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의 죽음에 마침내 안도하는 가족의 비인간성은 카프카의 중편소설 〈변신〉 마지막을 이룬다. 〈변신〉의 주제로 부각되는 인간 개개인의 실존과 세상의 부조리는 가족 안의 비정한 세계를 주된 배경으로 한다. 100년 전 〈변신〉이 발표되던 때는 자본주의가 막 성장하던 시기였고 이후 〈변신〉은 자본주의의 생리를 예리하게 은유한 작품으로 인용되어 왔었다. 류장현의 안무작 〈변신〉(2. 23~24.,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은 자본주의의 폭력성이 지금도 여전하다는 문제의식에 바탕을 둔다.
류장현〈변신〉 ⓒ김채현 |
안무작 〈변신〉을 여는 첫 장면은 이러하다. 어둠 속에서 〈Baton Sparks〉의 곡조가 영화 사운드 트랙처럼 강하게 울려퍼질 동안 어떤 물체를 감싼 대형 보자기가 원룸 크기 만하게 부풀려 있고 그 위에 팬티만 걸치고 누운 어느 남자의 모습이 희미하게 드러난다. 무대가 환해지면서 회색 천 재질의 커다란 보자기는 그 안을 채운 공기 흐름에 따라 빠르게 출렁이며 요동치고 남자는 마치 어떤 급류 속에서 위태하게 버둥대며 표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상황이 좀 진정되면 남자는 물체에서 튕겨나와 크고 기다란 이 보자기를 당겨 벗겨내고 사라진다. 보자기에서 벗겨진 물체는 여럿이 앉을 정도의 테이블이며 테이블 아래에 여남은 사람이 웅크려 있다.
안무작 〈변신〉의 원작인 카프카의 〈변신〉 첫 대목은 이렇게 생각난다. 어느 날 회사원 그레고르 잠자가 깨어나 보니 자신이 거대한 갑충(甲蟲)으로 변해 있었다는 것. 원작처럼 안무작 역시 그레고르가 알아차린 변신에서 출발하는 과단성을 보였다. 특히 원작의 첫 부분을 춤으로 개성 있게 표현함에 있어 안무작은 상상력을 십분 발휘하였고 이 장면은 앞으로 기억될 장면의 하나가 될 것이다. 덧붙여, 문학과 춤의 차이를 궁금해할 때 거론됨직한 사례가 아닐까 한다.
원작의 몇몇 모티브가 안무작에서 엿보이고 그레고르 잠자라는 인물을 설정해서 그의 입장에서 작품을 전개하긴 하지만, 안무작은 그런 모티브들을 독자적으로 활용하며 안무작 전체는 원작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안무작 〈변신〉의 첫 부분에서 테이블 아래 웅크려 앉은 사람들은 함께 다리를 뻗을 때는 다리가 여럿인 갑충 모양을 연상시키고 테이블 주변이나 위로 이동할 때는 피신한 사람들로 보인다. 그들이 피하려는 대상이 굳이 어떤 무엇인지 특정되지는 않으나 그 대상은 위험과 재난, 심지어는 어떤 차별로 확대 해석될 수 있어 여러 면 중의적(重義的)이다. 다시 말해, 안무작 〈변신〉에서는 갑충으로 변한 그레고르 잠자를 단서로 그에게 적대적인 세상 사람들의 태도 또는 작태가 반복해서 그려진다.
〈변신〉에서 사람들은 대개 무리를 지어 행동한다. 테이블 아래나 위로 피신하거나 테이블 주변에서 춤 동작들을 이어간다. 그 사이 사이에 〈러브 레터스〉, 로시니의 〈도둑까치 서곡〉,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등이 음향으로 작품 전개를 도우고 에너지가 두드러지며 때로는 과격한 집단무와 함께 스펙터클한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여기서 표출되는 세계는 쉬운 예로서 난파선 같은 이미지로 비쳐지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종종 동일성과 적대성의 기류가 교차한다. 작품의 결말부에 이르러 사람들이 웃음띤 표정으로 서로 간에 연대의식과 흡사한 만족감을 드러내며, 그들은 일사불란한 행렬로 어딘가로 향하다 결국 테이블 위로 피신한다. 테이블 위에서 사람들이 사람들을 끌어올려 구조하는 투의 행동을 홀로 응시하던 한 남자는 그 무리와는 동떨어진 채 자기대로의 길을 향한다. 그가 당도할 다음 지점은 어디인가. 아마도 이 남자는 오늘 현실 속의 그레고르 잠자를 상징할 것이다.
안무작 〈변신〉은 원작 〈변신〉에서 좀 더 나아갔다. 결말부에서 그레고르 잠자가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오기 이전 중반부의 장면들에서 그가 사람들 무리 속에서 쉽게 식별되는 건 아니었다. 이런 점이 과다하고 그런 탓으로 그와 무리들 간의 관계가 불투명한 점들이 작품 전개에서 부분 부분의 의미들을 모호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었다. 그렇긴 해도 사람들 무리 속에 그레고르 잠자는 있었고, 그는 자본주의 사회 속 동일성과 적대성의 기류를 심하게 겪고 목격하는 역할자 구실을 하였다. 안무작 〈변신〉은 그레고르 잠자의 시선으로 집단에 의해 개인과 몸이 찬탈당하는 상황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지난 100년간의 시차는 갑충 중심의 묘사에 치중한 원작 〈변신〉과 자본주의 사회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을 일삼는 물신화(物神化) 행각으로 폭을 넓힌 안무작 〈변신〉 간의 차이로 반영되었다.
다시 말하는 바로서, 안무작 〈변신〉은 지금 그레고르 잠자가 우리 사회에서도 도처에 존재한다는 인식을 환기한다. 잠자로 상징되는 이방인, 잉여인간 같은 언어들을 주저 없이 내뱉을 수 있는 오늘의 일상이 곧 디스토피아라는 안무자의 문제의식은 아주 강력하다. 곰곰 생각하자면, 디스토피아를 잉태하며 변해가는 우리 몸이 언젠가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까. 안무자의 노트에 따르면, 오늘의 세계에서 충(衝·부딪힘)이 충(蟲·벌레)이 되는 상황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인간들 간의 자본주의적 폭력 일반에 해당하는 충이 벌레의 충으로 확장되는 현상을 그레고르 잠자에게서 유추하는 안무자의 상상력은 흥미로우면서 의미심장한 지점이기도 하다. 잘 가다듬은 춤에 몰입하며 주목을 끌던 류장현의 춤 세계에서 〈변신〉은 어떤 전환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