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뤼퀴드 로프트(Liquid Loft) 〈딥 디쉬(Deep Dish)〉
압도적 아름다움, 〈딥 디쉬〉
김혜라_춤비평가

우리가 예술작품을 관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시선과 풍경을 느낄 수 있는 장치로서 가장 자유로운 창구이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작품들 속에서 촉수를 자극하듯 예민한 감각으로 대상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작품을 만나면 우리의 생각은 깊어진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쾌감이 샘솟아나 무딘 감각세포가 깨어나는 것과 같은 경험인 것이리라. 어떤 사람들에게는 예술경험이 자본주의 사회 시각에선 쓸모없는 무용(無用)한 행위로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삶을 환기시키는 아름다운 작품은 우리 인식의 지평에 자극을 주는 활력소임은 분명하다. 나에게 한줄기 빛으로 마음을 강타한 작품, 그것이 바로 크리스 해링의 〈딥 디쉬(Deep Dish)〉이다.
 오스트리아 안무가인 크리스 해링은 필름과 춤을 독자적으로 결합한 이미지에 작가적 시각으로 사회를 진단하는 안무가이다. 그는 2009년(〈Posing project B-the art of seductiom〉)에 이어 작품 〈퍼펙트 가든(The Perfect Garden)〉 세 가지 시리즈 중 마지막 작품인 〈딥 디쉬〉(5,19.아르코소극장)를 모다페(MODAFE) 축제에서 선보였다. 그의 여러 작품에서 드러나는 욕망하는 공간인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를 실현시키려는 의도가 이번 작품〈딥 디쉬〉에서도 선명하게 읽힌다. 그는 극장 안에 정원이라는 이 서로 양립 불가능한 두 공간을 무대에 겹쳐놓으며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카메라 앵글에 담아내고 있다.




Liquid Loft 〈Deep Dish〉 ⓒBernhard Muller




 무대 중앙 테이블은 배추, 브로콜리, 딸기, 파인애플, 와인과 접시들로 말끔하게 잘 차려진 식사 공간이 펼쳐진다. 이곳은 동시에 형형색색의 과일과 채소들의 조화로운 배치는 안무가가 상정(想定)한 인공적 가든 이기도 하다. 고해상도 카메라 앵글에 투영된 식탁에 놓인 대상은 실재(實在)보다 더 실제(實際)같은 선명한 색감으로 처음부터 우리의 시각을 자극한다. 남자 댄서는 직접 카메라를 조작하며 라이브 영상으로 식탁에 놓인 대상을 클로즈업(Closeup) 한다. 첫 번째로 배추가 탐험대상이 된다. 카메라에 클로즈업 된 배추의 섬세한 조직들이 점점 확대되어 보일수록, 원래 배추의 실체는 사라진 느낌을 준다. 마치 우리가 어떤 낯선 대상을 대면하고 있는 듯한 인상과 미지의 숲 공간에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실재 무대와 라이브영상에 비췬 장면들이 켜켜이 형태적(Gestalt)으로 결합되어 갈수록 무대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이미지로 가득 채워진다. 그의 작업은 일반적인 영상과의 융합 한 작품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방식이고 그래서 신선하다. 이와 같이 〈딥 디쉬〉 작품은 층위와 상황을 달리하며 실재(현실)와 상상(초현실)의 이미지가 교차·대비·공존하는 헤테로토피아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Bernhard Muller


ⓒ조태민




 관객은 지속적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댄서들과 영상에 비췬 조직적인 장면을 동시에 입체적으로 보게 된다. 댄서들의 식사하는 모습, 잡담 같은 일상적 행위와 배치되는 그녀들의 섬세한 표정과 몸짓이 촘촘하고 밀도 있게 강조되고 있으며, 먹고 마시고 본능적으로 즐기는 풍요로운 시간은 점차적으로 내면의 욕망을 보이는 충위로 진전되어 간다, ‘라 트라비아타’노래가 나지막하게 흐르는 사교 모임(?)에서의 댄서들의 대화도 사회적 행위와 관계를 풍자하는 제스쳐로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이중적인 함의를 지닌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나열된다. 예를 들면 실재로는 접시에 놓인 토마토를 자르는 식사하는 상황이지만 카메라에 클로즈업 된 장면은 위협적인 칼질만이 강조되어 ‘잔인함’을 부각시킨다. 먹다 남은 음식 부속물에서는 버려진 쓸쓸함을, 마구잡이로 으깨어진 토마토에서는 무자비함을 상기하게 된다.




ⓒ조태민




 작품의 양가적인 시선은 더욱 과감하고 은밀한 상황으로 층위를 옮겨간다. 성적 환희, 관음증적 갈망, 괴기함, 피폐함, 공허함의 이미지를 구현해 내는 댄서들의 행위는 서사적인 연극성까지 확보하게 된다. 한 시간 동안 지속되는 일련의 지시적인 행동과 거대한 2차원적 화면 속에 담긴 복합적인 이미지들. 어느덧 작품은 환영의 세계, 깊은 심연의 세계를 항해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실재 한정된 재료를 가지고도 미생물의 생명성, 인간 내면 욕망의 실체 그리고 해저·우주공간의 풍경까지 포착해 내는 크리스 해링의 허를 두르는 연출력이 놀라울 뿐이었다. 가상과 실제를 넘나드는 미장센도 아름다움을 자아냈는데 아마도 유기 조각가 미셀 블레이지의 역할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으로 식탁에 꾸려진 인공정원은 먹다 남겨진 것들의 잔해들이 널브러져 있고, ‘우묵한 그릇(Deep Dish)’속도 마찬가지였다. 뿌옇게 오염된 쓰레기만 둥둥 떠다니는 디쉬(dish)는 아마도 안무가가 사회를 바라보는 불안정한 시선이자 우리의 현실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리라.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열려 있는 구조로 작품이 마무리 되며 작품의 의미부여를 관객의 몫으로 남기는 현대춤의 표본이다. 어쩌면 그의 시리즈 〈퍼펙트 가든〉은 현실에서는 이뤄질 수 없음을 마지막 작품 〈딥 디쉬〉에서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을 상상하며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까. 자신만의 헤테로토피아(행복, 미래, 추억…)를 꿈꾸며 말이다.






ⓒ조태민




 단지 있는 것을 살아 숨 쉬게 느낄 수 있게 표현해 내는 그의 실험적 탐구력이 작품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모든 생물은 다 움직이며 안무에 영감을 준다”는 크리스 해링의 안무관도 독창적인 영상 기법과 아이디어가 상호 연결되어 작품에서 완벽하게 구현되었다. 그의 냉소적인 시각으로 인간과 사회를 적나라하고 과감하게 파헤치는 비판적인 사고와 무관심했던 일상적인(물리적인) 대상을 새롭게 보게 하는 작가다운 관심이 한국 안무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으리라 판단 한다.
 좋은 작품 관람은 보는 사람에게 의미 있는 경험과 기억으로 남아 우리의 일상적 삶을 신나고 풍요롭게 한다. 이런 작품을 기다리며 조금은 고단한 현장을 헤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풍요로운 곳으로 초대해 준 모다페 측에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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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종의 현실화된 유토피아라고 이야기하는 ‘헤테로토피아’는 푸코가 유토피아와 대비되는 공간으로 독자적인 개념화를 시도했다가 일찌감치 포기해버린 미완의 개념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이면서도 동시에 모든 장소들의 바깥에 있는 곳을 의미한다.(미셀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비평전공.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평가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춤비평을 기고하고 있다.​ ​
2019. 06.
사진제공_Bernhard Muller, 조태민/MODAFE201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