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자연과 사람을 대립의 관점으로 보고 ‘사람이 만든 것(맨메이드)’이 과연 자연에서 오류인가 아닌가의 물음이 안무가 신창호의 출발점이다. 이 초등학생 같은 질문은 작금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고 있는 것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에 대해서도 역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태도로 질문화 되지 못한 질문이다.
이 어정쩡한 질문은 홍수처럼 밀려오는 새로운 기술세계를 무대에 끌고 와 무대화시킴으로써 새로운 무대를 창조하려는 것처럼 (홍보과정에서는) 기대를 일으키다가, 작품을 대면하고 나면 주요 모티브인 글리치(glitch/ 디지털 영상의 일시적 오류로 영상이 난시환자에게 보이는 것처럼 여러 겹으로 겹쳐 보이는 현상. 이 현상의 독특한 느낌을 활용하여 시각효과로도 사용함)라는 작은 현상을 가지고 동작과 장면을 만드는 것으로 귀착되고 마는, 그래서 나머지 많은 시간을 메울 수밖에 없는 현재 과학문명에 대한 작가의 입장에서도 디스토피아인지 유토피아인지, 그 중간 쯤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정하지 못한 채 공허한 놀음을 이어가는 것으로 관객을 끌고 간다.
정체성, 선택, 순리, 집합체, 경계, 해체의 6장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남녀 두 명의 무용수가 대사와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섞어 진행하는 매우 현재적이면서 즉흥적인 장면을 제외하고는 강도만 달라지는 비슷한 질감의 음악과 장면, 전체적인 백색 톤이 유사하여 무엇이 선택이고, 무엇이 해체 장면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후반부에 VR 헤드셋을 쓰고 나와 여성무용수 2인이 쌍둥이처럼 무대에서 깊이감을 가지면서 복제한 듯 겹쳐 움직이는 장면 역시 실제 VR의 사용이 아니라, VR(Virtual Reality)의 개념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의상의 일종으로 헤드셋을 사용하여 코드로 작용하게 한 것이어서 실망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이 작품이 별로 신선하지 않은 주제를 매우 신선한 기획과 작품인 것처럼 사전 인식하게 하고 그와 비례해 실망감을 안겨준 것은 국립무용단이 LG아트센터로 나와 공연하는 흔치않은 기회라는 것, 현대무용 안무가를 초빙한 것 등 그에 상응하는 ‘기대감’을 키운 무용단 기획의 실수로 보인다. 말하자면 내용과 포장지가 어울리지 않으면서 관객은 그 둘을 함께 제공받는 사람으로서 과대포장의 공허한 쓴 맛을 맛봐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LG아트센터에서 공연을 봐온 관객은 거기서 충족되었던 여러 신선한 미적 충격들에 대한 조건반사가 형성되어 있으니 이 작품의 허약한 맛은 애매하고 씁쓸하게 느껴질 밖에….
국립무용단은 2005년 88회 정기공연에 ⟪주목-흐름을 눈여겨 보다⟫에 안성수를 초청하여 현대무용가⨯국립무용단 단원들이 공연한 〈틀〉을 시작으로 그 이후 십년 정도는 배정혜 안무를 중심으로 무용극에서 벗어나 퍼포먼스성이 강한 작품들을 실험하다가, 2014년 테로 사리넨의 〈회오리〉, 2015-16년 조세 몽딸보의 〈시간의 나이〉로 행보를 이어가며 현대무용과의 경계를 허물며 동시대춤을 향해 과감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 흐름에서 보자면 〈맨 메이드〉에서 보여지는 춤의 여러 단면 또한 맥락을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신창호는 한국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활동해왔다. 내 개념에 의하면 현대무용가들이 서구에서 출발한 형식과 기법을 교육받은 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거치며 한국적인 공연형식이나 음악 등을 즐겨 사용하는 ‘한국전통에 대한 구심성(centripetal tendency)’조차도 갖지 않았던 안무가였다. 깔끔하게 자신이 배운 현대무용을 중심에 놓고 작품세계만을 고민해오고, 라반 체계에 근거해 움직임과 안무방법에서 군더더기 없고, 감정에 과도하게 빠지지 않는 안무를 해온 안무가이다.
그런 그가 국립무용단과 작품을 한다는 것이 국립무용단의 입장에서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이었나에 대한 답은 공연에서 눈으로 확인되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무용수들이라는 자부심에 걸맞게 노력한 흔적은 보이나 익숙지 않은, 몸에 익지 않은 동작을 연습이 아니라 극장에서 공연하는 모습은 여러 가지로 불편한 일이었다. 마치 직장인 체육대회 마냥 흰색 체육복에 운동화를 똑같이 맞춰 신고 익숙하지 않은 현대무용 동작을 하는 국립무용단, 그것도 작품성을 고도로 갖추는 어떤 이론적, 문명적 근거도 갖추지 못한 학생용 작품정도를 공연하는 국립무용단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것인가….
테로 사리넨이, 조세 몽딸보가 국림무용단을 만나 한국문화와 한국춤에 대해 고민했던 그 깊은 고민과 그 실험적 과정을 겪고 이제 조금씩 춤을 춘다는 것, 춤을 짠다는 것에서 전문가가 되어 자신이 살고 있는 동시대를 어떻게 출 것인지를 진지함 속에서 찾아가고 있는 국립무용단의 매우 역사적인 행보에 신창호⨯국립무용단의 이번 기획은 외국인보다도 못한 한국춤에 대한 무관심과 국립무용단에 대한 무지로 노력과 돈을 헛된 것으로 만들고, 현대춤과 한국춤의 원치 않는 ‘충돌’을 생산하는, 잘못된 발생과 진지하지 못한 고민의 소유자들이 만든 〈맨 메이드〉 라는 오류의 한 걸음을 걸은 것으로 보인다.
이지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춤비평가로 등단했다. 2011년 한국춤비평가협회의 정회원이 되었으며, 최근 비평집 『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 왕성한 비평 작업과 함께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강사, 서울무용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