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시무용단 〈놋·NOT〉
공감대 형성에는 성공적, 신선한 시도는 미흡
김혜라_춤비평가

서울시무용단의 정기공연 작품 〈놋·NOT〉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5. 23~24.)에서 선보였다. 이 작품은 대중과 공감할 수 있는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갈등 문제를 주제로 최근 몇 년간 국공립 단체에서 시도해 온 한국춤에 현대적 움직임을 활용하는 방향성을 보여준 올해 부임한 신임 정혜진 단장의 첫 작품으로 기대와 관심을 모았다. 부임 전 이미 정해진 대본을 토대로 짧은 몇 달 만에 완성해야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무대는 성실함과 열정으로 70여분의 시간을 채워내었다.
 작품은 프롤로그, 에필로그 포함 13장의 단편 스토리로 구성되었고 어린 소녀의 눈에 보이는 혼란스러운 세상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안무자의 설명대로 ‘놋’이라는 단어는 제주도 방언인 ‘얼굴’이라는 뜻으로 불통의 관계를 소통으로 풀겠다는 암시를 품는다. 다시 말해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우리의 문제를 풀어보려는 안무가의 바람이 담긴 제목인 것이다. 안무가는 가족 간, 세대 간, 이성 간, 권력 간 그리고 시대의 문제를 진단하며 동시에 극복해보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하였다.
 극의 내용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10살 소녀가 되어 한국전쟁 중 헤어진 아빠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소녀의 시선에 비췬 현실은 혼란과 갈등이 가득한 일상 속 전쟁터이라 할 것이다. 할머니가 살아온 70년 동안 도시(서울)는 외관상으론 발전했다지만 관계가 단절된 차갑고 암울한 곳으로 표현된다. 할머니의 기억 속 소녀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며 아빠의 존재를 묻고자 하고 있지만 아무에게도 전달되지는 않는다. 아니 그들은 들을 여유가 없다. 관계의 벽을 상징하는 각각의 장면은 개인적·사회적·이념적인 단절까지 아우르는 상황으로 확대되어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안무가는 그리움이라는 정서를 축으로 현재와 과거의 기억을 중첩하고, 현실과 과거의 공간을 무대에 대치해 가면서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하는 메시지로 촘촘히 채운다.






서울시무용단 〈놋·NOT〉




 전체적으로 작품은 대본의 극적 표현에 주력하여 주제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명쾌함이 있었다. 무대 배경은 분주하고 암울한 도시 이미지를 간결하지만 현란한 영상을 투사해 가며 자칫 밋밋할 수 있는 대극장 공간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고 그래서 오히려 과도한 무대세트보다 효과적이었다. 또한 무용극답게 이야기를 풍성하게 이미지화해야 하는 부분에서 춤으로 내·외적인 층위를 꼼꼼하게 채워내었다.







 그 중 기억할 만한 몇 장면이 있었는데, 4장에서 ‘미투’를 생각하게 하는 직장상사에게 당하는 손녀의 내면을 표현한 장면도 그중 하나이다. 여자 단원들은 모두 붉은 천으로 서로를 휘감고 손녀 주위로 행렬하고 있었고, 손녀의 내적 갈등과 짓눌린 여성성이 집단적으로 화합하여 힘을 내어 상사를 넘어뜨리는 장면에서 우리 현실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함으로써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또 다른 사례로 7장에서 노동자들의 울분을 토하는 군무는 이 작품의 가장 명장면으로 꼽을 수 있었고, 극적언어에 국한되는 움직임을 넘어서는 춤다운 춤이었다. 울분이 분노로 바뀌는 군무는 절제된 감정이 절도 있는 결의로 다다르며 그 힘 있는 에너지가 객석까지 전달되기 충분했다. 무용극의 특성상 스토리가 설명적 성격이기에 여기서 춤이 자유로운 고유의 힘으로 전체를 주도적으로 끌어가기에는 어려움이 있기는 했다. 이는 무용극에서 극적구도와 춤의 배치의 문제이며, 극의 정체성을 묻는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어쩌면 이는 양날의 칼로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다 보면 주제적 전달력이 표류하나 아니면 춤이 고유의 힘과 맛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에 그저 단순히 많이 움직이는 연극으로 비칠 수 있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기억할 만한 장면은 9장에서 풍선을 가지고 노는 장면이다. 그전까지 각각의 장면이 무겁고 다소 과도한 힘쓰기로 군무를 배치한 반면 9장에 와서야 쉼표를 찍는 느낌이랄까? 큰 풍선을 띄우며 그 주변을 유영하며 조심스레 자기를 들여다보는 장면이 가장 현대적 감성을 표현하는데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다시 말해 극을 위해 댄서들의 역할이 몰개성적이고 지시적이었던 전 장면과는 다르게 홀로 추지만 군무가 전하는 메시지보다 더 강력하게 정서를 자극한 측면이다. 효과적 의미전달에 있어서 대형무대를 꼭 스펙터클하게 채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그래서 인상적으로 아름다웠다.









 정혜진 감독은 현대춤의 표현력을 빌어 동시대적 문제를 공감 있게 나누고자 노력하였다. 사실 각각의 장을 독립된 소품으로 진전시켜도 될 만큼 스토리, 무대 구성, 다양한 춤적 에너지가 조화롭게 보였다. 반면 작품에서 아쉬운 점은 각각의 장과 장 사이 행간을 채우는 것 까지 고려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스토리와 춤으로 몰아치는 부분만 강조함으로써 각 장 사이를 채울 춤의 이음새 부분에서 흐름이 끊어져 작품이 진행될수록 건조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사회상의 단면을 파편적으로 배치했다지만 유사한 구도의 반복되는 소품은 중반부가 되어 호기심을 떨어지게 하였다. 비슷한 강도의 주제적 표현과 상투적인 춤 구도로써 각 장의 내용은 변하지만 춤의 결은 비슷하다는 말이다. 무용극에서 중요하게 생각할 부분은 춤적 정서로서 그 어떤 것 보다 ‘춤으로 옹호’될 수 있게 극과 표현의 틈과 행간이 세심하게 고려돼야 한다는 점을 짚고 싶다.
 한국춤 분야에서 타장르와 융합하고 현대춤 움직임의 장점을 빌어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동시대적 언어를 획득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러한 만남이 신선하지도 않고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과장되게 말하면 진부한 것으로 여겨질 위험이 있다. 현대춤이 현대적(동시대적)일 수 있는 이유는 끊임없이 기존의 것을 거부하고 넘어서고 새롭게 해석하려는 도전이 담보될 때이기 때문에 단순히 현대무용의 표현력만을 빌려오는 것을 이제는 진지하게 재고해볼 때이다.
 무용극은 우리들의 삶의 역사를 춤으로 가장 시민들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장르이다. 작품 〈놋〉은 오늘날의 사회적인 병리현상을 공감하기 쉽게 성공적으로 접근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예술적 면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사회상의 현상을 표면적으로만 전시 하는 것만이 아니라 현 작금의 사회를 응시하는 작가다운 비판적 시각으로 신선한 실험적 접근이 필요하다. 서울시립무용단과 정혜진 단장의 차기작을 기대하며 짧은 기간에 노력한 단원들에게도 응원을 보낸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비평전공.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평가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춤비평을 기고하고 있다.​ ​ 

2019. 06.
사진제공_서울시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