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국악원은 신라의 음성서(音聲署), 고려의 대악서(大樂署), 조선의 장악원(掌樂院), 일제강점기의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 등을 계승한 국립예술기관이다. 현재, 서울의 본원을 비롯하여 남원의 민속국악원, 진도의 남도국악원 그리고 부산국악원을 지역 거점으로 하여 전통의 온전한 보전과 계승, 전통에 기반을 둔 창조적 노력을 지속해오고 있다.
2008년 개원한 국립부산국악원은 춤의 고장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이를 특성화하고 있으며, 지난 4월27일과 28일 양일간에 걸쳐 제10회 무용단 정기공연(예술감독직무대행:김태훈)을 하였다. 연악당에서 펼쳐진 공연은 궁중정재 〈선유락〉, 수영야류의 〈영감할미과장〉, 전통춤에 기반을 두고 20세기 후반에 새롭게 창작되고 보급된다는 점에서 신전통춤 계열이라고 할 수 있는 〈한량무〉‧〈입춤〉‧〈진쇠춤〉‧〈부채산조〉, 각종 타악기를 활용한 신작 〈타(打)〉 등으로 구성되었다.
재구성한 선유락과 영감할미과장
뱃놀이를 형상화한 〈선유락〉은 이전 공연에서 빈번히 볼 수 있었던 것으로 ‘2017년 제1회 영남춤축제’의 개막작이기도 하였다. 달라진 것은 두 마리의 학이 노니는 〈학무〉가 서두에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선유락〉의 앞부분인 채선(彩船)을 무대 중앙에 위치시키고, 악사와 춤꾼이 도열하는 하는 모습을 웅장하게 시각화하였다는 것이다.
두 명의 집사기(執事妓)가 취타연주와 행선(行船)을 명령하면, 춤꾼들은 작고 가녀린 목소리로 “어부사”를 부르며 춤추기 시작한다. 두 겹 또는 하나의 원으로 대형을 바꾸며 이리저리 도는 회무(回舞)가 주를 이루고, 노래의 종지와 함께 춤도 마무리된다.
〈학춤〉을 추가하고 앞으로 전진하며 도열하는 모습을 강조한 작품은 서두의 웅장함에 비해 춤이 본격화된 중‧후반부가 빈약하였다. 이로써 전체적인 짜임새가 다소간 어그러지는 아쉬움을 남겼다.
마을굿에서 출발한 수영야류는 부산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연희로 경비조달을 위한 지신밟기, 각종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산신제(山神祭), 놀이패와 마을사람들이 한통속이 되어 놀아 제치는 길놀이, 4개 과장으로 구성된 탈춤 등을 포괄한다. 이 중 〈영감할미과장〉은 탈놀이의 세 번째 과장으로 민중의 곤궁한 삶과 처첩간의 갈등을 보여준다.
영남뿐만 아니라, 여타의 지역에서도 쉬이 찾아 볼 수 있는 세 번째 과장은 허름한 할미가 지팡이를 짚고 영감을 찾아 헤매는 것에서 시작한다. 천신만고 끝에 영감을 만난 할미가 어린 첩을 질투하자, 영감은 버리고 떠나온 자식 삼형제의 소식을 묻는다. 나무하다가 솔방울에 맞아죽고, 앞도랑에서 물고기 잡다가 빠져죽고, 경기(驚氣)하다 눈이 침침해져 죽었다는 이야기에 화가 난 영감이 발길질을 하고, 풀썩 쓰러진 할미는 어처구니없이 죽은 자식들 마냥 허망하게 죽고 만다.
재구성된 〈영감할미과장〉은 처첩간의 갈등에 주된 초점을 두고, 매우 가벼운 터치로 내용을 각색한다. 여기서 할미는 죽지 않고 살아나며, 갈등은 두리뭉실 봉합되고, 셋은 모두 행복한 결말에 도달한다. 이처럼 희극으로 변모한 작품은 관객들의 즉발적인 웃음을 유발시켰다. 그러나 정서적 울림이나 생각의 여지를 주지 못하였고, 잡지의 가십(gossip)과 같은 촌극(寸劇)으로 전락하였다.
재구성한 신전통춤과 신작 〈타〉
〈한량무〉에는 〈동래 한량무〉와 같이 정제된 홀 춤도 있고, 〈진주 한량무〉처럼 여러 배역이 등장하는 무극(舞劇)도 있으며, 전통에 기반을 두고 새롭게 창작된 것도 여럿이다. 춤 입문 시 반드시 배우는 기본무인 〈입춤〉 또한 유파마다 제각각이 있어서 종류가 다양하고, 〈산조춤〉의 종류도 만만치 않다. 경기도 도당굿의 진쇠장단에 맞춰 추는 〈진쇠춤〉도 종류가 여럿인데, 현란하게 꽹과리를 치며 지극히 기교화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춤도 있다. 이 중, 정기공연에 올라간 작품은 모두 조흥동류이다. 그런데 팸플릿에는 유파가 누락되어있고, 일부 보도 자료들을 통해 조각조각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조흥동류 〈한량무〉, 〈입춤〉, 〈부채산조〉, 〈진쇠춤〉 등은 신전통춤 계열이라고 할 수 있고, 솔로춤으로 창작된 것이다. 김태훈은 이들 모두를 군무로 재구성한다. 두드러진 특징은 한명의 춤꾼을 무대 앞으로 돌출시키고, 나머지는 두 줄로 나란히 서거나, 타원형으로 둘러서거나 혹은 오방을 짠다. 그리고 앞에 선 춤꾼을 중심으로 전원이 동일한 춤을 추고, 원형 경로를 그리며 퇴장하는 것이다. 국립예술기관의 정기공연에 오른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안일하고 빈약한 짜임새라고 할 수 있고, 전통의 재구성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한다.
유일한 신작이었던 〈타〉는 〈사물놀이〉, 〈소고춤〉, 작은 북을 들고 추는 〈벅구춤〉, 〈장구춤〉, 〈북춤〉 등이 순차적으로 맞물리며 전개된다. 타악기를 중심으로 한 이 같은 작품은 거의 모든 국공립단체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고전주의 발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각선, 직선, 원형 따위의 대형을 이용하여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박(拍)을 잘게 세분화하여 빠르게 휘몰아침으로써 관객의 청각을 일순간에 압도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작품 〈타〉의 대형은 일반적인 공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박을 무조건 세분하여 빠르게 내달리지 않는다. 대신, 장단의 특성이 드러나도록 한배를 잘 조절함으로써 관객의 귀를 압도하기보다 출렁이는 우리 리듬이 맛과 재미를 느끼게 한다. 그런데 시작에서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객석을 향해 과도하게 남발되는 춤꾼의 과잉된 웃음은 작품으로의 완전한 몰입을 저해시켰다.
신전통춤의 은밀한 향연
전승에 있어 일체의 변화를 금지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전통예술일반은 개인의 창조적 변용을 용인한다. 판소리의 경우, 고치거나 새로 만들어 넣은 부분이 인기가 있어 널리 검증되고 공인되면, 그것을 더늠이라고 부른다. ⟪춘향가⟫의 〈쑥대머리〉는 명창 임방울이 새로 고쳐 넣은 더늠이고, 〈나귀 안장〉은 정정렬의 더늠, 〈천자뒤풀이〉는 김세종의 더늠, 〈느린 사랑가〉는 송광록의 더늠, 〈자진 사랑가〉는 고수관의 더늠, 〈이별가〉는 박유전의 더늠, 〈귀곡성〉은 송홍록의 더늠, 〈호접동〉은 정정렬의 더늠이다. 이 각각은 판소리 ⟪춘향가⟫를 대표하는 창조적 부분인 동시에 전체 ⟪춘향가⟫를 변화 발전시킨 원동력으로 설명된다.
춤과 판소리를 동일시하기 어렵다. 그러나 더늠이 내포하고 있는 창조성과 대표성, 전체 춤과의 관계설정, 검증과정 등에 방점을 두고 춤에 원용하면, 전승과정에서 파생된 여러 춤들 중 일부만이 더늠에 견줄 수 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홍길동이 새롭게 고친 〈한량무〉가 더듬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미적 성취와 함께 전체 춤의 대표성을 가져야 하고, 이 종목 전체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검증되고 공인될 때, 비로소 더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승과정에서 변화된 모든 춤을 더늠으로 간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음성서, 대악서, 장악원, 이왕직아악부의 전통을 잇고 있는 국립국악원에서 채택된 공연종목은 우리춤의 대표성과 우수성을 포진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우후죽순(雨後竹筍)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새로운 전통춤을 공연종목으로 선정할 때에는 더늠에 비견될 수 있는가를 숙려해야 한다. 그리고 선정된 작품의 계통과 유파를 명확히 명시하고, 그 춤의 우수성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준하여 볼 때, 제10회 정기공연에서 보여준 특정 유파에 편중된 레퍼토리 구성, 출처의 누락, 빈약하고 안일한 작품구성 등은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국립부산국악원은 향토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학술작업과 ‘영남춤축제’를 통해 지역춤의 발전에 이바지한 바가 크다. 그런 만큼 신전통춤 종목을 중심으로 한 은밀하고 부실한 향연에 대한 실망감이 적지 않다. 여러 측면에서 개선방안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일 년이 넘게 공석으로 남아 있는 예술감독 및 안무가의 빠른 선임이라고 할 것이다. 지난 10년을 올곧게 매듭짓고, 새롭게 도약하는 국악원을 기대한다.
춤이론가. 무용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전통춤 형식의 체계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2016)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와 경상대학교에서 현대문화이론과 전통춤분석론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