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부산시립무용단 〈업경대〉
삶과 죽음의 경계, 사유하기
권옥희_춤비평가

천천히 느리게 사는 것, 행복하게 사는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다. 고요하고 느리게 춤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세계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 흰 빛으로 그려낸 정적의 춤 세계, 영혼의 습지 편. 숨조차 쉴 수 없게 관객을 춤 속에 붙들어 놓았다. 아름다운 무대였다.
 부산시립무용단의 〈업경대〉(11월21일~22일, 부산문화회관)가 다시 무대에 올랐다. 2016년 김용철 감독이 부임한 뒤 2년여 동안 치열한 실험을 하며 부산시립무용단 춤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생생히 전해주는 작업이었다.

 




 7대의 거울이 세워진 무대. 반사된 빛으로서의 거울은 윤회를 나타내는 동시에 자기 인식을 하는 도구이자 전도된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나타내는 장치다. 사신(장래훈)이 요령처럼 자신의 옷자락을 흔들며 길을 열자 그 뒤를 따르는 황망한 눈빛의 젊은 망자(씽춘휘), 호위하듯 망자 뒤에 서 있는 영혼(강모세)이 걸어 나온다. 망자가 거울 앞에 서더니 두려운 듯 흠칫, 물러난다. 거울에 비친 망자의 상은 망자이기도 아니기도. 죽음을 받아들여야 거울 속 망자와 화해가 가능하다.
 거울 앞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거나 돌아앉아 있는 나신의 무용수들. 그들이 보는 거울은 청정한 영혼이거나 반영된 진리, 혹은 깨달음을 얻은 정신을 나타내는 것으로 읽힌다. 윤회사상을 거울(업경대)을 이용하여 치밀하게 담아낸 첫 장, 발전했다.
 영혼의 습지 편. 열 명의 하얀 영혼들이 흰색 습자지를 앞에 두고 꿇어앉아 있다. 정적. 스스...스, 접어든 종이를 천천히 팔을 들어 옆에 두고, 다시 스스...슥, 접어 머리에 얹는다. 꽃이다. 접어둔 꽃을 든 손으로 턱을 괴고 객석을 빤히 쳐다보는가하면, 턱을 괴고 졸다가 삐끗, 화들짝 놀란다. 이어 스르륵(오케스트라박스) 올라온 검정색 의상의 가야금 연주자, 청아한 가야금소리와 아무 춤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텅 비어 아득하고 아름다운 영혼들의 춤 이미지가 의외로 많은 의미를 담아낸다. 



 


 망자 주위로 모여드는 흰색의 영혼들, 쏟아지는 흰빛 조명이 터질 듯 밝다. 만다라가 그려진 천의 네 귀퉁이를 들고 털어내자 공중으로 흩뿌려지는 흰 꽃가루, 흰빛. 더 할 수 없이 아름답다. 망자를 위한 영혼들의 꽃 축제다. 영혼들이 추는 군무에 바람이 일고, 꽃가루가 흩날리는 한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망자. 체념과 황망함을 잘 담아낸 춤(몸)이다. 망자(씽춘휘)의 솔로. 긴장한 몸에 슬픔이 갇혔다.
 무대바닥에 난 길, 그 길을 따라 걷는 영혼들. 망자를 다른 세계로 연결하는 길이 환하고 아름답다. 미적 만족과 관객의 정서 정화에 탁월한 효과를 주는 세련된 연출이다.





 30여명의 군무진이 추는 탐욕과 무지, 육욕이 서로 얽힌 춤과 소리의 아수라장으로 망상과 해악이 판치는 인간의 존재, 세계의 본질을 보여준 욕망의 장, 이전보다 의미전달이 분명해졌다. 이윽고 대형 천으로 무대를 덮어 고요해진 공간에 영혼(강모세)이 천으로 몸을 감싸고 입을 크게 벌린다, 기괴하고 강렬하다. 몸 안에 갇힌 소리. 영혼과 같이 지하(오케스트라박스)로 빨려 들어가는 세계. 이승과 저승의 세계. 본질적이고 튼튼하다고 믿었던 삶의 토대가 얼마나 허망하며, 그래서 존재가 얼마나 부박하고 비극적인가를 알게 한다.
 천장에서부터 내려진 흰색 줄 두 가닥. 그 앞에 서 있는 사신. 세계를 나누는 공간, 문으로 읽힌다. 이승에서 입고 있던 옷을 벗은 망자. 나신으로 느리게 추는 춤, 인상적이다. 영혼들이 흰 꽃을 손에 모아 쥐고 망자를 배웅, 망자가 서 있던 공간이 지하로 내려가자 줄이 툭 떨어진다. 다른 공간으로의 이동을 보여주는 감각적인 연출이다.





 종교 철학을 담아낸 커튼콜은 또 어떤가. 긴 자루가 달린 흰색 우산을 든 영혼들. 걷다가 돌고, 돌다가 걷는 춤으로 무대를 유유히 돌아다닌다. 방사상으로 뻗친 우산살은 빛살, 중심의 자루는 우주 축. 혹은 종교적 권력, 불교에서 우산은 관념과 형태를 초월한 열반의 경지를 의미하기도. 이들을 감싸고 무대에서 춤을 추는 형광색의 빛. 또렷하게 보이던 것들이 눈을 감았다가 뜨는 다음 순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승과 저승, 있음과 없음 혹은 생성과 소멸 그 어느 쪽이 진리가 아니라 양자가 같은 것이다.

 부산시립무용단의 2018년 〈업경대〉. 죽음에 대한 개인과 집단의 기억에 대한 무한한 기록을 춤으로 잘 그려냈는가 하면 작품에서 시도한 춤 실험들 사이사이에 삶과 죽음의 순간들, 존재에 대한 깊은 시선이 배어있는 수작이었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 대구, 부산 공연을 많이 보고 있다.
2018. 12.
사진제공_박창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