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무용단 ‘스웨덴 커넥션 Ⅱ’
공감능력이 돋보인 작업, 의미 있는 문화 교류
김혜라_춤비평가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북유럽 감성의 라이프스타일이 일상에 파고들어 다양한 컨텐츠로 소통하고 있다. 이를테면 단순한 미학과 실용성을 결합한 디자인 혹은 휘게(Hygge), 라곰(Lagom) 같이 소박하고 균형 잡힌 삶의 태도를 실천하는 움직임들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그들만의 문화·환경적 요인에 기인한 삶의 철학일터이지만 치열한 경쟁이 일상인 우리 현실에서는 안정되고 여유로운 복지국가의 이미지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북유럽의 대표적인 나라인 스웨덴과 우리나라가 수교 60주년을 맞아 문화교류 차원에서 ‘스웨덴 커넥션Ⅰ,Ⅱ’ 공연을 기획했다. 국립현대 무용단과 스웨덴의 스코네스 댄스시어터와의 합작은 작년 ‘스웨덴 커넥션Ⅰ’에 이어 올해 ‘스웨덴 커넥션Ⅱ’에서도 세 작품이 상연되었다. 먼저 페르난도 멜로가 안무한 〈두 점 사이의 가장 긴 거리〉는 작년에 이어 재현되었고, 장혜림의 〈제(祭)〉와 리디아 보스의 〈군중의 스냅샷〉이 한국에서 첫 선을 보였다(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3,29~31).






리디아 보스 〈군중의 스냅샷〉 ⓒ목진우/국립현대무용단




 첫 작품인 리디아 보스의 〈군중의 스냅샷〉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겪는 관계성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했다. 우리가 숨을 쉬듯이 일상에서 부딪히는 갈등이나 감정을 소진시키는 긴장 상황이 은유된 이미지가 가득하다. 특히 ‘스냅샷’이라는 설정을 통해 삶의 단면을 여러 컷으로 나열하며 전체 흐름을 끌고 간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낯선 상황을 익숙한 현실로 인지하게 하는 숨 쉬는 호흡을 강조하는 이미지 컷과 그 호흡을 유머러스하게 강조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일명 ‘낯설게 하기’ 기법으로 사실적인 상황을 한 발 떨어져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설정돼 있는 것이다. 일상적인 몸짓은 빠르고 생동감 있는 동작으로 확장되고, 숙련된 군무로 전달된다. 군무진의 여러 이미지 표현들 속 유달리 다른 동작을 하는 댄서는 사회에 적응 못하는 소외된 개체를 은유한다. 외로움의 감정으로 연결되는 솔로신은 어쩌면 개인의 자유의지와 사회가 요구하는 공동체성 사이의 갈등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겠다. 사랑, 고독, 방황, 열망, 유머, 여유로움 같은 보편적인 감정이 안무에 잘 스며들어 있다.




리디아 보스 〈군중의 스냅샷〉 ⓒ목진우/국립현대무용단




 이 작품의 장점은 노련한 컷들의 이음새 그리고 현실감을 잃지 않으면서 위트 있게 구현된 이미지들이 마치 친구와 일상적 삶의 고민을 얘기하듯 자연스러웠던 점이다. 이국적인 댄서들의 춤도 같은 동작구를 하면서도 각각의 미묘한 개성이 느껴지는데, 이것은 8명의 댄서가 안무의도를 온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체화시켜 표현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입과 얼굴을 사용해 소리 내는 신체 아카펠라 방식이나 안경 같은 소품을 이용한 놀이방식은 소소한 재미를 주었다.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로 대형 비닐 커튼이 본 작품에서 각각의 씬(scene)과 정서적 무드를 가늠하게 하는 오브제로 사용된 점이었다. 초반에는 비밀스럽게 댄서를 싸매고 나오기도 하고 중간 즈음에는 남녀 간 블루스에 활용되기도 하며 전체적으로는 배경막으로 때로는 무의미한 PVC 물체로 사용하며 다양한 이미지 컷을 잘 받쳐주는 축으로 사용되었다. 전체적으로 긴장과 이완, 현실감과 상상적 표현의 완급조절이 적절하였다. 일상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삶의 풍경’이 닮긴 작품으로 스웨덴의 감성을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페르난도 멜로 〈두 점 사이의 가장 긴 거리〉 ⓒ목진우/국립현대무용단




 두 번째 작품인 페르난도 멜로가 안무한 〈두 점 사이의 가장 긴 거리〉는 ‘경계’라는 개념에 천착한 작품이다. 안무자는 현실적·정신적·심리적 경계이자 장벽을 다양한 층위에서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인 작품의 흐름을 살펴보면, 먼저 널판지 오브제에 댄서들의 고요한 내적 에너지를 중첩시켜 추상개념을 눈에 보이는 현실로 치환 시키고자 하였다. 국립현대무용단의 김민진, 서보권, 손대민, 이유진, 이태웅, 홍호림 등6명의 댄서들은 층층이 쌓인 널판 사각 박스를 중심으로 몸과 에너지를 밀착시키며 교류한다. 지속적으로 댄서들은 유기적인 에너지를 교차시키지만 인간 널판으로 환유된 느낌이 랄까? 무색무취한 초반의 분위기를 펼친다. 여기에서 무대 중앙에 자리 한 사각박스는 비밀의 공간이자 호기심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는데, 박스 위에 누워 있는 남자 댄서의 몸을 쓰다듬는 은밀한 손길이 건조한 분위기에 긴장감을 조성한다. 정적인 분위기는 조금씩 전환되며 댄서들은 널판을 이용한 무게 중심으로 미끄러지고 올라타고 뛰어넘으며 움직임의 반경을 넓히고자 한다. 그러나 어떤 경계의 벽을 적극적으로 넘지는 못한다. 저자는 이 부분이 정신적 혹은 문화적인 경계를 의미하는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적극적으로 널판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보이지 않고 널판 범주만을 이용한 수동적인 몸짓들을 통해 개인과 사회에 놓인 장벽이자 경계를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상하는 동안 저자는 우울감과 답답함 그리고 알 수 없는 한계가 느껴졌다.




페르난도 멜로 〈두 점 사이의 가장 긴 거리〉 ⓒ목진우/국립현대무용단




 작품 후반부에 이르면 전체 분위기는 서사적인 성격을 띠는데 남녀 사이의 널판이 정서 교류에 경계 내지는 문제를 드러내는 오브제였으며, 이 부분에서 작품의 제목인 ‘두 점 사이의 가장 긴 거리’가 가장 설득력 있게 드러났다. 남녀 간 미묘한 감정의 경계를 표현한 것으로써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관계의 문제를 공감하기 쉽게 시각화하였다.
 안무가의 의도인 ‘경계’라는 주제 개념에 설득당해 작품을 관람한 것이었을까? 널판 오브제의 극사실적 재제에 나의 상상력이 경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작품의 의도가 각인될 수 있었다. 그러나 주제 개념 이상의 상상력과 풍부한 해석내지는 시사점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더불어 스웨덴의 색채와 우리나라 댄서만의 개성(어느 나라 댄서가 해도 가능할)이 기대보다는 부각되지는 않아서 두 나라 합작의 차별성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나라의 경계와 민족적 차이가 작품에서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의 문화적 경계이자 편견일 수 있겠지?라며 스스로 자문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장혜림 〈제(祭)〉 ⓒTilo Stengel/국립현대무용단




 마지막으로 한국적인 선과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춤의 표현성이 강한 테크닉을 접목해 온 장혜림 안무가가 스웨덴 스코네스 댄스시어터에서 2개월간 작업하여 올해 3월 2~15일 현지에서 올렸던 작품 〈제(祭)〉를 소개했다. 그녀는 “성서의 번제(Burnt Offering)의 의미를 모티브로 오늘의 현실에서 제의의 의미는 노동으로 태워지는 시간이라 설정해 안무를 했다”고 밝혔다. 제(祭)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춤의 기원이자 치료이며 죽음까지 승화시켜 축원하는 강력한 춤의 토대이다. 장혜림은 이 근원적인 춤의 시초에 주목하여 번제가 제물을 태워 향기를 올리는 행위라면 그녀의 제물은 노동하는 몸이고, 죽음으로 가고 있는 노동의 시간이다. 안무가는 그들의 육체를 위로하고 기억하는 현실적인 제의로 해석한 것이다.




장혜림 〈제(祭)〉 ⓒTilo Stengel/국립현대무용단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에 낡은 안전모에서 풍기는 처연함이 작품 초반의 흐름을 장악한다.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7명의 스코네스 댄스 시어터의 댄서들은 온 몸에 숯을 바르며 번제 의식을 표방한다. 정적 속에 이어지는 마치 위령굿을 하듯이 댄서들은 소소한 행복을 사랑했던 동료들의 이야기를 말로 표현한다. 이름 없이 살다간 혹은 살고 있는 아무개를 부르며 역설적으로 그들의 삶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댄서들은 안전모를 쓰고 다소 무거웠던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현실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노동하는 몸을 대변하듯 춤추기 시작한다. 전체적으로 군무의 형태감을 유지하며 집단적인 성격이 강조된 몸짓으로 에너지를 끌어 올린다. 이 에너지가 바로 번제의 향기가 아닐까? 짐작하는 대목이었다. 그 춤의 중심에는 승무의 북춤을 형상화시켜 삽입하였다. 스웨덴 댄서들은 하단전에 힘을 주거나 한국춤의 주요 동작인 굴신과 호흡이 익숙하지 않기에 에너지를 응축시켜 나오는 공동체적 기운은 전달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댄서들은 북을 치는 팔놀림에 사력을 다해 나름 모던한 몸짓으로 격렬한 표현에 집중함으로써, 그들만의 해석으로 중화시켰다는 인상이었다. 그들만의 레퀴엠을 한 판 춘 후 댄서들은 여운을 남기고 뒤를 돌아보며 천천히 걸어 나간다. 안무자는 나름 자연 회귀의 여운과 복원을 염원하는 승무적(전통적) 토대를 여러 장면에 접목시키려 했음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장혜림 〈제(祭)〉 ⓒTilo Stengel/국립현대무용단




 성서에 나오는 번제는 산 짐승의 희생을 수반한 의식으로, 인간의 구원(안녕)을 위해 살아 있는 생명이 죽음으로써 제가 완성된다. 반면 안무자가 의도한 제는 살아 있는 생명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소외된 노동자의 삶을 의미 있게 조명하고자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이라고 말하신 백장스님의 하루도 일하지 않으면 하루도 먹지 않는다는 가르침처럼 노동의 의미는 산 자만이 누릴 수 있고 다스릴 수 있는 주체적인 삶의 모습이다. 장혜림이 주목한 현재적 제의 의미도 바로 이 지점으로 살아 있는 자만이 춤추고 일할 수 있는 거룩한 육체의 향기로 해석해 조명한 점이 기억할 만하다.

‘스웨덴 커넥션 Ⅱ’에서 만난 리디아 보스와 페르난도 멜로, 장혜림의 작품들이 회자될 만큼의 특별함은 아니더라도 일상적 삶과 밀접한 그들만의 가치관이 스며든 작품으로 우리와 다르지 않은 비슷한 고민들이 녹아 있어 공감할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세 작품에 참여한 댄서들도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안무가와 만나 작업한 경험이 결과보다 소중한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의 교류는 양국의 대표적인 단체와 각 나라의 안무가들이 호흡을 맞추었다는 그 과정 자체로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비평전공.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평가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춤비평을 기고하고 있다.​ ​

2019. 05.
사진제공_목진우, Tilo Stengel/국립현대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