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9 댑댄스 프로젝트 기획공연 〈거룩한 태도〉는 댑댄스의 주제인 자연과 환경오염의 범주 안에 있으면서 오염의 상황과 그 결과를 다루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다룬다(2019.10.26.토-27.일 오후4시, 서강대학교 메리홀 소극장/ 안무,출연: 김호연, 임정하, 전건우). “자신의 안전을 위해 자연을 지키고자 하는 이기적 마음과 태도에 대한 질문”이라는 매우 명료한 작품의 주제는 이 작품 전체를 통해 유지되는 이들의 명료한 태도이기도 하다.
댑댄스 프로젝트 〈거룩한 태도〉 |
공연 시작 전 무대 전면에 펼쳐진 영상은 포스터 이미지의 손 모양 아래에 껌뻑 거리는 눈동자가 더해진 영상으로 단순한 선만으로 이루어진 드로잉이 주는 간결함과 움직이는 눈동자가 더해져 신비한 상상을 할 수 있는 여백으로 관객의 눈을 유인한다. 임정은의 선 중심의 가녀린 듯 집중력 있는 영상은 딴소리처럼 무대 위의 점층적인 뜨거움을 적절히 식히거나 거들면서 작품을 끌고 가는 한 축으로 작동한다. 그와 더불어 영상처럼 가녀린 듯 존재감 강렬한 또 다른 출연자는 드뷔시의 달빛(Claire de Lune)이다. 오로지 한 곡만 때때로 반복적으로 쓰이는 데 간택된 이 곡은 잊을 만하면 조용히 찾아오는 유령처럼 때론 심란하게, 때론 모든 인간 짓거리들이 멈추고 뒤돌아 오염(?)하게 앉아있을 때 장렬한 화이트 라이트와 더불어 거룩함을 한껏 드높여 주는 의심의 여지없는 ‘몸 없는 인상파’다. 영상과 달빛 연주곡은 무대 위의 세 남자가 자연을 향한 매우 거룩하고 삽질스러운 짓들을 할 때, 매우 고귀한 여인이나 요정처럼 자율성을 갖고 매우 센스 있게 들고 나면서 사물의 본성을 뛰어 넘는다.
댑댄스 프로젝트 〈거룩한 태도〉 ⓒ최시내 |
문제의 또 다른 사물은 나무 화살대, 긴 1자형 유리컵, 그리고 그 안에 담길 물, 자석 목걸이 알들과 철판과 하나의 흡착판을 뿌리로 가진 보잘것없는 나무 모형들이다. 이들은 초반부터 출연자에 의해 하나씩 등장하고 그 등장과 무대 전면에 배열되는 과정은 절차 자체가 의미를 가지면서 제의성을 획득해 간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을 제의로 만드는 것은 절차이다. 약속되고, 준비된, 과정이 충만한 절차는 그 자체로 아우라를 만들면서 추는 자 보는 자 모두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켜나간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차분하나 속으로 매우 거만한 사람을 보는 것처럼, 3명의 출연자들은 어딘가 굳어있고, 자연스럽지 않으며 알 수 없는 속마음을 가진 듯한 인물들로, 등장할 사물과 몸과의 관계를 만들어 자연스레 적절한 위치에 안착시키는 것에 주력한다. 그러다 나무 화살대를 몸에 박힌 것처럼 옷 아래로 넣어 고슴도치처럼 만들거나, 칼싸움을 하면서 살살 장난기가 발동하더니 온갖 방법으로 부러트리는 일에 열중하다가 서로 맨살의 배로 눌러 부러트리는 위험한 선을 넘나들면서 사물들은 제 몸이 변형되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사람의 행동은 더욱 거칠고 자신에 차 있다. 그러나 이들의 폭력은 제의라는 명분 안에 존재하며, 유희로 포장되고,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규칙으로 절차화되어 있다. 이 흐름이 심화될수록 앙상하게 추상화된 그들이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과 그것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모순과 허세로 가득 차 점점 더 우스꽝스러운 지경에 다다른다.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으나 기껏해야 유희와 억지 사이에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댑댄스 프로젝트 〈거룩한 태도〉 ⓒ최시내 |
댑댄스의 환경문제에 대한 풍자와 잘 숨겨놓은 해학은 초기작인 〈in the melting pot〉(2016) 이래로 일취월장의 시기를 맞은 듯하다. 일상적 사물들은 통제되지 못하여 어수선한 채 주제에서도 놓여나버리는 장난감 같은 존재였다면, 지금의 사물들은 비록 장난에 말려들어 놀아주기도 하지만 때론 사람과 완벽한 듀엣을 추거나, 사람을 부리거나, 때론 사람에게 패배하는 연기를 완벽히 소화내면서 보다 충실하게 존재한다. 호리존트를 각지게 반원형 스크린으로 만든 최상지의 무대와 그 흰 스크린 벽을 잘 활용하고 분위기를 잘 연출한 이승호의 조명이 이 작품의 분방함을 잘 구획 지어주는 역할을 한 것도 작품을 짜임새 있게 만든 공신이다.
댑댄스 프로젝트 〈거룩한 태도〉 ⓒ최시내 |
그러나 무엇보다도 3명의 출연자들은 사물을 다루면서도 사물성을 몸으로 전이시켜 사물이 되다가 사람이 되다가를 반복하는 전능함을 보여주기에 성공했는데 본인들도 부지불식간에 마술처럼 이 모든 일이 일어난 듯 보인다. 연기하려고 하지 않고, 춤추려고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 댑댄스의 현대성은 이제 사물과 몸과의 관계에서도 인간, 사물 어디에 중심을 두지 않는 자재함을 갖춰가고 있다. 얼마 전 이들은 서울시민예술대학에서 올해 새로 신설된 ‘창작과정’의 유일한 무용단체로 선정되어 작년에 이어 일반시민들과 1년 활동의 결과를 〈예술로 바라보는 인류세〉라는 영상, 설치 융복합 창작품으로 발표하였다(2019. 10. 6. 서울시민청). 역시 환경문제로 작업을 하였고, 심사과정에서 이들이 얘기한 것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예술 작업하는 것과 일반인 교육하는 것을 나누지 않고 균등하게 활동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작업을 지켜보면서 아직 모자라는 부분도 많지만 이들이 무엇이든지 나누지 않고, 무엇을 위해 무엇을 수단시하지 않는 태도를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들의 귀한 균형감을 축복한다.
이지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춤비평가로 등단했다. 2011년 한국춤비평가협회의 정회원이 되었으며, 최근 비평집 『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 왕성한 비평 작업과 함께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강사, 서울무용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