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부산시립무용단 〈댄스 유토피아〉
삶을 위무하는 춤·굿
권옥희_춤비평가

전통을 입은 현대판 굿이었다. 부산시립무용단(예술감독 김용철)의 정기공연 〈댄스 유토피아〉(부산문화회관 대극장, 5월31일~6월 1일). 예술감독 취임 3년차, 공립단체가 추구해야할 춤 방향과 정체성이 어떻게 자리잡아가고 있는지 들여다볼 기회였다.
 우려가 있었다. ‘부산국립국악원’이 있는데 굳이 ‘부산시립무용단’이 전통춤을 무대에 올린다니. 전통춤을 해체하고 변혁시켜 정화를 거쳐 의미 확장시킬 자신이 없는 작업이라면 춤 낭비다. 그만 봐야 한다. 춤을 본다.
 머리에 얹은 민족두리, 흰 얼굴에 붉은색 입술, 목에서부터 쓴 쓰개치마 아래로 얼굴과 상반되는 두께의 팔다리가 휘적휘적 무대를 가로지른다. 이승의 시간이 아님을 암시하는 존재다. 무대를 여닫는 예술감독의 독특한 춤 색깔이다. 그 색은 바라춤에서 깊이를 얻은 뒤 무당춤에서 더 선명해진다.
 김용철감독의 독특한 춤 색깔이 녹아있는 바라춤. 적·흑 장삼의 군무진과 몸의 마디마다에 바라를 붙인 남자와 그를 둘러싼 나신의 남자들. 바라를 칠 때마다 언어 다발이 숫자로 변하고 염불소리가 다국적인 활자로 흘러내리는가 하면 부처상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기이하고 어지러운 것들의 집합이 바라춤 속에 들어와 전통이 현대성을 얻는 길을 터준다.




 여기에 현대춤을 추는 조현배의 솔로로 풀어낸 지전춤은 어떤 해석을 얹어도 의미 확장이 가능한, 근사한 춤이었다. 전통의 변혁이다. 조현배 자신에게 맞는 우리시대(젊은)의 지전춤을 얻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무대에 있었다. 박병천의 소리, ‘용신풀이’ 가사가 춤의 서정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한지(지전)가 내는 소리는 춤 서정의 또 다른 재료가 된다. 가파른 삶처럼 점점 빨라지는 무속가락에 얹힌 춤(지전)이 소용돌이치며 돌아드는 무대, 이승과 현실의 두 세계에 도취된다.

 

 


 흰 조명아래 지전더미가 산을 이룬다. 덧없다, 청춘과 삶처럼. 혼자 무대를 누비는 지전춤에 덧입혀지는 무당춤.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사라지기를 추구한다는 말이기도. 붉은 갓을 쓴 무용수의 (신)묘한 표정을 잡은 영상. 적,녹,청,노랑 등 원색을 톤 다운시킨 의상 색의 조합. 넓은 폭 치마가 아닌 좁은 폭의 치마와 상의, 길고 짧은 원색의 가디건, 붉은 색 부채와 갓. 그리고 춤. 뒤로 비스듬히(삐딱하게) 선다거나, 돌아서다 장단에 맞춰 팔을 툭, 늘어뜨리고 객석을 슬쩍 쳐다보는 춤사위는 귀신마저 홀릴 듯하다. 무용수의 서기어리고 교태어린 춤이 바람처럼 무대를 가르니, 넋(꽃가루)이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고 무당의 방울소리 요란하다. 예술감독의 춤 감각이 빛을 발한 장이었다.

 



 반면 살풀이춤을 풀어낸 첫 장, 정화는 물론 해체도 변혁도 보이지 않는다. 전통의 고졸한 맛도, 예술감독이 의도한 제(祭)의 의미도 담아내지 못한, 춤의 감정도 흥취도 없는 평면적인 춤이었다. 이영애(한복디자이너)가 무대에서 살풀이 천에 그림을 그리고 무용수에게 건네는 것, 맥락 없다. 살풀이춤에 대한 예술감독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무언가’를 끌어내야 했다. 우려했던 내용의 장이었다.

 



 에필로그, 무용수들이 흑백의 프레임을 밀고 나와 무대를 서성이니, 흑과 백이 교차한다. 출처를 모르는 프레임은 비문에 매달린 춤의 주어 같은 것. 마치 죽음과 삶 중 어느 것이 춤의 수식어인지 걱정 말라는 듯. 프레임 뒤에 서면 보이고 앉으니 보이지 않는다. 생과 죽음이 하나인 것이다. 제(祭)는 상(喪)에서 진화한 것. 무당의 붉은 입술과 갓, 바라춤의 죽음과 검정색 장삼, 녹색과 노랑이 동색인 것처럼 살풀이와 바라춤, 지전춤과 무당춤은 상(喪)에서 비롯된 애초에 같은 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무대에 가득, 삶을 위무하는 춤(굿)이었다.
 현대적이 된다는 것은 곧 고전적으로 되는 것이다. 예술감독은 전통의 해체, 재해석이라는 이름을 걸고 현대적 감각으로부터 넘어서 오래된 춤에 부응하여 지켜야할 것을 되찾아내고, 새로운 것들의 자극과 흥분을 이용하여 이미 무뎌져 버린 전통춤의 고전적 가치로부터 그 상투성을 벗겨내는 작업을 모색하는 중으로 보인다.
 바라건대 전통춤 작업을 할 때 한국 전통춤의 새로운 해석, 정신은 가지고 가되 표현은 감각적이고 세련되게. 한국창작춤 작업에 이어 부산시립무용단이 추구해야할 또 하나의 춤 정체성이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 대구, 부산 공연을 많이 보고 있다.
2018. 07.
사진제공_부산시립무용단/하성민 *춤웹진