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마를레느 몬테이루 프헤이타스 〈바쿠스-제거의 전주곡〉
디오니소스식 광기를 소환한 독창적 무대
김혜라_춤비평가

마를레느 몬테이루 프레이타스(Marlene Monteiro Freitas)의 작품 〈바쿠스-제거의 전주곡(Bacchae-Prelude to a Purge)〉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안무가는 바쿠스(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여신도들인 박케이(Bacchae)의 도취적 행태와 엑스타시를 현대판 카니발로 재해석 하였다. 디오니소스 관련 콘텐츠는 예술가들의 상상력에 영감을 주는 원천이자 고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온 마르지 않는 샘이다. 안무가 역시 니체 식으로 말하면 “디오니소스의 창조적 광기”에 주안점을 두어 인간의 억압된 욕구와 충동을 질펀하지만 유쾌하게 해석하였다.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신선한 고전의 해석, 통속적 표현으로도 무거운 형이상학적 사유를 다룰 수 있음을 안무가는 작품으로 확인시켰다.
 올해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공들여 초청한 마를레느 몬테이루 프레이타스는 북대서양 섬 카보베르데 출신으로 브뤼셀(P.A.R.T.S.)과 리스본에서 수학하였고, 이미 2016년 〈(m)imosa〉로 한국에 소개되었다. 그녀의 그로테스크하면서도 팝 적인 안무방식은 2017년 빈의 임펄스탄츠에서 〈Jaguar〉로 주목을 받았고, 〈Bacchae-Prelude to a Purge〉로 2018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받으며 전 세계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 바체바무용단의 객원안무를 맡아 〈Canine Jaunâtre 3〉로 몽펠리에 페스티벌에 신작을 내놓았다.


 




 다소 긴 총 공연시간 두 시간 20분은 규모에 비해 비교적 단순한 맥락으로 짚어지는데 ‘도취-무질서-엑스타시’의 구조로 파악할 수 있겠다.
 극장 전체가 축제의 현장으로 꾸려진 공연(10.15. 서강대 메리홀)은 악사들이 나팔을 불며 객석2층에서 무대로 행렬하며 퍼레이드를 시작한다. 무대는 축제 현장의 축소판으로 고대 춤, 시, 합창으로 제례를 지냈던 제단으로 설정되어 있다. 흰색 작업복에 금색 수영모자나 선글라스를 쓴 7~8명의 퍼포머들은 판토마임을 하듯 전자 퍼커션에 맞춰 경직된 움직임을 구사하는데 정신이 온전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고대 바쿠스를 추종했던 무녀들인 ‘마이나데스mainades’(발광한 여자들)가 변신한 현대의 표현으로는 정신착란증 내지는 과대망상증에 걸린 비정상적인 인간집단의 모습이다. 이들은 디오니소스의 지팡이인 티르소스를 연상시키는 마이크 스탠드와 사티로스의 수염 그리고 꼬리 음경을 연상시키는 원예용 호스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논다. 이외에도 신화적 메타포가 담긴 도구들의 활용이 무궁무진하다. 미쳐 날뛴다는 말이 더욱 적절하겠다. 외설적인 행위도 천연덕스럽게 하는데 여기에는 익살스런 분장이 한 몫 한다. 퍼포머들은 객석을 오가며 관객들에게 악수를 청하고 축제다운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극장의 분위기를 조성해 나간다.

 



 중반부 즈음에서 퍼포머들은 타자 치기, 총 쏘기, 자전거 타기, 노 젓기 같은 제스처를 통해 일사분란하게 질서 정연한 행동을 묘사한다. 여기에 시간차를 둔 사이렌 소리가 퍼포머들의 행동에 제약을 주는 신호로 작용하지만 전체를 위협하진 못한다. 이성적 규제(규범)에서 탈주하려는 신호 정도로 읽히는 퍼포먼스는 난장의 극치를 보이는 행위로 연결된다. 예를 들면, 금속 스터드로 입을 찢어가며 벌리거나, 악기를 뒤집어 얼굴과 몸 부위에 대거나, 입에 물을 머금고 코러스를 하는 행위가 그러하다. 발랄한 아이디어에 놀랍기도 하고 콧물과 침을 의도적으로 내뱉는 행위에서는 다소 거슬리기도 했다. 거의 한 시간여 동안 거칠게 다뤄지는 행위를 지나 드뷔쉬의 음악에 퍼포머들은 순간 나긋한 정상인의 모습으로 변모한다. 조화로운 조성음과 표준을 무시하는 소리가 첨예하게 대비되는 순간이다. 사물의 비정상적 변신과 불협화음의 향연은 강렬한 무질서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일련의 신선한 자극적인 행동이 상쇄될 즈음 출산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가즈오하라 다큐멘터리) 충격적인 영상이 나온다. 여성의 가장 은밀한 통로에서 질과 탯줄이 연결된 아기 탄생 과정 영상이 상영되면서 다소 장난스럽고 비정상적인 아이콘으로 가득한 무대 분위기는 사뭇 진지하게 전환된다. 아마도 생명탄생의 경이 보다는 인간 행위의 가장 은밀함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시도로 추정된다. 긴 시간동안 펼쳐진 광란의 무대는 후반부에 절정으로 치닫는다. 라벨의 볼레로 선율에 맞춰 피를 토해내기까지 반복하는 격정적인 몸짓, 처연하지만 도도한 볼레로 춤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과열된 무대는 코믹한 얼굴이 비장함으로, 단순한 몸짓이 무한 반복되면서 집단적 몸부림으로 변화하며 의미를 창출해 낸다. 이것은 마치 죽음의 엑스타시로 가는 과정을 은유하는 것 같았고 죽음을 불사한 인간의 욕망이 비극적 환희로 고양된 무대는 비장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인간 욕망의 해방이 초자연적인 죽음에서 실현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일까? 결론이 명쾌하지는 않지만 〈바쿠스-제거의 전주곡〉은 자발적인 저속함과 충동을 정면에 내세우며 아폴론적인 틀과 질서를 전복하고자 한 ‘현대판 바쿠스 축전’이라 하겠다. 

 마를레느 몬테이루 프레이타스의 작품의 우수성은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지만 가볍지 않게 주제를 전달 한 점이다. 안무가는 신화라는 텍스트를 다각도로 면밀하게 연구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작품의 소재인 ‘박케이의 광기’도 여러 측면(광기의 폭력성, 성적 난잡함)이 있으나 ‘원초적 욕망’에 초점을 두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안무가의 개성 있는 표현기법이다. 그녀는 순수 극장춤 표현 영역에서 다소 소외되었던 그로테스크 영역(과장, 익살)을 완벽하게 표현했고 어쩌면 주류의 움직임을 조롱하듯이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다시 말해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오브제의 변용, 과장된 표정과 연기, 그리고 부자연스러운 몸짓으로 극의 성격을 희화화한 것이다. 퍼포먼스에 가까운 이 공연에서 관객들은 춤다운 질감이 아니지만 분명히 미적 쾌감을 경험하였을 것이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비평전공.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평가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춤비평을 기고하고 있다.

2018. 12.
사진제공_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201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