면서 탄탄한 몸과 춤실력으로 깜짝 놀라게 하고, 오영훈은 현실 나이를 가볍게 거슬러 어느 형보다 천진한 소년 같다. 양병헌은 체형과 얼굴 모두 아이같아 형 자체이다. 김승록은 체구는 가장 크지만 가장 아이 같은 역할을 맡아 실수하고 틀리면서 웃음 코드를 눌러주는 역할이다.
다른 아동 연극에서 아동극이라는 한계가 그어지는 것은 출연자들의 실력이 고만고만하게 아동극에 머물러 있을 때이다. 〈얍! 얍! 얍!〉이 다른 아동극과 차별되는 지점은 출연자들의 춤실력이 탄탄하여 틈틈이 춤으로, 존재감으로, 몸으로 무대를 꽉 채울 수 있는 힘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립현대무용단 〈얍! 얍! 얍!〉 ⓒ황승택/국립현대무용단 |
내가 두 번째 공연을 보면서 왜 ‘물이 되는 꿈’ 장면에서 눈물이 난 건지 짚었던 건, 어느새 아동극을 하기에도 넘칠 만큼 어른이 되어버린 그들이, 2024년에 한국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청년인 출연자들이 마음을 다해 아이로 돌아가고, 아이와 마음으로 만나기 위해 열정을 다해 몸을 사리지 않는 모습에서 뭔가 찡한 마음이 올라 왔고, 그 상태에서 루시드 폴의 서정성이 그만 버튼을 눌러 버린 거 같다.
우리는 모두 꿈을 갖고 있었다. 꽃이 되고, 씨가 되고, 강이 되고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꿈… 산이 되고 내가 되고, 바람이 되는 꿈… 다시 바다, 바다가 되는 꿈…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무용가로 살아가는 만만치 않은 삶을 사는 안무자 부부도, 자기의 방식으로 아이들과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열 명의 청년 무용가들도, 휴식도 급한 휴일에 아이를 데리고 극장을 찾은 육아하는 젊은 엄빠들도, 그리고 기억을 많이 더듬어야 하지만 나 역시도, 그 꿈을 기억하는 건 어떤 감격과 어떤 눈물을 만나는 일일 수밖에….
이지현
1999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등단했다. 2011년 춤비평가협회 회원이 되었으며, 비평집 『춤에 대하여 Ⅰ, Ⅱ』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서 왕성한 비평작업과 함께 한예종 무용원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아르코극장 운영위원과 국립현대무용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