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대한민국을 포함한 아시아 8개국 17명의 무용수들로 이루어진 아시아무용단이 4번째 정기공연을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 극장2(11월 6-7일, 평자 6일 관람)에서 가졌다. 공연작품은 〈Here There〉. 한국의 강강술래를 모티브로 안애순이 안무를, 피정훈이 작곡을 맡았고(음악감독 김기영), 김재리가 드라마투르기, 황수현이 리허설 디렉션으로 참여했다.
〈강강술래〉는 한국의 다른 어떤 민속무용보다 춤과 음악, 놀이적인 요소들이 강해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공연예술 장르와 연계될 경우 그 활용 가능성이 무한하다. 원무(圓舞)가 갖는 대형, 덕석몰기와 덕석풀기 등에서 보여주는 움직임의 변형(나선형, 고리따기형 등), 고사리꺾기 등에서 보이는 놀이성, 앞소리와 뒷소리가 만들어내는 음악적 흥취, 여기에 나눔춤(sharing dance)으로서의 속성 또한 무대예술로서의 활용가치가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강술래를 토대로 한 춤 창작 작업을 보는 평자의 시선은 강강술래가 갖춘 이 같은 전통적인 요소들이 어떻게 움직임과 연계되어 새로운 콘셉트로 설정되고, 그것이 어떻게 무대에 표출되느냐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전체적으로 안무가 안애순은 놀이적인 요소나 강강술래가 갖고 있는 나눔춤의 어떤 형태(圓舞 대형)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았다. 음악 역시 노래보다는 타악과 사운드의 매칭 쪽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안무가가 2년 전 국립국악원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과 함께 강강술래를 해체하는 협업작업을 했던 터라 당시 작업의 연계선상에서 움직임 구성이 이어질 것이란 평자의 예측 역시 어느 정도는 빗나갔다.
막이 열리면 흰색 플로어 위에 원무 형태로 서 있는 댄서들의 몸이 보인다. 안무자는 초반부에는 하체의 움직임에 포커스를 두고 작품을 전개시켜 나갔다. 한 두 명의 댄서가 움직일 때 다른 무용수들은 정지된 상태에서 손바닥을 서로 부딪치며 장단을 맞추기도 했다. 이어 무용수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져 대형을 만들면서 2명의 댄서들이 두 쌍으로 서로 대무(對舞) 형태를 취하기도 하고, 4명, 5명, 6명으로 자연스럽게 그 대형을 변환시켜간다.
흥미로운 것은 개개 댄서들이 포즈를 취할 때 몸의 태(態)나 춤의 질이 댄서들마다 확연하게 구분된다는 것이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모인 탓인지 고유의 어떤 전통적인 때깔이 댄서들의 몸에서 풍겨 나왔다. 손 끝, 시선의 처리, 팔의 사용 등에서 인도나 태국, 타이완, 한국의 전통무용에서 보이는 형상이 군데군데 드러나기도 했다. 이는 8개국 아시아 댄서들의 춤 배우기와 훈련에 의해 체득된 차별성이고, 이는 곧 아시아무용단의 작업이 갖는 특화된 독창성이기도 하다.
안무가는 댄서들의 솔로 2인무 트리오, 그리고 6명 이상의 군무 등을 다양하게 혼용해 무대 공간을 점유했다. 댄서들은 걷고, 돌고, 뛰고, 그리고 서로 엉켜짐을 통해 움직임을 확장시켜 나갔고, 그 과정에서 확연하게 원무 형태가 드러나진 않더라도 기묘하게 그 느낌은 하나라는 공동체를 향해 가고 있는 듯 보였다.
그 가운데서도 5-6명의 댄서들이 어깨 사이로 머리를 밀어 넣으면서 대무(對舞) 형태를 만드는 장면, 서로 다른 공간을 점유한 4명으로 이루어진 4쌍의 댄서들이 발동작을 이용해 작은 원무를 완급을 조절해가며 구획해 내는 장면은 오래 동안 잔상에 남았다.
무대 중앙을 점했던 여러 명의 댄서들이 한 두 명 씩 좌우 윙 사이드 끝으로 이동해 대형을 만들고 남은 5명의 댄서들이 각기 솔로 춤을 추도록 한 시도는, 공간을 빠르게 다채롭게 활용하고자 하는 안무자의 의도가 꽤 조형적인 아름다움으로 드러났던 장면이었다.
두 손을 드는 동작, 한 손으로 허공을 가리키는 동작, 한 팔을 절반 정도만 회전시키는 동작 등은 마치 일무의 의식을 보는 듯 제의적인 정취와 함께 통일된 하나의 앙상블로 구축해 냈다. 작품의 전반부는 두 팔을 수평으로 뻗은 채 발 뒤꿈치를 들고 굴신하는 무용수들의 원무로 마무리 되었다.
안무자는 무대 플로어 주변에 마이크를 설치하고 무대 바닥 위에 또 다른 무대를 설치 댄서들의 몸이 바닥에 부딪힐 때 소리가 나도록 했다. 그리고 손바닥을 빠르게 느리게 치면서 생겨나는 소리 그 자체를 음악적인 장단으로 활용했다. 이런 모든 것들은 음향을 통한 무용음악의 활용으로 보이고 이는 피호영의 사운드 디자인과 어우러지면서 전체 작품의 음악적인 콘셉트로 작품의 한 축을 담당한다.
두 번째 파트는 출연자들이 두 팔로 무대바닥을 치는 것으로 시작된다. 댄서들은 두 손바닥으로 일정한 리듬을 만들어 내고 또 다른 댄서들은 그 장단에 따라 솔로 춤을 번갈아 춘다. 두 손을 이용한 사운드 창출은 댄서들이 누운 상태에서 그들의 손바닥을 서로 맞닿게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강한 타악음이 가세하면서 음악은 더욱 풍성해지고 원무 형태 댄서들의 움직임은 그 역동성이 더욱 배가된다. 후반부 댄서들의 춤은 전반부에 비해 더욱 자유롭게 변주된다.
이번 공연은 안무가 안애순이 굿에서부터 만석중놀이 등 이미 한국의 전통 유산을 작품 속에 용해시킨 경험이 있고, 4년 전 아시아무용단 창단 후 워크숍 등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왔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2016년도에 국립국악원무용단과 30분 길이의 강강술래를 소재로 한 협업 작업의 전력이 있다는 점에서 한층 기대를 모았다.
2년 전 시도된 〈강가앙수울래애〉는 국립국악원무용단이 보유한 〈강강술래〉 작품을 안무가 안애순이 현대음악 작곡가(김기영)와 사운드 디자이너(피정훈)의 협업을 통해 새롭게 해체한 작업이었다. 당시 이 작품은 기존의 ‘강강술래’에서 보여 지지 않았던 대형 변화와 움직임의 조합이 신선했다. 김기영과 피정훈의 음악은 음표가 살아 숨쉬는 듯 댄서들의 움직임과 화합했다. 당시 국립국악원무용단 무용수들과 프리랜서 현대무용수들과의 작업이 무용수의 몸통, 등과 배를 바닥에 대고 그 중심을 이동시키는 것으로 해체하면서 새로운 동력을 얻었다면 이번 작업은 서로 다른 문화권과 훈련체계를 가진 직립한 아시아 댄서들의 손과 팔 등 그들의 몸이 원을 향해 움직이도록 하면서 ‘여기’와 ‘거기’와의 소통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었다.
그러나 강강술래의 선택은 결국 아시아 8개국에서 모인 17명 무용수들의 협업작업이란 점에서 나눔 춤이 갖는 정신과 어떤 형태로든 연계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 공연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주최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을 목표로 건립된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은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등 아시아 권역별 정부, 문화예술기관 및 단체, 창작자들과 협력하여 무용을 포함한 전통음악, 이야기 등을 주제로 한 문화예술 커뮤니티 구축 및 상호 교류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곧 아시아 국가 간 다양한 문화예술 교류협력을 통해 아시아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세계적인 수준의 문화예술 콘텐츠로 공동 제작하여 아시아 문화가 동반성장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취지라면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하는 무용예술은 다른 어떤 예술 장르보다 소통성이 높다는 점에서 충분한 활용가치가 있다. 2015년 창단이후 아시아무용단은 아시아 각국의 무용수들이 모여 매년 워크숍과 공연을 지속해오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무용단의 행보는 너무 더디고 그 폭 또한 좁다. 설립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공연된 작품이 한국에서 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되어 공연될 필요가 있다. 공연뿐 아니라 워크숍이나 작업방식, 창작의 소재 등도 더욱 다양해 질 필요가 있다.
재공연을 통해 예술적인 완성도를 배가해 ‘상품’으로서의 경쟁력을 높이는 과정은 이를 통해 아시아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아시아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기회 확대를 통해 공감의 단계로까지 도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설립 목적 성취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