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미나유 프로젝트 〈구토〉
삶의 의미, 구원에 대한 자전적 질문
김혜라_춤비평가

미나유는 작품 〈구토〉에서 육신적 삶과 죽음을 환기시키며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삶의 의미가 무엇일지 질문을 던진다. 더불어 70여년을 살아온 자신의 시간을 회고하며 스스로에게 반문하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는 인생의 허무와 상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불가피한 현실의 벽에 마주칠 때 삶의 의미를 누군가(신)에게 되묻곤 한다. 존재의 불안과 절망, 어둠과 구원에 대한 안무가의 사유를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미나유 프로젝트 〈구토〉 ⓒ차상원




 미나유 작품의 특징은 감정과 생각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간결함과 생각을 복잡하게 유도하거나 지배할 틈을 주지 않는 명료함이다. 작품 〈구토〉에서도 안무가만의 고유한 개성이 반영되어 전반과 후반의 안무방식이 확연히 다르게 전개된다. 전반부 30여분은 미니멀(minimal)하고 피지컬(physical) 한 방식으로, 후반부에서는 서사적 영화 텍스트를 주된 매체로 사용하여 안무가의 의도를 명료하게 각인시킨다. 여기에 스트리트(street) 감성의 감각적인 춤과 세련된 비트의 음악 그리고 영상을 삽입하여 주제에 적합한 요소만을 간결하게 배치하였다. 〈구토〉(9,21~22.국민대학교예술관대극장)는 2017년 12월 2일에 초연되었고, 한국춤비평가협회의 2017년도 작품상을 받았다. 안무가의 일상의 성실함과 예술적 열정을 〈구토〉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미나유 프로젝트 〈구토〉 ⓒ차상원




 아무 장치도 없이 오롯이 현란한 움직임만으로 가득 채워진 초반 무대는 미나유 고유의 개성으로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여기에 김건중, 김동일, 김지형, 임종경, 정건, 정지원, 정한별 7명 댄서들이 열일 한다. 발작에 가까운 감각적인 춤만으로도 매력적이었으나, 반복되는 동작을 30여분의 긴 시간동안 몰입하는 댄서들의 에너지와 정신력이 놀랍다. 각자 맡은 핍핀스타일, 점핑중심, 우발적인 미끄러짐, 회전중심의 춤은 강렬한 비트와 결합하면서 무대의 열기를 고조시켰다. 댄서마다 설정한 동작구의 패턴들이 반복·변형해 갈수록 전체 움직임 구조가 부각되어 하나의 언어적 의미로 인지된다. 다시 말해 그저 앞을 향해 돌진하는 7명 댄서들의 릴레이식 미니멀한 춤을 보다보면 현대인의 기계적 일상 내지는 치열한 생존의 모습으로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 현실이 보였다.




미나유 프로젝트 〈구토〉 ⓒ차상원




 중반부에 들어서면 물리적 한계에 도전하듯 숨 가쁜 30여분의 춤 무대가 차분하고 건조한 분위기로 급변한다. 무대 벽면 초음파 주파수가 흐르고 이에 반응하는 두 댄서들은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들의 움직임에는 인간다운 교감이 묻어나지는 않았다. 나머지 댄서들도 무대 공간을 배회하고 기도하며 어떤 의미를 찾아 헤매지만 무대는 어두운 분위기로 가득하다. 이는 허무와 불안의 정서로 우리들 마음을 은유하는 것 같았다.






미나유 프로젝트 〈구토〉 ⓒ차상원




 오래된 타이프라이터를 치는 효과음과 함께 무대 바닥은 알파벳 활자로 구성된 문장들이 나열된다. 일종의 ‘레터’라는 인상이다. 이어지는 영화 〈피아니스트〉 장면이 투사되는 장면을 보며 그 의미가 나치 학살에서 살아남은 피아니스트(브와디스와프 1911~2000)의 역사적 기록과 회고의 편지를 떠올리라는 의미로 해석해본다. 그 이유는 6명의 댄서들은 수용수로 끌려가듯 무기력하게 일렬로 걷지만 그들 무리와 동떨어져 불안에 떠는 한명의 댄서는 아마도 독일인 장교 앞에서 목숨을 걸고 〈쇼팽의 발라드 1번〉을 연주하는 그 피아니스트를 묘사하기 때문이다. 비극적 현실에서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연주한 피아니스트는 우연히 장교와 만나 신이주신 재능으로 육체적 구원을 얻었다.






미나유 프로젝트 〈구토〉 ⓒ차상원




 이어지는 〈타아타닉〉 영화의 마지막 장면, 침몰하기 직전 죽음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여러 모습이 영상에 담겨있다.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며 두려움을 없애는 엄마, 침대에 함께 누워 죽음의 현실을 수용하는 노부부, 끝까지 선실에서 자신의 본분을 지키는 선장의 모습이 그것이다. 치명적인 영화의 아우라에 시선이 집중된다. 영화적 메시지가 워낙 강렬해서 무대 댄서들의 역할은 상쇄되어 작품의 미장센을 꾸리는 오브제로 보일 정도였다. 안무가는 초반부에 춤으로 승부했던 것과는 달리 후반부에는 춤과 댄서들의 존재감이 영상에 압도당하는 모습으로 연출했다. 의도된 것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춤에 국한되지 않고 작품 메시지 전달에 주력한듯하다.
 본 작품의 주 메시지로 생각되는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인상적이다. 타이타닉 호 갑판 위에서 바이올리니스트는 탈출을 포기하고 찬송가 〈내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을 연주하며 자기 자리를 지킨다. 자신의 목숨보다는 승객들의 평안과 영적 구원을 선택한 장면과 무대 댄서들의 죽어가는 나신의 육체가 대치된다. 이는 마치 육체는 썩어 사라지나 정신적인 구원이란 개인의 가치판단과 선택에 달려있다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죽음은 예정되어 있지 않기에 인간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으나 살아 있는 동안 삶의 의미는 신이 부여한 자신만의 소명을 다할 때 자유로울 것이라고 안무가는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미나유의 작품 〈구토〉는 불안정한 오늘을 살아내며 자기구원의 길이 무엇인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장 폴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에서 주인공 앙투앙 로캉댕이 허무하고 절망적인 현실에서 마지막 희망으로 소설을 쓰겠다는 의지와 미나유의 춤을 향한 의지와 맥락이 닿아있어 보인다. 더불어 노장은 작품에서 젊은 우리들에게 삶의 존재적 의미를 생각하게 독려한다. 오랜만에 작품이라는 틀을 넘어선 인문적 사유를 하게 한 좋은 작품이다.
 미나유 선생은 인터뷰에서 춤계 후배들에게 “우리는 쓸모없는 상품이 아니라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라고 전했던 메시지를 되새겨 본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비평전공.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평가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춤비평을 기고하고 있다.​ ​​ 

2019. 10.
사진제공_차상원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