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6월과 8월에 걸쳐, 부산광역시의 최근 춤 제작 환경을 가늠해 볼 수 있는, 3개의 서로 다른 성격의 공연을 잇달아 보았다.
한때는 4년제 대학과 2년제 전문대학 등 6개 대학에 무용과가 개설되었 었던 부산 무용계는 잇따른 폐과로 인해 현재는 2개 대학에서만 무용 전공생들을 뽑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부산은 부산시립무용단과 국립부산국악원무용단 등 직업무용단과 독립 안무가들을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 무용단, 그리고 무용가 개개인에 의한 꾸준한 창작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국립부산국악원무용단은 해운대 그랜드호텔의 상설 공연장에서 〈왕비의 춤〉 등을 공연하고 있는데 이어 영남춤축제를 새롭게 시작, 공공성을 담보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부산문화회관과 영화의전당을 비롯해 금정문화화관, 해운대문화회관, 을숙도문화회관 등 구 단위 공연장들, 춤 전용극장을 표방한 춤공간신에서도 지속적으로 춤 공연이 올려지고 있다. 2017년부터 부산국제즉흥춤축제가 열리는 F1963도 매력적인 공간이다.
부산국제무용제, 부산국제즉흥춤축제, 부산국제춤마켓 등 국제 춤 축제가 지속되고 있고 〈동래학춤〉〈수영야류〉 등 전통춤 부문의 전승활동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부산거리예술축제의 예술감독도 무용가가 맡고 있다.
외형적으로 보면 대학 무용과의 축소를 빼고는 부산의 춤 환경은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이즈음 평자가 본 3개의 공연은 부산지역 춤계의 제작환경과 그 활성화 방안에 대해 진단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전국무용제 참가단체 선정 겸한 제27회 부산무용제
한국무용협회 부산지회(지회장 윤여숙)가 주최하는 부산무용제는 우리나라 춤계에서 유일하게 대통령상이 시상되는 전국무용제의 부산 대표를 선정하는 경연대회 성격의 제전이다.
27회 째를 맞은 올해 부산무용제(6월 28-29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는 경연 무문에 총 3개 단체가 참여했다. 전체적으로 작품 제작에 공력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고 두 개 작품의 경우는 재공연 작업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구성 등에서 안정감을 보였으나 참가 작품들의 예술적인 완성도에서는 편차가 있었다.
첫날 경연 참가작품인 부산발레연구회의 〈Along with you〉(안무 김한나)는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소재로 했다.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을 소재로 한 창작발레 작업에서 흔히 보여 지는 주요 등장인물을 설정하고 그들의 캐릭터 표출과 관계를 중심으로 한 구성의 틀을 갖고 있으나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에서 영화와 발레의 융합을 시도한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안무자 김한나는 스티븐 호킹을 소재로 해 제작되었던 영화 〈The Theory of Everything〉을 오마주(hommage)하면서 주인공 스티븐 호킹과 여인 제인 와일드를 실제 공연에서도 재현, 이들을 중심으로 한 춤 구성을 시도했다. 군무는 신년 파티가 그 배경이 되었다.
안무자는 주요 댄서들의 춤 구성에서 볼거리를 조합해 내는 감각을 보여주었다. 다만 춤과 음악 영상 등 전체적인 융합에서 오리지널 영화 장면의 과다한 접합과 주역급 무용수와 군무진들 사이의 관계성을 자연스럽게 무대 위에 접목시키는 연출력이 아쉬웠다.
현대무용단 자유의 〈원(圓)〉(안무 안선희)은 출연 무용수들의 기량이나 새로운 움직임 창출과 조합면에서 안무자의 감각이 남달랐다. 댄서들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춤 그 자체의 미감은 나쁘지 않았으나 무대 위 공간이 공연 내내 16명 출연진들로 인해 그 ‘넘쳐남’이 오히려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다.
전국무용제 본선 무대 사이즈를 생각하고 댄서들의 숫자를 정했을 수도 있으나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통한 이미지를 콘셉트로 한 작업인 만큼 무대 위 여백과 공간의 비움과 채움에 대한 고민이 더 세밀하게 이루어졌어야 했다.
판댄스씨어터의 〈Red Door〉(안무 김수현)는 웰빙과 웰다잉,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를 소재로 삼았다. 9명 출연진들의 무대 위 등장 장면에서 춤과 연기적인 요소의 적절한 안배, 人聲 등을 활용한 메시지 전달, 무대미술을 활용한 공간의 변화 등이 잘 맞물려 있으나 다소 거칠고 종반부의 작위적인 장면구성은 옥의 티였다.
부산무용제의 행사 개최 목표가 지역 무용계의 질적 수준을 향상하고 지역의 무용예술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에 비추어 보았을 때 경연 참가 신청단체가 3개에 머문 것은 향후 시정이 필요해 보였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무용가들과 단체들의 숫자가 적지 않음에도 극장과 무대기술 스태프, 행정인력과 돈이 지원되는 행사의 참가율이 이렇게 저조한 것은 자칫 모든 공연의 제작비를 지원금에 의존하겠다는 발상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초연 작품이 아닌 재공연 작품의 출품도 가능하게 한 규정은 지속적인 지원을 통한 재창작의 기회와 레퍼토리화의 가능성을 높여 주고, 궁극적으로 작품의 예술적인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시도이다.
발레리노 김용걸과 함께하는 섬머 발레 페스티벌
‘발레리노 김용걸과 함께하는 섬머 발레 페스티벌’(8월 4-5일, 부산문화화관 대극장, 평자 4일 공연 관람)은 갈라 공연이다.
발레 갈라 공연의 단골 레퍼토리인 〈잠자는 숲속의 미녀〉〈백조의 호수〉〈해적〉〈돈키호테〉의 그랑 파드되로 짜여진 클래식 발레 작품과 김용걸이 안무한 〈Conscience〉(의식), 〈Les Movement〉(레 무브멍), 〈une Promenade〉(산책), 〈oblviate〉(망각)으로 짜여진 4개의 컨템포러리 발레 작품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예술감독 배주윤)은 그 매칭이 주는 상승효과가 작지 않았다.
네덜란드국립발레단과 노르웨이국립발레단을 거쳐 새로이 폴란드국립발레단에 둥지를 튼 권세현은 김현웅과 호흡을 맞춘 〈흑조〉 그랑 파드되에서 훨씬 더 여유로운 움직임과 함께 요염한 흑조를 자신 만의 캐릭터로 해석해 내는 노련함을 보여주었다.
〈해적〉과 〈돈키호테〉에서는 이유림(헝가리국립발레단)과 윤별(우루과이 소드레국립발레단), 원진호(미국 올랜드발레단)와 최영규(네덜란드국립발레단)가 짝을 이루었다. 3년 전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에서 고국 팬들에게 선을 보였던 원진호는 춤과 캐릭터 창출에서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Conscience〉(의식)을 춤춘 정재은(폴란드국립발레단)과 최원준(폴란드 브로츠와프오페라발레단)은 앞으로의 성장이 더욱 기대되는 무용수였다. 바디 라인을 선명하게 살려내는 순발력과 긴 팔다리를 가진 지체가 김용걸의 간결함 속의 임팩트 있는 움직임 조합의 묘미를 한껏 살려냈다.
피아노 라이브 연주를 곁들인 〈산책〉은 쇼팽의 피아노 음악과 연주자 그리고 두 남녀 무용수의 감성적인 표현과 완급을 조율하는 안무가 기막히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김용걸과 김지영 두 베테랑 무용수의 해석은 그런 작품의 묘미를 만끽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출연 무용수에 따른 작품의 감흥이 각기 다르게 표출될 수 있는 이 작품은 해외무대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김용걸의 대표작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공연 후 관객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발레를 향유하는 부산 관객들의 파워가 만만치 않음을, 무용예술을 통한 삶의 질 높이기의 현장을 보면서 무용예술과 접목된 부산 무용계의 잠재력이 만만치 않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평자가 본 첫날 공연의 객석은 거의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전막 발레 공연이 아닌 발레 갈라 공연은 상대적으로 관객들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시행한 2017년 공연예술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 해 동안 2,447건의 무용 공연이 4,016일에 걸쳐 4,670회 공연되었다. 1,467,420명 관객이 무용 공연을 보았다. 이중 발레는 410건의 작품이 615일 동안 661회 공연을 가져 358,447명 관람객을 유치했다.
유료 관객 비중은 31.5%. 이중 발레가 44%였다. 발레를 제외한 타 장르는 19%. 무용 공연의 평균 티켓 가격은 18,715원인데 이중 발레는 20,105원이었다.
발레가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객석 점유율이 높다는 것은 위의 수치에서도 나온다. 또한 다른 장르에 비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날 객석에 모인 관객들이 어린이부터 청소년 그리고 중년의 남녀, 가족 단위의 관객까지 그 층이 무척 다양했다는 점에서, 부산광역시에 직업발레단 창단의 필요성이 더욱 강하게 대두되었다.
이번 공연은 부산문화화관과 예솔기획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공공 극장이 제작에 참여한 셈이다. 공동 제작의 조건은 차치하고라도 시설과 극장의 기술 스태프를 포함한 전문 인력, 그리고 돈을 갖고 있는 공공 극장이 무용 공연의 제작에 참여한 것은 적극 독려할 만한 일이다.
부산 지역 출신의 무용가를 연계한 스타 시스템 도출과 공공 공연장을 연계한 기획(이형흔), 다양한 레퍼토리를 통한 질 높은 발레공연 향수기회 제공,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에서 호평을 받았던 레퍼토리를 상당 수 포함시켜 지역의 관객들과 공유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같은 기획과 제작 유통과정은 여타 지역의 기획자와 무용가들도 적극적으로 시도해 볼만하다.
이 공연은 관객들의 성원을 놓고 보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다음 공연에서는 공연 개막 전부터 시도한 안무가의 멘트는 지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객석과 무대가 있는, 극장이란 공간에서 펼쳐지는 공연예술은 객석의 불이 꺼지고 무대 위에 조명이 들어오면서 시작되는 그 특별한 감흥을 선사받는 체험이 먼저이다.
유은주참춤무용단 창작 기획공연
지역을 대표하는 대학에서 무용 전공, 지역을 대표하는 직업무용단에서 활동, 지역 무용계 중요 단체의 임원. 이 같은 이력은 대한민국의 지역 무용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견 무용가들의 공통된 면면이다.
이런 배경을 가진 지역 무용계에서 활동하는 중견 무용가들의 창작 작업은 지역 문화재단의 공공 지원금을 받아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후진들을 양성하면서 제자 그리고 후배들과 함께 정기적인 공연을 마련하는 과정 역시 유사하다.
부산에서 30년간 활동하고 있는 중견 무용가의 창작 작업, 유은주참춤무용단의 〈틈새에 핀 꽃〉(7월 31일, 해운대문화회관 해운홀)은 3명 안무가의 서로 다른 3개의 작품이 옴니버스 식으로 결합되어 있다.
‘관념적 경계’란 부제가 의미하듯 전체적으로 3개 작품 모두 사회를 향한 메시지가 담겨진 다소 무거운 톤으로 전개되었다. 전체 작품의 예술감독 역을 맡은 유은주는 세 작품을 하나의 주제로 관통하는 상징으로 철사를 활용한 오브제를 사용, 개개 작품의 연속성을 꾀했다.
첫 작품 〈뷰티풀 데이〉(안무 정현주, 공감연출 허종원)에서 사람의 몸을 감쌌던 철사뭉치 오브제는 다음 그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면서 각기 다른 형태로 변신했다.
안무자 정현주는 무용수의 움직임 변주를 무대 위 댄서의 터치를 통해 만들어내는 구조와 거문고 음악, 여성 독창, 무거운 톤의 전자 음악 등을 섞어 솔로춤과 군무를 매칭시켰다.
두 번째 작품 〈틈새(관념적 경계)에 핀 꽃〉(안무 유은주, 공감연출 서혜인)은 공연의 전체 제목과 동일한 데서 유추할 수 있듯 가장 파격적인 구성으로 시선을 끌었다.
객석에서의 출연자 등장, 뉴스 실황을 이용한 아나운서의 리얼한 멘트, 사회적인 이슈를 담은 노래, 연극배우에 의한 독백, 타악 라이브 연주 등 시청각적인 요소를 최대한 활용 강한 사회적 메시지와 함께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펼쳐냈다. 법복을 입은 남녀의 등장, 〈지전춤〉, 강한 人聲(배우의 대사와 노래)과 라이브 연주의 매칭은 춤과 음악이 서로 상충되면서도 그 효과는 배가되었다.
전편에 댄서들의 몸을 휘감았던 철사뭉치는 해체되어 무대 위에 바리게이트 형상으로 잔존했다. 이 선명한 오브제는 강한 상징성 함께 어떤 드라마를 생성하기도 했다.
세 번째 작품 〈단테, 길을 잃다〉(안무 강정윤, 공감연출 박재현)에서 안무자는 단체의 신곡 지옥편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앞선 두 편의 작품에서 사용된 철사로 만들어진 오브제는 지옥 편에서 만나는 사람의 형상으로 변신했다.
검정 의상과 붉은 의상을 대비시킨 4인무, 빠른 템포의 타악에 맞춘 군무에 이어 피아노 음악에 실린 솔로 춤 등 악기 군에 따른 춤의 배분이 작품 전편에 꽤 계산된 구도로 전개된다. 마지막 장면 붉은색 의상에 머리를 푼 여성 무용수의 솔로 춤은 그 여운을 더욱 길게 갖고 갔더라면 안무자의 창작의도와 세 편의 작품을 하나의 주제로 관통한 예술감독의 의도가 더욱 선명하게 살아났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공연은 한국무용을 전공한 무용수들의 컨템포러리 댄스 작업에서 보여주는 유형, 음악과 소품, 무대미술, 의상 등과 결합된 움직임 조합의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유은주 안무의 두 번째 작품에서 보여준 인성의 톤과 높낮이 속도 그 자체를 하나의 무용음악으로 증폭시키면서 춤 공연의 범주를 넘어 공연예술 작품으로 확장시킨 시도는 인상적이었다.
문화예술 진흥은 기본적으로 개인 자율에 맡겨져야 하는 것이지만 개인들의 여건이 좋지 못할 경우에는 가족, 사회, 중앙 정부와 각 지역의 자치단체에서 나서서 지원해 주어야 한다. 곧 각 지역 자치단체의 문화예술 진흥기금은 지역문화 활성화의 기반 구축을 위한 사업에 중점적으로 투자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의 문화재단은 지역의 예술가들에게 지원금을 쥐어 주는 것만이 지원의 전부가 아니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공공 무용단의 창단을 통해 공공 공연장의 가동률을 높이고, 유능한 기술 스태프들을 상주시키고, 공공 공연장에서 예술가들과 연계한 제작 시스템을 가동해 지역 주민들을 위한 양질의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역시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지역 무용계가 활성화기기 위해서는 무용가들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정례적으로 편성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지역 문화재단의 지원금에 의존하기 보다는 돈과 시설, 그리고 전문 행정인력을 갖고 있는 공공극장의 문을 더욱 적극적으로 두드려야 한다.
이번 부산에서의 세 편의 공연들을 보면서 부산 무용가들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지역문화재단의 지원금에 의존하지 말고 공공 극장의 문을 두드리는 작업과 함께 공공극장 역시 제작극장으로서의 공(公) 기능을 더욱 과감하게 수행해야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것이 곧 부산 무용계를 활성화시키는 방안이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