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앰비규어스 〈틈〉
예측불허의 틈과 틈
김채현_춤비평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를 적잖이 보아온 터에 그들의 무대에서 아직도 예측불허(豫測不許)를 기다린다면 의아하게 들릴지 모른다. 춤계에 단체 이름을 제출한 지 몇 년이 흘렀는지 점차 아득해져가는 이즈음에 와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면이 앰비규어스에는 있다. 이번 달 앰비규어스가 올린 <틈>은 이런 생각을 강하게 갖도록 한다(안산문화예술의전당, 5. 18~19.).
 공연작 <틈>은 현실과 상상 사이의 틈새를 파고든다. 현실과 상상은 연속되긴 해도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상상이 현실이 되고 현실은 다시 상상에 의해 다른 현실로 변경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현실과 상상의 돌고 도는 그 사이에 틈이 있고, 틈이 없으면 상상은 정지된다. (상상할) 틈이 없다면 상상은 작동하지 않는다. 쉴 틈, 생각할 틈, 심지어 숨쉴 틈과 흡사한 맥락에서 상상할 틈은 현실을 끌어가는(또는 추동하는) 그 무엇이다. <틈>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관객이) 상상할 틈이다.
 




 <틈>에서 판을 끌어가는 것은 미스터리한 5명의 사나이들이다. 그들이 등장하기에 앞서 6명의 꾼들이 준비팀 같은 역할로써 무대 분위기를 일구는 정지(整地) 작업을 수행한다. 도입부에 해당하는 이 부분이 있고 난 다음 5명의 본 무대가 진행된다. 도입부에서 꾼들은 모두 캐주얼한 평상복 차림이며, 본 무대의 5명은 하얀 펜싱복 같은 것에다 하얀 망토 같은 것을 걸쳐서 도입부의 꾼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들이다. 이로 미루어 도입부는 현실, 본 무대는 상상의 세계로 수용된다. 도입부에서 〈it's still rock and roll to me〉 〈shining star〉의 흥에 맞춰 꾼들은 나름의 틈을 포착해서 상상의 몸짓을 펼친다. 본 무대의 몸짓들에 비해 손쉬운 몸짓들은 전개가 경쾌하고 또 관절을 꺾으며 스타카토 풍으로 연결하는 품새들이 나름 조화를 이룬다.

 



 무리를 지은 그런 꾼들 앞에 갑자기 나타난 어느 정체불명의 사나이는 얼핏 하얀 도깨비 같은 존재를 연상케 한다. 꾼들이 그 사내를 쫓아내고 혼비백산하듯이 사라진 연후에 열리는 무대에서 한 사나이가 가위 눌려 숨막혀 쓰러진다. 흰색의 펜싱복 같은 것에다 하얀 망토 같은 것을 걸친 4명의 사나이가 이 사내를 깨우고 부축해서 일상복을 벗겨내고서는 자기들과 같은 차림새의 한 통속으로 만들어버린다. 이 장면은 일상의 현실에 지친 사람을 구해내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이들 5명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그들이 노니는 모습에서 뚜렷한 스토리텔링이 발견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현실과 상상 사이를 오가는 가공의 존재로서 상상과 꿈을 자극하는 어떤 부류의 역할자 정도로 소개됨직하다. 도니제티의 〈lucia di lammermoor〉, 모차르트의〈alleluia〉, 나지 하킴의 〈memor〉, 바흐의 <푸가(BWV 543)>와 같은 클래식 음악 일색인 본 무대는 앰비규어스다운 판타지를 연출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 판타지를 구현하는 움직임들은 물론 신축성과 순발력이 강한 예의 ‘김보람표’ 움직임들이다.

 

 


 <틈>에서는 관객이 현실을 벗어나 상상할 수 있는 틈을 ‘움직임’을 매개로 들이미려는 의도가 강하다. 이 점은 <틈>을 앰비규어스의 이전 작들과 더러 차이나게 한다. 때로는 스포츠맨, 때로는 동물, 어느 순간에는 기계의 그것에 비견될 움직임을 <틈>은 마음껏 구사하며 관객이 상상할 틈을 잇달아 제시한다. 극한(極限)의 것이라 해도 과장된 말이 아닐 <틈>의 움직임들은 글자 그대로 분골쇄신(粉骨碎身)의 느낌 그 자체이다.
 경계 없는 몸자세들로써 공상의 세계를 스스로 놀아나는 데서 객석도 상상을 멈추기가 여의치 않다. 말하자면 농도 짙은 질감의 움직임들이 객석의 상상 작용이 멈출 틈을 좀체 허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본 무대에서 바흐의 <푸가>가 깊은 음색으로 울려퍼지는 마지막 장면은 국내 춤 무대에서 <푸가>와의 만남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에너지가 강한 움직임에 임팩트 그리고 아름다움을 더한 점에서 인상깊게 수용된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게임을 앰비규어스는 멈추지 않고 있다. 예측불허! 웬만하면 정형화한 상태에서 머물기도 하겠건마는 앰비규어스가 그럴 것이라는 짐작은 <틈> 때문에 더욱 빗나갔다. 이 단체가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의 상주 단체인 것이 그 게임을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예측불허, 좋은 것은 일단 좋은 것이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8. 06.
사진제공_김채현,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